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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거제문화원의 지식창고 거제 역사의 남겨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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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거제 역사의 남겨진 이야기
◈ 012. 151년 만에 선조의 땅으로 돌아오다
거제는 왜와 가까워 왜구에 많이 시달린 지역이었다. 이 시기는 많은 지역들이 왜구의 침략으로 백성들의 원성이 많았을 뿐 아니라, 삼별초의 항쟁으로 거제현을 침입하여 전함을 불사르고 현령을 잡아가는 등 백성들이 살기 어려워지고 고려 조정 또한 물리칠 궁리를 하고 있었지만, 묘책을 찾지 못했다.
012. 151년 만에 선조의 땅으로 돌아오다
- 박광숙
 
 
거제는 왜와 가까워 왜구에 많이 시달린 지역이었다. 이 시기는 많은 지역들이 왜구의 침략으로 백성들의 원성이 많았을 뿐 아니라, 삼별초의 항쟁으로 거제현을 침입하여 전함을 불사르고 현령을 잡아가는 등1) 백성들이 살기 어려워지고 고려 조정 또한 물리칠 궁리를 하고 있었지만, 묘책을 찾지 못했다.
 
그리하여 거제를 완전히 비워 먹을거리를 없애는 방안인 공도정책2)을 마련하고 고려 원종 12년(1271년) 거제 사람들을 피난시키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거제현이 거창군의 가조현(加助縣)으로, 명진현이 진주목 영선현(永善縣)으로 피난하였다.
 
이후 태종 14년(1414년)에는 거제와 거창을 아울러 제창현(濟昌縣)이라 칭3)하고 거제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거제의 많은 사람이 고향을 떠나 낯선 환경에 살게 되었으나 고향으로 돌아갈 때를 기다리며 가조현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농사를 짓고 살게 되었다. 이 시기의 거제 역사는 섬의 역사와 제창현의 역사를 같이 검토하고 단절하지 않도록 잘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 《고려사절요》(원종 1259~1274)
 
 
거제 사람들이 섬을 떠나 있는 동안 왜구의 소굴이 되었던 거제는 먹을 것이 없어지자 점점 발길이 끊기기 시작하였고 나라에서도 왜구를 소탕하기 시작하였다. 고려 말에 이르러서는 홍산전투(1376년), 진포해전(1380년), 황산전투(1380년), 관음포전투(1383년) 등에서 승리를 이루었고 화약과 화통을 실험하는 등의 전략을 강화하고 대마도를 정벌하기에 이르렀다. 4)
 
조선 초기 태조 때는 고려 왕의 후손인 왕씨를 거제도로 유배보내고, 복원운동과 모반사건으로 인한 유배지로서의 기능이 강화되자 거제 백성들의 불만이 잇따르고 태종 15년(1415년) 거제현으로 되면서 현령이 부임했다.5) 점차적으로 거창에 있던 아전과 관노비 등이 환도를 하였고 명진 백성들은 복귀하지 못하였는데 세종 4년(1422 년) 드디어 거제도로 다시 돌아와 수월평에 목책을 쌓고 치소를 시작한다.
 
수월동의 목책성의 위치가 수월동 산 39-10번지 일원으로 비정되면서 ‘수월리성지’로 명명되었다.6) 수월성지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신현읍 동쪽의 수월부락 바로 뒤편이며 국사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으로 체성이 있다고 한다. 현재의 시점으로 바라보면 수월산성은 수월마을 뒤쪽 돌산교회 근처에 위치하고 있으나 전원주택단지로 개발되면서 그 형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 출처: 거제신문7)
 
 
수월산성은 거제시의 여러 산성 중 작은 규모를 가지고 있어서 왜 수월평(水月平)에 각 포의 선군(船軍)을 동원하여 목책을 설치하고 잠정적으로 관사를 세웠는지는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수월산성의 체성의 둘레는 67.5m, 높이 2m, 폭 1.8m 정도이고 평면 원형의 석축이 남아 있어 조선시대 성곽 유적임을 알 수 있다. 남쪽 능선 아래에 문지가 남아 있는데 개방식 개거형8)으로 문루를 갖춘 것은 아니며 개구된 문지 내외벽 면석은 큰 돌을 사용하고 있다고 ‘동아대학교 박물관 거제시 성지조사보고서’에서 기술하고 있다.
 
 
▶ 동아대학교 박물관 거제시 성지조사보고서9)
 
 
고려 원종 12년(1271년)부터 세종 4년(1422년) 151년 동안 거제도를 떠나 환도하여 첫 쌓은 치소지 수월성은 목책으로 쌓기 시작하여 큰 돌로 체성을 만들어 조잡하지만 1426년 사월포에 사등성을 쌓고 치소지를 옮기기 전까지 거제 백성의 안전을 지킨 곳이기도 하다. 현재 수월성지는 무분별한 개발로 그 자취를 찾기가 힘들다.
 
 
- 거제 역사의 남겨진 이야기 (거제문화원, 2023년 12월)
 

 
1) “삼별초가 거제현을 침략하고 영흥도 지역까지 횡행하다”〔《고려사》, 세가 권제27, 원종(元宗) 13년 11월〕.
2) 외부 세력으로부터 섬을 보호할 힘이 없을 때 섬을 비워서 변방 주민을 보호하는 정책
3) 《세종실록지리지》 【태백산사고본】 54책 150권 32장 A면/ 【국편영인본】 5책 651면.
4) 《세종실록》 4권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11장 B면/ 【국편영인본】 2책 319면.
5) 1751년(영조 27) 경상도 지역의 각 부목군현(俯牧郡縣)에서 통제영(統制營)에 보낸 ‘신미조(辛未條) 영치군향곡세말마감성책’ 등을 묶은 대장(臺帳)의 일부.
6) 동아대학교 박물관 〈거제시 성지조사보고서〉.
7) 최대윤 기자, 〈【거제의 성(城)18】 발굴하고 연구해야 할 거제의 성곽 유적〉, 2020년 10월 6일, 《거제신문》.
8) 개구부의 상부가 개방된 형태.
9) 최대윤 기자, 〈【거제의 성(城)18】 발굴하고 연구해야 할 거제의 성곽 유적〉, 2020년 10월 6일, 《거제신문》
【문화】 거제 역사의 남겨진 이야기
• 011. 수장된 고려 왕족들을 위한 ‘견암사’ 수륙재(水陸齋)
• 012. 151년 만에 선조의 땅으로 돌아오다
• 013. 거제의 읍기를 수월에서 사등으로 옮기다
(2024.09.0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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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