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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송파구 서울특별시 송파구 정보
서울특별시 송파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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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송파구의 마을 소개
송파구의 생활문화자원
about 서울특별시 송파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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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3. 23:51) 
◈ 송파구의 생활문화자원
◈ 전통생활민속 - 송파답교놀이, 백중과 송파산대놀이와 왼씨름 / ◈ 구전설화 - 개롱(開籠)마을, 정금원 들 / ◈ 주민의 생활권역 - 가락동 농수산물, 잠실본동 올림픽거리, 문정동 로데오거리
목   차
[숨기기]
 

1. 생활문화자원

 

1.1. 전통생활민속

◈ 송파답교놀이
옛날 세시풍속에 정월 보름이면 부럼으로 딱딱한 과일을 깨물어 버리면 부럼, 곧 부스럼을 앓지 않는다 하였고, 보름달을 보면서 다리(橋) 열 둘을 건너면 다리(脚)가 튼튼해진다고 하여 그 날이면 남녀노소 모두 나와 여러 다리를 건넜다. 이때 송파에서는 정월 닷새부터 아이들이 장난삼아 하다가 점차 어른들이 참가해 13일쯤 본격적인 예행연습을 끝낸다. 그리고 당일 송파거리를 고루 돌고 몽촌까지 가서 그곳 다리(오동부 다리)를 몇 차례 오고간 뒤 돌아오는 길에 좋은 공터를 가려 삥 둘러서서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등 선소리를 합창하며 질탕하게 논 다음 달빛이 기운 뒤에야 헤어지는 것이 본래의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전승이 단절되었다가 ‘문학사상사’가 창설 10주년 기념으로 이곳 기능 보유자를 초청해 용인민속촌에서 재현했던 것을 계기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현재도 서울놀이마당에서 매년 정월 보름이면 공연되고 있다.
 
◈ 백중과 송파산대놀이와 왼씨름
조선 8도 시절 5대 장터였던 송파나루에서는 특히 백중(음력) 무렵에 튼 난장이 볼거리였다. 이는 많은 손님들을 유치시켜 보겠다는 상인들 추렴의 놀이인 성싶다. 그중에서 가장 성황을 이루었던 ‘송파산대놀이’와 백제인의 남성다운 기개를 과시하는 ‘왼씨름’이었다고 한다. 현재도 백중 무렵이면 서울놀이마당에서 ‘왼씨름’과 ‘송파산대놀이’가 해마다 구민 축제행사로 끈끈한 전통문화 전승정신이 이어져오고 있다.
 
 

1.2. 구전설화

◈ 개롱(開籠)마을
가락 2동 일대의 지역을 일컬어 ‘개롱마을’이라 한다. 개롱(開籠)이라고 불려진 까닭은 병자호란(1636년) 때 임경업 장군이 현재 판교-구리간 고가도로가 가로 지르는 해발 60미터의 갑박산 기슭 위에서 자그마한 농(籠)을 발견하여 열어보니(開) 갑옷이 나왔다는 이야기에서 농을 열었다는 곳으로 ‘개롱마을’이란 이름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현재 프라자아파트 2동(199번지)이 들어선 자리에 임경업 장군 증조부의 묘소가 있었고, 삼환아파트 10동 지역에 해발 70미터의 야트막한 산에서 임경업 장군이 썼던 투구가 나왔다 하여 산 이름이 ‘투구봉’이라 전해져 왔다.
 
그런 이유로 현재 한라아파트 앞 도로에서 극동아파트와 삼환아파트 사이를 잇는 약 4백여 미터의 작은 길 이름을 ‘투구봉로’라고 정하였다. 원래 송파구 거여동은 거암(巨巖)이란 이가 살았다 하여 거암리라 불리던 자연부락이었다. 그 후 일제 때 이웃 잔버드리, 개농리, 뒷말 등을 합쳐 거여리라 한 데서 거여동이 형성되었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곳은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으로 매화가 떨어지고 나면 매실을 얻게 마련이듯 묘를 쓰고 나면 후대에 큰 인물이 보장된다는 자리라고 한다. 당시의 임장군 증조부 묘는 5·16 이후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여기 개롱마을은 1982년부터 도시계획 사업으로 옛 모습은 사라지고 지금은 주거 밀집지역으로 주변이 아파트 숲을 이루고 있으며, 문정동과 거여동, 오금동과 가락본동을 거치거나 이웃하며 발전하고 있고, 1989년 이후부터는 서울 송파구 가락 제2동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 정금원 들
중대면 가락리와 문정리(가락동과 문정동)앞 벌(野)을 옛날에는 정금원 들이라 불러왔다. 정금원(院)은 조선조 때 전국 각처에 세워져 있었던 원의 하나다.
 
말죽거리나 역말과 같이 관원(官員)들이 출장 다닐 때 이 원에 들러 말(馬)을 바꿔타고 가던 곳이다. 날이 저물면 하루밤 쉬어가기도 했던 데가 바로 이 원이었다. 송파의 정금원 외에도 주변의 강남구에 ‘새원’, 성남 ‘상대원’, 강동구 ‘명일원(명일동)’, 광주군 ‘광지원’, 서초구 ‘말죽거리’ 등이나 또는 ‘역말’ 등도 있었다. 송파구에 있는 정금원은 다른 곳의 원과는 달리 들이 널찍했다. 논에는 벼를 심고 밭에는 야채를 가꾸는 등의 들일을 모두 마부들이 해냈다. 서울에서 내려온 마부들은 올라가는 관원이 있을 때까지 농사일을 하고, 지방에서 올라온 마부들 역시 지방으로 내려가는 관원이 있을 때까지 이곳 정금원에서 원주의 요청대로 봄이면 씨앗뿌리고, 여름이면 김매고 가꾸어 가을 추수 때까지 오르내리는 마부들이 그 많은 농사일을 했었다고 하니, 인건비 하나 들이지 않고 관원과 마부들의 식량을 마련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목초지(牧草地)도 널찍하여 말먹이도 자급자족 할 수 있었다고 하는 곳이 지금 훼미리아파트 옆 비닐하우스가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이 바로 정금원이 있었던 곳으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금원 들'이라 불렸던 곳이다.
 
 

1.3. 주민의 생활권역

◈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 농수산물의 원활한 수요·공급을 하고 유통과정을 단축시켜 수급 양자에게 적정한 이익을 보장하기 위하여 가락동에 세워진 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이다. 이 시장은 1985년 6월에 개장되었다. 시장 내의 주요시설로는 경매장·중매인 점포·휴게실·식당 등을 갖춘 6,859㎡의 청과시장, 431개의 중매인 점포를 갖춘 2만 3,466㎡의 채소시장, 42개의 점포를 갖춘 2,650㎡의 건고추매장, 42개의 점포를 갖춘 2,650㎡의 마늘매장, 경매장·중매인 점포·휴게실 등을 갖춘 3만 9,483㎡의 수산시장, 2,646㎡의 제2 건어물 경매장, 육류처리장·부산물 처리장·저온 저장고·식육점 등을 갖춘 1만 6,428㎡의 식육시장, 채소·과일·절임류를 취급하는 1만 8,257㎡의 직판시장, 5,852㎡의 청과관련 상품시장, 2,587㎡의 수산관련 상품시장, 4,870㎡의 냉동창고, 6,914㎡의 건어물창고 및 가공처리장 등이 있다. 그리고 편의시설로는 목욕탕·휴게실·식당·이발관·약국·다방 등이 구비된 제1 서비스동과 약국·식당·육류판매장 등이 구비된 제2 서비스동이 있으며, 주유소·주차장(동시주차능력 3,900대)·관리공사·은행·우체국·소방소·파출소 등이 구비된 관리금융동이 갖추어져 있다. 이 시장은 부지 54만 7,265㎡(16만 5,000평)에 연건물 총면적 25만 2,226㎡(7만 6,298평), 도로 11만 8,275㎡(3만 5,778평), 녹지대 4만 6,200㎡(1만 4,000평) 등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취급품목은 과일·채소·선어·패류·활어·건어류·육류(소·돼지) 등이다.
 
◈ 잠실본동 올림픽거리
1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어울려 먹고 마시는 등 관련업소가 밀집한 잠실본동 올림픽거리(일명 신천 먹자골목, 뒷구정)는 저녁 7시가 되면 불을 밝힌 간판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1990년대에 들어서 잠실성당 주변부터 조성된 먹자거리는 다양한 음식점·주점·유통시설이 즐비하고, 신천역·잠실대로 등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해 하루 유동인구가 3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알짜배기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재래시장과 현대적 상권이 공존하여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과 직장인들에게 부담 없이 싼 먹거리를 제공하는 이곳 올림픽거리는 송파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 문정동 로데오거리
1990년 당시에는 서울의 한적한 외곽주택가였던 곳이 1995년부터 외국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의류업체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상권이 형성되었다. 우리 구에서는 로데오거리를 명소화 하기 위하여 종합계획(1997. 4. 8)을 수립하여 상점가 진흥조합결성, 노상주차장 설치, 가로수 정비, 로데오의 날 지정, 거리축제 실시 및 패션쇼 등을 개최하였다. 이 거리에서는 국내의 유명한 브랜드 업체별로 의류·모자·장갑 등 다양한 종류의 의류를 시중의 40∼70%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청소년은 물론, 어린이·성인들의 의류까지 완비되어 있어 로데오거리는 이제 우리나라 최고의 의류쇼핑 명소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1.4. 지역의 토산품과 특산품

◈ 사대부들 신던 전통신발
가죽과 비단 등으로 전통신발을 만드는 수련공을 가리켜 화장이라 한다. 우리 구에는 유일무이한 황해봉(黃海逢:가락동 5-2) 화장이 있어 자랑스럽다.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의 꽃신 만드는 일 시중을 들면서 일찍이 화장의 꿈을 키워왔던 황 화장은 홍익공업전문대학 공예과에 입학하면서 전통공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 이때(1968년)부터 가업인 꽃신 만드는 일을 전수하기로 결심한 후 본격적으로 할아버지의 기능을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전통 신발은 목이 긴 화(靴)와 목이 없는 혜(鞋)로 나뉜다. 화는 북방 민족들의 방한용에서 비롯되었으며, 혜는 기후가 온화한 남방지역에서 발달하였다. 고구려 쌍영총, 사신총의 벽화에서 두 가지 형태의 신발을 볼 수 있어 전통신발의 역사가 오래 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황 화장이 1970년 7월 중요무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된 것 또한 우연만은 아니다. 당초 작고(1982년)한 기능보유자였던 황한갑(黃韓甲)의 손자인 황 화장이 그 명맥을 잇고 있어서이다. 황 화장의 경력 역시 자랑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 출생(1952년)으로 인간문화재 공예작품 전시회 장려상(1979년)을 받았으며, 휴스턴 국제영화제 한국전통문화부문 은상 수상(꽃신), 1983년 서울올림픽 전국공예품경진대회 입상, 중요무형문화재 제37호 화장기능 이수(1986년), 1994년 자랑스런 시민상 수상 후,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및 입선(1991∼1995년)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1999. 10)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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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