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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담양군 전라남도 담양군 정보
전라남도 담양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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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담양군의 마을 소개
담양군의 어제와 오늘
about 전라남도 담양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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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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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3. 01:02) 
◈ 담양군의 어제와 오늘
1. 내 고장의 어제와 오늘
 
 
 
전라남도 북단에 위치한 담양은 대체적으로 북쪽은 높고 남쪽은 평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본군의 북쪽으로 노령산맥의 지맥인 추월산(729m), 광덕산(584m) 등 높은 산들이 전라북도와 도계(道界)를 이루고 서쪽으로는 병풍산(822m), 장군봉(557m), 불태산(602m)등이 장성군과 군계(郡界)를 이루고 있으며 서남쪽으로는 전남의 평야부와 연결되어 있다.
담양군은 영산강의 시원(始源)을 이루는 담양천이 추월산의 연봉인 용추봉에서 발원하여 군의 중앙부를 가로질러 영산강으로 흐른다.
기후는 내륙에 위치하므로 한서의 차이가 비교적 크며 연평균 기온이 12.7℃이고, 강수량은 1,295.2㎜로 비교적 많은 편이다.
담양군은 비옥한 평야로 논농사가 활발한 군이다. 총경지 면적 12,517㏊ 가운데 논이 9,004㏊로 72%나 되며, 밭은 3,513㏊로 28%에 불과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특용작물인 딸기는 전국에서 유명하다.
임산물로는 대나무 생산이 전국에서 제일이며 이를 기반으로 죽세공업이 예로부터 유명하여 전국에서 유일한 죽물박물관(竹物博物館)이 세워져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 오고 있다.
교통은 두 개의 고속도로가 군의 동남부를 지나고 있어 전남에서 가장 교통이 편리한 지역중의 하나다. 호남고속도로(담양~순천)와 88고속도로(담양~대구, 옥포)가 고서면에서 만나 육상교통의 요지가 되고 있다.
 
 
 
담양 죽물시장
<담양군 연표>
시 대
연 대
주 요 사 항
 
고대
 
석검·석촉(대덕·봉산면), 세형동검(담양읍), 고인돌(금성·대덕·대전·무정·수북·월산·창평·용면)
 
백제
 
백제시대에는 추자혜군 굴지현
 
통일신라
757
신라 경덕왕 16년, 추자혜군을 추성군, 굴지현을 기양현으로 개칭
 
868
신라 경문왕 8년, 개선사지석등 건립
 
고려
995
성종 14년, 담주로 개칭, 도단련사를 둠
 
1018
담주도단련사를 없애고, 담양으로 개칭, 나주에 예속
 
1172
명종 2년 감무 파견
 
1237
고종 24년 원율에서 이연년 형제 반란
 
1256
고종 43년, 몽고군이 둔소 설치
 
1291
공양왕 3년, 율원현 합병
 
조선
1395
태조 4년, 군으로 승격
 
1399
정종 1년, 부로 승격, 창평향교 창건(고서면 교산리)
 
1413
태종 13년, 도호부가 됨
 
1533
중종 28년, 면앙정 건립
 
1560
명종 15년, 식영정 건립
 
1570
선조 3년, 수남학구당 창건(창평면 분향리)
 
1585
선조 18년, 송강정 건립
 
1694
숙종 20년, 송강서원 창건(창평면 해곡리)
 
1717
숙종 43년, 대홍수로 큰 피해, 관방제 축조 시작
 
1728
영조 4년, 담양현으로 강등
 
1738
영조 14년, 도호부로 복구
 
1748
영조 24년, 대치서원 창건(대전면 대치리)
 
1762
영조 38년, 담양현으로 강등
 
1772
영조 48년, 담양도호부가 됨
 
1854
철종 5년, 관방제 완성
 
1895
고종 32년, 관제개혁으로 군이 됨. 남원부 예하
 
1907
광명학숙 설립
 
1908
옥과군 일부 병합, 창흥학숙·영학숙 설립
 
근·현대
1914
창평군 폐지 병합, 광주의 갈전·대치면 이속
 
1919
3월 2일, 3·1운동
 
1923
담양선철도 부설
 
1943
담양선철도 철거, 담양면이 읍으로 승격
 
1949
용추사전투(여순반란사건)
 
1955
용추산 가마골의 공비 진압
 
1973
호남 고속도로 개통
 
1976
담양호(용면)·광주호(남면)완공
 
1984
88올림픽고속도로 개통
 
 
 
 
 
 
 
 
2. 역사문화자원
 
역사적 사건과 현장
◈일찍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담양 담양은 봉산면 제월리 석기시대의 역사유물을 찾아 그 내용을 알기는 어려우나 노령산맥 줄기를 뒤로한 영산강 상류에 형성된 풍요한 평야를 끼고 대소(大小) 각종 유물·유적 등의 출토로 미루어 농경과 수렵을 위주로한 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견훤의 후백제 근거지 통일신라시대 진성여왕 6년(892)에 견훤이 무진주(광주) 북방10리(담양군 대전면 갈전부리)에서 군사를 일으켜 부근 주·군·현을 정복하여 그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8여 년 간 근거를 둔 지역이다.
 
◈13세기까지 계속된 후백제 부흥운동 고려 고종 23년(1236) 원율 출신 이연년이 후백제 부흥운동을 전개하여 인근 주·군·현을 점령하였으나, 고종 24년 봄에 나주성에서 전라지휘사 김경손이 완전 섬멸한 후 원율현을 폐현하여 담양에 예속.
 
◈조선의 건국에 숨은 공을 세우다 조선 초 국사 조구의 고향이였으며, 정종의 황후 정안왕후인 중궁 김씨가 담양읍 백동리에서 출생
 
◈가사문학의 고장 1493년 11월 14일에 담양부 기곡면 상덕리(봉산면)에서 출생한 면앙정 송순(免仰亭 宋純)은 가사문학의 창시자이었으며, 송강 정철(松江 鄭澈)이 유배하던 남면 지곡리 환벽당을 중심으로 가사문학의 산실로 식영정의 성산별곡, 송강정의 사미인곡·속미인곡을 저술한 고장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충의열사의 고장 국난극복에 앞장섰던 충렬공 고경명의 둘째아들 학봉 고인후의 장엄한 금성산 순절과 한말 녹천 고광순의 빛나는 연곡사의 순절, 그리고 애국충정의 고하 송진우 선생의 1945년 12월 30일 절명함.
 
내 고장의 문화유산
■보물
◈개선사지석등 제111호, 남면 학선리 593
 
◈미암일기 제206호, 대덕면 장산리 213
 
◈석당간 제505호, 담양읍 객사리 45
 
◈5층석탑 제506호, 담양읍 지침리 4
 
◈불조역대통재 제737호, 담양읍 남산리 106
 
■사적
◈소쇄원 제304호, 남면 지곡리 123
 
◈금성산성 제353호, 용면 도림리 일원
 
■천연기념물
◈대전면의 느티나무 제284호, 대전면 대치리 787-1
 
◈관방재림 제366호, 담양읍 객사리 일원
 
■중요무형문화재
◈낙죽장 제31호, 담양읍 향교리 359
 
◈채상장 제53호, 담양읍 양각리 194
 
■기념물(이하 도지정)
◈식영정 제1호, 남면 지곡리 산75-1
 
◈송강정 제1호, 고서면 원강리 산1
 
◈추월산 제4호, 용면 월계리 산81
 
◈면앙정 제6호, 봉산면 제월리 402
 
◈오충정려 제16호, 대전면 평장리 265
 
◈명옥헌원림 제44호, 고서면 산덕리 513
 
◈후산리은행나무 제45호, 고서면 산덕리 산23-1
 
◈독수정원림 제61호, 남면 연천리 산91
 
◈죽림재 제99호, 고서면 분향리 338
 
◈경상리느티나무 제141호, 남면 경상리 400
 
◈봉안리은행나무 제167호, 무정면봉안리 1043-3
 
◈오평리왕버들나무 제168호, 금성면 월율리 543-2
 
■유형문화재
◈몽한각 제54호, 대덕면 매산리 32-1
 
◈용흥사범종 제90호, 월산면 용흥리 585
 
◈담양향교 제103호, 담양읍 향교리 323
 
◈창평향교 제104호, 고서면 교산리 138
 
◈용흥사부도군 제139호, 월산면 용흥리 585
 
◈영은사석조여래좌상 제143호, 고서면 금현리 133
 
◈분향리석불입상 제144호, 고서면 분향리 산15
 
◈이만유영정 제148호, 담양읍 천변리 81
 
◈오룡리석불입상 제192호, 무정면 오룡리 산38
 
◈송강집 및 기암집목판 제211호, 남면 지곡리 322-1
 
■무형문화재
◈참빗장 제15호, 담양읍 향교리 318
 
◈죽렴장 제23호, 봉산면 기곡리 164
 
◈우도농악설장구 제17호, 봉산면 와우리 136
 
■민속자료
◈고재선가옥 제5호, 창평면 삼천리 165
 
■문화재자료
◈수남학구당 제21호, 고서면 분향리 1
 
◈수북학구당 제22호, 수북면 오정리 산5
 
◈상월정 제26호, 창평면 용수리 산76
 
◈남희정 제27호, 담양읍 백동리 산211
 
◈보리암 제28호, 용면 월계리 산81-1
 
◈언곡사지3층석탑 제29호, 무정면 봉안리 산108
 
◈천변리석인상 제171호, 담양읍 천변리 167-2
 
◈영은사석불좌상 제135호, 고서면 금현리 133
 
◈김선기가옥 제180호, 대덕면 장산리 341
 
◈연동사지지장보살입상 제188호, 금성면 금성리 산93-1
 
◈유종헌가옥 제192호, 창평면 해곡리 230
 
◈연동사지3층석탑 제200호, 금성면 금성리 산93-1
 
◈ 개선사 지석등(開仙寺 址石燈) [상세보기]
◈ 미암일기(眉巖日記) [상세보기]
◈ 석당간(石幢竿) [상세보기]
◈ 오층석탑(五層石塔) [상세보기]
◈ 불조역대통재(佛祖歷代通載) [상세보기]
◈ 소쇄원(瀟灑園) [상세보기]
◈ 금성산성(金城山城) [상세보기]
◈ 낙죽장(국양문)(烙竹匠(鞠良文)) [상세보기]
◈ 담양채상(서한규)(潭陽彩箱(徐漢圭)) [상세보기]
◈ 대전면의 느티나무 [상세보기]
◈ 관방제림(官防堤林) [상세보기]
◈ 식영정(息影亭) [상세보기]
◈ 송강정(松江亭) [상세보기]
◈ 면앙정(傘仰亭) [상세보기]
◈ 추월산(秋月山) [상세보기]
◈ 오충정려(五忠旌閭) [상세보기]
◈ 명옥헌정원(鳴玉軒庭園) [상세보기]
◈ 후산리 은행나무 [상세보기]
◈ 독수정원림(獨守亭園林) [상세보기]
◈ 죽림제(竹林薺) [상세보기]
◈ 몽한각(夢漢閣) [상세보기]
◈ 용흥사범종(龍興寺梵鐘) [상세보기]
◈ 담양향교(潭陽鄕校) [상세보기]
◈ 창평향교(昌平鄕校) [상세보기]
◈ 용흥사부도군(龍興寺浮屠群) [상세보기]
◈ 영은사석조여래좌상(靈隱寺石造如來坐像) [상세보기]
◈ 분향리석불입상(分香里石佛立像) [상세보기]
◈ 이만유영정(李萬 影幀) [상세보기]
◈ 참빗장(고행계)(참빗匠(高行桂)) [상세보기]
◈ 죽렴장(박성춘)(竹簾匠(朴成春)) [상세보기]
◈ 고재선가옥(高在宣家屋) [상세보기]
◈ 수남학구당(水南學求堂) [상세보기]
◈ 상월정(上月亭) [상세보기]
◈ 남희정(南喜亭) [상세보기]
◈ 보리암(菩提庵) [상세보기]
◈ 언곡사지삼층석탑(彦谷寺址三層石塔) [상세보기]
◈ 천변리석인상(川 里石人像) [상세보기]
◈ 영은사석불좌상(靈隱寺石佛坐像) [상세보기]
◈ 김선기가옥(金善基家屋) [상세보기]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가사문학의 선구자 면앙정 송순(宋純) 송순은 조선 성종 24 ∼ 선조 16년(1493∼1583) 때의 문신. 자는 수초, 호는 면앙정 또는 기촌이다. 「면앙정가」의 창설자.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자 본관은 신평(新平)이다. 중종 14년(1519)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를 시작으로 1520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마친 뒤 1524년 세자 시강원 설서가 되고 1527년 사간원 정언이 되었다.
잠시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하여 1533년 41세 때 면앙정을 짓고 1537년 다시 벼슬길에 올라 사헌부에 올랐다. 홍문관 부제학, 충청도 어사 등을 지냈고, 1539년 승정원 우부승지에 올랐다. 그해 5월에 북경에 다녀와 개성부 유수가 되었고, 1552년 성산 도호부사가 되고, 이 해에 면앙정을 중축하였다.
이때 기대승이 면앙정기를 쓰고, 임제가 부를 김인후, 임억령, 박순, 고경명 등이 시를 지었다. 이후 전주 부윤과 나주목사를 거쳐 70세에 기로소에 들고, 선조 1년(1568년)에 한성부좌윤이 되어 명종실록을 찬수하였다.
이듬해 한성판윤으로 특승하고 이어 의정부 우참찬이 된 뒤 벼슬을 사양, 관직 50년에 은퇴하였다.
그는 성격이 너그럽고, 후하며, 음률에 밝아 가야금을 잘 탔다고 한다.
박상과 송세림에 사사했고, 신광한, 성수침, 이황 등 많은 학자들과 교유했으며, 김인후, 고경명, 임억령, 소세양, 정철 등 많은 학자들이 출입하고 시를 즐겼다. 「면앙정 삼언가」, 「면앙정 제언」 등 수많은 가사(총505수, 부1편) 국문시가인 「면앙정가」 9수 단가(시조) 20여 수를 지어 조선 시가문학에 크게 기여하였다. 문집으로 『면앙집』이 있다.
 
 
 
면앙정
◈고광순(高光洵) 의병장 고광순은 임진왜란 때 금산(錦山) 7백의사(義士)의 지도자 제봉 고경명의 둘째 아들인 학봉(鶴峯) 의열공 고인후의 사손(祀孫)으로 창평면 상월정에서 수학(修學), 과거를 보는데 시간(試簡)들의 부정으로 떨어져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는 과거를 보지 않았다.
1895년 명성 왕후의 시해 사건이 터지자 여러 의병장들과 의병을 규합하여 원수를 갚고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왜병과 수없이 싸웠으며 구례 지리산 화개동으로 들어가 조사를 훈련시켜 왜군과 싸우다 일본군의 습격으로 화개동 연곡사에서 전사하였다. 1962년 정부에서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 하였다.
 
◈고하 송진우(古下 宋鎭禹) 송진우 선생은 구한말(1890년)에 담양군 금성면 대곡리에서 출생, 신·구학문을 닦은 후 중앙학교와 동아일보사를 항일독립운동의 유일한 보루로 삼아 당시 국내 정세로 보아 불가능하던 여러 종교단체들을 제휴 단결하여 최남선, 현상윤 등과 독립선언문을 작성, 1919년 3·1운동을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동아일보가 창간된 후에는 민족교육·민족언론·민족문화 및 민족산업의 기반을 다지면서 물산장려·선열유적보존, 문맹퇴치·한글 계몽운동 등을 펼쳐 민족정기를 드높이기 위한 투쟁을 주도했다.
1931년(42세)에 한·중간 양민족을 이간하려고 일제가 조작한 만보산 사건 때는 결연히 민족의 선두에 서서 이를 언론에 고발하여 민중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여 한·중 양국간의 우호를 지키고 만주의 동포들(60여만 명)을 위기에서 구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재외동포 위문 및 독립군과 애국지사들을 지원했으며 8·15 해방 직전 일제의 정권이양 제의를 받자 선생은 민족자결원칙을 고수하여 단호히 거부하고 해방직후 한국민주당을 영도하여 반탁시위 정당성을 강조하며 국운을 바로잡기 위해 애쓰던 중 반민족단체의 저격으로 1945년(56세)에 항일독립운동으로 일관된 생애를 마쳤다. 1997년 12월 문화인물로 선정.
 
 
◈ 송진우(宋鎭禹, 본관:신평(新平), 아호:고하(古下), 생존시대:1890 ∼ 1945, 출생지:담양군 금성면 대곡리) [상세보기]
◈ 송순(宋純, 본관:신평(新平), 아호:면앙정(傘仰亭), 생존시대:1493 ∼1583, 출생지: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유적지: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402 면앙정) [상세보기]
◈ 유희춘(柳希春, 본관:선산(善山), 아호:미암(眉菴), 생존시대:1513 ∼ 1577, 출생지:해남, 유적지:담양군 의암서원) [상세보기]
◈ 고광순(高光洵, 본관:장흥, 생존시대:1848 ∼ 1908, 출생지:담양군 창평면 유천리, 유적지:구례군 토지면 연곡사) [상세보기]
◈ 전우치(田禹治, 본관:담양, 생존시대:조선 중기, 출생지:서울) [상세보기]
◈ 국유(본관:담양, 아호:복애(伏崖), 생존시대:고려) [상세보기]
◈ 전록생, 전귀생, 전조생 <전득시(田得時)의 3형제>(田祿生, 田貴生, 田祖生, 본관:담양, 아호:야은(野隱), 래은(來隱), 경은(耕隱), 생존시대:1318 ∼ 1392(고려말), 유적지:담양 향교) [상세보기]
◈ 정철(鄭澈, 본관:연일(延日), 아호:송강(松江), 생존시대:1536 ∼ 1593, 출생지:서울) [상세보기]
 
 
 
 
3. 생활문화자원
 
전통생활민속
◈담양 황금리 들노래 담양은 시가와 판소리의 고장이다. 면앙정 송순과 송강 정철은 우리나라 시가문학사상 불후의 명작인 「면앙정가」와 「성산별곡」, 「속 사미인곡」을 담양에 은거하면서 노래했고, 판소리의 거장 송덕기와 이날치는 천하를 주름잡은 국창들이었다. 이 같은 영향인지는 몰라도 담양에서는 여느 고장과 다른 멋들어진 민요들이 많이 불리워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생활양식의 변화로 말미암아 고유한 노래들이 거의 자취를 감추어 인멸단계에 있다.
예부터 우리농민들이 피곤을 달래기 위하여 불렀던 농요를 수북면 일대에 전승되어 민요를 체계적으로 재 정립하여 선보이게 되었다. 담양들노래는 일종의 민요로서 모판을 만들어 볍씨를 뿌리고 모를 심어 논을 맬 때까지 불리어진 노래들을 묶은 것이다.
노래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모판만들기 노래 (일명 가래소리)
1) 아오위소리 2) 오이에소리
·모찌기 노래
1) 오이소리 2)먼들소리
·모심기 노래 (일명 상사소리)
·논매기노래 (일명 미도지기 노래)
1) 초벌매기 에이소리 지화자소리 2) 두벌매기소리 3) 세벌매기소리 : 나지나 소리 오호소리
·두렁노래 등으로 되어있다.
모판 만들기 노래는 가래로 논을 파고 밟아 다니면서 부르는 노래이고 모찌기 노래는 모를 심으면서, 논 매기 노래는 논에서 논 맬 때 부른 노래이다. 두렁노래는 세벌매기 즉 만두레를 끝내고서 논두렁에 올라 마을로 향할 때 부른 노래이다. -생략 -
 
 
 
황금리 들노래 공연장면
◈물레놀이 고려말에 문익점에 의해 원나라에서 들여온 목화가 우리나라에 재배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의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 왔다.
옷감을 만들기 위하여 부녀자들이 모여 앉아 길쌈을 하면서 지루함을 달래며 흥취에 젖어 부르게 된 것이 물레타령, 베틀노래 등이 있다.
또한 우리 선조들은 가난했기에 배가 고파 품앗이를 하면서 덜익은 땡감을 된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김치 등을 나눠 먹기도 했으며, 어느 뉘댁에 제사를 지내면 단자를 얻어다 나누어 먹기도 했던 풍습이 담양 농촌 지방 구석구석에 번져 내려오고 있었다.
농부가 밭에서 무명 씨앗을 뿌려 이것이 자라서 목화가 되면 목화를 따서 씨앗질을 한 다음 활로 솜을 타서 고치를 말고 물레로 무명을 잣는다. 아낙네들이 길쌈을 하면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물레노래와 베틀노래를 하였다. 이 민요는 담양군 용면 두장리에서 대표적으로 많이 불리어져 내려온 전통민속생활 풍습이었다. 지금은 의생활이 발달하여 사라지고 없어졌다.
 
◈ 마마 액막이 놀이(분류:관혼상제/상, 행사시기:정월, 전승장소:전남 담양군 월산면 도계리 마을회관) [상세보기]
◈ 담양 황금리 들노래(분류:관혼상제/제, 전승장소:전남 담양군 수북면 황금리) [상세보기]
구전설화
◈소년 김덕령과 장군수(將軍水)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던 김덕령 장군의 소년시절에 있었던 구전을 소개하고자 한다.
김덕령은 어려서 창평의 외가를 자주 다녔는데, 외가는 무등산의 ‘유둔치’ 재를 넘어서 서봉사로 가는 길로 서봉사에는 힘이 센 까리중이 여덟명이나 있었다. 이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힘내기 씨름을 하곤 했는데 하루는 김덕령이 외가에 가는 길에 이상한 일을 보았다.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한 까리중이 키가 작은 까리중에게 보기 좋게 넘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잠시 후 키가 작은 까리중이 용화당 쪽으로 달려가 사방을 둘러보고 주문을 외우고 커다란 바위를 들어 옆에 놓고 물을 마시는 것이 보였다. 소년 김덕령은 궁금하기도 하여 용화당 옆에 물을 마시고자 그곳으로 갔으나 물을 마실 수가 없었다. 어느날 외가에 다녀오던 길에 바위 밑을 유심히 살피며 궁리하던 끝에 바위를 움직일 수 없어 갈대를 끊어 바위틈으로 밀어 넣고 물을 빨아 마셨다. 그 후 새벽이면 까리중의 눈에 띄지 않게 샘물을 마시고 심신을 단련했다.
그러던 어느날 변소에서 용무를 마치고 있을 때 커다란 호랑이가 변소 문 옆에서 김덕령을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 대고 있었다. 덕령은 꼬리를 잡고 낚아채어 호랑이를 당기자 호랑이가 도망치려고 발버둥을 쳤으나 덕령은 발꿈치만 조금 움직일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밧줄로 호랑이 꼬리를 묶어 50여 명이 호랑이를 끌어 당기었다고 한다.
덕령이 추석을 맞아 창평 외가에 왔을 때 씨름판이 벌어졌는데 서봉사의 까리중들이 승세를 굳히고서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꼬마 김덕령은 원님 앞에가서 “씨름 도중에 사람이 죽어도 아무 일 없겠느냐”고 묻자 “씨름하다 죽은 걸 어떻게 하겠느냐” 하고 허락하였다.
까리중들은 꼬마하고는 씨름을 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으나 김덕령은 씨름이나 해 보고 큰소리치라고 대항했다. 화가 난 까리중이 재빨리 덕령을 넘기려고해 덕령은 빠른 동작으로 반격하여 까리중을 높이 들고 땅으로 던져 버리자 몸이 흙속으로 들어가고 목위만 나와 있었다. 담양쪽에서 응원을 하고 함성을 지르자 다른 까리중이 달려 들어 덕령이 한손으로 높이 쳐들고 집어 던지자 더 이상 씨름을 할 수가 없었다.
소년 김덕령은 이때부터 천하장사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고 전한다.
 
주민의 종교생활
전통적인 마을 신앙은 곳곳에 많이 남아있다.
음력 정월 보름이면 당산제를 비롯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산제(山祭)를 모시는 곳이 있다.
그 예로 용면 분통리 마을 사람들은 매년 음력 정월 보름이면 정성을 다해 제를 지내고 가정마다 지신밟기 농악놀이를 하는데 마을 청년들이 일제시대에 징용을 끌려가거나 6·25전쟁을 겪었을 때에도 한사람의 낙오자나 부상자가 없어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에게 정성을 다하여 제를 모시기 때문이라 믿고 갈수록 산제를 잘 모셔야 한다는 마을 사람들의 생활신앙으로 내려오고 있다.
 
지역의 별미음식
◈떡갈비와 죽순회 40여 년 전만 해도 담양 5일장에서 파는 비빔밥은 전국에서 모여든 시장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음식문화가 발달하면서 인절미 크기만한 떡갈비가 유명해졌다. 떡갈비는 특유한 비법의 양념을 계속 바르면서 타지 않도록 연한 숯불에 구우며 은은한 양념맛이 고기 깊숙이 스며들게 한다. 한번 먹어보면 입안에서 저절로 녹는 듯한 부드러운 맛에 매료 된다.
계절의 미각인 죽순요리 또한 일품이다. 대나무 고을답게 담양에서 생산된 죽순과 우렁 그리고 고추장, 양념, 참기름, 식초, 참깨 등을 넣어 만든 죽순회 맛이야 말로 담양 고유의 음식으로 내놓을 만 하다.
 
지역의 토산품과 특산품
◈죽엽청주(竹葉靑酒) 『동의보감』에 대나무 잎은 상한증이나 고열, 갈증의 해소와 더불어 정신안정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연구자들에 의하면 죽엽에는 고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 회분, 비타민C가 풍부하여 대장암의 방지와 당뇨병, 심장병 등 성인병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죽엽청주는 옛날부터 이 지방 가정에서 대나무 잎을 원료로 빚은 술인데 담양의 별칭인 청죽골의 청자를 따서 죽엽청주라 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진상품으로 그 명성을 떨치기도 했던 술이다.
알콜도수가 40도인 죽엽청주는 맛이 부드럽고 향을 좋게 하기 위하여 저온에서 6개월 이상 숙성 시킨 후 여과해 마시는데, 술이 순하면서도 마시면 은근하게 취하고 빨리 깨는 것이 어느 민속주와도 다른 독특한 맛이 있다.
요즘은 중국과 대만에서 죽엽주가 수입되는데 그 맛은 담양의 청죽골 죽엽청주와 비교할 수 없다. ☎ (061)383-0550 담양군 월산면 광암리
 
◈전통 창평 쌀엿 쌀엿은 산수가 수려하며 물이 풍부하고 물맛이 좋은 창평에서 만들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조선조 세종 때부터 그 제조 비법이 전해 내려왔다고 하며 상류 양반사회에서 윗분들에게 선물용으로 많이 사용되었고, 혼사시에 입덧치기하여 사돈댁에 드리는 이바지 선물로 이용되었다. 무공해 자연 식품으로 식품이면서 약으로도 쓰인다. 『동의보감』, 『향약집성방』 서적에 그 쓰임새가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담양군 창평면 초정식품 ☎ (061)383-6446
 
 
 
 
 
 
4. 예술문화자원
 
지역문화예술행사
◈세시풍속놀이 한마당잔치 주최 : 담양문화원, 주관 : 담양민속예술보존회, 개최시기 : 매년 음력 정월 15일, 5월 10일
·군민의 안녕과 소원을 빌며 풍년을 기약하는 지신밟기.
·군민의 소원을 날려보내는 연날리기
 
◈청소년 문화 예술제 주최·주관 : 담양문화원 개최시기 : 매년 9월 10월 (문화의날 전후) 행사종목 : 서예·그림그리기·글짓기·도예·한국화
 
지역문화예술단체
◈담양 민속예술보존회 회원수 50명 담양군 봉산면 와우리 ☎ (061)382-6268
 
◈담양예술인협회 회원수 68명 담양읍 천변리 ☎ (061)383-7876
 
지역언론기관
◈담양신문사 지난 1990년 5월에 창간되어 담양의 지역언론기관으로 자세한 지역정보를 알려주고 있다. ☎ (061)383-7575
 
문화예술교육·연구기관
◈담양대학 관광정보과 ☎ (061)380-8531
 
◈담양향토문화연구회 회원수 14명 ☎ (061)381-3333
 
지역출신 예술인
◈학정 이돈흥(鶴亭 李敦興)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 출신. 담양이 낳은 국보급 문화 예술인으로서 고매한 인격과 훌륭한 그의 예술성이 높이 평가되어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일본 등 서예를 하는 사람은 학정 선생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매년 중국의 교류전에 한국 대표로 활약하고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을 비롯 여러 곳의 운영위원과 심사위원 광주비엔날레 재단 이사를 역임. 현 학정서예연구원장 ☎ (061)222-4155
 
◈문학작가 문순태 담양 남면 출신. 대학교수, 소설가, 시인. 1977년 『고향으로 가는 길』을 시작으로 많은 소설집과 수십편의 장편 소설을 펴냈고 현재 문예창작과 교수이며 언론사에서 주필을 역임했다.
 
◈의당 재구(義堂 在九) 담양읍 가산리 출신. 홍익대 미술대학원 졸. 서울에서 활동하면서 특히 청소년 가장돕기전시회, 불우이웃돕기전시회, 개인전을 많이 열어 많은 각광을 받고 있으며 미국, 일본, 중국, 베트남등 외국에서 수십 차례 전시회를 가져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02)825-7280 (의당 한국화연구원)
 
 
 
 
 
 
5. 관광, 여가문화자원
 
관광자원
◈담양호와 추월산 영산강의 시원을 이루고 있는 담양 가마골을 비롯하여 용소(龍沼)와 용추사 계곡 등은 산자수려하여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 그리고 담양호와 추월산 등산은 1일 관광코스로는 제일 적격이다. 광주에서 추월산까지 버스가 1일 5∼7회 운행하고 있으며 담양에서 약 17㎞ 지점인 추월산으로 많은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특히 산중턱에 걸쳐 있는 보제암은 고려시대 보조국사가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나무로 만든 매(鷹) 3마리를 날려 보냈는데 그 중 한 마리는 순천 송광사에, 또 한 마리는 장성 백양사에, 또 한마리는 추월산 보제암터에 앉아 이 곳을 절터로 택일하고 건립했다고 전해 오고 있다.
 
 
 
추월산
◈담양 관방제림과 가로수 담양의 관방제림은 부사가 홍수를 막기 위해 축조한 제방으로 당시 심어졌던 아름드리 고목이 우거져 아무리 더운 여름이 와도 시원한 여름을 즐길 수가 있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연발하게 한다. 바로 옆에는 영산강의 발원지에서 흘러 내려오는 깨끗한 물과 국제적인 규모를 갖춘 추성경기장(모든 운동을 할 수 있는 경기장으로 만들어져 있다) 등 자연적인 여건을 가진 휴양지로 되어 있다. 바로 그 옆은 광주에서 순창, 남원, 임실로 통하는 국도변에 30년 전에 심어진 메타세코이야 가로수가 마치 지하터널을 통과하는 것처럼 도로를 덮어 시원하고 경치가 좋아 전라남도에서 가로수 시범 도로로 지정하고 있다.
 
 
 
관방제림
◈담양을 지켜주는 금성산성 삼한시대부터 축조 되었다는 담양금성산성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축조되었으며, 성의 길이가 약 7.3㎞가 된다. 이 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동학혁명을 거치면서 많은 인명과 재산이 손실되고, 성내에 세워진 병영 창고, 사찰 등은 모두 사라지고 터만 남아있다.
지금은 문화재 관리국에서 성보수를 하여 옛 정취를 느낄수 있다. 금성산성 동북쪽으로 넘어가면 전라북도 순창군 강천사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있다.
 
 
 
금성산성
◈죽물박물관 담양은 예로부터 대나무 고장으로, 1960~1970년대에 죽세공품이 전국의 생활용품으로 팔려나가 죽향고을로 유명했었다. 옛 선조들이 만들었던 유물과 근세에 들어 모든 문화가 발달하면서 죽세문화가 연구 개발되면서 좋은 제품으로 내국, 일본 등지로 수출되고 있다. 이런 우수제품을 보관 전시하는 ‘죽물박물관’이 1998년 새로이 건립되어 매주 수천명의 학생과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사문학관 담양에서 약 20㎞ 떨어진 담양 남면 지곡리 앞의 5,000여 평의 부지에 가사문학의 산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가사문학관’이 세워졌다.
본관 건물을 비롯 주위에 8동의 건물에 조선시대 옛 학자들이 남겨주신 모든 시가문학을 비롯 그 분들이 남기신 유물, 유품, 문집 등을 전시하고 시가문학을 글과 소리로 읽고 들을 수 있으며 판매전시도 하고 있는 ‘가사문학관’은 남면의 성산(星山) 앞에 자리 잡아 광주 충효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주위에는 문화자원이 수없이 살아 숨쉬고 있는, 쾌적하고 자연환경이 좋아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고 있으며 광주호 상류에서 낚시도 즐길 수 있다.
 
관광코스
◈제1코스 담양읍 죽물박물관 → 담양읍 석당간, 5층석탑 → 가로수를 지나 → 담양호 → 추월산 → 가마골야영장 → 금성산성
 
◈제2코스 담양죽물박물관(주차장) → 면앙정 → 송강정 → 명옥헌 정원 → 미암일기
 
 
 
송강정
◈제3코스 담양죽물박물관 → 면앙정 → 송강정 → 광주호 → 식영정 → 가사문학관 → 소쇄원 → 독수정 → 환벽당(광주 충효동)
 
 
 
양산보가 만든 소쇄원
여가시설
◈담양군민회관 1991년도에 건립된 담양군민회관은 군민들의 생활체육이나 여가시간을 갖기 위해 세워진 건물로 체육행사를 비롯 군민들이 많이 활용하고 있다. 담양읍 지침리 소재 터미널 옆 ☎ (061) 381-1619
 
◈금성 봉서리 대나무골 야영장 담양읍에서 약 10㎞ 떨어진 금성 봉서리 골짜기에 대나무밭 속에 잔디를 잘 가꾸어 그야말로 청죽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야영장이다. 가족과 함께 하루이틀정도 지내기에 좋으며 15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이 되어 있다. ☎ (061)383-9291
 
◈수북성암야영장 담양읍에서 약 10㎞에 떨어진 수북면 대방리 병풍산 기슭에 세워져 있으며 500∼6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다.
골짜기에 세워져 여름에는 시원하며 풀장과 놀이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입구에는 조선말 판소리의 국창 이날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6. 문화시설자원
 
박물관
◈죽물박물관(竹物博物館) 담양죽물박물관은 담양읍 천변리 외곽지에 15,000여 평의 대지에 박물관을 비롯하여 여러동의 전시판매장이 있다. 박물관 안에는 1,800여 점의 죽제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1,700년대의 유물과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개발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뒤쪽에는 대나무 숲을 거니는 테마공원이 조성되어 산책하기 좋으며, 전시포에는 64종의 각종 대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 박물관은 1998년 3월에 준공되었으며, 전국에서 찾아온 관광객과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로 많이 찾아오고 있다. ☎ (061)381-4111
 
 
 
죽물박물관
문화의 집
◈담양 청소년 문화의 집 청소년들의 건전한 교육장소로 활용하기 위하여 지난해에 문을 연 담양 청소년 문화의 집은 건평 219평으로 인터넷 자료관, 비디오방, 노래방, CD음악, 좌담할 수 있는 사랑방, 열린도서방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 (061)383-1387 담양읍 담주리 옛 죽물박물관을 개조하였다.
 
문화원
◈담양문화원 지난 1998년 11월에 준공한 신축 건물로 약 130평에 갖가지 놀이마당을 비롯 문화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담양읍 천변리 402-1 죽물박물관 옆 ☎ (061)383-6066 원장 국대윤
전라남도 담양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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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