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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철원군 강원도 철원군 정보
강원도 철원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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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023년 12월 1일
철원군의 역사문화자원
2005년 6월
2005년 6월 3일
about 강원도 철원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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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01:00) 
◈ 철원군의 역사문화자원
◈ 역사적 사건과 현장 - 궁예의 태봉국 건립, 자모산성과 전골총, 김시습과 매월대 구은사, 6·25 전쟁과 철의 삼각지 전투 / ◈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 최영(崔瑩), 김응하(金應河), 명구(洪命耉), 유림(柳琳), 독립투사 박용만(朴容萬)
목   차
[숨기기]
 

1. 역사문화자원

 
 

1.1. 역사적 사건과 현장

 
◈ 궁예의 태봉국 건립
후삼국 시대 태봉국은 궁예가 세운 나라이다. 궁예는 신라의 왕자로서 궁정의 내분으로 죽음에서 구출되어 세달사의 중으로 양육되어 신라 왕정에 깊은 원한을 갖고 독자적인 세력을 길러 898년에는 송악에 웅거하여 자립의 기초를 세웠다.
 
901년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고려라 국호를 정하였다가 904년에는 마진(摩震)이라 정하였으나 그 이듬해(905년) 철원으로 옮기고 태봉(泰封)국을 건립 하였다. 궁예는 철원을 중심으로 강원, 경기, 황해의 대부분과 평안, 충청도의 일부를 장악하여 큰 세력을 구축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가 체제를 갖추었다. 왕건이 후일에 고려 태조로 등장하지만 고려란 국호는 궁예가 먼저 썼던 것이며, 궁예가 세운 나라를 고스란이 인수한 사람이 왕건이다.
 
◈ 자모산성과 전골총
전골총(戰骨塚)은 병자호란 당시 이 지역에서 전사한 1,000여 명의 유골을 한데 모아 만든 무덤이다.
 
평안도 관찰사 홍명구와 병마절도사 유림은 침공해오는 호군(胡軍)을 백수봉과 자모산성에서 인조 15년(1637) 1월 8일 적을 맞아 최후의 일각까지 분투하였으나, 홍명구는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현재 충렬사(忠烈祠)가 있으며, 전골총은 DMZ 내에 위치하므로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 김시습과 매월대 구은사
1455년 세조의 왕위 찬탈시 생육신의 한사람인 김시습(金時習)과 조상치(曹尙治)외 영해 박씨(朴氏) 칠의사가 단종 폐위를 한탄 불사이군의 충절심을 함께 모아 철원 근남면 잠곡리의 복계산에서 긴 방랑 은둔 생활 중 이곳에 몸담아 지방 은사들과 교유하였으므로 그의 호를 따서 마을 이름을 매월동(梅月洞)이라 하고 바위가 있는 산을 매월대(梅月臺)라 한다. 그후 구의사(九義士)의 충절심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사우를 창건한 것이 구은사(九隱祠)이다.
 
◈ 6·25 전쟁과 철의 삼각지 전투
1950년 6월 25일 북괴남침전쟁의 전화는 이고장 철원에 쓰라린 상처를 안겨 주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산마루의 주인이 바뀌는 백병전이 벌어지면서 전사에 남는 격전장으로, 이고장에서 2년여에 걸친 가장 치열했던 전투의 하나로 꼽히는 철원평야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철의 삼각지(鐵의 三角地)전투’ 이다.
 
철원, 김화, 평강을 있는 삼각축선을 말하는데, 6·25 전쟁 전기간을 통하여 피나는 쟁탈전의 대격전장이 였다. ‘철의 삼각지’란 말은 당시, 미8군 사령관 James A. Van FIeet 대장이 “적이 전 전선의 생명선으로 사수하려는 이 Iron Triangle(철의삼각지)을 무너뜨려야 만 한다”고 함으로써, 이러한 호칭이 붙게 되었다.
 
 
 

1.2.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 최영(崔瑩)
최영 장군의 본관은 동주(東州, 철원의 옛명) 1316년 철원 어운면에서 사헌규정 최원직(司憲糾正 崔元直)의 아들로 태어났다. 최영은 16세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 때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유계를 받았는데, 이 유계를 지켜 평생을 청백하게 살았다. 요동정벌에 나섰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을 폐하고, 최영을 귀양 보냈다가 참수하여 요동회복의 큰 꿈은 깨어지고 말았다.
 
◈ 김응하(金應河)
김응하 장군의 본관은 안동(安東), 선조 13년(1580) 철원 어운면 갈운동에서 출생했다. 18세 때 주먹으로 범을 때려잡은 일도 있어 김장군이란 별호로 불리었다. 26세 때 무관에 급제하여 관직에 있는동안 근엄하고, 청렴하였으며 서민적인 성품을 지녔다. 1619년 명나라 건주위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원군의 좌영장으로 출정하여 이름을 떨쳤다. 조정에서는 충무공의 시호를 내렸고 명나라에서는 요동백(遼東伯)을 추봉하였다. 무훈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이곳 철원에 요동백 김응하장군 묘정비와 포충사(褒忠祠)가 있다.
 
◈ 홍명구(洪命耉)
선조 29년(1596)에 출생하여, 인조 15년(1637)까지의 인물이다. 호는 뢰제(瀨齊)이고, 시호는 충렬이며 남양홍씨이다. 광해군때 무과에 급제한 후 조정의 중요 내직과 외직을 역임했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시 평안도 관찰사로 김화 자모산성에서 청군을 맞아 싸우게 되었다. 산성에서 적과 대치하고 사력을 다하여 근왕병 2,000여명과 김화의 요병을 지휘하며 싸워 많은 적을 무찔렀으나, 수만의 적군 화력에 밀려 많은 전사자를 내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피하기를 권하였으나, “군부(君父)와 나라가 위급을 당하였는데 내 어찌 일명(一命)을 아끼겠느냐. 내 차라리 최후의 일각까지 돌진하다가 내칼이 부러질 때까지 싸우다 죽는 것이 마땅하다” 하면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최후를 마치니 그의 나이 42세이다.
 
인조가 충렬(忠烈)의 시호를 내렸고, 효종 3년(1652)에는 사당을 충렬사(忠烈祠)로 사액(賜額)을 내렸다.
 
◈ 유림(柳琳)
인조 21년(1643)의 무인이며, 자는 여온(汝溫) 시호는 충장(忠壯), 본관은 진주인으로 선조 36년(1603) 무과에 급제하였다. 병자호란시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관찰사 홍명구와 합세하여 김화의 자모산성 싸움에서 청병을 무찌르고 전공을 세웠으나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청병에 항복하고 화해함에 임경업과 함께 원병장으로 청나라에 갔으나 명나라와의 싸움을 피해 귀국하였다. 그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인조 21년(1643) 포도대장에 임명되었으나, 교지를 받기전에 죽었다. 그가 두 번이나 원정공신으로 책록되었으므로 충장공(忠壯公)의 시호를 내렸다. 철원에 ‘평안도병마절도사유공림대첩비’가 세워져 있다.
 
◈ 독립투사 박용만(朴容萬)
이고장 철원에서 배출한 근세,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881년 철원읍 중리에서 태어났다. 1904년 한말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하던 중 1910년 나라를 잃게 되니 독립운동에 몸바쳐오다, 1928년 48세 때 북경에서 암살 당했다. 그의 독립운동 경력은 미국에서 약10년 이었고, 중국에서 약10년이었는데 활동 중 특징적인 것은 군사적 실력을 통한 노선으로 군사운동으로 일관 했다.
 
 
 

1.3. 내 고장의 문화유산

 
■ 국보
 
◈ 도피안사 철조비로사나불좌상 - 제63호, 동송읍 관우리 450
 
 
■ 보물
 
◈ 도피안사 3층석탑 - 제223호, 동송읍관우리 450
 
 
■ 천연기념물
 
◈ 철원 천통의 철새도래지 - 제245호, 철원읍 일부
 
■ 유형문화재(이하 도지정)
 
◈ 요동백 김응하장군 묘정비 - 제105호, 철원읍 화지리지
 
 
■ 기념물
 
◈ 고석정 및 순담 - 제8호, 동송읍 장흥리 갈말읍 군탄리
 
◈ 철원 지석묘군 - 제22호, 갈말읍 토성리
 
◈ 철원 토성 및 석조물 - 제24호, 갈말읍 토성리 661 갈말읍 군탄리
 
◈ 충렬사지 일원, 홍명구 선생 충렬비, 유림장군 대첩비 - 제72호, 김화읍 읍내리
 
 
■ 문화재자료
 
◈ 동송마애불상 - 동송읍 이평리 (금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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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