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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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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005년 6월 3일
동구의 어제와 오늘
about 부산광역시 동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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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3. 01:02) 
◈ 동구의 어제와 오늘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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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고장의 어제와 오늘

부산은 오늘날에 이르러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2백 년전 만해도 지금의 동구 범일동과 좌천동 일대를 가리키는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배산임해의 지형으로서 평지가 적다. 수정산과 구봉산을 등지고 동해를 바라보며, 북쪽으로는 부산진구와 남쪽으로는 중구와 경계를 잇고 있다. 일찍부터 항만을 끼고 발전한 관계로 외국과의 교역이 끊이지 않았고 상업이 발달했던 점으로 미루어 아득한 옛날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이라 여겨진다.
부산포의 기능 때문에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우리 나라의 남쪽 관문 구실을 하였다. 조선 태종 7년(1407)에 부산포(현 좌천동 일대)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 왜관이 설치되었는데, 동구 지역은 이때부터 국제화의 중심으로 자리하였다. 부산포왜관은 광해군 원년(1609)에 두모포(현 수정동)에 이건 되었고, 숙종 4년(1678) 초량(현 용두산 일대) 지역으로 이건하기 전까지 대일의 외교교섭 및 무역거래의 중심지로 기능 하였던 곳이다. 조선중기 무렵 지금의 수정동 지역에 설치되었던 왜관이 중구(초량왜관) 지역으로 이전되자 두모포, 개운포 등의 수군 진관이 이설되어서 국방요새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임진왜란 때에 왜군이 가장 먼저 우리 땅을 침범한 곳도 동구이다. 왜군은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성을 쌓아 조선 침략의 발판으로 삼았는데, 부산진성이란 이름으로 오늘까지 일부가 남아 있다.
 
 

2. 역사문화자원

 

2.1. 역사적 사건과 현장

◈부산포왜관 부산은 신라, 고려를 이어 조선초기에 이르기까지 왜인들이 집단을 이루어 우리나라 남해안을 침략하여 노략질과 약탈, 방화, 살인 등 비행을 저질렀다. 이들을 왜구라 했다. 이들이 자유롭게 교역할 수 있도록 생활을 보장해 주고 이들의 약탈행위 등을 다스리기 위해 태종 7년(1407) 조선정부에서 부산포(1407∼1592)와 제포(현 진해시의 웅천) 두 곳으로 정하여 문을 열어 주었다. 왜관이란 일본(주로 대마도) 사람이 그쪽 물건을 가져와서 팔고 이쪽 물건을 사가는 오늘날의 무역거래처였다. 이 왜관이 부산에서 처음 선 자리는 오늘날의 범일동의 자성대 서북쪽이었다. 부산포왜관은 임진왜란으로 없어지고, 임란 이후 절영도(현 영도)에 임시 왜관이 한동안 섰다가, 두모포(현 동구청 부근)로 옮겨지고, 1678년에는 오늘날의 용두산 부근(초량왜관이라고 했음)에 옮겨져 1876년의 개항 때까지 198년 동안 존속했다.
 
◈부산·경남 3·1운동의 진원지 부산진 일신여학교(동래여고의 전신)는 1895년 10월 15일 호주 선교단에 의해 좌천동에 설립되었다. 이후 일제로부터 우리의 주권을 빼앗기게 되니 우리 민족과 일본제국주의 간에는 대립과 항쟁이 치열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교육받고 자란 일신여학교 학생들은 부산에서 선도적 활동을 하였다. 1919년 3월 11일 오전 9시경 고등과 학생 김응수, 송명진, 김반수 등 11명과 교사 주경애, 박시연은 준비한 태극기를 손에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기숙사문을 뛰쳐 나와 좌천동 거리를 누비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신여학교 학생들과 교사는 옥중에서도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일신여학교는 20일 동안 휴교령이 내려졌고, 4월 1일에야 개학을 하였다. 이후 학생들의 항일 독립의지는 졸업식 거부로 이어졌다.
일신여학교의 여학생들은 모두가 16세 전후의 나이 어린 소녀들이었고, 또 이들이 일제의 침략세력이 가장 깊이 뿌리박은 부산에서 용감히 시위항쟁을 전개하였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3·1운동사에 있어 다른 지방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없었고 또 그 역사적 의의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부산진 일신여학교 여학생 의거는 당시 경상남도에 3·1운동의 첫 화살을 던지게 되어 그후 경남 각지에서 만세의거가 뒤를 이어 일어나게 되었다.
 
 

2.2.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부산의 대 선각자 박기종(朴琪淙) 1839년 좌천동에서 태어나 일찍 실학에 뜻을 두어 상술과 일본어를 배웠다. 1876년 개항한 뒤 수신사 일행의 역관이 되어 일본의 앞선 문물을 보고는 자본주의 개념을 배웠으며, 얼마 동안 서울에서 관직 생활을 하다가 1886년 10월 부산항 경무관으로 임명되어 부산에 근무하면서 선각자로 눈부신 활약을 하게 된다. 1895년 개성학교를 열어 후진 양성을 하며 상무소를 설립, 이 고장의 상업발전을 꾀하였다. 1898년 5월 뜻을 모아 부하철도 회사를 세웠으며, 1899년 대한철도회사를 세우고, 1902년에는 영남지선(마감-삼랑진)철도 회사를 세우기도 하였으나 일제의 강압으로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고 한다. 후학들의 학업의 길을 연 교육가요, 철도회사를 운영한 사업가이자 민족정신을 고양한 선각자로 빛나고 있다.
 
◈의열단원 박재혁 부산시 동구 범일동에서 1895년에 태어났다. 1920년 8월에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에 입단하였다. 김원봉으로부터 군자금 3백원을 받아 수많은 애국동지들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부산경찰서를 폭파하기로 하고, 동년 9월 상순에 중국고서로 짐을 꾸리고 그 밑바닥에 폭탄을 감추어 상해를 떠나 일본 장기(長崎)를 거쳐 9월 13일 부산에 도착하였다. 1920년 9월 14일 하오 2시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터트렸다. 의거 후 체포되어 부산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였으나, 1921년 3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았고, 다시 상고하니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언도로 형이 확정됐다.
대구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그는 그동안의 혹독한 고문과 폭탄 상처로 폐병까지 발병한지라 하도 고통이 심하므로 “왜놈의 손에서 욕보지 말고 차라리 내 손으로 죽겠다”고 결심하고 단식하다가 형 집행 전인 1921년 5월 11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2.3. 내 고장의 문화유산

■기념물
◈부산진지성 제7호, 범일동 590-5
 
◈정공단 제10호, 좌천동 473, 474
 
◈부산진지성 서문성곽 우주석 제19호, 범일동 321-29
 
■비지정문화재
◈영가대 기념비 범일2동 254-6
 
◈범천 증산성 좌천4동
 
◈부산진 매축기념비 동부경찰서내
 
◈구봉산 봉수대 초량4동 구봉산
 
◈정발장군 동상 초량3동 중앙로변
 
◈윤흥신공 석상 초량3동 중앙로변
 
◈최영장군 사당 자성대 공원내
 
◈만공단 자성대 공원내
 
 

3. 생활문화자원

 

3.1. 구전설화

◈이정헌공(李庭憲公)의 혼령 임진왜란이 평정된 후에 부산에 첨사(僉使)가 부임만 하면 어쩐 일인지 며칠 지나지 않아 급사의 변을 당했다. 계속 이런 일이 생기자 누구도 부산첨사가 되기를 꺼렸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구성( 城)을 정성(整城)하여 자성대로 본성(本城)을 옮기게 했는데, 구성지를 팔 때 동문못 속에서 수많은 해골이 나왔다. 그래서 이 해골을 모아 자성대 밑에다 묻었다. 그랬더니 하루 저녁에 이 마을에 사는 한 노인의 꿈에 위엄있게 갑옷을 입은 장수가 나타나 하는 말이 “나는 영천 조방장 이정헌이다. 임란 때 부산진성에서 정발 장군과 함께 부산진을 지키다 전사하였으나 조정에서는 나의 공을 아는 자가 아무도 없어 섭섭하기가 짝이 없다. 그래서 이 서러운 사정을 호소하려고 역대 부산첨사의 꿈에 나타났더니 모두가 말도 하기 전에 죽어버리기에 애통함을 참지 못하는 바이다”라고 말하더니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뒷날부터 이 마을에 갑자기 병이 유행되어 급사자가 하루에 40여 명씩 생겼다고 한다. 이에 꿈을 꾼 노인이 이상하게 여겨 동래부사에게 꿈꾼 이야기를 하였더니 당시의 부사 박명한공(朴明漢公)은 즉시 이정헌의 공로를 상소하여 좌승지의 관직을 내리게 하고 몸소 이곳에 와서 기치(旗幟)를 갖추고 군고(軍鼓)를 울리며 제사를 크게 지내어 이정헌의 혼령을 위로했더니 그 후로부터는 무사하였다고 한다.
 
 

3.2. 종교생활

도시화한 지역이지만 전통적인 마을신앙이 아직 곳곳에 남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당산이다. 종교단체는 개신교 49개 교회에 130명의 교직자, 천주교 4개 성당에 20명의 교직자, 불교 45개 사찰에 103명의 교직자가 있다. 특히 초량교회는 1893년에 설립된 부산 최초의 교회이다.
 
 

3.3. 주민의 생활권역

◈이별의 부산정거장 지금은 부산역이 동구 초량동 1187-1에 위치하고 있으나,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 당시 부산 피난시절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이별의 부산정거장이 있던 곳은 현재 중앙동 부산경남 본부세관이 있는 맞은편 부산역 소화물을 취급하고 있는 곳이다. 중앙정부가 부산으로 이전하여 임시정부가 되었던 시절 당시에는 전국 각처에서 경부선의 열차 위에 몸을 싣고 부산역에 도착하였을 때의 서러움을 달랬던 곳으로 이별의 장소이기도 했다.
 
◈부산진시장 부산진시장은 동구 범일동 290번지에 위치한 부산최대 재래시장의 하나로 이곳에 조선시대 때 부산진(釜山鎭)이 있었다 하여 시장 이름을 부산진시장이라 하였다. 현재 2,000여 명의 상인이 종사하고 있다. 한복감·의류·포목·피복·기성복·양복·양장지·침구·신발·폐백·병풍·생활한복 등이다. 특히 혼수전문 의류도매 활성화시장으로 명성이 높다. 부산권 뿐만 아니라 경남권의 고객을 유치하기 위하여 셔틀버스를 운영하는 등 고객의 만족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며, 1997년도에 냉난방 및 환기시설 설비, 화장실 등을 현대화하였다.
 
◈초량의 텍사스 거리 동구 초량동 부산역 앞 큰길인 중앙로 맞은편 화교학교를 중심으로 중국영사관이 있던 자리로 구한말에는 청관(淸館)이라 했다. 중앙동의 용두산 주위는 왜관이 있었는데 비해 초량동에는 중국조계지(中國租界地)가 되어 왜관에 대칭되는 말로 청관이라 한 것이다. 그 청관이 있었던 곳을 중심으로 한 이곳을 지금은 ‘텍사스 거리’라고 부르고 있다. 이곳은 1884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화교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 텍사스 거리는 주한 UN군과 외국인의 유흥가로, 1950년 중반에서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찬란한 조명과 요란한 미국식 대중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짙은 화장을 한 여인들이 흥청거렸다. 그러나 한때 부산의 관문인 부산역 주위에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유흥가가 있다는 것이 부산의 치욕이라 하여 이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던 가운데 홍등가로서의 빛은 식어갔고,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상품을 판매하는 관광상품거래의 명소로 바뀌어 갔다.
1990년대에 들어 공산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자 러시아의 선원과 보따리 장수들이 이곳을 찾아 상가가 성업을 이루었다. 텍사스 거리는 청국인에서 미국인, 외국선원, 그리고 이제는 러시아인들 등 여러 외국인들을 거치며 상가로, 환락가로, 지금은 관광상품의 명소로 거리의 역할을 바꾸어가고 있다.
 
◈범일동 귀금속거리 범일동 지하철역에서 하차하여 자유시장과 평화시장 방향으로 가다보면 남산약국 입구에서 중앙시장에 이르는 이면도로 양쪽으로 귀금속도매상가, 귀금속유통조합 등 크고 작은 시계점과 귀금속가게 450여 개가 밀집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은 도소매는 물론 예물시계나 외국의 유명 브랜드제품 등 값비싼 시계와 반지, 목걸이 등을 구입하려는 알뜰한 중산층들이 주로 이용하는 귀금속 도매전문 거리로 세이코 손목시계의 경우 정가에서 40∼50% 정도 싸게 살 수 있고, 순금은 10%, 보석류는 30∼40% 정도 저렴하다. 돌반지는 시중서 구입하는 것보다 10% 정도에 싸게 구입할 수 있다.
 
 

3.4. 지역의 토산품과 특산품

◈가구거리와 자개골목 동구의 범일동 간선도로 양쪽의 가구거리는 1950년대부터 형성된, 부산시내 가구점의 발상지대라 할 만하다. 2백여 곳에 가까운 점포가 성업 중이며 점포마다 직영공장을 가지고 있는 등 점포 나름의 특징이 있어 고객의 기호를 충족시키고 있다. 범일동의 농방(가구)거리와 좌천동의 자개골목은 바늘과 실의 관계요, 이와 입술의 관계라 할 수 있다. 농장을 만드는 농장공예는 범일동에서 일어나고 자개농과 자개장식구에 박을 자개를 갈고 닦는 조각공예는 좌천동에서 번창하여 서로를 돕게 되었다. 자개농, 자개경대, 자개함지, 자개항아리, 자개상자, 자개필통들이 한국의 특산물이 된 데에는 이 좌천동 자개골목이 큰 역할을 하였다.
외국 관광객들은 이 자개가 박힌 소품을 좋아하여 관광상품으로 인기가 많다. 전복 껍데기인 패각 따위로 만드는 자개공업은 한 공장에 10명 이내인 가내공업이지만 공예원들이 자개를 갈고 닦는 것은 공장마다 사람마다 제각각의 전문성을 가져 그 기법과 기술을 달리한다. 봉황새, 공작새 같은 새를 잘 갈아내는 집이 있고, 꽃이나 나무를 전문으로 하는 집이 있고, 글자를 잘 가는 집이 있어 수요자는 그 전문성을 따라 그 공장에 제작을 의뢰하거나 자기 취향에 맞는 자개농을 구입하기도 한다. 이 자개제품은 범일동의 농방(가구)거리에서만 판매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판매되고 있어 통영칠기에 견줄 만한 부산의 자랑거리이다. 자개의 재료도 국내산이 아니고, 수입품으로 품질과 빛깔이 좋은 넓고 큰 것을 쓰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4. 예술문화자원

 

4.1. 지역문화예술행사

◈구민작품공모전 주최·주관 : 동구청 총무과 ☎ (051)440-4071 / 개최시기 : 접수(3월), 전시(5월) / 행사종목 : 동·서양화, 전통공예 등 / 전시장소 : 동구 도서관 전시실
 
◈한글 시 백일장 주최·주관 : 동구청 총무과 ☎ (051)440-4071 / 개최시기 : 매년 10월 9일 한글날 전후 / 행사종목 : 학생부와 일반부의 산문과 운문
 
◈동구민의 날 주최·주관 : 동구청 ☎ (051)440-4071 / 개최시기 : 매년 5월(15일간) / 행사종목 : 좌천동 가구거리축제, 구민 걷기대회, 씨름대회, 생활체육 등
 
 

4.2. 지역언론기관

◈부산일보 1946년 9월 10일 창간한 부산·경남의 대표적인 일간지이다. 32면 석간으로 발행된다. 구독률은 부산·경남지역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국 4위로 집계되어 있다. www.pusanilbo.com
 
 

5. 관광, 여가문화자원

 

5.1. 관광자원

◈상해거리 부산역 앞 맞은편 초량1동 571번지 일원에 조성된 차이나타운의 하나. 이곳의 기원은 1880년 청관 설치 이후 중국관리 및 상인들이 거주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면적은 약 61,500㎡이며, 전통 중국 청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부산역 맞은 편 중앙로변 상해거리 입구에는 상해의 문이 세워져 있다. www.tong-gu.pusan.kr/contents/ sanghai/ sangh_main.html
 
◈부산진지성 임진왜란의 역사적 현장인 부산진지성을 우리가 자성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부산진성을 본성 또는 모성이라는 데 대해 자성대의 성을 지성 또는 자성이란 뜻으로 그리 말하기도 하고 또 산정에 자성을 만들어 장대로 삼았다고 하는 데서 자성대라고 하게 되었다고도 말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동서의 산을 따라 성벽으로 성곽을 두르고 바닷물을 끌어들여 참호를 20m쯤의 넓이로 만들어 배가 바로 성벽에 닿도록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성의 현재 모습은 1974년 7월 8일부터 1975년 2월 25일까지 부산시에서 정화 복원공사를 하여 동문, 서문, 장대를 신축하여 동문을 진동문, 서문을 금루관, 자성 대위의 장대를 진남대라 각각 명명하여 그 편액을 달았다. 찾아가는 길은 지하철 1호선 범일동에서 하차하여 중앙로 부두쪽으로 약 10분 거리에 있다.
 
 

5.2. 관광쇼핑

◈크라운호텔 양실과 한실의 객실수 102실을 갖춘 고급호텔이다. 부대시설은 연회장·사우나·이용원·헬스클럽·예식부·한식당·양식당·커피숍 등을 갖추고 있다. 호텔 주변에는 시민회관과 종합도매시장인 진시장과 자유시장이 있어 쇼핑을 자유로이 할 수 있으며, 문화공간인 눌원소극장이 인접하여 있다. 범일2동 830-30 ☎ (051)635-1241
 
◈부산아리랑관광호텔 부산역 광장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객실수 120실, 부대시설로는 연회장, 선물점, 예식장, 한식당, 양식당, 일식당, 커피숍, 유흥주점 등이 있다. 초량1동 1204-1 ☎(051)463-5001∼8 www.tong-gu.pusan.kr/cybertown/hotel/hotel_02.html
 
◈국제호텔 범일동 예식장 타운 주변에 위치하며, 지하 1층, 지상 12층, 연면적 3,161평의 규모로 객실은 130실이다. 그 외 다양한 형태의 대소 연회장을 구비하고 있다. 범일2동 830-62, ☎ (051)642-1330, www.hotelkukje.com
 
 

5.3. 관광시설

◈현대백화점 지상 1층에서 6층의 종합백화점이다. 쇼핑고객을 위하여 유모차 대여소, 유아휴게실과 아동 놀이터, 아트홀, 삐삐콜 시설 등 다양한 고객 편의시설을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9층에 수영장, 헬스장, 에어로빅장이 있는 점도 특이하다. 백화점 인근의 당감·개금·가야·주례·신모라·남천동 방면의 쇼핑버스를 운행하며, 1만원 이상 구매 고객은 3시간 무료 주차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지하철 범일동역과 직결되어 쇼핑의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으며, 영업시간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이다. 범일2동 62-5 ☎ (051)647-2233
 
◈자유시장 자유시장은 전체 3층 규모에 1천 5백여 개의 점포가 있다. 1층에 많은 신발 매장들은 부산에서 첫 손에 꼽힐 만큼 규모가 크다. 2층은 남녀의류를 취급하는 곳들이 밀집되어 있고, 3층은 화훼상들이 많다. 그밖에 잡화나 그릇을 취급하는 곳도 있어서 다양한 쇼핑이 가능하다. 도매를 위주로 하고 있으나, 알뜰 구매를 노리는 일반인들이 많이 이용한다. 특히 3층 화훼 상가는 시중보다 20∼30% 싸게 각종 생화, 조화, 화환, 꽃바구니를 살 수 있는 곳이다. 지하와 옥상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영업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다. ☎ (051) 632-8785
 
◈진시장 범일동에 위치한 80년 전통의 재래시장으로 특히 혼수전문 의류 도매시장으로 유명하다. 한복감, 양장옷감, 침구류 등 다양한 종류의 혼수용품을 취급하는 포목점과 수예점, 생활용품점, 의류점 등 100여종의 상품을 취급하는 상점들로 이루어져 있다. www.pusanjinmart.co.kr
 
◈가구거리와 자개골목 부산진역을 지나 서면쪽 범일동 간선도로 양쪽의 가구거리는 1950년대부터 형성된, 부산시내 가구점의 발상지대라 할 만하다. 2백여개에 가까운 점포가 성업 중이며 점포마다 직영공장을 가지고 있는 등 점포 나름의 특징이 있어 고객의 기호를 충족시키고 있다. 처음은 티크제품이 주가 되었으나 서서히 칠기가구가 등장했다. 그 뒤 호마이카 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도 칠기가구는 꾸준히 성장했다. 이때는 옷장과 찬장이 주가 되었다. 생활에 여유를 가지면서 실용단계를 넘어 장식용 사치품으로 바뀜에 따라 칠기가구가 흥성해 갔다. 그에 따라 좌천동 뒷골목에는 자개골목이 부수적으로 형성되었다. 범일동의 농방(가구)거리와 좌천동의 자개골목은 바늘과 실의 관계요, 이와 입술의 관계라 할 수 있다. 농장을 만드는 농장공예는 범일동에서 일어나고 자개농과 자개장식구에 박을 자개를 갈고 닦는 조각공예는 좌천동에서 번창하여 서로를 돕게 되었다. 자개농, 자개경대, 자개함지, 자개항아리, 자개상자, 자개필통들이 한국의 특산물이 된 데에는 이 좌천동 자개골목이 큰 역할을 하였다.
외국 관광객들은 이 자개가 박힌 소품을 좋아하여 관광상품으로 인기가 많다. 전복 껍데기인 패각 따위로 만드는 자개공업은 한 공장에 10명 이내인 가내공업이지만 공예원들이 자개를 갈고 닦는 것은 공장마다 사람마다 제각각의 전문성을 가져 그 기법과 기술을 달리한다. 봉황새, 공작새 같은 새를 잘 갈아내는 집이 있고, 꽃이나 나무를 전문으로 하는 집이 있고, 글자를 잘 가는 집이 있어 수요자는 그 전문성을 따라 그 공장에 제작을 의뢰하거나 자기 취향에 맞는 자개농을 구입하기도 한다.
이 자개제품은 범일동의 농방(가구)거리에서만 판매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판매되고 있어 통영칠기에 견줄 만한 부산의 자랑거리이다. 자개의 재료도 국내산이 아니고, 수입품으로 품질과 빛깔이 좋은 넓고 큰 것을 쓰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삼수원가구공예점, 좌천1동 ☎ (051)634-5451
 
◈귀금속거리 범일동 지하철역 부근의 자유시장 방향에서 중앙시장에 이르는 이면도로 양쪽으로 귀금속도매상가, 귀금속유통조합 등 크고 작은 시계점과 귀금속가게 450여 개가 밀집되어 있어 이곳을 일명 귀금속거리라고 한다. 이곳은 도소매는 물론 예물시계나 외국의 유명 브랜드제품 등 값비싼 시계에서부터 반지, 목걸이 등을 구입하려는 알뜰한 중산층들이 주로 이용하는 귀금속 도매전문 거리로 세이코 손목시계의 경우 정가에서 40∼50% 정도 싸게 살 수 있고, 순금은 10%, 보석류는 30∼40%정도 저렴하다. 돌반지는 시중서 구입하는 것보다 10% 정도에 싸게 구입할 수 있다. 또한 구형이 된 반지를 새로운 모양으로 바꾸는 디자인의 세공비는 3만원에서 4만원 정도이며, 좀 복잡한 디자인의 세공비는 10만 원 정도의 세공비를 들이면 원하는 모양으로 바꿀 수 있다. 기계로 하는 세공은 2만 원 정도만 들이면 가능하다고 한다. A/S는 무료이며, 대부분의 가게에서 시계수리가 가능하며, 신용카드의 사용은 점포에 따라 다르다. 결혼을 앞둔 선남선녀들이 많이 찾아 결혼예물을 장만하는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으며, 일반시민들은 이곳에 귀금속 상가가 밀집되어 있는 줄을 몰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영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이나 점포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며, 1, 3주 일요일은 휴무를 하고 있다.
 
 

6. 문화시설자원

 

6.1. 공연장

◈눌원소극장 이곳은 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고려산업(주)의 경영이념으로 탄생된 문화공간이다. 규모는 200평 정도에 250석 정도의 좌석이 배치되어 있다. 소규모의 연극, 음악(발표회), 무용, 콘서트 등에 유용하며, 100여평 규모의 갤러리와 함께 있다. 범일동 825-3번지 눌원빌딩 내 ☎ (051)631-0660
 
◈시민회관 부산 지방 및 인근의 김해·양산 지역의 문화예술 진흥에 기여하고 시민의 정서함양 및 공연 공간의 확대를 꾀하고자 1970년 9월 대지 7.541㎡, 연건평 12.864㎡에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로 객석 2,020석의 대강당과 객석 450석의 소강당, 150평의 전시실 등을 갖추고 1973년 10월 개관하였다. 1988년 문화회관의 개관으로 부산시립예술단이 문화회관으로 옮겨 활동하고 있지만, 문화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1970년대에 설립되어 부산지역 문화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는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지금은 한국예총 부산지부와 문인협회, 음악협회 등이 상주하고 있으며, 아직도 크고 작은 연주회 및 공연이 자주 열린다. 범일2동 830-31번지 ☎ (051)645-4951∼5
 
 

6.2. 영화관

◈삼성극장 재상영 극장으로 좌석수는 960석이다. 범일동 110-10 ☎ (051)646-5538
 
◈삼일극장 재상영 극장으로 좌석수는 862석이다. 범일1동 117-4 ☎ (051)646-5581
 
◈보림극장 재상영 극장으로 좌석수는 572석이다. 범일동 26-8 ☎ (051)646-5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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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