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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중랑구 서울특별시 중랑구 정보
서울특별시 중랑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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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005년 6월 13일
중랑구의 역사문화자원
2005년 6월 3일
about 서울특별시 중랑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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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3. 23:51) 
◈ 중랑구의 역사문화자원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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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문화자원

 

1.1.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장유(張維, 1587∼1638)
조선중기의 문신이며, 어느 특정한 학문에 얽매임 없이 천문, 지리, 의학, 병법 등 각종 학문에 능통하였고, 서화 특히 문장에 뛰어나 이연귀, 신흠, 이직 등과 더불어 조선문학의 4대가라는 칭호를 들었다. 「인조실록」에 나온 졸기에 따르면 그는 사람됨이 순후(淳厚)하고 깨끗하였으며, 문장을 지으면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신풍부원군에 봉해졌고,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충이고, 현존하는 저서로는 『계곡만필』, 『계곡집(谿谷集)』, 『음부경주해(陰符經注解)』등이 전한다.
 
◈허목(許穆, 1595∼1682)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인조 2년(1624)에 광주의 오천(午川))에 살면서 자봉산(慈峯山)에 들어가 독서와 글씨에 전념하여 독특한 전서를 완성하였다. 그는 말년에 저술과 후진 양성에 전심하였고, 이기론(理氣論)에서 기(氣)는 이(理)에서 나오고 이(理)는 기(氣)에서 행하므로 이기(理氣)를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독특한 도해법으로 해설한 「심학도(心學圖)」, 「요순우전수심법도(堯舜禹傳授心法圖)」를 지어 후학들을 교육하였다. 그는 그림, 글씨, 문자에 모두 능하였으며, 글씨는 특히 전서에 뛰어나 동방의 일인자라는 찬사를 받았다. 작품으로 삼척의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시흥의 「영상(領相)이원익비」, 파주의 「이성중표문」이 있고, 그림으로는 「묵죽도(墨竹圖)」가 전한다. 저서로는 『동사(東事)』, 『방국왕조례(邦國王朝禮)』, 『경례류찬(經禮類纂)』, 『미수기언』 등이 있다.
 
 

1.2. 내 고장의 문화유산

중랑구의 문화재는 1993년 4월 상봉동 소재, 한독약품박물관 소재 문화재가 있었으나 충북 음성군으로 이전했고, 또한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기능보유자인 함금덕이 있었으나 1994년 10월 10일 사망하여 현재 남아있는 문화재로는 1993년 11월 30일 지정된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5호 아차산 봉수대지와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95호인 신경진신도비, 1998년 12월 18일 지정된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제1289호인 천수원년 이윤손 유서가 있다.
 
◈아차산봉수대지(峨嵯山烽燧臺址)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5호, 묵1동 산 46-1, 신내동 산 139, 상봉동 산 6, 중화동 산 1번지에 위치했다는 것을 서울정도 600주년 해에 철저한 고증을 받았다. 옛날의 아차산 봉수는 함경도와 강원도 방면에서 남산 제1봉수로 연결되는 제1봉수의 말단으로 양주의 한이산에서 봉수를 받아 목멱산(남산) 제1봉수로 전달해 주던 곳이다. 현재 봉화산에 있는 봉수대는 1994년 11월 7일 복원한 것이며 연면적 4,060㎡에 상부 연대 11.62m, 연조 1기의 규모로 복원하였다.
 
◈천수원년 이윤손유서
보물 제1289호로 지정, 중화 2동 326-9에 소재, 1998년 12월 18일 지정. 세조1년(1455년) 8월 19일 이윤손을 평안도 도절제사(세조 12년 관제 개편에 의해 병마절도사로 개칭)로 삼아 그해 12월 원종공신 1등에 녹훈하고 천순 원년(1457년 세조 3년) 3월 12일 세조께서 친압 제14밀부를 받도록 하라는 유서를 내렸다. 이 유서는 조선초기의 유서와 밀부(密符)를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유서는 가로 67㎝, 세로 40㎝ 크기로 원 문서를 한지로 배접하고 다시 비단으로 배접하였으며, 현재 가평이씨 종손인 이영옥 씨가 관리하고 있다.
 
◈신경진신도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95호, 망우동 산 69-1, 이 비(碑)는 임진왜란때 유명했던 신립(申砬) 장군의 아들로 태어나 인조반정에 공신으로 병조참판을 역임한 신경진의 업적과 내력을 기록하였으며 조선 숙종 10년 1684년에 건립되었다. 신도비 앞에 있는 묘역에는 당시의 분묘 제도와 석조미술 양식을 대표할 만한 문관석(文官石), 묘갈 (墓碣), 망주석(望柱石) 등이 있어서 더욱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신도비는 높이 368㎝나 되는 거대한 석비(石碑)로 받침인 귀부(龜趺)는 우람하고 단순한 데 비하여 비(碑) 머리 인 이수는 정교하고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신도비는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비문을 짓고 박태유(朴泰維)가 글씨를 썼다.
 
◈면목동 구석기 유물출토
약 3만 년 전에 나타난 후기 구석기시대 문화인 면목동 유적은 서울에서 발견된 유일한 구석기 문화유적이며, 현재 송파구 방이동 몽촌역사관에 소장되어 있다. 출토된 지층은 적갈색의 점토층으로 연대를 추정할 수 없으며, 화석이나 토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유적지는 약 100㎡에 걸쳐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이미 채집된 석기와 석편이 모두 112개에 달하며 석기들은 찍개, 돌망치, 뾰족개, 긁개 등으로 비교적 많이 사용되던 유물들이다.
 
◈숙선옹주묘의 석등
태종의 후궁인 숙선옹주(선빈)안씨의 묘로 현재 묵1동 200번지에 소재하며 묘비와 석상, 석등이 현존하며, 석등은 전형적인 조선초기의 석등의 형태이다.
 
◈망우동지
정구의 후손이 편찬한 책으로 규장각에 소장된 훈도방 주자동지. 이후 최초로 발견된 서울지역의 동지이다. 조선시대에는 행정구역상 군현에 대한 각종 기록을 정리한 읍지(관찬읍지, 사찬읍지)의 편찬은 일반적이었으나 동지 편찬은 드문 경우이다. 동지는 행정구역상의 동을 대상으로 동의 내역을 포함한 자연, 경제, 문화, 사회 등을 일목요연하게 기록된 책으로 현재 서울시립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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