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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영암군 전라남도 영암군 정보
전라남도 영암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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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영암군의 마을 소개
영암군의 어제와 오늘
about 전라남도 영암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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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3. 01:02) 
◈ 영암군의 어제와 오늘
1. 내 고장의 어제와 오늘
 
 
 
영암군은 삼국시대 이전에는 마한땅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백제땅에 속하였는데 당시 월나(月奈)라 불렀다. 삼국이 통일된 신라시대에는 영암군이라 이름을 바꾸었고 고려 성종(成宗) 14년(995)에는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두어 낭주(朗州)라 개칭하였다가 고려 현종(顯宗) 9년(1018)에 이르러 다시 영암으로 부르면서 삼남도호부는 없어졌으며 이때부터 계속 영암이라 불렀다. 그런데 삼남도호부를 두었을 당시 도강현(道康縣, 現 康津), 죽산현(竹山縣), 화원현(花源縣, 現 海南)이 모두 낭주땅에 속하였다. 그리고 현재 해남군에 소속되어 있는 옥천, 송지(玉泉, 松脂)가 백제시대로부터 냉천부곡(冷泉部曲)이 되어서 낭주에 소속되었다가 조선 세종(世宗) 3년(1421)에 다시 해남으로 편입되었다.
현재 금정면, 시종면은 나주에 속해 있다가 조선 고종(高宗) 28년(1891)에 영암으로 편입되고, 1914년에 조선읍면 폐합령이 공포되어 11면으로 폐합되었다가 1979년(己未年) 5월 1일 영암면이 영암읍으로 승격됨으로써 1읍 10면으로 행정구역이 재편되었다. 영암군은 서쪽에는 무안군과 목포시, 동쪽에는 장흥군과 화순군, 남쪽에서 해남군과 강진군, 북쪽에는 함평군과 나주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군의 서쪽으로 만입되는 영산강에 의해 서해로 이르는 통로가 열려 있으며 특히 영산강 하구언 공사로 담수호가 연결되어 있어 육상과 해상을 연결하고 있으나 그 기능은 점차 쇠퇴하고 있다. 총면적 544.42㎢에 임야가 47%를 차지하고 있으며, 총인구는 66,018명, 11개 읍면에 121개의 법정리와 327개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군의 남쪽에 천혜의 국립공원 월출산(809m)과 구정봉(738m), 동쪽에는 국사봉(613m)과 궁성산(490m) 등 높은 산지가 있고 서쪽과 북쪽지역은 구릉지로 되어있다. 영암천·도갑천·송계천 유역에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서쪽 삼호면에는 공단이 조성되어 있다.
 
<영암군 연표>
시 대
연 대
주 요 사 항
 
선사
시대
 
청동기시대, 고도의 문화집단이 거주
 
삼한
시대
 
마한에 속하였음
 
삼국
시대
 
백제에 속함. 월나군(月奈郡)이라 칭함
 
통일
신라
757
경덕왕 17년 영암군으로 개칭
 
고려
시대
995
성종 14년 낭주 안남도호부 설치
 
1018
현종 9년 다시 영암군으로 개칭
 
근·현대
1914
융희 8년 11개 면으로 분합
 
1979
영암면이 읍으로 승격, 1읍 10면
(영암읍, 덕진면, 금정면, 신북면, 시종면, 도포면, 군서면, 서호면, 학산면, 미암면, 삼호면)
 
 
 
 
 
 
 
 
 
2. 역사문화자원
 
역사적 사건과 현장
◈영암의 3·1운동 충절의 고장인 영암은 3·1운동 때도 조극환 등의 주도 아래 보통학교 학생들의 시위가 있었다. 조극환을 비롯한 최민섭, 박규상, 정학순, 김민규, 김학용, 김봉규, 김상조 등은 봉산 밀림에서 비밀회합을 갖고 4월 10일 대대적 봉기를 결의, 10일 아침 유인물을 집집마다 투입, 구림대동계 광장에 집결,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모여든 군중들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영암읍까지 시위를 벌였으나 영암읍에서 일본 경찰들과 충돌 주동자 25명이 체포됐다. 영암지역 주민들은 지난 1984년 4월 영암 공원에 ‘영암3·1운동기념비’를 건립하였으며 현재 구림 대동계 앞 회사정 근처에 3·1운동기념탑을 건립할 계획 중이다.
 
◈영암 농민 운동 덕진면 영보 형제봉 소작쟁의 사건, 영암면을 비롯한 구림, 모산, 장암, 미암, 영보 등 소작인 1백 30여명은 1931년 5월 1일 사음 횡포 항의 시위. 영보뒷산 형제봉에서 만세를 부르고 ‘일인은 우리 논과 밭을 내 놓아라’, ‘사음을 횡포 지양’, ‘일인을 이 땅에서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 최판호 외 19명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렸다. 영암 소작쟁의는 전남 운동협의회 사건의 전주곡이 되었다. 운동 목적은 민족의 완전 자주 독립을 최후 목표로 한 항일 독립 투쟁이었다.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왕인(王仁) 왕인박사는 백제 제14대 근구수왕(서기 375∼384년) 때에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성기동에서 출생하였다. 8세 때 월출산 주지봉 기슭에 있는 문산재에 입문하여 유학과 경전을 수학하고 문장이 뛰어나 18세에 오경박사에 등용되었다. 백제 17대 아신왕 때에 일본 응신천왕의 초청을 받아 영암의 상대포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간 것으로 구전되고 있다. 당시 왕인은 32세였으며, 상대포는 국제 무역항으로 신라의 학자 최치원이 당나라로 유학을 갈때에도 이곳에서 배를 타고 떠났다고 전해오고 있다. 왕인은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도공, 야공, 와공 등 많은 기술자들과 함께 도일하여 일본인들에게 글을 가르쳐 학문과 인륜의 기초를 세웠으며, 일본가요를 창시하고 기술 공예를 전수하여 일본인들이 큰 자랑으로 여기는 아스카(飛鳥)문화와 나라(奈良)문화의 원조가 되어 일본사회의 정치 경제와 문화예술을 꽃피웠다. 왕인박사의 묘지는 일본 오사카(大阪府) 히라카타시에 있으며, 1938년 5월 오사카부 사적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왕인박사의 탄생지인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성기동에는 왕인박사 유적지를 정화하여 위패와 영정을 봉안하고 매년 양력 4월 9일에 왕인박사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다.
 
◈도선(道詵) 민족 통일을 이룩하여 문화의 절정기를 누렸던 신라가 차츰 침체의 늪에 잠겨가고 있었던 제42대 흥덕왕(興德王) 2년(827)에 도선(道詵)은 태어났다. 도승(道僧)으로도 알려져 있는 그는 일찍이 출가하여 이른바 9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동리산 선법문(桐裏山 禪法門)을 계승하였다. 그는 당나라 남돈선의 조사(祖師)인 육조(六祖) 혜능대사(慧能大師, 638∼713)의 법손(法孫) 마조(馬祖) 도일(道一)에게서 법을 받은 서당(西堂) 지장(智藏)에게서 선법을 배워 그 법인(法印)을 받고 온 제자 중의 하나이므로 그의 법을 이은 도선은 말할 것도 없이 중국 남종선(南宗禪)을 해동 신라의 토양과 풍습에 알맞도록 형성시킨 동리산 선문(桐裏山禪門)의 제2대 선사(禪師)였다고 할 수가 있다. 그의 법명(法名) 이 도선(道詵)이며 시호(諡號, 입적한 뒤 내린 법호)가 요공선사(了空禪師)이다. 나중에 광양군(光陽郡)의 백계산(白鷄山) 옥룡사(玉龍寺)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그를 옥룡자(玉龍子)라고 별호하였다. 그가 고려 태조의 건국과 후삼국 통일을 예견하여 미리부터 크게 도움을 주었다고 해서 고려 제8대 현종(顯宗)은 대선사(大禪師)의 법계(法階)를 바쳤고, 제15대 숙종(肅宗)은 왕사(王師)의 칭호를 더 보태었으며, 제17대 인종(仁宗)은 선각국사(先覺國師)라고 추봉(追封)하였다.
 
◈삼당시인 최경창 자는 가운(嘉運), 호는 고죽(孤竹), 본관은 해주이다. 중종 34(1539) 2월 12일 서울에서 최수인(崔守仁)의 아들로 출생했다. 어려서 옥봉 백광훈과 함께 청련 이후백(1520∼1578)의 문하에 들어가 강진에서 수학하고 이어 송천 양응정(1519∼1581), 사암 박순(1523~1589)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명종 16년(1561) 진사가 되고, 선조 1년(1568) 30세에 증광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북평사(北評事), 사간원 정언 등의 벼슬을 거쳐 1577년 영암군수(靈岩郡守)가 되었다. 이어 대동도(大同道) 찰방(察訪)을 지냈고 선조 15년(1582)에는 종성부사(鍾城府使)가 되었다. 이듬해인 1583년 방어사(防禦使)의 종사관(從事官)에 임명되어 상경 도중 경성(鏡城)의 객관(客館)에서 45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선조 때의 명문장가로 이름이 높았으며 백광훈·송익필·이산해·최경창·최립·이순인·윤탁연·하응림과 함께 동인으로 어울려 팔문장으로 일컬어 졌다. 또 당시풍(唐詩風)에 능하여 백광훈·이달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리웠다. 글씨도 잘 써 옥봉(玉峯)과 쌍벽을 이루었다. 또 활을 잘 쏘아 선조로부터 호피(虎皮)와 구마를 하사 받기도 했다. 또한 피리를 잘 불었다. 그가 14세 때 석천 임억령의 계제(季弟) 임구령(林九齡)의 사위가 되어 영암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았는데 해변에서 왜구를 만나 위기에 처했을 때 옥피리를 불어 그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숙종 원년(1675) 청백리에 녹선되고, 강진의 박산서원(博山書院), 서봉서원(端峯書院)과 영암 구림의 동계사(東溪祠)에 제향되었다.
 
◈김준연(金俊淵) 선생은 1895년 전라남도 영암에서 월출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오카야마(岡山) 제6고등학교(대학예과과정), 동경제국대학 대학원, 독일 베를린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한 후 영국 런던대학에서 수학한 천재였다. 낭산(김준연의 호)은 한국 최초의 해외특파원(조선일보 특파원)으로 1920년대의 소련을 시찰했고 조선일보특파원, 논설위원, 전 조선공산당 당수, 동아일보 편집국장, 주필 등을 역임했다. 그리고 신간회 조직, 제3차 공산당사건, 일장기말살사건, 흥업구락부사건, 조선어학회사건 등을 주동하여 국내에서는 가장 격렬한 항일투쟁에 참여, 8년 동안의 투옥생활과 9년 동안의 연금생활을 하였다. 일제시대 당시 국내에서 가장 용기있게 대항하고 가장 격렬하게 투쟁해온 낭산은 김창숙 선생과 양대 산맥을 이룬 항일 세력이었으며 재야세력의 제1인자로 일제가 가장 경계하고 감시하는 요시찰대상 제1호의 인물이었다. 8·15 해방이 되자 일제 당국은 낭산에게 정권인수를 제의했으나 낭산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 일화가 입증하듯 낭산은 국민들로부터 인기와 신망을 한몸에 받는 인물이며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다. 이후 낭산은 한민당 부당수 겸 선전부장으로 있으면서 제헌국회의원, 헌법기초위원이 되어 직접 대한민국의 헌법을 작성했고 이승만 대통령을 도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가장 큰 공훈을 세운 건국의 원훈이었다. 한국 전쟁 당시에는 내무장관 조병옥 박사와 더불어 대구사수의 대공을 세웠으며 1·4후퇴 때 법무장관으로서 안전한 철수를 위한 계획을 입안하기도 했다.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낭산은 8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7차에 걸쳐 군사정권세력을 향해 폭탄연설을 하여 군사정권을 붕괴 직전까지 몰아붙이기도 하였다. 낭산은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과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령하였으니, 이는 선생에 대한 국가의 당연한 답례였다. 낭산의 80평생은 곧 우리 나라의 항일투쟁사요 건국의 역사이자, 반공· 반독재의 투쟁사요 한국의 정치사이며 근대사이다.
 
◈ 선각국사 도선(先覺國師 道詵, 생존시대:827 ∼ 898, 출생지:영암 구림, 유적지:옥룡사) [상세보기]
◈ 동진대사(洞眞大師, 생존시대:869 ∼ 948, 출생지:영암 구암) [상세보기]
◈ 최지몽(崔知夢, 아호:민휴(敏休), 생존시대:907 ∼ 987, 출생지:영암 구림) [상세보기]
◈ 최경창(崔慶昌, 본관:해주, 아호:고죽(孤竹), 생존시대:1539 ∼ 1583, 출생지:영암) [상세보기]
◈ 김준연(金俊淵, 본관:김해, 아호:낭산(朗山), 생존시대:1895 ∼ 1971, 출생지:영암군 영암면 교동리 187번지) [상세보기]
◈ 김완(金完, 본관:김해, 아호:양무공(襄武公), 생존시대:1577 ∼ 1635, 출생지:영암군 서호면 몽해) [상세보기]
◈ 최덕지(崔德之, 아호:연촌(烟村), 생존시대:1384 ∼ 1455) [상세보기]
내 고장의 문화유산
■ 국보
◈도갑사 해탈문 제50호, 군서면 도갑리 8
 
 
 
해탈문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제144호, 영암읍 회문리 산 26-3
 
■ 보물
◈도갑사 석조여래좌상 제89호, 군서면 도갑리 4
 
◈최덕지영정 및 유지초본 제594호, 덕진면 영보리
 
◈성풍사지 5층석탑 제1118호, 영암군 용흥리 533-1
 
◈도갑사 소장 동자상 제1134호, 군서면 도갑리 8
 
◈월출산 용암사지 3층석탑 제1283호, 영암읍 회문리 산26-8
 
■ 사적
◈구림리 토기요지 제338호, 군서면 서구림 319
 
■ 천연기념물
◈영암 군서면 느티나무 제283호, 군서면 월곡리
 
■ 유형문화재(이하 도지정)
◈도갑사 도선수미비 제38호, 군서면 도갑리 8
 
◈김완영정 제65호, 서호면 화송리
 
◈영암 학계리 석불입상 제66호, 학산면 학계리
 
◈월곡리 마애여래좌상 제149호, 군서면 월곡리
 
◈도갑사 석조 제150호, 군서면 도갑리 8
 
◈도갑사 5층석탑 제151호, 군서면 도갑리 8
 
◈도갑사 수미왕사비 제152호, 군서면 도갑리 8
 
◈도갑사 도선국사진영 제176호, 군서면 도갑리 8
 
◈도갑사 수미왕사진영 제177호, 군서면 도갑리 8
 
◈녹동서원소장목판 및 고문서 제183호, 영암읍 교동리 356
 
■ 기념물
◈영암 월출산 제3호, 영암· 강진일원
 
◈왕인박사 유적지 제20호, 군서면 동구림
 
◈김완묘소 및 신도비 제40호, 시종면 만수리
 
◈구고사 및 김완장군부조묘 제49호, 서호면 화송리
 
◈전씨충효문 제71호, 서호면 장천리
 
◈서호면 장천리 지석묘 제82호, 서호면 엄길리
 
◈시종면 내동리 쌍무덤 제83호, 시종면 내동리 579-1
 
◈영암 옥야리 장동방대형고분 제84호, 시종면 옥야리
 
◈남해당지 제97호, 시종면 옥야리
 
◈장천리 선사주거지 제98호, 서호면 장천리
 
◈장암정 제103호, 영암읍 장암리 496
 
◈영보정 제104호, 덕진면 영보리
 
◈영팔정 제105호, 신북면 모산리 103
 
◈영암 삼충각 제108호, 신북면 갈곡리 583
 
◈영암 장동사 제109호, 서호면 엄길리 472
 
◈엄길리 암각매향비 제119호, 서호면 장천리 산 85
 
◈학산면 금계리고분 제144호, 학산면 금계리 1290
 
■ 민속자료
◈영암 최성호가옥 제164호, 덕진면 영보리
 
◈김함의 묘 출토의복 제209호, 학산면 학계리 산2
 
◈영암 월곡리 전씨고택 제3호, 군서면 월곡리
 
◈영암 현종식 가옥 제14호, 학산면 학계리
 
◈영암 집영제 제16호, 학산면 은곡리
 
◈쌍계사지 석장생 제17호, 금정면 남송리
 
◈영암 죽정리 국장생 제18호 군서면 도갑리
 
◈영암 소전머리황장생 제19호 군서면 동구림
 
◈영암 메밀방죽옆장생 제18호, 군서면 도갑리
 
■ 무형문화재
◈참빗장 제15호 영암읍 망호리
 
■ 문화재자료
◈도갑사 제79호, 군서면 도갑리 8
 
◈영암향교 제126호, 영암읍 교동리
 
◈시종면 신연리고분군 제139호, 시종면 신연리 251-3
 
◈시종면 옥야리 고분군 제140호, 시종면 옥야리 597-1
 
◈시서영정 제145호, 덕진면 금강리
 
◈영암문창집가옥 제149호, 영암읍 장암리
 
◈열무정 및 사포계문서일괄 제160호, 영암읍 동무리
 
◈영암 정원명석비 제181호, 군서면 서구림 458-1
 
◈영암채지리 선덕매향비 제189호, 미암면 채지리 산 203
 
◈영암구림대동계문서 제198호 군서면 서구림 339
 
 
◈ 도갑사 해탈문(道岬寺 解脫門) [상세보기]
◈ 월출산 마애여래좌상(月出山 磨崖如來坐像) [상세보기]
◈ 도갑사 석조여래좌상(道岬寺 石造如來坐像) [상세보기]
◈ 최덕지 영정 및 유지초본(崔德之 影幀 및 油紙抄本) [상세보기]
◈ 영암 성풍사지 오층석탑(靈巖 聖風寺址 五層石塔) [상세보기]
◈ 도갑사 소장 동자상(道岬寺 所藏 童子像) [상세보기]
◈ 월출산 용암사지 삼층석탑(月出山 龍 寺址 三層石塔) [상세보기]
◈ 영암 구림리 토기요지(靈巖 鳩林里 土器窯址) [상세보기]
◈ 영암 군서면 느티나무(靈岩 郡西面 느티나무) [상세보기]
◈ 영암 최성호가옥(靈岩 崔成鎬家屋) [상세보기]
◈ 김함묘 출토의복(金涵墓 出土衣服) [상세보기]
◈ 도갑사 도선 수미비(道岬寺 道詵 守眉碑) [상세보기]
◈ 김완영정(金完影幀) [상세보기]
◈ 영암 학계리 석불입상(靈岩 鶴溪里 石佛立像) [상세보기]
◈ 영암 월곡리 마애여래좌상(靈岩 月谷里 磨崖如來坐像) [상세보기]
◈ 도갑사 석조(道岬寺 石槽) [상세보기]
◈ 도갑사 오층석탑(道岬寺 五層石塔) [상세보기]
◈ 도갑사 수미왕사비(道岬寺 守眉王師碑) [상세보기]
◈ 도갑사 도선국사 진영(道岬寺 道詵國師 眞影) [상세보기]
◈ 도갑사 수미왕사 진영(道岬寺 守眉王師 眞影) [상세보기]
◈ 영암 녹동서원 목판 및 고문서(靈岩 鹿洞書院 木板 및 古文書) [상세보기]
◈ 참빗장(이식우)(참빗匠(李植雨)) [상세보기]
◈ 영암 월출산(靈岩 月出山) [상세보기]
◈ 왕인박사유적지(王仁博士遺蹟址) [상세보기]
◈ 김완장군묘소 및 신도비(金完將軍墓所 및 神道碑) [상세보기]
◈ 김완장군 부조묘 및 구고사(金完將軍 不 墓 및 九皐祠) [상세보기]
◈ 김씨 충효문(金氏 忠孝門) [상세보기]
◈ 영암 암길리 지석묘군(靈岩 庵吉里 支石墓群) [상세보기]
◈ 영암 내동리 쌍무덤(靈岩 內洞里 쌍무덤) [상세보기]
◈ 영암 장동 방대형고분(靈岩 長洞 方臺形古墳) [상세보기]
◈ 영암 남해당지(靈岩 南海堂址) [상세보기]
◈ 영암 장천리 선사주거지(靈岩 長川里 先史住居址) [상세보기]
◈ 장암정(場巖亭) [상세보기]
◈ 영보정(永保亭) [상세보기]
◈ 영팔정(詠八亭) [상세보기]
◈ 영암 삼충각(靈岩 三忠閣) [상세보기]
◈ 영암 장동사(靈岩 長洞祠) [상세보기]
◈ 영암 암길리 암각매향비(靈岩 庵吉里 岩刻埋香碑) [상세보기]
◈ 영암 금계리 고분군(靈岩 金溪里 古墳群) [상세보기]
◈ 영암 월곡리 전씨고택(靈岩 月谷里 全氏古宅) [상세보기]
◈ 영암 현종식가옥(靈岩 玄宗植家屋) [상세보기]
◈ 영암 집영제(靈岩 集英齊) [상세보기]
◈ 영암 쌍계사지 석장승(靈岩 雙溪寺址 石長) [상세보기]
◈ 영암 죽정리 국장승(靈岩 竹亭里 國長生) [상세보기]
◈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靈岩 소전머리 皇長生) [상세보기]
◈ 영암 메밀방죽 옆 장승(靈岩 메밀방죽 옆 長生) [상세보기]
◈ 도갑사(道岬寺) [상세보기]
◈ 영암향교(靈岩鄕校) [상세보기]
◈ 영암 신연리 고분군(靈岩 新燕里 古墳群) [상세보기]
◈ 영암 옥야리 고분군(靈岩 沃野里 古墳群) [상세보기]
◈ 시서영정(市西影幀) [상세보기]
◈ 영암 문창집 가옥(靈岩 文昶集 家屋) [상세보기]
◈ 열무정 및 사포계 문서일괄(閱武亭 및 社布契 文書一括) [상세보기]
◈ 영암 정원명 석비(靈岩 貞元銘 石碑) [상세보기]
◈ 영암 채지리 선덕매향비(靈岩 採芝里 宣德埋香碑) [상세보기]
◈ 영암 구림대동계 문서(靈岩 鳩林大洞 文書) [상세보기]
 
 
 
 
3. 생활문화자원
 
전통생활민속
◈도포제 줄다리기 영암군 도포마을에서 행하던 고유 민속놀이로 풍수지리설에서 유래되었다. 동도포와 서도포가 편을 갈라 터누르기 줄다리기를 행하며, 구성내용은 길놀이·진놀이·고걸이·제사·결전·대동마당 등 여섯마당으로 엮어져 있는 훌륭한 향토축제이다.
 
 
 
도포제 줄다리기 연행장면
◈정동(井洞) 정호제 정월 보름 새벽에 마을의 큰샘에서 제사를 지내는 전통민속으로 마을의 재난을 예방하고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는 민속신앙이다. 새끼를 꼬면서 부르는 술배소리, 샘을 청소하면서 부르는 당금소리 등 다섯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가 끝난 뒤의 샘굿과 당산굿은 남녀노소가 함께 이루어져 화합하는 한 마당을 이룬다.
 
 
 
정동 정호제 연행장면
◈장부질 노래 마을 공동으로 갯벌을 간척지로 만들어 많은 곡식을 수확하기 위한 제언(堤堰)을 막는 민요인 장부질 노래는 서호면 성재리, 태백리, 금강리 일대에서 오래 전부터 내려오고 있는 민요이다. 앞소리와 뒷소리로 나뉘어져 있다.
 
◈여석산 천지북놀이 후백제와 고려의 최후 격전지였던 여석산에서 당시 전사자의 넋을 위로하던 진혼의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농악형태로 재구성한 영암 전통민속놀이다.
 
◈월출산 바우제 천황사 용바위 아래 바우제단을 마련하고 국태민안과 영암군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전통있는 향토문화 행사이다.
 
◈ 도포제줄다리기(都浦祭줄다리기, 분류:민간신앙/공동체신앙, 행사시기:음력 정월 5일, 칠월 칠석, 전승장소:영암군 도포면 도포리(마을 광장), 개최빈도:년 2회) [상세보기]
구전설화
◈백련동(백룡동) 마을에 얽힌 전설 영암군 영암읍 역리 1구에는 백련동(백룡동) 이라는 작은 자연 부락이 있다. 이 마을의 이름이 백룡동으로 불려지는데는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이곳에도 흔히 있는 전설과 같이 용이 승천하였다 하여 백룡동으로 불려 오다가 어느 때부터인지 몰라도 백련동으로 바뀌어 불려 오고 있다. 아득한 옛날 이무기 한쌍이 이곳에서 가까운 연못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 이무기들은 마을에 많은 흉액을 가져와 마을 사람들을 괴롭혀 왔다. 마을 사람들은 이 이무기를 달래기 위하여 명절을 맞을 때마다 이 이무기에게 제를 올리고 그 해의 무사를 빌어왔다. 이런 행사가 계속되어 오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고 폭우가 쏟아지며 뇌성이 울리고 벼락을 치는 무서운 시간이 계속되다가 오색 영롱한 서기가 하늘에서 뻗치더니 갑자기 바위가 갈라지며 이무기가 하얀 한쌍의 용이 되어 승천하고 있었다. 이 이후에는 마을의 흉액은 씻은 듯이 사라졌고 그 뒤 명절 때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용이 승천한 자리에 남아 있는 바위를 정결하게 청소를 하고 제를 지내 왔다고 한다. 이후 마을 이름을 백룡동이라 불렀고, 후세 사람들은 마을의 흉액을 몰아내고 풍요를 기원하는 제단으로 삼아 왔다고 한다. 제를 지내는 행사는 사라졌지만 백룡이 승천한 자리에는 그때 갈라졌던 바위가 지금도 남아 있어 옛 전설의 자취를 말해 주고 있다.
 
◈남해당(南海堂)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고려 현종 원년(1010)에 친송책의 계속과 강조의 난을 핑계삼아 거란의 성종이 40만 대군으로 침입하자 강조는 분전하다가 패사하였다. 이로 인해 개경(서울)이 함락되므로 현종은 나주(현 시종면 옥야리 2구) 남해포로 피신, 지금의 남해당터에서 야영중 잠을 이뤘다. 꿈속에 수신이 나타나 이곳을 빨리 피신하라 하여 눈을 떠보니 바닷물이 없어져서 몽탄으로 피신, 후에 거란의 장수 하공진을 인질로 삼아 군사를 정비하여 무사히 환궁하게 되었다.
왕은 이곳을 남해당이라 이름짓고 제각을 세워 전남의 6군(나주, 영암, 해남, 강진, 영광, 함평) 고을 군수로 하여금 제를 모시게 하였다. 왕은 세자가 죽었던 ‘세자갓’ 이라 불리우는 곳에 하마석(下馬石)을 세워 고을 군수가 제(祭)를 모시러 말을 타고 오다 이곳에서 내려 걸어서 남해당에 오르게 했다 한다. 현재 남해당 건물은 50년 전에 파옥되고 잡초만이 무성한 곳으로 남아 있다(1986년 이 터는 도 지방문화재로 지정했다).
1920년경 일인들이 제각을 파옥시킬 때 첫 번째로 목수 30여 명을 동원하여 철거하려 하였으나 갑작스런 뇌성으로 실패하고 두 번째로 철거하기 시작하였을 때 상량 밑 종이에 쓰여진 파옥 날짜가 명시되어 철거하던 그 날과 일치해 무사히 파옥시키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곳 제실에서 불결하게 제(祭)를 모시면 상량 대들보에 구렁이가 웅크리고 있어 이를 본 고을 원님이 제를 모시던 중 급사를 당한 예가 많았다 한다. 그 뒤에는 여섯고을 원님들이 이곳에서 제를 모시기를 꺼려했으므로 조정에서는 급변으로 인해 여섯고을 군수로 하여금 세 명씩 조를 편성 1년에 한번씩 제를 모시게 하였다. 그러나 서로 먼저 당도하기를 꺼려 항시 밤에 제를 모시게 되어 시종면 옥야리 마을 주민들이 불을 켜들고 나가 남해당 길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한다. 이곳은 현종 이후 국내 3대 해신당(海神堂)의 하나였다.
 
 
주민의 종교생활
◈종교단체
 
개신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교당수
105
5
9
2
 
 
* 1998년 현재
 
 
지역의 토산품과 특산품
■ 토산품
◈어란 3월∼5월 산란기에 참숭어알을 3% 소금물로 이물질 제거 후 조선간장을 2배로 희석한 물에 염장한 뒤 건조 후 참기름으로 정교한 과정을 거쳐 제조. 임금님께 올리는 진상품으로 유명. 맛이 고소하고 깊은 맛이 있어 고급 술안주로 애용한다. 현재 영암읍 서남리 김광자(74)씨가 해양수산부 수산부문 명인 1호로 지정되어 있다.
 
◈토하젓 하천이나 저수지 2급 이상 되는 깨끗한 물에서 서식하는 새우로 만들어지는 무공해 자연 식품으로 쌀 등 곡류에 부족한 리아신을 보강할 수 있으므로 쌀밥에 비빔밥으로 식사하면 건강에도 좋음. 금정농협 ☎ (061)472-777∼9
 
■ 가공 농수산물
◈무화과 잼 해양성 기후에서 자란 무화과는 건강 효능 성분이 다량 함유된 영암의 대표적인 특산품으로 전국 생산량의 90%를 차지한다. 삼호농협 ☎ (061)472-6010
 
■ 특산공예품
◈참빗 영암군 영암읍 망호리 55번지 이식우(63세)씨가 지방무형문화재 제15호이다. 350여 년을 이어온 이 고장 특유의 전통 죽세공예품으로 현재는 현대인이 사용하기에 편리하게 실용성을 살려 제작 판매한다. 이식우 ☎ (061)473-3773
 
■ 특산 농수산품
◈영암배 야산 개간지 생산 과육이 부드럽고 단맛 풍부. 신북 과수협회 ☎ (061)471-3349
 
◈수박 야산 황토밭에서 생산되며 당도와 맛이 높아 전국적으로 으뜸.
 
◈단감 산지 많은 금정면의 오염되지 않는 사질 토양에서 생산, 맛과 당도가 타지역보다 우수함. 금정원예농협 ☎ (061)472-2171
 
◈기타 고구마와 대량의 간척지쌀 등이 있다. 원장선 고구마 작목반 ☎ (061)473-3359, 시종면 쌀사업단 ☎ (061)472-7988
 
 
 
 
 
 
4. 예술문화자원
 
지역문화예술행사
◈왕인문화축제 [상세정보] 대한민국 12대 축제로 성장한 왕인문화축제는 왕인의 얼을 빛내기 위해 벚꽃이 만발한 4월 10일을 전후로 4일간에 걸쳐서 왕인박사 유적지를 중심으로 주변에서 거행된다. 매년 주제를 선정하여 거행하는데 주요행사로는 왕인박사 춘향대제, 왕인박사 도일행렬, 영암을 대표하는 민속놀이공연, 참여행사와 기획행사로 나누어 세계적인 축제로 발돋음 하기위해 군관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거행하는 축제다.
 
◈무화과축제 영암 특산물인 무화과 생산 농민들과 삼호면민들이 무화과를 널리 홍보하기 위해 매년 9월에 거행되는 축제로 영산강 하굿둑 광장에서 개최되며 무화과먹기대회, 아가씨선발대회, 가요경연 등 다채롭게 계획되며 먹거리와 볼거리가 풍부한 행사로서 인근 목포시민까지도 동참하는 축제다.
 
◈영보 풍향제 덕진면 영보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거행되는 축제로 역사가 매우 길다. 5월 5일날 거행되는데 이날에는 출향했던 향민들이 전원 참석하여 전야제를 거쳐 영보정에서 풍향제를 지낸 후 씨름대회, 효자효부 시상 등 마을과 면민들의 화합에 목적을 둔 축제다
 
◈월출학생예술제 매년 10월 6일 청소년 및 학생들을 위하여 거행되는 행사인데 군내 학생 4,000여명이 참석하여 오전에는 백일장 사생대회를 치른 후, 오후에는 한마당 잔치가 벌어져 그동안 가꾸어온 장기자랑을 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행사다.
 
지역문화예술단체
◈솔문학 동인회 회원 13명, 영암읍 남풍리 223번지 ☎ (061)473-2487, 473-4112
 
◈달문학 동인회 회원 18명, 신북면 월평리 18 ☎ (061)472-9018
 
◈영암군 민속예술단 단원 50명, 영암읍 교동리 371-10번지 ☎ (061)473-2632
 
◈국악협회 영암군지부 영암읍 동무리 156-1번지 ☎ (061)471-0453
 
◈영암사진클럽 영암읍 동무리 128-6 ☎ (061) 471-0222
 
◈월출사진클럽 영암읍 교동리 371-10 ☎ (061) 471-3001
 
◈영암여성합창단 서호면 화송리 ☎ (061)470-2203
 
지역문화예술 시상제도
◈영암군민의 상 향토문화 발전과 지역 사회개발에 앞장서 일한 사람이나 평소 부모님에 효도하는 효부, 효자에게 주는 상으로서 수상자는 군민의 상 심사위원회에서 심사하여 선정한 후보자 중에서 군수가 결정하여 매년 4월 10일 군민의 날 행사장에서 군수가 시상한다.
 
지역출신 예술인
◈한국화 남송 김재춘, 소송 김정현, 구정 김용정, 장강 김인화, 청애 김영운, 우사 박정수, 도촌 신영복, 소봉 신인철, 운원 신현조, 지강 이용영, 천정 유명렬, 벽산 유진석, 일봉 정기봉, 월봉 조동희, 무전 천홍태
 
◈서양화 이강희, 김종일, 김희규, 송매희, 최재창, 장천일, 전중관, 이강하, 최연섭, 류재웅, 박동신, 문명호, 김준권(판화), 최규철(조각)
 
◈서예 근정 김상회, 서강 김성식, 녹촌 박종복, 정헌 박희철, 설강 유재석, 유호평
 
◈사진 류재정, 박종길, 전판성, 박운기, 박철
 
◈문학 김재흔, 김봉자, 황일현, 박철
 
 
 
 
 
 
5. 관광, 여가문화자원
 
관광자원
◈국립공원 월출산(月出山) 198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월출산은 태백산맥에서 서남쪽으로 분기하여 한반도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영산강 유역에 접하여 있으며 광주지역 생활권과 목포지방도시 생활권에 위치한 명산으로 삼국시대에는 달이 난다하여 월라산이라 불렀고 고려시대에는 월생산이라했으며 조선시대 이후 현재까지 월출산이라 불러오고 있다. 월출산은 최고봉인 천황봉(809m)을 비롯하여 제2봉인 향로봉(747m), 구정봉, 주지봉, 사자봉 등 많은 봉우리가 웅장하게 치솟아 올라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방불케하는 별유천지의 장관을 연출케 하고 다양한 기암괴석이 형형색색으로 형성되어 영산강을 굽어보며 영암의 넓은 벌에서 돌출한 형국으로 봄의 진달래, 여름의 청풍, 가을 단풍, 갈대와 함께 겨울의 설경이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리워지고 있다.
 
 
 
국립공원 월출산
◈도갑사 도갑사는 신라시대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고 고려말에 크게 중흥되었다고 전한다.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조선 중, 말엽에 건립된 것인데 대웅전이 1977년 봄 어느 신주의 실화로 전소되어 1979년 6월경 원형대로 복원되었다. 이 해탈문은 서기 1960년 중수공사에서 발견된 상량(上樑)문에 의하여 신미, 수미 양사의 발원으로 서기 1457년에 중건 1473년에 완공되었음이 밝혀졌다.
 
 
 
도갑사
◈왕인박사 유적지 전라남도 기념물 제20호,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소재. 왕인박사 유적지에는 왕인박사의 탄생지인 성기동과 박사가 마셨다고 전해오고 있는 성천(聖泉)이 있으며 탄생지 옆에는 유허비(遺墟碑)가 세워져 있다. 또 월출산 중턱에는 박사가 공부를 했다고 전해오는 책굴(冊屈)과 문산재, 양사재가 있다. 문산재와 양사재는 박사가 일본으로 떠난 후 그의 고향 후학들이 인재를 길러낸 곳으로 매년 음력 3월 3일에는 왕인박사의 추모제를 거행하였다고 한다. 책굴 앞의 왕인박사 석인상(石人像)은 박사의 후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한다. 성기동 서쪽에 있는 돌정고개는 박사가 일본으로 떠날 때 동료 문하생들과의 작별을 아쉬워하면서 정든 고향을 뒤돌아보았다 하여 돌정고개가 되었다 한다. 상대포(上臺浦)는 박사가 일본으로 떠날 때 배를 탔던 곳으로 당시의 국제 무역항이었다. 이 유적지는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사당을 비롯한 유적지정화사업을 하였다.
 
관광시설
◈월출산 온천관광호텔 객실 61실 규모 월출산이 푸르름과 맥반석 온천의 신비를 주제로 하여 설계된 호텔로 장대함과 부드러움을 겸비한 아름다운 휴양지. 영암군 군서면 해창리 산 3-116 ☎ (061)473-6311
 
◈월출산 산장호텔 군서면 도갑 ☎ (061)472-0405
 
◈영산장 호텔 삼호면 나불 ☎ (061)279-1860
 
◈금수장 호텔 신북면 금수 ☎ (061)472-8283
 
관광코스
◈제1코스 영암읍 → 월출산 천황사 → 월출산 온천관광호텔(1박 석식, 조식) → 월출산 도갑사 → 왕인박사유적지 → 성기동관광지(주거변천사 등) → 영암도기문화센터 → 장천리 선사주거지 → 영산호농업박물관
 
◈제2코스(1일) 서울, 광주, 영암읍(중식) → 월출산 천황사 → 서광목장 → 영보정 → 시종 고분군 → 영암읍(석식)
 
◈제3코스(2일) 영암읍(조식) → 월출산 도갑사 → 왕인박사유적지 → 장천리 선사주거지 → 독천(중식) → 삼호조선소 → 대불산단 → 영산호 농업박물관 → 목포(서울,광주)
 
◈테마관광코스 영암읍 → 성풍사지 5층석탑 → 천황사(목탑지) → 영보정 → 서광목장 → 내동리 쌍무덤 → 월출산마애여래좌상 → 도갑사 → 왕인박사유적지 → 구림도기요지 → 장천리 선사유적, 엄길고인돌군 → 영산호 농업박물관 → 목포
 
관광쇼핑
■ 관광상품 판매소
◈영암도기문화센터 영암생활도자기,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354번지 ☎ (061)470-2566
 
■ 관광음식점
◈월출광장뷔페 덕진면 덕진리 23-1 ☎ (061) 472 -5850
 
◈공원 휴게소(백반) 신북면 장산리 산 141-2 ☎ (061)471-2333
 
◈월출산 한정식 영암읍 회문리 ☎ (061)473-2567
 
◈영암 휴게소 뷔페 신북면 이천리 658번지 ☎ (061)472-9988
 
◈신북휴게소 뷔페식당 신북면 월평리 235번지 ☎ (061)473-3330
 
◈청풍원 휴게소 영암읍 학송리 ☎ (061)472-50 00
 
관광안내소
■ 영암관광안내
◈영암군청 안내(문화공보과) ☎ (061)470-2241
 
◈왕인박사유적지 관리사무소 ☎ (061)470-2560
 
◈영산호 농업박물관 ☎ (061)479-2796,472-72 54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 (061)473-5210, 473-5111
 
◈군관문 안내소 ☎ (061)473-3330
 
■ 관광정보 자동응답안내 ◈(02)134를 먼저 누르고 관광지별 고유번호에 원하시는 정보의 번호를 누른다.
·월출산국립공원 124+1 (일반정보) (교통정보는 2, 문자·약도정보는 3)
·영산호 531+1(일반정보) 교통정보는 2, 문자· 약도정보는 3)
·도갑사 600+1(일반정보 (교통정보는 2, 문자·약도정보는 3)
·왕인박사유적지 719+1(일반정보) (교통정보는 2, 문자·약도 정보는 3)
 
여가시설
◈영암공설운동장 영암군 영암읍 역리 126-1번지 (약 6,000명 수용)
 
◈실내체육관 실내 2,540석 수용, 구기종목 (배구, 농구, 배드민턴, 핸드볼, 족구, 생활체육 - 연중운영.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 50-2번지 ☎ (061)470-2569
 
◈영암의 낚시터(영암 학파1호지)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 학파1호지는 31만평이 넘는 대형 저수지로 원래 늦가을부터 초겨울 낚시터로 알려져 있다. 봄이면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물을 자주 빼기 때문에 조황이 불투명하다는 평을 들어왔다. 그러나 학파1호지 최하류와 제방권은 수위변동이 심한 봄에 오히려 더 빛을 발한다. 물빼기는 주로 아침시간에 집중되기 때문에 밤낚시를 하면 초저녁 자정까지는 전혀 무리가 없다. 학파 1호지 제방권 양안은 수심이 깊지 않고 수초가 적당해 수위가 내려갈 때 하류로 몰린 대형 붕어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6. 문화시설자원
 
박물관
◈영산호관광농업박물관 현재 국내 및 중국 농기구 등 3,500여 점의 전시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농업박물관은 부지 9,000평, 연건평 1,250평 규모로 전시공간은 본관 1·2·3전시실, 특별전시실, 현대농업관, 야외전시장 등으로 꾸며져 있다. 전남 영암군 삼호면 나불리 307번지 ☎ (061)462-2796(FAX 겸용) E-mail : tdong@chollian.net
 
◈영암도기문화센터 영암도기문화센터는 1200여년 전 우리의 일상생활용 도기를 제작하였던 영암 구림도기 유적을 국민역사교육의 현장으로 보존, 활용하고자 하는 계획에서 시작되었다. 구림도기 가마터유적은 1987년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처음 발굴되면서 도기에 유약을 입힌 시유도기의 발상지로 밝혀져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국가지정 사적338호로 지정되어 유적이 보호받게 되었다. 영암도기문화센터는 우리 도기문화의 우수성과 역사성을 알리는 국제문화교류의 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미술관, 전통도기를 재현, 개발하는 도기제작공방, 시청각 기재의 사용이 가능한 강의실, 영암토기 도기를 계속 조사하고 연구하는 영암군·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의 도요지발굴보존연구소와 간이 야외공연장을 갖추고 있다. 영암도기문화센터는 앞으로 다양한 전시와 세계 각국 도예인들의 워크숍, 환경대학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미래지향적인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지역사회의 문화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국제적인 도기문화의 명소로서 발전해 나갈 것이다. 군서면 서구림리 354번지 ☎ (061)470-2566
 
 
 
영암도기 문화센타
◈향토사료관 건물면적 160.7㎡(48.6평), 역대군수(사진) 인물11명, 군관련서적, 옛생활용품 50종, 중소기업제품(옹기 외 7종) 영암군 옛사진 45점(총113점). 영암읍 동무리 158 ☎ (061)473-2191, http : //www.yongam.chonnam.kr
 
미술관
◈희규미술관 영암읍 개신리 산 98-1 월출산 국립공원 천황사 집단 시설지구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1980년에 화가 김희규가 사재를 투입하여 건축한 미술관으로 대지 1,000평, 연건평 180평으로 1층의 전시실과 2층의 세미나실과 작업실로 구분되었으며 전시 작품은 주로 서양화로 13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경내에는 아담한 휴게실과 야생화 단지가 조성되어 그림과 꽃을 감상할 수 있다. ☎ (061)473-2042, 2080
 
도서관
◈공공도서관 1987. 7. 27 개관. 좌석수 222, 장서수 28,854권. 영암읍 서남리 77번지
 
◈영암군립도서관 1994. 12. 14 개관. 좌석수 595평, 장서수 : 32,697권. 영암군 영암읍 역리 157-4번지
 
◈왕인도서관 영암읍 교동리 371-10 좌석수-14개, 장서수 : 역사, 예술, 사전류 18,000권
 
◈융성도서관 1985. 8. 8 개관. 좌석수 144석(대인 : 100석, 아동석 44석), 장서수 동양서 2,115권, 서양서 1,095권, 고서 647권, 계 3,857권. 서호면 장천리 489-1
 
공연장
◈영암문화원 공연장 객석수 200석, 연극·영화상영·강연회. 영암읍 교동리 371-10 ☎ (061)473-2632
 
◈군민회관 좌석수 500석, 영화상영, 강연회, 기념식. 영암읍 교동리 50-2번지 ☎ (061)470-2569
 
영암문화원
◈영암문화원 영암읍 교동리 371-10번지
☎ (061) 473-2632, 471-0692, FAX 473-2732
원장 김희규
전라남도 영암군 정보
• 영암군의 어제와 오늘
• 영암군의 역사문화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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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