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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거제 역사의 남겨진 이야기
◈ 007. 고려시대 거제현의 토착세력 성씨 이야기
고려시대 거제현의 성씨는 토성, 내성, 속성, 촌성, 백성성으로 분류하고 있다. 토성(土姓)은 거제 본래의 토착성이고 내성(來姓)은 주로 거제지역 인근 군현의 토성에서 이속되어 온 성이며, 속성(續姓)은 여말선초 이래로 거제현의 향리가 부족하여 이를 보충 내지 열읍(列邑) 간 조정한 결과 옮겨와서 형성된 성이고, 촌성(村姓)은 토성이 확정된 후에도 거제현의 관내에서 독자적인 구역을 보유한 채 임내(任內)와 병렬해 있던 촌락의 성이며 백성성(百姓姓)은 거제지역 촌락지배의 성단(姓團)으로서 거제현의 성립 시에 참가한 읍내(邑內)의 인리성(人吏姓)과 함께 토성이 된 성이다.
007. 고려시대 거제현의 토착세력 성씨 이야기
- 김의부
 
 
고려시대 거제현의 성씨는 토성, 내성, 속성, 촌성, 백성성으로 분류하고 있다. 토성(土姓)은 거제 본래의 토착성이고 내성(來姓)은 주로 거제지역 인근 군현의 토성에서 이속되어 온 성이며, 속성(續姓)은 여말선초 이래로 거제현의 향리가 부족하여 이를 보충 내지 열읍(列邑) 간 조정한 결과 옮겨와서 형성된 성이고, 촌성(村姓)은 토성이 확정된 후에도 거제현의 관내에서 독자적인 구역을 보유한 채 임내(任內)와 병렬해 있던 촌락의 성이며 백성성(百姓姓)은 거제지역 촌락지배의 성단(姓團)으로서 거제현의 성립 시에 참가한 읍내(邑內)의 인리성(人吏姓)과 함께 토성이 된 성이다.
 
거제현의 세 속현인 아주현, 송변현, 명진현과 그 하부 단위인 향(鄕)·부곡(部曲)의 토착 지배적인 성씨 집단을 정리하면 《세종실록지리지》에 거제현의 백성성으로 분류된 손(孫)·조(曹)의 성씨집단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에는 토성으로 분류되어 있어 거제현의 경우는 토성과 백성성이 동일한 이족(吏族) 성씨 집단을 지칭하고 있다.
 
 
 
 
두 지리지의 토성에는 정(鄭)·반(潘)으로 기재된 순서가 반·정으로 바뀌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세종 연간에서 성종 연간에 이르러 거제현에 있어서 토착 성씨 집단의 세력 판도가 변화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종 연간에 우세하였던 정씨 집단이 성종 연간에는 반씨 집단으로 변화되어 갔다는 것이다. 기술된 이들 성씨집내은 내성과 속성을 제외하면 나말여초 이래로 조선 전기까지 거제지역의 토착세력이며, 내성과 속성은 고려시대와 여말선초에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와서 향리의 역할을 한 세력집단이다.
 
 
거제반씨(巨濟潘氏)
 
《조선씨족통보》에 의하면 반씨(潘氏)의 연원(淵源)은 중국 주나라 문왕의 여섯째 아들인 계손(季孫)이 반(潘)땅에 봉해지고 그곳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으면서부터이며, 이후로 반씨의 성(姓)이 시작된 것으로 전한다.
 
《반씨대동보》의 기록에 의하면 한국 시조 반부(潘阜: 본명은 서)는 계손의 9세손으로 서기1230년(고려 고종 17년)에 출생하여 주나라의 문과(文科)에 올라, 이부상서(吏部尙書)로서 1265년(원종 6년) 원(元) 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갔다가 원(元)의 세조(世祖: 몽고제국 5대의 황제)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신하가 되어 달라는 권유와 협박을 당했으나 뜻을 굽히지 않고 절의(節義)를 지키자, 원의 세조가 가상히 여겨 제국대장공주(薺國大長公主: 원나라 세조의 딸·충렬왕비)를 배행(陪行)케 하여 고려(高麗)로 돌아가게 하였다고 한다.
 
그후 고려 충렬왕(忠烈王)이 그의 인품과 공적을 치하하여 문하시중(門下侍中)의 벼슬을 내리고 기성(岐城: 거제의 옛 지명) 부원군에 봉했다. 그의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하고 거제(巨濟)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기성(岐城) 남평(南平) 광주(光州) 결성(結城) 등의 관향으로 분파되었다.
 
거제반씨의 시조 반부는 문과급제 후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 문형(文衡) 정당문학(政堂文學) 등을 거쳐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오르고 기성(岐城: 거제의 옛 지명) 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이로부터 후손이 거제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기세했다. 그의 원 이름은 서이며 반씨 원조인 중국 주왕의 여섯째 아들 반계손의 9세손으로 사후 문절(文節)의 시호가 내려졌다. 그는 원래 중국 주나라 사람으로 한림학사(翰林學士)와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역임했으나 몽고의 침입으로 서울 연경(燕京)이 함락되자 몽고로 붙잡혀 갔다. 원의 세조가 그의 충절과 재능을 인정, 제국대장공주를 그와 함께 배행(陪行)하게 함으로써 고려에 와서 세거한 것이다.
 
그후 고려에서 권신(權臣), 임연(林衍) 일당을 숙청하고 원종(元宗)을 복위(復位)시키는 데 공을 세웠고, 삼별초난(三別抄亂) 때는 원수(元帥)로 다시 공을 세웠으며, 또한 지병마사(知兵馬使)로서 여몽(麗蒙) 연합군의 일본 정벌에도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후손들이 손세번연(孫勢藩衍)하여 기성(岐城) 남평(南平) 광주(光州) 결성(結城) 등 4 개관(個貫)으로 되어 분적되어 오다가 1975년 반씨대동보를 발간하면서 거제반씨로 합본(合本)시켰다.2)
 
 
거제 아주신씨(鵝洲申氏)
 
아주현은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 거제군으로 개명함과 동시에 아주현(현 아주동), 명진현(현 거제 명진), 남수현(현 남부 다대리) 세 현을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아주는 고려시대 거제의 속현으로 있던 아주현이다. 지금의 한화오션이 있는 지역에 있었다.
 
아주신씨의 시조는 고려 때 아주현의 권지호장(權知戶長)을 지낸 신영미(申英美)이다. 신영미의 윗대 조상은 신익후(申益候)이다. 신영미가 아주현 호장으로 있으면서 거제에 정착하여 아주신씨의 시조가 되었다. 신영미의 묘(墓)가 거제 아주동 당등산 혈맥의 명당지에 있었다. 1972년 대우조선소 부지 공사 때 묘지가 발굴되었다. 묘지에서는 고려시대 숟가락과 부식된 동조(銅造) 밥그릇이 나왔다. 후손들이 묘지 속의 흙과 유품을 칠성판에 담아 이장하였다.3)
 
선계(先系)를 평산신씨 신숭겸의 후예로 보는 가운데 그가 고려조에서 문하시랑을 역임한 후 무공(武功)을 세워 아주군(鵝洲君)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동파보》 등 문헌에 따르면 신숭겸(申崇謙)을 시조로, 신익휴(申益休)를 관조(貫祖)로 기록하고 있는데, 2세인 신영미를 시조로 밝히고 있는 사료(史料)도 있다. 문중은 고려조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신윤수를 비롯하여, 조선조의 동지중추 신흥효, 학자 신정주 등의 인물을 대표로 꼽으면서 번계(繁系)를 지속시켜 나가고 있다. 분파로는 읍파〔邑派: 부령공파(府令公派)〕와 구파〔龜派: 봉주공파(鳳洲公派)〕가 있다.4)
 
 
반신이재(상문동 삼거리 - 일운면 지세포)
 
상문동 지역의 옛사람들은 삼거리에서 일운면 지세포로 넘어가는 10리 넘는 긴 재를 반씨와 신씨의 두 친구가 함께 곡식을 팔고 바다고기를 사서 넘나들었다 하여 반신이재라고 불렀다고 전하고 있으나 어느 날 와전되어 반씨와 송씨가 살았다고 반송이재라고 불렸는데 송씨는 하청부곡에 살았기 때문에 관련이 없어 보인다. 지금은 반송재로 부르고 있지만 조선시대의 토착성씨를 보면 거제현에는 정, 반, 박, 윤, 손, 조, 나, 신, 이, 박씨가 살았고 아주현에는 신, 문, 갈, 조씨가 살아 ‘반송이재’보다는 ‘반신이재’가 더 믿음이 있어 보인다.
 
 
- 거제 역사의 남겨진 이야기 (거제문화원, 2023년 12월)
 

 
1) 《신증동국여지승람》, 1530(중종 25년), 경상도 거제현, 이행 등 증보판.
2) 《한국의 성씨보감》, 은광사.
3) 《한국성씨보감》
4) 《거제시지》
【문화】 거제 역사의 남겨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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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7. 고려시대 거제현의 토착세력 성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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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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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