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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영도구 부산광역시 영도구 정보
부산광역시 영도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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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023년 12월 1일
영도구의 역사문화자원
2005년 6월
2005년 6월 3일
about 부산광역시 영도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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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01:00) 
◈ 영도구의 역사문화자원
◈ 태종무열왕과 태종대 - 태종대는 오륙도와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암석해안의 명승지로 영도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파도의 침식으로 형성된 100m에 달하는 암석절벽의 태종대는 울창한 수림이 굽이치는 파도와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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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문화자원

 
 

1.1. 역사적 사건과 현장

 
◈ 절영도 임시왜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7년간의 전쟁이 끝나고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지나 광해군 원년(1609)에 일본과의 강화조약인 기유약조(己酉約條)가 성립되어 양국관계가 정상화 하여 갔다. 또한 외교교섭이 논의되던 때인 선조 40년(1607)에 두모포왜관이 설립될 때까지 강화교섭을 위해 온 일본사신들은 부산 절영도에 임시로 설치된 절영도 가왜관(絶影島 假倭館)에 숙박하였다. 『선조실록』에는 당시 부산의 왜관 사정을 설명하는 내용과 경운(慶雲)의 『해차록』의 선조 40년(1607) 2월 19일 기록 등을 종합하여 보면 절영도에 설치한 임시 왜관의 존속기간은 대체로 선조 36년(1603)으로부터 선조 40년(1607)에 걸친 전후 5년간으로 생각되며, 그 위치는 대체로 오늘날의 한진중공업이 있는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1.2.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 태종무열왕과 태종대
태종대는 오륙도와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암석해안의 명승지로 영도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파도의 침식으로 형성된 100m에 달하는 암석절벽의 태종대는 울창한 수림이 굽이치는 파도와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이곳이 태종대라 불리게 된 것은 『동래부지』에 “태종대는 부의 남쪽 삼십 리 되는 절영도 동쪽에 있는데 해수가 주회하고 하나의 돌다리가 있어 노니는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다. 전해오는 말에 신라 태종무열왕이 이곳에 들러 활을 쏜 곳이라 하여 이로써 이름하였다. 가뭄을 만나면 비 오기를 이곳에서 빈다”라고 쓰여진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태종무열왕이 언제 이곳에서 활을 쏘았는지 알 수 없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태종무열왕이 활을 쏘고 군사를 조련하여 삼국통일의 터전을 닦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삼국통일 후 경관 좋은 이곳으로 와서 시종들과 함께 노닐었다는 것이다. 태종무열왕이 승하한 것은 661년이고 신라의 삼국통일은 668년의 일이니 전자가 옳은 것 같다.
 
 
 

1.3. 내 고장의 문화유산

 
■ 사적
 
◈ 동삼동 패총 제266호, 동삼2동 750-1
 
 
■ 기념물(시지정)
 
◈ 태종대 제28호, 동산동 산 29-1
부산광역시 영도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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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