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군은 우리나라 서해안 강화만에 위치,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지석묘를 비롯하여 단군의 유적인 참성단과 삼랑성 등이 있다. 그리고 고려 고종 19년(1232)에 몽고와의 항쟁을 위해 개경에서 강화로 천도한 후 고려 원종 11년(1270) 환도하기까지 39년 동안 7차에 걸친 몽고군의 끈질긴 침략에도 굴하지 않고, 줄기차게 투쟁을 계속하면서 고려문화의 정수인 팔만대장경 및 금속활자와 고려자기 등 찬란한 민족 문화의 꽃을 피웠던 고려의 옛 도읍지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인조 5년(1627) 정묘호란과 인조 14년(1636)의 병자호란시 피난 수도이기도 했던 곳으로 강화군 전체가 천연의 요새인 동시에 수도 방위의 전초 기지로서 큰 몫을 다하여 왔다.
조선말기에는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천주교의 탄압으로 빚어진 프랑스 함대의 침략사건인 병인양요(1866)와 미국의 통상요구가 발단이 되었던 신미양요(1871)가 있었고, 그 후 운양호 사건(1875)으로 일본과 체결한 강화도 조약 등 숨가쁜 개화 여명기의 풍운을 엮어낸 곳으로 5진 7보 53돈대와 그 외 많은 국방 유적과 문화를 간직한 역사의 고장이다.
1977년 10월 전적지를 복원·정화하였으며, 단군신화가 서린 마니산을 국민관광지로 개발하였고, 동 지구 내 함허동천 계곡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이용하여 개발한 시범 야영지가 있다.
선사 시대 BC 70만 - 조개무덤, 토기, 쌍날집개, 구석기 유물 발견 - 돌칼 등 신석기 유물 발견 - 고인돌 120여기 발견
고조선 BC 2282 - 단군성조 마니산에 참성단 축조 - 제천, 정족산에 삼랑성 축조(단군 세 아들)
백제 BC 5 - 온조왕14년, 하남 위례성 건국으로 백제령이 됨
고구려 392 - 상고시대부터 갑비고차라 칭함 - 광개토대왕 1년 관미성을 장악하고, 혈구군을 설치
신라 757 - 신라 경덕왕 때 해구군으로 개칭
고려시대 940 - 고려 태조 때 강화현으로 개칭
1232 - 고종 19년, 개경에서 강화로 천도 군으로 승격. 천도라 칭함.
1234 - 고종 21년, 세계 최초 금속활자 발명 사용
1236 - 고종 23년, 간경도감 설치, 팔만대장경 판각 착수 15년만에 완각
1270 - 원종 11년,개경환도와 삼별초항쟁 발발
1377 - 우왕 3년, 강화부로 승격
조선시대 1413 - 태종 13년, 강화 도호부로 개칭
1849 - 헌종15년, 강화왕족 원범 철종왕 즉위
1866 - 고종 3년, 병인양요, 프랑스 침입 강화부를 침탈도략
1871 - 고종 8년, 신미양요, 미해군 침입 - 초지, 덕진, 광성보 혈전 유린 퇴각
1876 - 고종 13년, 일군 침입 - 강화도 조약을 체결함
1896 - 강화군으로 개칭
근 · 현대 1914 - 교동군으로 강화군에 편입
1995 -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통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