006. ‘거제둔덕기성’과 고려왕 ‘의종’ 이야기 - 임희수
둔덕면 거림리에는 거제의 20여 개 성곽 중 하나인 거제둔덕기성이 있다. 고려 의종 집권 24년인 1170년 정중부 등 차별받던 무신들 이 문신들을 죽이는 난을 일으켰다. 의종과 그를 따르는 신하, 가족들은 거제 기성현으로 피하여 왔다.
고려사 기록에 의하면 9월, 기묘(己卯)에 왕은 단기(單驥)로 거제현(巨濟縣)에 사피(辭避)하고 태자(太子)는 진도현(珍島縣)에 내쳤다. 이날 정중부(鄭仲父), 이의방(李義方), 이고(李高) 등은 군사를 거느리고 왕의 아우 익양공(翼陽公) 왕호(王晧)를 맞이하여 즉위하게 하였다. 명종(明宗) 3년 8월에 김보당(金甫當)이 사람을 보내어 왕을 받들어 계림(鷄林)에 출거(出居)하게 하더니, 10월 경신(庚申)에 이의민(李義旼)이 왕을 곤원사(坤元寺) 북연상(北燕上)에서 시해(弑害)하였다. 수(壽) 47, 재위(在位) 25년, 손위(遜位) 3년이었다. 시호(諡號)를 장효(莊孝)라 하고, 묘호(廟號)를 의종(毅宗)이라 하였으며, 능(陵)을 희릉(禧陵)이라 하였다. 고종(高宗) 40년에 강과(剛果)라는 시호를 더 하였다.
▶ 둔덕기성 성곽
고려 무신의 난1)을 피해 의종과 가족들, 왕을 따르는 추종자들은 멀리 거제도라는 섬으로 들어와 왜 둔덕기성에 자리를 잡았을까? 거제는 신라 문무왕때 상군으로 불리다가 경덕왕 때 거제군으로 개칭되고 고려 때 거제현령을 두었다. 이곳 둔덕면 거림리 일대는 신라시대부터 상군의 치소지가 있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거림리에서 상사리(裳四里) 기와가 출토되면서 더욱 더 확실시되고 있다. 또한 둔덕기성이 의종이 피신하여 쌓은 성이라는 이야기와 다르게 기성 안의 연지에서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 수백 점이 쏟아져 나왔다. 토기, 청자상감입문매병, 청동그릇, 화살촉, 나무망치 등 유물을 통해 이미 이곳 기성이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을 알 수 있다.
▶ 둔덕기성 내 석환군
의종은 완전한 성의 모습은 아니지만 이미 지어진 성곽을 보수하여 급히 피왕성을 만들었을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성곽의 모습도 밖으로 둥글게 살짝 튀어나온 형태로, 이는 고대 성곽의 축성기법이다. 삼국시대에 지어졌지만 허물어진 성곽을 고려 의종 때 보수, 증축하여 시대별 성곽 축성법을 볼 수 있다.
기성의 북쪽 정상부에 올라가면 전망이 매우 아름답다. 서쪽으로 견내량이 보이고 남쪽으로 다도해 바닷길, 북쪽으로는 사등면 진해 만까지도 보인다. 의종은 혹시라도 정중부의 무신들이 뒤쫓지 않을까? 아니면 권력을 잡은 동생 명종이 사약을 보내지는 않을까? 항상 근심 어린 마음으로 오량성으로 들어오는 배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히 짐작도 되지 않는다.
가장 북쪽 돌무더기가 눈에 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투석전용으로 석환을 모아놓고 전쟁을 대비하였다. 특히 이곳 석환은 거제 바닷가에서 많이 보이는 원형, 타원형의 몽돌로 2,000여 개가 넘는다. 동문지에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는 다락문도 일반적인 성문이 아니다. 통행이 자유롭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내려주어야 드나들 수 있는 다락문으로 만든 것을 보면 당시 의종의 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일제 강점기 전에 사람들은 거제둔덕기성을 피왕성이라 불렀다. 의종이 무신의 난 때 유폐되어 쌓은 성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성이 있던 자리에 의종이 피신하여 증축시킨 성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기존 성의 이름을 바르게 불러주어야겠다. 기성현이라는 지명은 중앙 관지에 기록된 것은 없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거제군지》 등 지방지에 기성현으로 불렸다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그리고 기성관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상량문에 기성이라는 기록이 있으므로 이미 고려시대부터 기성현이 존재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 언제부터 폐왕성이라는 기록이 나왔을까? 일제 강점기 1931년 《경남의 성지》라는 문헌에 폐왕성과 피왕성이라는 기록이 등장하지만 동시에 기록한 지도에는 기성이라고 기록해 놓았다. 이 또한 기성이라는 명칭이 이미 널리 알려진 것임을 입증하는 기록이다. 이후 1974년 2월 16일 지방문화재 폐왕성으로 지정되면서 오히려 기성이 폐왕성으로 더 많이 불리는 계기가 된 듯하다. 다행히 2010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이 되면서 거제둔덕기성이라는 제 이름을 되찾았다. 20여 개가 넘는 성곽 중 유일한 국가 사적인 만큼 다시 찾은 이름을 제대로 불러 주어야겠다.
둔덕면에는 고려 의종과 관련된 지명이 지금도 많이 있다. 의종의 대비와 관련된 대비 안치봉, 의종이 거림리 기성을 방비하던 기관이 있었던 자주방, 방하리 일대 의종을 따라왔던 문신이나 귀족들의 가족들이 묻힌 곳이라 전해지는 고려총, 군마를 기르던 마장마을, 의종의 호위군을 위아래에 주둔시켰다고 상·하둔덕방, 둔전을 설치하고 곡식을 생산하여 식량을 공급하게 하였다는 하둔리, 상둔리 등 많은 지명이 남아 의종을 연상케 한다.
둔덕농협 2층에 쇠고기가 맛이 좋다고 소문난 식당이 있다. 평일 낮에도 손님으로 가득하다. 의종이 피신하여 오면서 많은 호위군사들과 말들이 둔덕면 일대로 들어왔고 우두봉과 기성에 이르는 양지 바른 넓은 초원에 말을 방목하여 키웠다고 한다. 그 말들 뒤로 소를 놓아먹였는데 ‘거제는 소섬, 제주는 말섬이라 불리며 특히 약초를 먹은 거제 소를 제일로 평가하였다’ 한다. 둔덕면에 쇠고깃집이 유명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무신의 난을 피해 피신하는 왕을 품어 준 거제둔덕기성, 그와 관련된 지명과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러 이야기들이 전해지는 둔덕면 거림리. 아직도 발굴이 안된 유적지가 많은 곳으로 더 재미있는 이야기도 발굴되리라 기대해 본다.2)
- 거제 역사의 남겨진 이야기 (거제문화원, 2023년 12월)
1) 《고려사》 2권 19세가 권19 의종 3년조. 2) 《둔덕면지》, 2002년. 둔덕면사편찬추진위원회 성곽박물관 거제, 2021년, 거제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