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 온 나라에 효의 귀감이 된 쌍효문(雙孝門) 이야기 - 정효진
거제에는 마을 곳곳에 마을에서 나고 자란 인물들로 그 효심을 기리기 위해 지금도 비석으로 자리 한켠을 지켜내고 수줍게 거제시민들에게는 효의 정신을 가르치고 있다. 거제 남부면 명사해수욕장 동쪽 끝, 그리고 6월이면 수국 축제가 열리는 저구마을에 독특한 비석이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명사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이 비석은 어떤 사연이 담겨 있는지 궁금하다.
쌍효비는 3명의 인물이 나타난다. 교관(敎官) 양한종은 자(字)가 경만이고 호(號)는 죽은(竹殷), 남원(南原) 양씨이다. 문양공(文養公) 휘(諱) 성지(城之)의 후예이다. 아버지 양재현은 수직(壽職)되어 가선오위장(嘉善五衛將)이었으며, 집안을 다스리며 법으로 향리를 이끌었었다고 한다. 양한종의 처 칠원윤씨는 채완의 여식으로 본디부터 효행이 있어 유순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양한종의 자식 중 막내인 영복이 쌍효록(雙孝錄)에 잘 나와 있다.
▶ 쌍효문(雙孝門)
지리적으로 부산보다 더욱 남단에 있는 거제는 해적들과 왜구들로 인해 끊임없이 몸살을 앓았다. 때는 구한말, 거제에는 어김없이 해적들이 들끓었다. 해적들의 약탈과 부녀자 겁박으로 마을의 사람들은 이리저리 흩어졌고 이들의 횡포를 막을 길이 없었다. 이 마을의 촌장이자 오위장(조선의 군직)인 양재현이 마을에 살고 있었다. 양재현은 명사마을을 잘 이끌고 마을의 문제가 있으면 늘 솔선수범하여 일을 해결하고 존경받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양재현은 마을에 해적들이 나타나 마을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겁박하는 등 피해를 입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양재현은 해적 들을 잘 타일러 돌려보내려고 하였다. 왜구들과 마주하고 난 후 양재현이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짚고 나서려는데 해적들은 가지고 있던 칼을 갑자기 뽑아 양재현에게 다가왔다. 함께 있던 아들 한종이 이를 보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해적들이 휘두른 칼을 몸으로 막았다. 다행히 양재현은 목숨을 구했지만 한종은 칼에 맞고 죽었다. 이날은 1905년 을사년 5월 13일이었다. 을사늑약이 있기 전의 조선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해적들은 이 마을에서 빼앗은 물건들을 배에 실었다. 배를 출발하여 가던 중 하늘의 노여움을 샀는지 바다에는 폭풍이 일어났다. 이날 배가 뒤집혀 배는 침몰하고 해적들은 몰살되었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31세로 고인이 된 양한종(1875~1905)에게는 유순했던 아내 칠원윤씨가 있었다. 당시 한종과 윤씨 사이에는 4명의 자녀와 배 속에 9개월 된 태아가 있었고 윤씨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여 남편을 따라 자결하려 하였다. 힘든 마음을 누르고 윤씨는 시아 버지에게 “제가 바라는 건, 어린 손자가 선대의 유업을 계승하도록 교육을 받았으면 합니다.”라며, 늙은 시아버지와 자식들을 위해 마음을 고쳐먹고 온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고 한다.
배 속에 있던 9개월 된 영복이 10살이 되면서 아버지 양한종을 그리고 애통해하며 밤낮으로 슬프게 부르짖었다고 한다.
양재현의 손자 영복, 영희, 영산 삼 형제가 부친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양한종의 효행과 부인 윤씨가 시부모를 공경한 효성을 기리기 위해 1919년 3월 나라의 도움으로 지금의 남부면 명사마을에 기실비를 세웠다. 기실비를 세우고 보호각을 설치하였으며 보호각 문 위에는 쌍효문(雙孝門)이라 새겼다.
명사마을에는 양희운과 20여 명의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명사초등학교 입구에는 명사마을 사람들이 1923년에 양한종의 아버지인 양재현 공의 시덕비를 세워 주었다.
강희석 명사마을 이장은 “양 씨 집안은 예부터 명사마을에 집성촌을 이루어 살았던 명망 높은 가문이었다”면서 “큰 비석(쌍효기실비)의 경우 한산도에서 만들어져 명사로 옮기면서 바다에 빠진 것을 마을 사람들이 건져냈고, 양재현 씨의 덕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작은 비석도 ‘사라호 태풍(1959년 9월 11일)’ 때 바다로 떠내려가던 것을 마을 사람들이 건진 일화가 있다”고 말했다.1)
효를 상징하는 이 쌍효비는 거제시 남부면 저구리 216-7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다른 비석들과 달리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어 살펴보았지만 안내 표지판 하나 세워져 있지 않았다. 거제의 많은 비석 중에 대표적인 효를 실천한 효행을 표징으로 삼아 학생과 관광객들에게 알리고 명사마을 주민들에게는 선조들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면 좋을 듯하다.
- 거제 역사의 남겨진 이야기 (거제문화원, 2023년 12월)
1) 최대윤 기자, 〈거제의 재발견-남부면 명사마을 쌍효문〉, 《새거제신문》, 2018년 11월 23일(http://www.saegeoje.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1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