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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군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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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3. 01:02) 
◈ 창녕군의 어제와 오늘
창녕군은 경상남도의 중북부로 낙동강의 중류 동쪽편에 위치해 있다. 군의 서남부는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하면서 이룬 충적평야로 영남의 곡창지대이다. 또 동북부는 태백산맥, 비슬산맥이 뻗어 내려와 낙동강에 닿으면서 지맥의 힘이 뭉쳐 화왕산, 영취산 등 높은 산들로 이루어진 산지가 펼쳐지고 그 남쪽에 뜨거운 물줄기가 용솟음치니 바로 국내에서 최고 수온을 자랑하는 부곡온천이다.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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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고장의 어제와 오늘

 
창녕군은 경상남도의 중북부로 낙동강의 중류 동쪽편에 위치해 있다. 군의 서남부는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하면서 이룬 충적평야로 영남의 곡창지대이다. 또 동북부는 태백산맥, 비슬산맥이 뻗어 내려와 낙동강에 닿으면서 지맥의 힘이 뭉쳐 화왕산, 영취산 등 높은 산들로 이루어진 산지가 펼쳐지고 그 남쪽에 뜨거운 물줄기가 용솟음치니 바로 국내에서 최고 수온을 자랑하는 부곡온천이다. 구릉지대와 늪과 못이 많은데 태고적의 신비와 생태학적 보고(寶庫)인 우포늪이 이 고장의 허파처럼 중부에 자리하고 있다.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문물의 반입과 이곳 농산물의 출하가 성행하여 배를 이용한 교통과 나루터가 발달되어 살기 좋은 고장으로 이름이 났다. 목화, 땅콩, 누에고치 같은 특산물은 세월 따라 다른 고소득 작물로 대체되었으나 그 명성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기름기 흐르는 쌀과 달고도 시원한 양파, 온실 재배된 풋고추와 오이, 맵고도 단 고추, 수박, 단감은 특산물로 전국에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풍속에 “생각밖에 조그만 고을에서 음악소리와 글 외우는 소리 들리니… 문화를 숭상함을 알겠도다”하였으니 “순박하여 꾸밈이 없다”는 창녕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문화를 숭상하고 인심이 순하면서도 불의에 쉽게 타협치 않는다.
 
 
 

1.1. <창녕군의 연표>

 
고대
선사시대
- 남방식 고인돌이 있고 고대 성읍국가 불사국(비지국)이 있었다고 기록됨.
 
신라
초기
- 소국 비사벌(比斯伐), 후에 비자화군으로 불리게 됨.
 
555년
- 하주가 됨. 이때 본 군관내는 하주정 외에 북부에 현효현과 중부에 계성현, 남부에 서화현과 밀진현 등이 있었음.
 
565년
- 하주를 폐함.
 
757년
- 경덕왕 16년, 비자화군은 화왕현, 서화현은 상약현, 계성현과 밀진현으로 개칭.
 
고려
940년
- 고려 태조 23년 화왕군을 창녕군으로, 상약현을 영산현으로 개칭. 현효현이 현풍현으로 개칭되며 떨어져 나감.
 
조선
1394년
- 태조 3년 창녕현과 영산현에 감무를 두게됨. 계성현과 밀진현이 영산현에 합해짐.
 
1895년
- 고종 32년 대구부에 속하게 됨
 
1896년
- 창녕군(16개면), 영산군(8개면)으로 개편되어 경상남도에 속하게 됨.
 
근대
1914년
- 창녕군과 영산군이 합해져 창녕군이 됨. 15개면으로 개편.
 
1931년
- 남곡면이 남지면으로 개칭.
 
현대
1955년
- 창락면이 창녕면에 편입.
 
1960년
- 창녕면이 창녕읍으로 승격.
 
1963년
- 남지면이 남지읍으로 승격.
 
현재
- 2읍 12면으로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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