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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의왕시 경기도 의왕시 정보
경기도 의왕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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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의왕시의 마을 소개
의왕시의 어제와 오늘
about 경기도 의왕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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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3. 01:02) 
◈ 의왕시의 어제와 오늘
1. 내 고장의 어제와 오늘
 
 
 
의왕시는 동경 126°55′42″∼127°03′09″, 북위 37°12′18″∼37°25′24″사이에 북으로 과천시, 남으로 수원시, 동으로 성남시와 용인시, 서로 안양시와 접해 있다. 청계산과 모락산, 백운산과 오봉산 등 4개 산으로 둘려있고 북에 백운호수와 남에 왕소저수지가 있다.
모락산과 백운산을 횡선으로 구획된 북쪽은 청계4동이라 하여 오지로 교통·문화·교육 등이 극히 부진하다가 최근에 서울 외곽 순환도로가 개통되어 학의 분기점이 생겼고 안양~성남간 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되는 등 교통이 발달되었다. 내손 2동과 포일동은 도시계획으로 아파트가 들어섰으며 학교가 설립되는 등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다.
남쪽은 조선 때는 정조의 수원 능행길로 일찍이 도로가 발달되었고 그 자리가 서울∼부산 국도가 되었으며 서남단에 경부선이 개통되어 부곡역이 개설됨으로 부곡지역이 하나의 도시권을 형성하였다. 신갈~안산간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부곡IC가 생겼고 과천∼고천간 고속화도로(유료)가 연장되어 수원시내를 거치지 않고 고색까지 가서 매송, 조암으로 연결되었고 북행에 한하여 백운저수지로 진입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의왕은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다.
북쪽은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이 수양대군을 피하여 모락산에 칩거하였고 그 후손이 번창하였다. 남쪽은 정조대왕이 능행 때 전 의왕시청자리에 친히 임하였다하여 왕림(현 왕곡리, 王臨이라고 해야 하나 시가에서 王자를 쓸 수 없다하여 旺자로 썼다 함)이라고 하였으니 의왕시는 조선왕조와 인연이 많다.
<의왕시 연표>
시 대
연 대
주 요 사 항
 
조선
1895
5월 26일 광주목에서 광주군이 되었다.
 
근대
1914
일제의 대대적인 행정개편이 있을 때 광주군 의곡면(儀谷面)과 왕윤면(旺倫面)을 통합하여 수원군 의왕면으로 하였다. 이 때 학현(鶴峴)의 학과 의곡리(義谷里)의 '의' 자를 따와 학의리로 통합이 되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의(義)자가 의(儀)로 변질되었다. 의곡면(義谷面)의 의와 왕윤리(王倫里, 왕곡동의 옛지명)의 왕(王)이 통합된다면 당연히 의왕(義王)이 되어야 하는데 의왕(儀旺)이 된 것은 잘못이라는 학설이다.
 
1936
10월 1일 수원군 일왕면(日旺面)으로,
 
현대
1949
8월 15일 수원이 시로 승격되자 화성군 일왕면으로,
 
1963
1월 1일 시흥군 의왕면으로 변경되었고,
 
1980
12월 1일 시흥군 의왕읍으로 승격하였다.
 
1983
2월 15일 화성군 반월면 월암리, 초평리를 편입하였고
 
1983
3월 1일 내손리·학의리·청계리·포일리 4동을 동부출장소로,
 
1989
1월 1일 시흥군이 해산되어 각각 시로 분리될 때 의왕시로 승격하였다(법률 제405호).
의왕시 전체 면적은 54.01㎢이고 그 중 93.16%가 그린벨트이며 그 대부분이 북쪽 4동이다.
 
1999
12월 현재 인구는 116,300명, 인구밀도는 2,153.30명/㎢이다. 그린벨트로 도시가 발전되지 않았으나 푸른 숲, 맑은 물,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고장이다.
 
2000
2월 현재 의왕시의 법정동은 고천동·부곡동·오전동·내손1동·내손2동·청계동이다.
 
 
 
 
 
 
 
 
2. 역사문화자원
 
역사적 사건과 현장
조윤(趙胤)은 고려 때 충신으로 정몽주와 친분이 두터웠고 벼슬이 지신사(知申事, 도승지)에 이르렀다.
고려가 망하자 조윤은 두류산(頭流山)에 은둔하였고 조선 태조는 그를 등용하려 하였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고 하여 사양하였다. 이름을 견(絹)이라 고치고 청계산으로 옮겨 제1봉에 올라가 송경(松京)을 바라보며 통곡을 했다. 그 봉우리를 망경대(望京臺)라 하고 제2봉에 올라가 나라를 생각하였다 하여 국사봉(國思峰)으로 전해온다.
과천에서 청계산까지의 도로는 옛 길로는 특이하게 넓은데 이는 태조가 청계산에 은거한 고려 충신을 찾아와 함께 일하기를 권하러 왔을 때 닦은 것이라 전해온다. 후대에 청계산을 조씨에게 사패지로 내려 지금도 청계산은 조씨 종산이다.
광주 학현(학의동) 출신 박성삼(1887∼?)은 의병대장 윤기의 부하가 되어 1907년 11월 청계산 위에서 일본 순사대와 교전하여 패하고 그 후 1908년 2월경까지 경기도 각 곳에서 군량 및 군용자금을 강탈하였다 하여 경성지방재판소에서 구형 5년을 받았다.
청계리 출신 성주복(1894∼?)은 배재학당을 나왔고 1919년 3월 5일 남대문 역전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쳐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청계동 431번지에서 계명강습회를 개설하고 야학을 가르쳤다.
성주복과 동지인 이복영(李復英)은 3·1운동 때 총을 맞아 다리를 못쓰고 지팡이를 짚고 다녔고 이봉근(李鳳根)은 직접 교편을 잡지 않았으나 같은 항일 투사였다. 이춘응은 판교에서 만세를 부르다가 총에 맞아 순국하여 가매장하였다가 후에 청계 선산으로 이장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의일(義逸, 학의동)에 살던 한덕운(韓德運, 토마스)이 광주 포교에게 잡혀 교우들의 이름을 대라는 심문을 받았다. 그러나 한덕운은 이를 단호히 거부하다 남한산성에서 순교하였다.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조인규(趙仁規, 1227∼1308) 고려 때 문신, 역관. 충렬왕 원년 성절사가 되어 30여 차례 원나라를 왕래하였다. 충렬왕 33년에 평양군에 봉해지고 선충익재보조공신(宣忠翊載補祚功臣)에 올랐다. 청계사에서 살았고 경내에 기념비가 있다.
 
◈안향(安珦, 1243∼1306) 고려 때 유학자. 우리 나라에 주자학을 도입하고 그 발전에 힘썼다. 그의 사당인 안자묘가 월암동에 있다.
 
◈임영대군(臨瀛大君, 1420∼1469) 세종의 넷째 아들. 화포·화차의 제작을 감독하는 등 병기 개발에 힘썼다. 수양대군을 피하여 은거하다가 수양이 즉위하자 조정에 나가 보좌하였다.
 
 
 
임영대군 사당
◈채세영(蔡世英, 1490∼1568) 조선 때 문신. 직제학, 대사성(1537),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천추사(天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1548).『중종실록』 편찬, 공조·호조판서, 좌참찬을 지냈다. 묘는 포일동에 있다.
 
 
 
채세영의 묘와 신도비
◈박응남(朴應男, 1527∼1572) 조선 때 문신. 직제학, 참판을 거쳐 대사헌에 올랐다. 간관(諫官)으로 유명하였고 도승지를 지냈다. 이조판서에 추증. 학의동에 묘가 있다.
 
◈김징(金澄, 1623∼1679) 조선 때 문신. 정대화의 죄를 논해 벽종에 유배되었다가 송준실의 도움으로 승지로 복직되었다(1669). 이듬해 전라남도 관찰사로 나갔으나 김석주의 탄핵을 받고 배천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1672). 영의정에 추증. 왕곡동 왕림에 묘가 있다.
 
◈한익모(1703∼1781) 조선 때 문신. 광주부윤(1744), 이조판서(1757), 대제학(1762), 영의정(1772)에 올랐다. 사도세자의 처벌을 주장한 홍인한 등을 조사할 때 불참하였다 하여 유배되었다가 석방되었다. 월암동에 묘가 있다(향토유적 제1호).
 
◈한진창(韓鎭昌) 1858년 출생. 탁지부 회계국장(1897), 육군부령(1899), 육군정령, 강원도 순찰사(1904), 전북관찰사 겸 판사(1906), 육군참장, 군부차관을 지냈다(1907). 학의리 산 35(점말마을)에 묘가 있다.
 
◈이희승(李熙昇, 1896∼1989) 포일동 출생. 경성제대 법문학부(1930), 이화여전 교수, 조선어학회 간사(1932),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1942), 경성대학 법문학부 교수(1945),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장(1967), 건국 공로훈장(1962), 동아일보 사장(1963). 저서 『국어학논고』 (1947), 시집『박꽃』등.
 
◈정인섭(鄭寅燮, 1905∼1983) 시인·학자. 와세다대학 영문학과(1929), 연희전문대 교수. 방정환과 함께 색동회 조직(1932), 중앙대(1946), 런던대(1950), 일본 천리대 교수(1953), 펜클럽 한국 본부 위원장(1956), 외국어대 교수(1968), 국민훈장모란장을 수장하였다(1974). 저서는 『종합변증법적세계문학론』, 시집 『산 넘고 물 건너』등.
 
◈정준모(鄭俊謨, 1893∼1958) 포일리 덕장골 출생. 1925년경 포일리에서 한문서당을 개설하였고 1929∼1943년까지 청계동 성현서당 당장으로 후진교육에 힘썼다. 이 때 일제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성현서당이 폐당되자 포일리로 이사와서 구장 일을 보며 집에서 한문서당을 계속하여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다.
 
내 고장의 문화유산
■ 보물
◈동제은입사향완 제288호
 
◈제왕운기 제418호
 
◈삼국유사 제419호
 
◈청계사동종 제11-7호, 청계동 11
 
■ 유형문화재(이하 도지정)
◈검재 김유선생 영정(청풍김씨종중소유) 제117호, 왕곡동40
 
◈청계사목판 제135호, 청계동 11
 
■ 문화재자료
◈청계사 제6호, 청계동 11
 
◈임영대군 묘역 및 사당 제98호, 내손동 산 154-1
 
■ 향토유적
◈한익모 선생 묘 제1호, 월암동 산 26
 
◈채세영 선생 묘 및 신도비 제2호, 포일동 산 12
 
■ 전통사찰
◈백운사 제36호, 왕곡동 1-1
 
■ 비지정문화재
◈내손동 지석묘 내손동 갈미마을
 
◈청계동 지석묘 청계동 토골 김 선길 집안
 
◈삼동 지석묘 삼동 416
 
◈이동 지석묘 이동 오봉산
 
◈삼동백제토기 유적 삼동 부곡역에 동쪽 500m
 
◈청계동 고분 청계동 토골마을 북쪽
 
◈금산사 미륵보살 내손동 금산사
 
◈월암동 안자묘 월암동
 
◈임영대군묘 및 사당 내손동 산 15-1
 
◈조인규 사당기비 청계동 산 11
 
◈김징묘와 신도비 왕곡동
 
◈한성우묘와 신도비 이동 참말
 
◈김유묘와 신도비 왕곡동
 
◈한장석묘와 신도비 이동 참말
 
◈성현서당 옛터 기념비 청계동 복지회관 앞
 
 
 
성현서당 옛터
 
 
 
 
3. 생활문화자원
 
전통생활민속
◈왕곡동제 매년 음력 10월. 300년 전부터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며 백운산 산당에서 제를 올림. 제34회 전국민속예술경영대회에 경기도 대표로 참가했으며, 매년 시민의 날 식전 행사로도 행해짐. 주최 왕곡동제보존회.
지금으로부터 300년전 마을에서 발생하는 재앙 및 재난을 은행나무 아래서 남녀노소 온 마을 주민이 한자리에 모여 나무신께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였다. 이 나무는 왕곡동 184번지 마을회관 앞에 있는데 수령이 무려 530년으로 추정된다. 고천 산신제라고도 하며 남녀노소가 어울려 씨름, 힘겨루기, 줄다리기 등을 하면서 애향심을 도모한다. 경기도 지정보호수 제38호다.
이 고천 산신제는 1991년 제7회 경기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종합우수상(2등)을 받았다.
 
◈의왕단오제 현재 의왕에는 오전동 전지남마을과 왕곡동에 단오고사를 지내고 마을 어른들을 대접하는 효도 중심의 단오제가 남아있다. 올해(2000년)부터 마을고사를 지내고 온 시민이 참여하여 씨름 등의 체육행사와 효도잔치, 국악공연, 악극공연, 단오부채 그리기, 영화상영 등의 문화행사를 겸하는 형태로 단오제를 통합하여 실시하고 있다.
 
구전설화
◈오봉산 아기장수 옛날 가난한 아낙이 옥동자를 낳고 잠시 방을 비운 사이 아기가 천장에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아기를 살펴보니 옆구리에 날개가 달려 있었다. 식구들은 보통아이가 아님을 알고 자라나서 엉뚱한 일을 저지를 까봐 갓난아이 위에 맷돌을 올려놓았다. 그 순간 오봉산에서 용마가 나와 바위 위로 뛰어내려 오다가 죽고 말았다. 그 용마는 아기장수를 태워 하늘로 오르기 위해 기다리던 말이었는데 그만 아이가 죽자 용마도 죽고 만 것이다. 이 바위에는 지금도 흡사 말발굽 자국 같은 것이 남아있다.
 
◈모락산의 참사 임진왜란 때 왜군이 쳐들어왔다. 오전리 마을 사람들은 모락산 굴로 피신하였다. 그 때 갓난아기 하나가 굴 밖에서 울고 있었는데 왜군들이 이를 보고 이 굴에 숨어있다고 판단하여 입구에 불을 질렀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 굴속에서 몰아서 죽었다하여 ‘모락산’이라고 하였다 한다.
 
◈월암(月岩) 안터마을 전설 옛날 이 마을에는 부잣집이 있었고 식객이 많았다. 어느날 한 스님이 염불을 하며 시주를 청하였다. 부잣집 주인은 시주를 많이 하겠으니 “손님이 오지 않도록 부처님께 빌어주시오.”하며 쌀 한말을 주었다. 스님은 “댁에 들어오는 소로를 넓히고 곧바로 잡으시오.”하고 돌아갔다. 주인이 그대로 시행하였더니 식객은 전보다 많아져 결국 망해버렸다. 그러자 손님은 끊어졌다.
 
◈월암동 거지논·팥죽배기·국논배기 월암동 도룡마을에 위와 같은 논이 있으니 거지논은 옛날에 어느 한 해가 몹시 가물어 그 논 임자에게 죽 한 그릇을 주고 샀기 때문이다. 팥죽배기는 흉년에 팥죽 한 그릇을 주고 산 것이고 국논은 흉년에 국 한 그릇을 주고 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주민의 종교생활
◈불교 의왕시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고 교세가 강한 사찰은 청계사다. 청계동 산 11번지에 있고 신도가 13,000명에 이른다. 통일신라 때 창건되어 고려 충렬왕 10년 조인규가 증축하고 금서(金書)로 법화경(法華經)을 새겨 보존하였다. 조선 중종 때 선종(禪宗)의 총본찰이 되었으나 광해군이 사찰 토지를 압수하였다. 임진왜란 때 완전 소실되었다가 백여년 후에 중건하였으나 일제 때 폐사되었다. 광복 이후 역대 주지들의 노력으로 복구, 신축하여 문화재자료 제6호로 지정되었고, 경내의 동종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이외에 백운사(왕곡동), 오봉정사(고천동), 자비정사(왕곡동), 당성사(고천동), 부곡사(부곡동), 용보사 포교원(삼동), 계명정사(오전동), 지장암(오전동), 복전원(오전동), 대안사(내손동), 반야포교원(내손동), 천불사(내손동), 대원사(학의동) 등 13개 사찰과 암자가 있다.
 
◈하우현성당 1801년 한덕운이 순교하였다는 것은 전술하였거니와 1845년에 하우현에 살던 김준원이 1866년 새남터에서 순교하였으니 이러한 대가를 바탕으로 하우현 성당이 세워졌다. 1893년 교우들이 이곳 청계리에 초가 공소강단 10칸을 지었고 1900년 프랑스 신부 샤플랭이 초대 본당주임으로 부임하였으니 101년의 역사가 있다.
창설 당시 신도는 1,105명이고 16개 공소를 관할하였다. 즉 광주군과 과천현, 시흥군, 안산군을 관할한 것이다. 1920년에는 한국인 신부 윤예원(尹禮源)이 부임하여 애경강습소를 설립하여 교육하였는데 이는 성현서당으로 맥이 이어간다. 신도가 줄어 다른 성당의 공소로 전전하였고 현재 신도는 180명이다.
 
 
 
하우현성당
◈성나사로성당 오전동 산 87번지(12만 평)에 자리하고 있다. 1950년 6월 2일 미국인 캐롤 주교가 나환자를 위하여 만들었다. 여기에는 초대, 7대 원장인 이경재 신부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이 신부가 1998년 사망 후 김화태 신부가 원장으로 부임하였고 현재 102명의 무의탁 나환자가 요양중이다. 6월 2일 성나사로 마을 설립 50주년을 맞아 기념관 준공식 등 행사를 가졌다.
기타 성당
포일성당 (내손동 669)은 성도가 4,281명이고, 부곡성당(삼동215-10)은 3,210명이다. 이상 4개 성당이 있다.
 
 
 
성나사로 마을 전경
◈개신교 1904년 예수교장로회 학현교회가 설립되었으나 얼마 있다가 없어졌다. 1937년 오전동에 성결교회가 창립되었으니 이것이 의왕 최초의 개신교다. 오전리 교회에 출석하던 학의리 오림계 마을 이재삼 집사 등 신자들이 오매기 고갯실을 다니기가 힘들어 1947년에 이집사 집에서 23명이 창립예배를 드렸다. 이것이 4동 최초의 교회로 현재 김종을 목사가 시무중이다. 오전리에 있던 성결교회는 1943년 신사참배에 반대하였다 하여 교단이 폐쇄, 1977년 고천으로 이사를 했고 현재 김재영 목사가 시무 중이다.
의왕시 관내 개신교 교회수는 92개, 교직자수는 148명, 신도는 12,147명이다.
 
주민의 생활권역
의왕의 생활권은 북쪽과 남쪽으로 나눈다. 북쪽은 다시 동서로 나누는데 동은 백운호수를 둘러싼 그린벨트로 환경도 좋고 인구밀도도 적은 촌락형태다. 서는 포일동과 내손2동으로 도시화되었다. 포일동에는 농업기반공사(전 농어촌진흥공사), 서울구치소와 아파트가 들어섰고 남쪽 내손2동에는 시립도서관, 백운 중·고등학교, 계원조원예술전문대학, 포일성당 등 기관과 대우사원주택 등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이 두 동은 안양시와 접해있어 안양과 같은 생활권에 있다.
남쪽과 북쪽으로 나누는데 북은 오전동·고천동권으로 오전동에는 성나사로마을, 가구단지, 고려병원, 시청, 등기소 등 주요기관이 있고 경부 국도변으로 도시화되어 있다.
남쪽은 부곡권으로 부곡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철도전문대학과 철도박물관이 있고 최남단에는 왕송저수지가 있다. 부곡권은 수원이 가까워 군포, 안양보다 수원이 생활권이다.
 
지역의 별미음식
◈농군의 집 퇴비지 보쌈정식, 왕살코 순대, 오리매운불고기 김형종, 오전동 745 ☎ (031)456-0228,『홍성유 맛있는 집 1234점』
 
◈청계식당 꿩탕, 토끼탕, 메기, 바가사리 매운탕 김태수, 학의동 산 856 ☎ (031)426-0250
 
◈감나무집 김혜양, 오전동 742-2 ☎ (031)453-7848
 
◈부천집 추어탕 김기만, 고천동 280-3 ☎ (031) 453-2831
 
지역의 토산품과 특산품
◈가구단지 오전동 일대에 위치한 ‘의왕가구단지’는 품질이 우수한 가구를 시중보다 싼값에 판매하는 ‘가구의 명소’이다. 27개소의 다양한 전시장이 모여있는 이곳을 경기도는 ‘가구문화의 거리’로, 의왕시는 ‘풍물거리’로 지정하여 볼거리 많은 관광명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꽃·분재단지 청계동·학의동에 난, 분재류를 중심으로 각종 화훼를 전시 판매하는 꽃·분재단지가 조성되어 있어(27개소)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청계동과 부곡동 일대의 화훼재배 지역에서는 주부 꽃재배교실, 베란다 채소재배교실, 주말농장, 도시학생 농촌체험학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에게 농업의 즐거움을 일깨워 준다.
 
 
 
 
 
 
4. 예술문화자원
 
지역문화예술행사
◈노인의 날(5월 10일) 의왕시는 <노인의 날>을 제정하여 효자·효부 표창, 장수 노인축하, 장기자랑, 운동회, 노래자랑을 하는데 이는 전국에서 유일한 경우다.
 
◈연극제(10월) 연극 대중화, 시민정서 함양을 목적으로 개최하는데 이 또한 한국 최초다.
 
◈시민의 날(10월 6일) 매년 1주일간 <의왕시민축제>를 선포하고 걷기대회, 합동결혼식, 꽃 전시회 등 행사를 한다.
 
◈가구거리축제 매년 1회 의왕가구단지 내(성나사로마을)에서 행한다. 의왕가구협회 주최로 가구 할인, 라디오 공개방송, 미니이벤트 등을 행한다.
 
◈기타 청소년 체육대회(4월), 청소년음악제(8월), 합창제(10월) 등이 있다.
 
지역문화예술단체
◈두리사진작가 동호회(사진) △1989년 동아리 결성, △정기 전시회 개최(5회), 의왕시 내손동 620 프라지 두리 스튜디오 ☎ (031)425-5882
 
◈의왕문학회(문학) △1995년 결성, △시낭송회 개최(2회), △동인지 발간(2회), 의왕시 포일동 인덕원 삼호(아) 1-810 ☎ (031)422-2549
 
◈의왕화가회(미술) △1996년 결성, △전시회 개최(3회), △의왕시 삼동 효성청솔(아) 104-102 ☎ (031)461-7077
 
◈의왕화도회(미술) △1998년 결성 △전시회 개최(2회), 의왕시 포일동 540 청화(아) 3-601 ☎ (031) 425-7388
 
◈부곡신협, 의왕풍물단(국악) △경기도 사물놀이 겨루기 대회 참가, 의왕시 삼동 146 우성5차(아) 5-102 ☎ (031)462-2238
 
◈한국국악협회 의왕시지부(국악) △2000. 2. 10 결성, 고천동 303-7 ☎ (031)459-5265
 
◈극단 의왕(연극) 1997(회원수 : 15명) △1994. 4월 창단, 고천동 303-7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무궁화효성(아) 102-1104 ☎ (031)383-5688
 
문화예술교육·연구기관
◈계원조형전문대학 내손동
 
지역문화예술 시상제도
◈시민대상 문화예술분야, 경로효행분야, 시민복지분야, 지역개발분야, 시민봉사분야, 교육발전분야, 체육진흥분야가 있다. 의왕시 주관
 
지역출신 예술인
◈시인 임세한, 박옥실, 부택훈
 
◈수필가 진순분, 리진호
 
◈미술가 김관일, 이인재, 임근우
 
◈사진작가 남문희
 
◈음악 주현미(가수), 박용재(작곡가), 장은순(가수 은숙)
 
◈연예 최홍림(개그맨), 김윤정, 장철군, 박성미(이상 탤런트)
 
 
 
 
 
 
5. 관광, 여가문화자원
 
관광자원
◈백운호수 학의동에 있다. 풍광이 좋고 뱃놀이와 낚시, 겨울에는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주변에는 향토음식, 카페가 있다.
 
◈청계산 청계동에 있다. 해발 618m, 산세가 수려하고 시원한 계곡이 있는 명산이고 청계사가 있다. 1996년부터 자연생활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백운산 고천동 동쪽에 있다. 산봉우리가 항상 구름에 싸여 있다고 하여 백운(白雲)이라 하였고 산세가 깊고 험하여 등산코스, 삼림욕장으로 좋다.
 
관광코스
◈1일코스 청계사(자연생활학교)에서 출발하여 정인섭 시비 → 하우현성당 → 성현서당 터 → 백운저수지 → 임영대군 묘와 사당 → 오매기 고개를 넘어 문화의 집 → 고천동 은행나무 → 재활용센터 → 철도박물관 → 월암동, 안자묘. 소요시간 약 5시간. 거리 약 20㎞
 
 
 
사근 행궁터 (고천동사무소 내에 자리잡고 있으며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가 부왕인 사도세자의 능행을 위해 일시 쉬어가던 곳이다)
 
 
 
 
6. 문화시설자원
 
박물관 및 예술관
◈철도박물관 서울관은 서울역사내에 있고 부곡관은 월남동에 있다. 1988년 개관. 개화의 선구자인 철도의 역사, 모형, 신호, 기관차 등이 전시되어 있다. ☎ (031)461-3610.
 
 
 
철도박물관
◈우경예술관 내손동 산 725. 1989년 11월 24일 개관, 전천후 공연장, 1,219석.
 
 
 
우경예술관
도서관
◈의왕시립도서관 내손2동 소재. 1993년 창립하였고 장서수는 43,884권
 
문화의 집
◈문화의 집 오전동 413-1. 지하 1층, 지상 3층. 청소년 상담실, 다목적 회의실, AV감상실, 정보자료실이 있다.
 
문화원
◈의왕문화원 1999년 8월 6일 201번째로 인가를 받았음. 문화원장 박용하
☎ (031)456-4994
경기도 의왕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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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