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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의 역사문화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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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01:00) 
◈ 강릉시의 역사문화자원
◈ 역사적 사건과 현장 - 주군왕 김주원(金周元)과 범일(梵日)의 굴산선문(堀山禪門), 지명주군주사(知溟州郡軍主事) 왕순식(王順式)과 고려 태조 왕건, 조선초 원찰로서의 상원사와 강릉사족, 강릉농업학교 독서회 사건, 미 군정기하에서의 사상투쟁 / ◈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이이(李珥, 1536∼1584), 허난설헌, 허균(許筠, 1569∼1618)
목   차
[숨기기]
 

1. 역사문화자원

 
 

1.1. 역사적 사건과 현장

 
◈ 명주군왕 김주원(金周元)과 범일(梵日)의 굴산선문(堀山禪門)
신라 선덕왕 사후 김춘추계와 내물왕계의 왕위쟁탈전에서 밀려난 무열계인 김주원이 강릉으로 낙향하게 되었다. 이때 명주군왕으로 책봉된 김주원은 영동지방(명주, 양양, 삼척, 평해, 울진 등)을 식읍으로 받았다. 이후 후손들이 강릉에서 경제적 및 군사적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면서 반신라적인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한편 도당유학하여 선종을 공부한 후 경주에 정착했던 범일이 강릉지방으로 와 굴산사의 주지가 되고,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굴산파를 개창하였다. 그리고 강릉지방 호족세력과 결탁하면서 영동지방의 사상적 중심 도량이 성장하였다.
 
◈ 지명주군주사(知溟州郡軍主事) 왕순식(王順式)과 고려 태조 왕건
나말려초 강릉지역에는 토착세력인 김주원의 6세손인 도령(都令)의 지위를 지낸 예(乂) 계열과 신라에서 임명한 지명주군주사 왕순식 계열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왕순식 계열이 군사권을 장악해 나갔으며, 또한 궁예 세력과 연합하여 지역 내에서 상당한 세력을 형성했다. 그러나 궁예가 축출되고 왕건이 왕위에 올라 고려를 개국하자 왕순식 세력은 불복하였다. 이에 왕건은 내원(內院)에 승려로 있던 순식의 아버지 허월(許越)을 시켜 아들의 회유를 권하자는 건의를 받아들였다. 아버지의 회유권유에 응한 왕순식은 왕건에게 복속되었으며, 이에 태조 왕건은 왕씨 성을 하사하고 집과 토지를 내리는 은전을 베풀었다.
 
◈ 조선초 원찰로서의 상원사와 강릉사족
세종 6년(1424) 국가의 선교(禪敎) 통합조치로 상원사는 강원도 지역 교종사원의 본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세조조에는 교계의 중심사찰로 부상하게 되면서 사원의 경제적 기반이 강릉지역을 근거로 하였기에 성리학적 지배이념에 심취한 강릉지역 사족들과 상원사와의 관계는 갈등을 낳았다. 세조가 상원사를 친행하면서 강릉의 산산제언을 사원에 사급하게 되자 반대하는 지역 사족들의 상소가 잇달아 나타났다. 특히 세조가 상원사에서 과거를 설행할 때 응시생들을 대상으로 숭유문과 벽물문을 만들어 두고 벽불문으로 들어오면 철추를 내려치도록 하자 강릉 사족 최수는 벽불문을 통과하려 했다. 이처럼 상원사의 사세 확장에 대한 지역 사족의 대응은 당시 왕실의 호불성향과 국가정책을 비난하는 형태로 진전되었다.
 
◈ 강릉농업학교 독서회 사건
동맹휴학운동 강릉에서는 1929년 5월 1일 북경대학에서 수학한 후 돌아온 권오훈(權五勳)의 옥천동 집에서 권혁남(權赫南) 등 9명이 모여 독서회가 조직되었다. 1930년 1월 하순에 중앙학생 항일 투쟁 본부로부터 접선이 된 독서회원 배석린(裵錫麟)과 노화경(盧和敬)이 교내의 학생들을 선동하는 격문을 살포한 사건을 일으켰다. 이듬해 1월 31일 밤 시 전역에 광주학생항일운동에 관한 격문 2장이 살포되면서 긴장이 고조되었으나 주모자인 강원목공조합장 강덕상(姜德祥)과 공모자 박승만(朴承萬) 등이 체포되었고 강릉농업학교 격문 살포와 항일 시위를 계획한 주모자로는 배석린과 노화경이 체포되면서 독서회 주도자들은 1930년 7월의 1차 동맹 휴학운동과 9월의 2차 동맹 휴학운동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김남두, 김태선 등 14명의 학생들이 퇴학을 당했다. 1932년, 4회 졸업생들과 당시 2학년으로 재학중이던 김천회(金天會), 최건영(崔建永), 심양섭(沈亮燮), 권혁인(權赫仁) 등이 중심이 되어 독서회를 재건하고 1933년 6월 20일 3차 동맹휴학운동이 전개되었는데, 그 원인은 일본인 교사의 조선인에 대한 민족적 무시와 경멸이었다. 결국 3차 맹휴로 7월초 김천회, 박병천 등 13명의 회원이 퇴학처분을 받았다.
 
◈ 미 군정기하에서의 사상투쟁
1946년 3월 1일 좌익은 강릉초등학교에 농민조합, 민족해방청년회, 부녀동맹, 노동조합원을 중심으로 1,000여명이 모여 3·1운동 기념식을 개최하였고, 우익은 옥천초등학교에 학도대, 건국청년회, 우국동지회 등을 중심으로 200∼300여명이 모여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동년 7월 24일 강릉시 초당리에 살고 있는 좌익들이 우익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소식에 우익진영(건청, 한청, 서청)은 그들을 구출해야 한다고 초당으로 들어감으로써 충돌이 있게 되었다. 그날밤 강릉시내에서 쌍방간에 투석전이 벌어지는 2차 충돌이 있었다. 이때 검은 셔츠를 입은 주문진 우익청년단이 강릉으로 지원을 나오기도 했다. 초당주민과 건청 회원들이 부상을 당했다. 다음날 에드워드 군정관이 경찰과 함께 초당으로 파견되자 미군이 온다는 소식에 초당주민은 일치 단결하여 폭동진압대와 충돌이 있게 되었는데, “미군 죽여라”라는 구호까지 난무하면서 모여드니 에드워드 군정관이 급박하여 총을 발사함으로써 초당주민들은 해산하였다.
 
 
 

1.2.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조선조 생육신, 3세에 이미 시에 능했고 5세 때에는 경서에 능통하여 신동으로 불렸다. 5세 때부터 13세까지 김반(金泮)의 문하에서 사서를 익혔고, 윤상(尹祥)의 문하에서는『예기』와 제자백가서를 배웠다. 세조 1년(1455)에 삼각산 중흥사에서 공부하다가 수양대군이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책을 태워버리고 중이 되어 법명을 설잠이라 하고 방랑의 길을 떠났다. 세조 11년(1465)에는 경주 남산에 금오산실을 짓고 독서를 하면서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저술하였다.
 
◈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조선조의 여류서화가. 아버지는 감찰 이원수이며, 이이의 어머니이다. 그의 품성은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지조가 높아 어려서부터 경서를 익혔으며, 문장·침공·자수에도 능통했다. 특히 시문으로는 「유대관령망친정」, 「사친」 등의 한시가 전해지고 있으며, 그림으로는 산수·포도·풀·벌레 등을 그려 여성의 섬세함을 잘 표현하였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자리도」, 「산수도」, 「초충도」, 「노안도」, 「연로도」등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자식교육에도 남다른 애정을 베풀어 이이와 같은 유현을 배출하게 되었다.
 
◈ 이이(李珥, 1536∼1584)
율곡은 외가인 강릉 북평촌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어머니 신사임당에게 학문을 배웠다. 명종 3년(1548) 13세 때 진사초시에 합격하였고, 23세 때에는 영남사림의 거두인 퇴계 이황을 방문하여 학문적인 교류를 하였는데 이후 퇴계는 율곡에 대하여 “군자와 같은 뛰어난 재주로 어린시절에 정도를 일으키니 후일에 성취하는 바를 무엇으로 헤아릴까?”라고 하여 그의 앞날이 번창할 것임을 예견하였다 한다. 명종 19년(1564)에는 생원시와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으로 칭송 받았다. 그는 이조판서에 재직하면서 동서분당을 조정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으며, 또한 이황과의 교류 이후 그와 쌍벽을 이루는 기호학파를 형성하여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근본사상으로 하는 이통기국론(理通氣局論)을 주장하였다. 또한 민생문제에 대해서는 대동법과 사창제의 시행을 주장하였으며, 성리학적 향촌통치질서의 확립을 위한 해주향약의 실시에 깊이 관여하였다. 사후 문묘에 종사되었으며, 선조의 묘정에도 배향되었다.
 
◈ 허난설헌
조선 중기 여류시인, 명종 18년(1563) 강릉 초당동에서 허엽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시문에 천부적인 재질이 있어 여덟 살 되던 해 「백옥루상량문」을 지어 여신동이라 불리었다. 1589년 3월 19일 꽃다운 나이 27살에 요절한 누이 난설헌의 재능을 애석히 여긴 동생 허균은 그 유고를 모아 『난설헌고』를 편집하고, 1년 후인 1590년 스승 유성룡에게 발문도 받았다. 난설헌이 세상을 떠난지 19년 후 초간본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허균이 중국 사신으로 가서 누이의 시를 중국에 널리 알렸다.
 
◈ 허균(許筠, 1569∼1618)
조선중기 문신으로 학문은 서애 유성룡에게 나아가 수학하였으며, 시는 삼당시인의 하나인 이달(李達)에게서 배웠다. 선조 27년(1594)에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설서(說書)를 지냈고, 선조 30년(1597)에 문과 중시에 장원하였다. 선조 39년(1606) 명의 사신 주지번(朱之蕃)을 영접하는 종사관이 되어 글재주와 넓은 학식으로 이름을 떨치고, 누이 난설헌의 시를 주지번에게 보여 이를 중국에서 출판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홍길동전』은 핍박받는 하층민을 위하는 그의 정치관과 학문관을 보여주는 국문소설이다.
 
 
 

1.3. 내 고장의 문화유산

 
■ 국보
 
◈ 객사문 - 제51호
 
 
■ 보물
 
◈ 해운정 - 제183호
 
◈ 오죽헌 - 제165호
 
◈ 이이 수필 격몽요결 - 제602호
 
◈ 문묘대성전 - 제214호
 
◈ 정덕계유문무 집과 방목 - 제603호
 
◈ 대창리 당간지주 - 제82호
 
◈ 수문리 당간지주 - 제83호
 
◈ 낭원대사 오진탑 - 제191호
 
◈ 낭원대사 오진탑비 - 제192호
 
◈ 신복사지 석불좌상 - 제84호
 
◈ 신복사지 3층석탑 - 제87호
 
◈ 굴산사지 부도 - 제85호
 
◈ 굴산사지 당간지주 - 제86호
 
◈ 명안공주 관련 유품 - 제1220호
 
◈ 한송사지 석불좌상 - 제81호
 
 
■ 사적
 
◈ 임영관지 - 제388호
 
 
■ 천연기념물
 
◈ 장덕리 은행나무 - 제166호
 
◈ 삼산리 소나무 - 제350호
 
 
■ 중요민속자료
 
◈ 선교장 - 제5호
 
 
■ 중요무형문화재
 
◈ 강릉농악 - 제11-라
 
◈ 강릉단오제 - 제13호
 
 
■ 명승
 
◈ 청학동 소금강 - 제1호
 
 
■ 유형문화재(이하 도지정)
 
◈ 매창매화도 및 옥산국화도첩 - 제12호
 
◈ 호해정 - 제62호
 
◈ 방해정 - 제50호
 
◈ 회암영당 주희영정 - 제107호
 
◈ 화부산사 - 제57호
 
◈ 강릉향교 - 제99호
 
◈ 향현사 - 제8호
 
◈ 계련당 - 제39호
 
◈ 오규환 가옥 - 제80호
 
◈ 보광리 석조여래좌상 - 제111호
 
◈ 관음리 5층석탑 - 제112호
 
◈ 상임경당 - 제55호
 
◈ 임경당 - 제46호
 
◈ 칠사당 - 제7호
 
◈ 오성정 - 제47호
 
◈ 조수환 가옥 - 제96호
 
◈ 최대석 가옥 - 제81호
 
◈ 오봉서원 - 제45호
 
◈ 정의윤 가옥 - 제93호
 
◈ 등명사지 5층석탑 - 제37호
 
◈ 송담서원 - 제44호
 
◈ 방내리 3층석탑 - 제36호
 
◈ 박중신 문과급제교지 - 제116호
 
◈ 허난설헌 목판초간본 - 제124호
 
◈ 경양사 - 제59호
 
◈ 경포대 - 제6호
 
◈ 황산사 - 제58호
 
◈ 심상진 가옥 - 제79호
 
◈ 이씨분재기 - 제9호
 
◈ 율곡유품 및 토지양여서 - 제10호
 
◈ 옥산서병 - 제13호
 
◈ 신사임당 초서병풍 - 제41호
 
◈ 신사임당초충도병 - 제11호
 
 
■ 무형 문화재
 
◈ 학산오독떼기 - 제5호
 
 
■ 기념물
 
◈ 영진리 신라고분군 - 제42호
 
◈ 경포 - 제2호
 
◈ 보광리분청자요지 - 제69호
 
◈ 명주군왕릉 - 제12호
 
◈ 용지 - 제3호
 
◈ 옥천동 은행나무 - 제64호
 
◈ 대공산성 - 제28호
 
◈ 운산동 은행나무 - 제29호
 
◈ 하시동 신라고분군 - 제18호
 
◈ 굴산사지 - 제11호
 
◈ 대관령 성황사 및 산신각 - 제54호
 
◈ 옥계굴 - 제37호
 
◈ 서대굴 - 제36호
 
◈ 동대굴 - 제35호
 
◈ 비선굴 - 제38호
 
 
■ 문화재자료
 
◈ 최선평 가옥 - 제81호
 
◈ 박치규 가옥 - 제82호
 
◈ 금강산성 - 제47호
 
◈ 김덕래 가옥 - 제56호
 
◈ 김윤기 가옥 - 제58호
 
◈ 조옥현 가옥 - 제62호
 
◈ 선정비군 - 제48호
 
◈ 귀부 - 제2호
 
◈ 석불여래입상 - 제3호
 
◈ 옥천동 석탑재 - 제4호
 
◈ 금란정 - 제5호
 
◈ 이광로 가옥 - 제59호
 
◈ 최상순 가옥 - 제61호
 
◈ 함대식 가옥 - 제92호
 
◈ 효자리비 - 제49호
 
◈ 보진당 - 제6호
 
◈ 보현사 대웅전 - 제37호
 
◈ 김윤기 가옥 - 제57호
 
◈ 최근배 가옥 - 제55호
 
◈ 조실환 가옥 - 제54호
 
◈ 박창규 가옥 - 제91호
 
◈ 조철현 가옥 - 87호
 
◈ 굴산사지 석불좌상 - 38호
 
◈ 남진용 가옥 - 60호
 
◈ 산계리 3층석탑 - 43호
 
◈ 연곡고분 - 53호
 
◈ 옥계 산계리 금옥계 방역사적비 및 종선비 - 1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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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