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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거제 역사의 남겨진 이야기
◈ 029. 시대별 변화되는 고지도(古地圖) 속의 거제도 이야기
세종 대에 자체적으로 위도와 경도 측정이 가능해짐에 따라 상세한 지도제작이 가능해지고 세종에 이어 세조 역시 지도 제작에 관심이 많아 동국지도가 완성되기도 하였으나 많은 전란 속에 소실되었다. 18세기 영·정조시대 농업과 상업의 발전으로 다양한 지도 제작이 성행하여 현재 남아 있는 지도 대부분은 조선 후기의 것들이다.
029. 시대별 변화되는 고지도(古地圖) 속의 거제도 이야기
- 천종우
 
 
세종 대에 자체적으로 위도와 경도 측정이 가능해짐에 따라 상세한 지도제작이 가능해지고 세종에 이어 세조 역시 지도 제작에 관심이 많아 동국지도가 완성되기도 하였으나 많은 전란 속에 소실되었다. 18세기 영·정조시대 농업과 상업의 발전으로 다양한 지도 제작이 성행하여 현재 남아 있는 지도 대부분은 조선 후기의 것들이다.
 
 
고지도 종류에는 나라 전체 모습을그린 전도(全圖), 각 지역을 그린 도별도(道別圖) 군현도(軍縣圖), 국경과 국방상의 요충지를 그린 관방도(關防圖), 역사 지도인 연혁도(沿革圖), 명승지를 그린 역람도 (歷覽圖) 등이 있다.
 
고지도(古地圖)속 거제도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
 
 
거제도 북동쪽에 위치한 6개의 진(鎭)이 표기되어 있다. 섬〔島〕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알아보면 고려시대부터 조선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섬은 반역향으로 경계의 대상이자 변방의 유배지로 인식되었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서 섬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졌다. 국가가 편찬하는 조선 후기 고지도를 보면 섬과 바닷길이 보다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조선 왕실의 달라진 의식 변화로 볼 수 있다.
 
 
여지도(與地圖)
1736년부터 1767년 제작 추정
해동지도의 필사본으로 추정
 
 
작은 종이에 제작되어 섬들의 표기가 상세하지 못하다. 오른쪽 아래 내매매도(內每每圖) 외매매도(外每每圖)는 지금의 대매물도와 소매물도이다. 거제대교가 있는 곳에 위치한 오량역은 역원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 한 성들의 표기와 거제도 본섬에 부속된 여러 섬들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광여도(廣與圖)
1737년 제작된 광여도에 수록된 거제부 지도
 
 
오른쪽 아래 일본계(日本界)라 표기되어 있어 왜구의 침입을 방비하기 위해 북쪽으로부터 장목포, 조라포, 옥포, 지세포, 가배량, 영등포에 진을 설치해 정4품 만호를 임명하였고, 율포보에는 보(保)를 설치하여 종9품 권관을 파견하여 지키게 하였다.
 
 
해동지도(海東地圖)
1750년대 제작된 회화식 군현지도
 
 
지도 여백에는 호구, 전결, 곡물, 군병, 역원, 서원 등의 항목이 표기되어 있다. 서원 아래 그려져 있는 향교의 위치는 현재의 향교 위치와는 다르다는 것을 지도를 통해 알 수 있다. 봉수대에서 나오는 연기가 이채롭다.
해동지도의 여백내용은 해석하여 아래에 기록하였다.
 
 
팔도지도(八道地圖)
1778년부터 1850년대 제작 추정
전국 8도 군현별 지도 중 거제부지도
 
 
현재 이수도는 이물도(利勿島)로 표기되어 있다. 율포와 구(旧) 율포로 표기되어 있으며 칠천도의 한자표기도 옻 칠(漆)자로 되어 있다.
 
 
조선지도(朝鮮地圖) 거제부
1789년부터 1795년대 제작 추정
비변사에서 사용하던 지도
 
 
지도 상단부 고하청(古河淸)으로 표기된 곳은 하청부곡이다. 칠천도는 소목장으로 표기되어 있다. 가라산 봉수와 한산도 봉수가 표기되어 있으며 한산도와 비진도, 용초도, 매물도 등 부속도서가 거제부 관할로 표기되어 있다.
 
 
목장지도
 
 
1678년(숙종 4년) 사복시 허목이 편찬한 전국 목장지도 중에서 거제도 목장지도. 한산도, 용초도, 산달도, 가조도, 구천동, 칠천도, 장목, 영등, 구조라에 목장을 두었으며 조선시대 중기 가조도를 가조음도라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에서 가져온 말을 칠천도에서 방목하였다.
 
 
거제부지도(巨濟府地圖)
1872년 제작
 
 
거제도에 위치한 7진(수군진)의 위치와 임진왜란 이후 고현(고정리)에서 지금의 거제면으로 옮겨진 읍치에 자리한 동헌, 객사, 향교 등이 자세히 표기되어 있다.
 
 
영남지도(嶺南地圖) 거제부
18세기 중엽 제작
 
 
칠천도 흑우목장으로 표기되어 있다. 지세포는 진이 아닌 포(浦)로 표기되어 있고 조라포진과 옥포진이 나란히 표기되어 있다
 

 
▶ 19세기 여지도 속 거제도
 
 
조선 후기 섬(거제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몇 가지 정리를 해보면, 첫째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수군진(통제영) 경영을 통해 이루어진 어·염전과 둔전, 그리고 활발해진 해상상업 활동의 영향으로 해상에서 들어오는 이익의 증가를 경험하면서 섬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둘째 섬에 있던 목장의 농지로 변경이다. 1663년 당시 사복시 제조였던 허목이 작성한 목장지도를 보면 선조 중년부터 양란 이후 점차 목장의 공폐가 심각해지는데 119개의 목장 중 말을 기르는 46개소, 소를 기르는 73개소가 모두 폐장되고 이후 목장의 복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농지로 바뀌게 되면서 농지의 증가로 인해 도민(島民)의 수가 증가되었다. 셋째 국가에서 엄격하게 관리하던 송금(소나무 벌채 금지정책)>>+ 에서 풍락목(바람에 넘어진 나무)의 판매를 허용해 줌으로써 백성들에 대한 수탈의 용도로 사용되었던 문제가 많이 완화되었다. 넷째 일본과 근접해 있는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 군사적 요충지로서 임진왜란 이후 수군의 중요성이 커진 이유가 되겠다.
 
✽ 고지도를 보는 방법
한 장으로 그린 지도(전도)는 동람도, 팔도총도, 조선방역지도, 김정호의 대동여지전도 등이 대표적이다. 여러 장으로 한반도를 그린 대표적인 지도는 김정호의 동여도, 대동여지도가 있다. 또한 조선시대 군현을 각각 그린 지도로는 광여도, 해동지도, 1872년 지도 등이 있다. 옛 지도 원본들을 직접 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한국역사 정보통합시스템(www.koreahistory.or.kr) dmf 규장각 원문검색서 비스(www.kyudb.ac.snu.kr) 국토지리정보원(www.ngii.go.kr)을 통해서 다양한 고지도를 볼 수 있다.1)
 
 
- 거제 역사의 남겨진 이야기 (거제문화원, 2023년 12월)
 

 
1) 자료 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한국의 옛지도(영남대학교 박물관), 조선지도(서울대학교).
【문화】 거제 역사의 남겨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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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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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