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 거제 공교육의 뿌리! 향교(鄕校)의 역사 ― 거창군 가조면 향교정(鄕校亭) 마을을 둘러보다 - 김해정
향교란 고려와 조선시대에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관학 교육기관으로서 인종 5년(1127년)에 인종이 각 군현에 학교를 설립하도록 함으로써 향교의 시초가 되었다. 조선이 건국되고 억불숭유정책으로 태조 7년에 고려의 제도를 따라서 성균관을 건립하고 지방에서는 국책으로 향교를 각 고을마다 세웠다.1) 경남의 진주 향교, 성주향교, 함양향교 등이 1398년에 세워졌다. 향교는 크게 두 가지 기능을 하고 있다. 첫째로 유교예절과 경전을 배우는 교육기능이다. 현재 중·고교 과정에 해당하는 교육시설로서 당시 양반 자제들을 대상으로 사서삼경을 비롯해 학령, 사목, 절목 등을 가르쳤다. 두 번째 기능은 유현(儒賢)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제향기 능이다. 그 외에도 향촌 기구로서 유교 예절을 잘 지킨 백성들의 포상을 건의하여 고을의 풍속을 단속했다.
거제향교는 현재 거제면 서정리 626번지에 1982년 8월 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6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교육과 제향을 이어가고 있다. 거제향교의 뿌리를 찾아보면 고려 의종 24년(1170년)에 거제 둔덕기성에 피신할 당시 의종왕을 따라온 문무백관과 병사들이 옮겨오면서 고려촌이 형성되었고, 거림리 고군현치소지 인근 ‘새앙골’에 향교를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다.2) 고려 원종 12년(1271년)에 공도정책에 따라 거제현민들이 거창 가조현으로 이주한 후 조선 태종 15년(1415년)에 거창 가조현 수월리 향교정마을에 거제향교를 건립하고 세종 4년(1422년) 거제현민들이 거제로 귀향하면서 폐지되었다. 거창군 《가조면지》에 따르면 “1414년 거창현과 거제현을 합하여 제창현으로 하였다가 1년 뒤 다시 거창현과 거제현으로 분리되었을 때에 거창과 거제에 각각 향교가 설립되었다”고 보고 있다.
거제향교는 1415년에 건립되었는데 세종 4년(1422년) 거제가 환도함으로 거창현의 거제향교는 자연히 없어지게 되었다.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 있는 ‘향교정마을’은 ‘거제향교’가 있었던 곳이라 전한다. 마을 서쪽 편에 해향골〔海鄕谷〕이 있으며 그 주변에 기왓장이 출토되는 등 지형적으로 향교 터임이 틀림없어 보인다.”3)
조선시대 세종 4년(1422년)에 거제로 환도하여 수월평에 목책을 치고 거제현치소로 사용하면서 수월 생골(향굣골)에 향교를 세웠다.4)
(좌) 거창 향교정마을 (우) 거제향교
세종 31년(1449년) 거제현령 이호성이 부임하여 1451년 가을부터 1453년까지 고현성(古縣城) 축조를 완성했다. 당시 현령 이호성(李好誠)은 현장을 진두지휘하였고, 관찰사 하연(河演)은 경상도 6읍의 장정들을 소집하여 지원했으며, 더불어 고현성 및 각종 성문, 관청, 객사, 향교의 위치와 방향을 풍수지리설(음양)로 장소를 잡은 분은 도제찰사 정분(鄭苯)이었다. 이때 관청과 객사가 건립됨과 동시에 고현 서문의 도론골에 향교가 함께 설립되어 이때부터 석전례(釋奠禮)5)를 행하였다.
《거제향교지》에 따르면 “거제향교는 세종 14년(1432년)에 고현 서문의 도론골(현 청소년수련관)에 향교를 건립하였으나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 그 후 현종 5년(1664년)에 거제현아를 거제로 옮겨오면서 1665년에 향교를 재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716년 거제면 동상리 오른편으로 옮겼다가 1855년 서정리 625번지 현 위치로 옮겼다.6)
- 거제 역사의 남겨진 이야기 (거제문화원, 2023년 12월)
1) 《거제향교지》, 2013, 거제향교, P.218. 2) 《신거제지명총람》, 2019, 거제문화원, P.238. 3) 《가조면지》, 2016, 가조면지편집위원회, P.151. 4) 《신거제지명총람》, 2019, 거제문화원, P.432. 수원 생골은 예전에 마을 옆 향교가 있었던 골짜기를 이른다. 5) 유교의 성인과 현인들을 추모하고 그 덕을 기리며 가르침을 되새기는 유교 행사이다. 6) 《거제향교지》, 2013, 거제향교, P.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