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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함평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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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023년 12월 1일
2005년 6월
2005년 6월 3일
함평군의 어제와 오늘
about 전라남도 함평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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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3. 01:02) 
◈ 함평군의 어제와 오늘
1. 내 고장의 어제와 오늘
 
 
 
전라남도의 서북쪽에 위치한 함평은 광주광역시, 나주시, 영광·무안·장성군과 접경을 이루고 있고 다도해상에 위치한 신안, 무안군 등 전남 서해안의 섬 지역으로부터 반도의 내부로 이어지는 교통로상의 관문이다. 이 지역이 함평으로 불리우게 된 것은 조선 태종 9년(1409) 함풍현과 모평현을 합병하면서 함풍에서 ‘함’, 모평에서 ‘평’자를 따 함평현을 신설하면서 비롯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의 군역이 변동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함평이라는 지명이 ‘두루미쳐 충만하고 고르고 화평한 상태’를 말해주듯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영산강을 모태로 평야지대가 드넓게 펼쳐져 있으며 함평만에서는 각종 농수산물이 풍부하게 나온다. 특히 함평천지한우, 오리농법으로 지은 환경쌀은 전국적으로 그 명성이 잘 알려져 있다. 전남의 여러 시·군 가운데 완도군에 이어 2번째로 작은 군에 불과하지만 오늘날 함평은 눈에 띄게 발전을 하고 있다. 21세기 테마 중의 하나인 환경을 모티브로 친환경농업군을 만들어가기 위해 군민 모두가 앞장서고 있다. 그것의 일환으로 전국에서 처음으로 살아있는 나비를 주인공으로 한 생태학습장으로서의 축제를 열어 자연이 살아 숨쉬는 푸른 함평을 가꾸는데 노력을 다하고 있다. 함평은 친환경의 고장과 함께 문화의 고장, 다시 찾고 싶은 고장으로 거듭나기 위한 열의들이 곳곳에 잠재되어 있는 곳이다.
 
 
 
함평 나비축제 현장
 
<함평군 연표>
시 대
연 대
주 요 사 항
 
삼국
백제
굴내면 다지현의 독립된 행정편제
 
통일
신라
757
함풍현 다지현으로 바뀌어 무안군에 속함
 
892
후백제의 세력에 영속
 
고려
940
다지현이 모평현으로 바뀜
 
1018
무안군의 영현에서 영광군의 관할로 옮겨짐
 
조선
1409
함풍현, 모평현이 합쳐 함평현이 됨
 
1895
23부제로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함평군이 됨
 
현대
1963
함평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1읍 8면이 됨
 
 
 
 
 
 
 
 
 
2. 역사문화자원
 
역사적 사건과 현장
◈대굴포전투 정유재란 때 왜군과 격전을 벌인 전투로 대굴포는 1914년 이전에는 무안군 진례면이었고 현재는 함평군 학교면 곡창리 대곡마을이다. 대굴포는 이름그대로 ‘호랑이굴’, ‘홀어머니굴’ 등으로 불리는 천연동굴이 있는 곳으로 약 23년 동안 전라도수군의 최고 지휘본부였다. 현재는 제방을 쌓아 농경지로 변해있으며 병선이 드나들던 사포나루터는 주민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월악리 8열부녀와 정각 한 지역에서 8열부가 나와 이들의 뜻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세워진 정각. 이 정각은 정유재란 당시 이 고장의 부녀자들이 가족들과 함께 피난을 가던 중 영광의 묵방포 앞 칠산바다에서 왜적의 포로가 되었다. 왜적들이 부녀자들을 겁탈하려 하자 “살아서 욕을 보고 가문과 나라의 이름을 더럽히느니 죽는 것이 옳다”며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게 되었다. 그후 이들이 순절한지 84년 후인 1681년 월야면 월악리 지변마을의 동래·진주정씨 가문의 열부 여덟 분을 기리기 위해 향유(鄕儒)와 문중에서 예조에 상소를 올리자 명정이 내려지게 되어 같은 해 정려가 세워졌다.
 
◈해보면 문장장터에서의 독립만세시위 1919년 4월 8일 문장장터에서 김기택, 정용섭, 정재남 등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앞장서서 만세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하였다. 이에 수백 명의 군중이 호응하여 장터는 만세 소리로 진동하였다. 이들은 문장리에 있던 헌병분소를 기습하고 일부는 함평쪽, 영광쪽, 송정리쪽으로 행진하였다. 만세운동은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되었으나 끝내는 총검 앞에 해산되는데 죽창을 든 일부의 청년이 일경과 대치되는 상황에서 상당한 유혈이 있었다. 현재는 4·8만세 추모식 및 재현행사를 매년 벌이고 있다.
 
 
 
4·8만세 기념탑
◈1862년 농민항쟁 함평은 전라도에서는 두 번째로 농민항쟁이 일어난 지역으로 농민봉기 원인은 과도한 세금부담과 궁방전의 무거운 부담, 말 뿐인 환곡 등이었다. 함평의 민중봉기는 정한순이 주동이 되어 거사를 단행했다. 농민대표들은 전면봉기에 앞서 등소운동을 전개 관찰사에게 호소하였으나 형식적인 조치에 지나지 않아 이에 농민들은 사헌부에 대한 정소(呈訴)를 올리는 등 합법적인 호소를 하였지만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농민들은 조직력을 동원하고 부농들에게 자금을 지원 받는 등 일정한 힘을 확보하여 함평 장날인 1862년 4월 16일을 기하여 봉기를 일으켰다. 이렇게 시작된 함평의 민중봉기는 전라도 지역에서 일어난 초기의 항쟁으로서 이후 전라도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항쟁의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다.
 
◈고구마사건 농협이 전량 수매해 줄 것으로 믿고 힘들게 가꾸었던 고구마가 수매되지 않아 애타는 농민들은 피해보상을 받고자 농민대표자 모임을 갖고 각 농가별 피해상황을 조사하여 농협 군조합을 찾아가 보상투쟁을 전개한다. 계속해서 농협측은 오리발을 내밀었고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농민들이 항의를 시작하자 경찰의 개입으로 농민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농민대표들은 고구마수매와 관련하여 커다란 의혹이 있을 것으로 여기고 조직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반농민적 농협에 의해 피해를 당한 농민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보상을 위해 싸운 자발적인 싸움이 소외된 농업정책과 유신독재체제에 대한 카톨릭농민회의 조직단체 싸움으로 바뀌었다. 사건은 그 파장이 날로 확대되어 사건 발생 3년 후 1978년 7백여 농민들이 집단 난투극을 벌이고 단식투쟁에 들어간다. 1978년 농협이 피해농가에 309만원을 보상한다는 제의로 이 사건은 일단락된다.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정개청 곤재 정개청은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서 중앙의 정치무대에는 크게 현달하지 못하였으나 호남사림의 학맥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529년 나주시 경현동 금성산 아래 대곡동에서 태어났다. 성장 후 상경하여 서경덕의 문하에서 박순과 교유하며 다년간 수학했고 또한 이이, 이산해, 서기 등과도 교유를 가졌다. 중년에 그는 나주군 동강면 곡천리인 곡강촌에 이거하고 1570년경에는 엄다면 엄다리 제동에 정착하여 정사를 짓고 후학양성에 전력을 기울였다. 1574년 박민헌의 천거를 받아 1585년 교정청의 낭관을 거쳐 1587년 영릉참봉에 제수되었다. 그리고 이산해의 추천으로 곡성현감이 되었으나 서인들로부터 박순을 배반하였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후 정여립의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정여립과 교분이 두터웠다는 이유로 연루되어 유배지 함경북도 경원에서 죽었다.
그의 저서로는 『우득록』 3권, 『수수기』 9권, 『쌍례편성』 2권 등이 있었다고 하나 모두 없어지고 『우득록』 3권만이 현재 전해지고 있다. 현재 함평군 엄다면 제동마을에 그를 기리는 서원이 세워져 있다.
 
◈문무를 겸비했던 이덕일 장군(1561∼1622) 호는 칠실. 본관은 함평. 첨지중추부사 이은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학문을 열심히 닦아 이름을 떨쳤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피난길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공은 학문을 그만두고 무예를 닦아 무과에 급제했다. 그리고 정유재란을 당해서는 함평민과 피난민들을 모아 의병을 조직해 고산(지금의 향교리 뒷산의 고산골)과 동막(지금의 신광면 월암리 동막동) 등지에서 왜군을 무찔러 해전에서 고군분투하던 이순신을 도왔다. 그후 선조33(1600) 공은 월사 이정구의 추천으로 절충장군이 되고, 1610년에는 성을 쌓아 왜적을 막아야 된다는 상소를 올려 그의 탁월한 식견을 인정받았다. 곧이어 병조좌랑, 통제영병마절도사가 되었고 광해의 난정이 계속되자 광해군 5년(1613) 낙향하여 은거하다가 인목대비의 폐출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고 유명한 「우국가」 28장을 지었다. 이 「우국가」는 국문학사상 주목받는 것으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한말의병장 심남일 장군(1871∼1910) 본명 수택. 본관 청송. 월야면 정산리 신기마을 출신으로 1908년 후반기와 1909년 중반기까지 우리나라 의병사를 주도한 인물. 1907년 11월 1일 신광면 원산리 덕동마을에서 봉기. 이때 전남 제일의 의병장이라는 뜻으로 ‘남일’이라 호를 붙였다고 한다. 그의 의병항쟁은 전남의 서남부 전역에 걸쳐서 전개되는데 강진, 장흥, 남평, 능주, 영암, 나주, 해남, 보성 등지에서 승전을 거듭하는 신출귀몰한 의병으로 손꼽히게 된다. 일제에 의해 간행된 『전남폭도사』에 6대 거괴 가운데 한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1909년 일제의 대토벌작전 과정에서 부득이 의병을 해산하고 피신하던 중 능주에서 8월 26일 체포되었고 1909년 9월 광주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추모비는 광주공원에 서 있고 관련 유물로는 그가 남긴 『진지록』과 일제에 의해 기록된 『전남폭도사』가 있다.
 
◈병자호란의 명장 정대명 선무원종 2등훈을 받은 정충량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무예와 학문을 익혀 ‘아기장군’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재야의 충의장사들을 규합 1636년 12월 15일 전라병사 김준용의 창의소로 갔다. 12월 23일 호남의병의 진용이 짜여질 때 그는 별장의 직을 맡았으며 광교산(지금의 용산부근)에 도착하여 전열을 가다듬었다. 1637년 1월 3일부터 5일까지 3일간에 펼쳐진 광교산 전투는 10:1이라는 숫자적 열세와 장비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청의 부마 백양골라를 사로잡고 적장 3명을 사살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 싸움은 전라병사 김준용과 정대명을 비롯한 전라도 의병들의 공으로 이들 의병장들을 후일 ‘6호장’이라고 칭하는 계기가 된다. 광교산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적과 대치하던 중 화평조약이 체결되고 고향으로 돌아온 정대명은 국가에서 몇 번이나 등용의 길을 열었으나 불응하고 일생동안 청의 연호를 쓰지 않는 절의를 보였다.
 
◈상해 임시정부의 군무장 김철 1886년 신광면 함정리 구봉마을에서 출생한 임시정부의 핵심인사다. 1919년 1월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여운형과 함께 신한청년당을 조직했고 1919년 선우혁 등과 국내로 잠입하여 손병희와 함께 3·1운동을 모의했다. 3·1운동 직후 집안의 토지를 처분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여 다시 상해로 건너간 그는 ‘대한독립 임시 사무소’의 핵심이 되어 활동했고 임시정부 초대 내각에서 교통부 차장을 역임했다.
이후 임시정부 내각에서 회계감사원장, 군무장, 재무장, 국무원 비서장 등을 역임하면서 1931년에는 군무장으로서 김구와 함께 애국단 활동을 지원하여 이봉창, 윤봉길 등의 거사를 실행케 했다. 1934년 6월 29일 급성 폐렴으로 인해 48세를 일기로 짧은 생애를 마쳤다.
 
◈서정시인 이수복 1924년 함평읍 장교리 산음마을에서 출생. 1954년 3월 『문예』지에 「동백꽃」을 게재해 그의 문명을 세상에 알렸고, 1955년 『현대문학』에서 「봄비」로 추천을 받는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추천을 받았었고 이후 「무등부」, 「꽃상여 엮는 밤」, 「눈을 감고」, 「모란송」, 「꽃씨」 등을 발표하면서 동양적인 서정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주목받는다. 1968년 34편의 주옥같은 시가 실려있는 그의 유일한 시집인 『봄비』를 발표한다. 1956년부터 30여 년동안 교직생활을 했으며 승주 주암고에서 수업 도중 순직한다.
 
◈ 이덕일(李德一, 본관:함평, 아호:칠실(漆室), 생존시대:1561∼1622) [상세보기]
◈ 나각(羅珏, 본관:금성, 아호:송파(松坡), 생존시대:1574∼1644, 유적지:가천사, {송파록}) [상세보기]
◈ 정호인(鄭好仁, 본관:진주, 아호:은와(隱窩), 생존시대:1579∼?, 유적지:{정유피란기}) [상세보기]
◈ 심수택(沈守澤, 본관:청송, 아호:남일(南一), 생존시대:1871∼1910, 출생지:함평군 월야면 정산리) [상세보기]
◈ 김태원(金泰元, 본관:경주, 아호:죽봉(竹峯), 생존시대:1870∼1908, 출생지:나주시 문평면 갈마리) [상세보기]
◈ 윤제(尹濟, 본관:파평, 아호:수정(守貞), 생존시대:1562∼1645) [상세보기]
◈ 이수복(李壽福, 생존시대:1924∼1986, 출생지:함평읍 장교리, 유적지:광주 사직동원내 이수복시비) [상세보기]
◈ 최석두(崔石斗, 생존시대:1917∼1951, 출생지:함평읍 기각리) [상세보기]
◈ 김의택(金義澤, 본관:나주, 생존시대:1909∼1983, 출생지:엄다면 신계리) [상세보기]
◈ 신기하(辛基夏, 본관:영산, 생존시대:1941∼1997, 출생지:나산면 송암리) [상세보기]
◈ 신호열(辛鎬烈, 본관:영산, 생존시대:1914∼?, 출생지:나산면 송암리) [상세보기]
◈ 서희환(徐喜煥, 본관:이천, 아호:평보(平步), 생존시대:1933∼1996, 출생지:함평군 엄다면 성천리) [상세보기]
◈ 정개청(鄭介淸, 본관:고성, 아호:곤재(困齋), 생존시대:1529∼1590, 출생지:나주 대곡동) [상세보기]
◈ 박영근(朴永根, 본관:무안, 생존시대:1885∼1910, 출생지:나산면 수상리 유덕산) [상세보기]
내 고장의 문화유산
■천연기념물
◈팽나무, 느티나무와 줄나무 제108호, 대동면 향교리 948-2
 
◈붉가시나무 제110호, 함평읍 기각리 산12-2
 
■유형문화재(이하 도지정)
◈고막천 석교 제68호, 학교면 고막리 629
 
 
 
고막천 석교
◈용천사 석등 제84호, 해보면 광암리 415
 
◈함평향교 제113호, 대동면 향교리 590-1
 
◈곤재 우득록 목판 제146호, 엄다면 엄다리 493
 
◈석불입상 제171호, 함평읍 함평리 154-1
 
◈보광사 범종 제172호, 함평읍 함평리 288
 
■무형문화재
◈남도노동요 제5호, 엄다면 엄다리 575
 
■기념물
◈팔열부 정각 제8호, 월야면 월악리 155-1
 
◈예덕리 고분군 제55호, 월야면 예덕리 산170-3
 
◈양재리 이팝나무 제117호, 손불면 양재리 산96-1
 
◈마산리 고분군 제122호, 학교면 마산리 산16-2
 
◈신덕 고분군 제143호, 월야면 예덕리 산177
 
◈금산리 방대형 고분 제151호, 대동면 금산리 산84-2
 
◈장고산 고분 제152호, 손불면 죽암리 333-3
 
◈용월리 지석묘군 제158호, 월야면 용워리 367-2
 
■문화재자료
◈이규행 가옥 제150호, 나산면 초포리 657
 
◈영파정 제168호, 함평읍 기각리 906-2
 
◈척화비 제176호, 함평읍 기각리 906-7
 
 
◈ 함평고막천석교(咸平古幕川石橋) [상세보기]
◈ 용천사 석등(龍泉寺 石燈) [상세보기]
◈ 함평향교(咸平鄕校) [상세보기]
◈ 곤재우득록목판(48매)(困齋愚得錄木板(48枚)) [상세보기]
◈ 남도 노동요(천학실)(南道 勞動謠(千鶴實)) [상세보기]
◈ 팔열부 정각(八烈婦 旌閣) [상세보기]
◈ 함평예덕리 고분군(咸平禮德里 古墳群) [상세보기]
◈ 팽나무, 느티나무, 개서어나무의 줄나무 [상세보기]
◈ 북가시나무 자생 북한지대 [상세보기]
◈ 해보리 석불입상(海保里 石佛立像) [상세보기]
◈ 보광사 범종(普光寺 梵鐘) [상세보기]
◈ 양재리의 이팝나무(良才里의 이팝나무) [상세보기]
◈ 마산리 고분군(馬山里 古墳群) [상세보기]
◈ 예덕리 신덕고분군(禮德里 新德古墳群) [상세보기]
◈ 금산리 방대형고분(金山里 方臺形古墳) [상세보기]
◈ 죽암리 고분(竹岩里 古墳) [상세보기]
◈ 함평 이규행가옥(咸平 李圭行家屋) [상세보기]
◈ 영파정(潁波亭) [상세보기]
◈ 함평척화비(咸平斥和碑) [상세보기]
 
 
 
 
3. 생활문화자원
 
전통생활민속
■ 함평의 대표적 민속제와 놀이
◈영수제 영수천은 여름철 함평의 수영장으로 1건 이상의 익사자가 생기곤 했다. 매년 되풀이되는 익사사고를 방지하고 풍년을 빌기 위해 초파일 이전 중 길일을 택하여 거행되었으며 용신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 현재는 영수제를 따로 지내지 않고 기산제만 지낸다.
 
 
 
기산제
◈죽림의 길제 한국전쟁 후 3년간 중단했다가 부활했고 10여 년 전 새마을사업과 함께 미신으로 치부된 길제를 지낼 필요가 없다는 결정에 의해 중단했는데 마을 곳곳에서 불이 나는 ‘도깨비불’사건과 잇따른 재앙이 있었다. 이에 다시 부활하여 정월보름이나 하드렛날(음 2월 1일)에 지낸다.
 
◈손불면 대전리의 불맥이제 손불면 대전리는 함평읍에서 14㎞정도 떨어진 손불면의 면소재지이다. 이 마을은 예전부터 화재가 많아 마을 어귀에 화재를 예방하는 물항아리를 묻는 풍습이 예전부터 전해오고 있다. 마을 어귀의 항아리에 물이 없으면 항상 마을에 화재가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예방하기 위해 매년 음력 2월 1일 오전에 정결한 제주(祭主)를 골라 제를 지내고 농악을 올리며 미리 준비한 바닷물과 우물물을 반반씩 섞어 항아리에 채워놓는 행사를 벌인다. 특히 이날은 제물을 많이 마련해 이곳을 지나는 행인들에게까지 음복을 시키며 큰 잔치를 벌이는데 현재까지 그 풍습이 이어져 오고 있다.
 
◈학교면 학교리 회춘동의 당산제 예전의 당산나무가 바람에 쓰러지고 그 나무 뿌리에서 새순이 돋아 자라므로 마을 이름 또한 회춘동(回春洞)이라 붙여진 마을이다. 한동안 당산제가 중단되었으나 마을이 자꾸 쇠락의 길을 걷자 당산제를 다시 지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관은 나이 많은 사람이 되고 유고가 없는 한 계속한다. 제는 정월 열 나흘 밤에 당산나무에 감을 줄을 꼬며 보름날 오전 중에 당산나무 앞으로 운반한다. 젯상을 차린 후 축문 없이 제관이 절을 하고 농악과 함께 당산나무에 줄을 감는다. 10여 년 전에 줄 감는 일을 생략한 적이 있었는데 마을사람들의 꿈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타나 옷을 입혀주지 않는다고 떨더라고 한다. 그래서 현재도 줄감기는 꼭 하고 있다고 한다.
 
◈대동면 덕산리 아차동 미륵할머니제사 대동면 덕산리 아차동 마을은 매년 음력 2월 1일 마을의 수호신으로 자리하고 있는 미륵할머니에게 제를 올린다. 원래 이 미륵할머니는 마을의 대나무밭에 있었는데 지금의 자리에 제당을 지어 안치시켰다. 그 후 매년 음력 2월 1일을 제삿날짜로 정하고 온 마을이 많은 음식을 장만해서 목욕재계하고 정성을 다해 제를 올린다. 제사를 지낸 후부터는 마을에 아무 재앙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함평의 남도노동요(들노래) 오늘날 전승되는 함평의 농요 중의 하나가 남도노동요며, 기능보유자 천학실이 지방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이 노동요는 농사를 하면서 부르는 들노래로 갖가지 농악과 더불어 10여 곡의 농요가 흥겨운 가락에 맞추어 불리워지고 있다.
 
◈ 영수제(潁水祭, 분류:민간신앙/공동체신앙, 행사시기:초파일 전 길일을 택일함, 전승장소:함평군 영수천 주변, 개최빈도:년 1회) [상세보기]
◈ 죽림의 길제(竹林의 路祭, 분류:민간신앙/공동체신앙, 행사시기:음력 정월 중 길일을 택(대체로 정월 보름)하거나 음력 2월 1일(하드렛날), 전승장소:함평군 손불면 죽장리 죽림마을, 개최빈도:년 1회) [상세보기]
◈ 회춘동의 당산제(回春洞의 堂山祭, 분류:민간신앙/공동체신앙, 전승장소:학교면 학교리 회춘동) [상세보기]
◈ 함평읍의 줄다리기(분류:민속예술/민속놀이, 행사시기:정월보름, 전승장소:함평읍 일대, 개최빈도:년 1회) [상세보기]
◈ 함평천지 풍물놀이(분류:민속예술/민속놀이) [상세보기]
구전설화
◈호명산의 전설 함평현감이 치정을 잘못했을 때 밤중에 이 산에 올라가 동헌을 향해 큰소리로 고변을 하면 현감이 그 소리를 듣고 군정에 반영하여 백성들의 소원을 풀어주었다 하여 ‘호명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장산들‘백비’ 병든 노모를 위해 자식을 바치려고 솥에 넣어 불을 지피다가 솥뚜껑을 열어본 즉 동자삼이 삶아져 있어 그 동자삼으로 어머니의 병도 낳고 아들과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고을 원님이 효행은 지극하나 한편으로 어린 생명에겐 끔찍한 죄를 지었기에 비문이 없는 백비를 내렸다는 전설.
 
주민의 종교생활
함평군에 포교된 종교는 개신교, 천주교, 불교, 천도교, 원불교, 유교 등이며 1960년대에는 단군을 모시는 대종교도 포교되었으나 현재는 교당이 없다. 1996년 말 기준으로 볼 때 개신교 교회 86개소, 불교 사찰 20개소, 천주교 성당 9개소, 향교 1개소 등이 있다.
 
주민의 생활권역
현재 함평군 내에서는 8곳의 장이 있다. 하지만 함평읍장을 제외하고는 교통의 발달과 개량화된 상품, 도처에 슈퍼마켓·연쇄점 등이 생겨 장의 구실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함평읍장 아직도 성시를 이루는 함평장은 소전(가축시장)이 독립되어 1981년 영수천 너머로 이전되었다. 3,043평의 대지에 우형기(소 무게를 다는 저울) 3대 등 현대 시설을 갖추었다. 흔히 ‘큰소장’이라 불릴 정도로 소의 거래가 많은 함평읍장은 읍장과 버스터미널이 서로 붙어있어 함평군의 주민들이 장을 이용하기에 매우 편리하다. 교통은 영광∼나주간 국도와 나주∼지도간 국도가 교차하고 있으며 인근 면들과는 지방도가 연결되어 있다. 장에서 거래되는 상품들은 여느 장과 마찬가지로 생선류가 가장 많으며 채소, 의류, 그리고 곡류의 순이다.
·함평장 : 2·7일, 세발낙지·보리새우·의류·잡화류
·손불장 : 1·6일, 세발낙지·보리새우·의류·삭젓
·해보장 : 3·8일, 왕골돗자리·마늘·의류·잡화류
·나산장 : 4·9일, 마늘·의류·돗자리·감자·잡화류
·신광장 : 5·10일, 마늘·의류·돗자리·감자·잡화류
·학교장 : 5·10일, 마늘·의류·돗자리·감자·잡화류
·월야장 : 5·10일, 마늘·의류·돗자리·감자·잡화류
 
 
 
함평장
지역의 별미음식
◈선지국 비빔밥 독특한 조리법과 맛으로 인근 지역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전주비빔밥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가격이 싸면서도 풍부한 영양으로도 이름이 높다. 비빔밥에 딸려 나오는 선지국은 쇠고기 피를 물로 삶고 기름을 건져낸 다음 마늘, 풋고추, 생강 등으로 만든 양념장을 풀어 맛을 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선지국은 철분과 칼슘이 풍부한 영양식품이다. 함평에서는 화랑식당, 목포식당, 전주식당, 대흥식당, 남매식당 등에서 함평비빔밥을 맛볼 수 있다.
 
◈엽삭젓 함평만에서 잡힌 엽삭을 젓으로 갈무리하여 만든 것으로 대개 여름이나 가을에 젓을 담궈 그 이듬해부터 먹을 수 있다. 이 젓갈은 손불면 전역에서 주민들에 의해 담가오던 전통적인 젓갈로 궁중진상품이었다고 한다. 가정에서만 담가져 오던 젓갈이 상품화에 성공했고 1991년부터 전통엽삭젓보존회가 설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회장인 문옥순은 젓갈에 관한 한 전국적인 음식명인으로 알려져 있다.
 
◈인절미 함평군 손불면 군유산 아래 ‘손불떡집’에서 생산되는 손불떡은 떡이 쉽게 굳지 않고 부드러워 함평은 물론 광주, 영광 등지에서 주문이 끊이질 않는다. 이는 떡의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방아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춰 경조사 시 집 앞까지 잔칫용 떡을 배달해주기 때문이다. 손불찰떡이 잘 굳지 않은 비결은 떡을 칠 때 여러 번 치는데 이는 칠 때 공기가 떡고물로 들어가 알맞은 찰기를 유지하기 때문이며 콩고물을 수증기로 찌기 때문이다.
 
지역의 토산품과 특산품
◈왕골돗자리 함평왕골돗자리는 촉감이 상쾌하고 부드러우며 왕골 자체에 염분성분이 함유되어 땀 흡수력이 좋아 건강에 좋다. 특히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며 사용 및 보관이 간편하여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우아함과 품위가 돋보이는 왕골돗자리는 간석, 요석, 다단석, 베개, 자동차 시트 커버 등 다양하게 생산되며 주산지로는 나산면 이문리 및 용두리, 월야면 백야리, 해보면 용산리가 유명하다. 함평왕골돗자리사업단, 함평군 월야면 용월리 420 ☎ (061)323-7771
 
◈천지한우 함평군이 수입 대체 품목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는 함평천지한우는 고기의 육질이 부드럽고 담백하다. 함평영농조합법인에서는 1994년 8월 9일 한우고기 특품생산 사업체로 지정을 받아 함평읍 옥산리에 특품생산 사업장을 설치하였다. 여기에서 함평군내 5개 한우 작목반이 함께 함평천지한우를 생산하고 있다.
 
◈춘란 함평지역은 서해안의 온화한 기온과 해풍의 영양으로 타지역 춘란에 비해 번식력이 강한 우수한 형질의 희귀종이 채취되고 있다. 주요 자생지역은 군유산, 철성산, 나산면 송암리 등이 있다.
 
◈문장 윤황소 붓 해보면 금덕리에서 제작하는 문장붓은 일명 황소붓이라고 부르며 붓을 만들기 시작한지는 20여 년이 되었다. 우수한 품질과 명성 때문에 많은 서예가들이 찾고 있다.
 
 
 
 
 
 
4. 예술문화자원
 
지역문화예술행사
◈함평나비대축제 [상세정보] 10만 평의 유채꽃과 유휴농지 24만 평의 자운영꽃을 배경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개최되는 나비축제는 1999년도에 제1회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주요행사로는 나비의 일생을 그린 나비생태관 운영, 멸종위기의 희귀나비와 곤충을 전시한 나비표본 전시관, 함평천지 한우의 우수성을 알리는 소싸움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행사로 자연을 소재로 새롭게 시도된 생태학습 환경축제. △주관 : 함평군 나비대축제추진위원회, △기간 : 5월 초순 △장소 : 함평천광장, 군민복지회관
 
◈함평문화제 매년 10월 중에 개최되는 이 행사는 초·중·고교생 문예작품공모전, 한시백일장, 향토문화논단, 향토작가초대전, 전국남녀시조경창대회 등의 행사를 펼친다. △주관 : 함평문화원 △기간 : 10월 20∼23일 △장소 : 함평군민복지회관
 
◈기산제 함평의 영산 기산에 제를 올리는 행사이다.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행사였으나 일제강점기시 잠시 중단되어 그 맥이 끊겼다가 1984년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상수도 집하장 공사를 하려고 기산봉우리를 파헤친 적이 있는데 공사기간이었던 3개월 동안 군민 27명이 아무런 이유 없이 죽어나가는 불상사가 있었다. 그 후부터는 더욱 신령스럽게 제를 모시고 있다. 현재 군민의 날 전야제 행사 중의 하나로 치러진다.
 
지역문화예술단체
◈국악협회 함평군지부 함평군 함평읍 함평리 154-1번지 군민회관 내 ☎ (061)322-9990
 
◈기산영수제전승보존회 함평군군사 편찬위원회 사무실을 이용하였으나 현재는 따로 사무실이 없음. ☎ (061)322-2952
 
◈대한시우회 함평군지회 회원수 33명. 매년 전국시조경창대회를 열며, 그 저변확대를 위해 노인복지회관에서 함평장날 교습을 함. 함평군 함평읍 함평리 154-1번지 군민회관 내 (함평문화원사무실이용) ☎ (061)322-1041
 
◈함평문림회 함평읍 내교리268 ☎ (061)322-2043
 
◈함평군향토사연구회 향토사에 관심이 많은 회원 27명이 모여 문화유적순례답사, 고문서번역사업, 향토문화강좌 등의 일을 하고 있음. 나산면 삼축리321-1번지 ☎ (061)322-8301
 
◈샛별문학회 1977년 4월 김철수, 김창훈 등 이고장 출신의 젊은 문학동호인들의 발의로 샛별문학회가 결성되었다. 그후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는데 현재 전국적인 회원망을 확보하고 있으며 함평읍 기각리 784-6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함평 문학동호인들의 구심체역할을 하고 있는 단체 중의 한곳이다. ☎ (061)322-0203
 
지역문화예술 시상제도
◈함평군민의 상(문화교육부문) 향토문화교육에 공이 있는 분에게 매년 군민의 날에 시상, 현재까지 19명이 수상하였음.
 
지역연고 예술인
◈신호열 한학의 대가로 한문서예에 능통하였으며 그의 글씨는 서울 남산공원의 안중근의사 기념비, 광주공원의 함평출신 의병장 심남일 기념비 등에 새겨져 있다.
 
◈이학 한글서예의 선구자라고 불리며 여성으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신사임당상도 수상
 
◈서희환 1960년대 말엽에 국전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국전심사위원장,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위원, 예술의전당 자문위원 등을 역임.
 
◈안동숙 한국화 가운데 창의적인 동물을 통한 추상화를 즐겨 그리는 남종화 화풍의 원로이다.
 
지역소재 예술작품
◈기성가(箕城歌) 나산면 삼축리 출신의 박봉혁이 38세 되던 1874년에 지은 것으로 함평의 여러 마을에 대한 충효와 경관을 노래한 것으로 풍수지리에 연계한 유교적 사상을 근간으로 만들어졌다. 함평의 52개 마을, 54명의 인물, 그리고 14개의 산과 18점의 유적 유물이 소개된 가사 부피만도 2백여구에 달하는 대작이다. 따라서 기성가를 외우면 함평의 역사를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함평의 절경을 예찬한 함산가 함산가는 1821년부터 1823년까지 함평현감을 지냈던 권복이 지은 7언귀의 한시이다. 이시는 당시 동헌으로 사용되던 녹죽당에 현판으로 걸려 있어서 군민들에게 애송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판은 없어지고 1907년 간행된 군지의 제영조에 수록됨으로서 현재까지 전해오고 있다.
湖南從古說名區 先敎咸平第一州
佳景箕山臨潁水 靈刹龍泉傍君遊
縣東七面士冀北 家家讀書克明德
縣西往往出奇才 中白雪生顔色
走筆慢成咸山歌 咸山不老靑萬古
 
◈호남가 호남지방의 지명을 따라 풍경을 노래한 비교적 세상에 널리 알려진 옛 가요이다. 특히 노래의 첫머리에 나오는 함평천지로 인해 함평인들에게는 꽤나 친숙한 노래이다.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고향을 보랴하고∼’
 
 
 
 
 
 
5. 관광, 여가문화자원
 
관광자원
◈함평만의 청정갯벌 최근 들어 갯벌의 진정한 가치와 기능에 대해 재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 오염되지 않은 함평만의 갯벌은 자연이 군민에게 보내준 천연자원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어류들, 그리고 오염정화·홍수 및 태풍조절 기능 등은 함평을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곳이라는 말을 듣게 했다.
 
◈돌머리해수욕장 수려한 소나무숲을 배경으로 서해바다의 포근함이 함께 어우러진 하계휴양지로서 인공풀장과 갯벌생태학습장을 겸비한 해수욕장이다.
 
 
 
돌머리 해변
◈해수찜단지 유황석과 갯벌만 해수 그리고 소나무 땔감 등을 사용하여 산후조리, 신경통치료, 각종피부병예방 및 치료, 성인병 등에 효과가 있는 자연한방비법이 가미된 해수찜으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나비생태학습장 함평군만이 간직하여 자랑할 수 있는 풍부하고도 깨끗한 친환경농업군의 이미지를 가지고 지역축제로 성공시킨 나비대축제와 더불어 탄생시킨 나비생태학습장은 세계 제1의 규모와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선사유적의 보고 청동기시대와 역사시대를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고인돌이 700여 기, 마한시대와 백제문화와의 연결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고분이 100여 기 이상 분포되어 있는 선사유적의 박물관이다.
 
◈용천사 신라의 행사존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사찰 앞에는 작은 샘물이 있는데 이곳에서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와 용천이라 했으며 절의 이름 또한 용천사라 하였다. 용천사 주변에는 한국자연 100경 가운데 하나로 지정된 상사화의 붉은 꽃망울을 감상할 수 있고, 또 용천사에는 강희 24년(1685)이라는 연대가 기재되어 있어 중요한 가치가 있는 석등이 있다. 이와 함께 모악산에서 영광 불갑산으로 넘어가는 등산로가 있어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관광시설
■해수찜단지
◈함평주포해수찜 손불면 궁산리 신흥마을 ☎ (061) 322-9489
 
◈신흥약찜 손불면 궁산리 신흥마을 ☎ (061)322-9900
 
◈주포신흥해수찜 손불면 궁산리 신흥마을 ☎ (061) 322-9487
 
◈돌머리해수찜 함평읍 석성리 석두마을 ☎ (061) 322-9605
 
 
 
해수찜단지
■숙박시설
◈함평온천장 함평읍 기각리824-1 ☎ (061)322-8123
 
◈세명온천장 함평읍기각리914-4 ☎ (061)322-2470
 
◈국제여관 엄다면 송노리205-1 ☎ (061)322-0880
 
◈코리아나 엄다면 송노리196-2 ☎ (061)322-6500
 
◈럭키장 학교면 사거리654-3 ☎ (061)322-0770
 
◈영수장 함평읍 내교리206-20 ☎ (061)322-1345
 
◈모아모텔 함평읍 기각리375-34 ☎ (061)324-2266
 
관광코스
◈1일 코스(1안) 함평읍 기산봉 → 해수찜단지 → 돌머리해수욕장 → 함평난공원 → 용천사 → 나비생태학습장 → 사포나루
 
◈1일 코스(2안) 예덕리고분군 → 용천사 → 난공원 → 해수찜단지 → 돌머리해변 → 나비생태학습장 → 기산봉 → 자산서원 → 사포나루 → 고막천석교
 
◈2일 코스 기산봉(영수천) → 향교대성전 → 나산 호남생활민속자료관 → 예덕리고분군 → 용천사 → 난공원 → 해수찜단지(1박) → 돌머리해변 → 나비생태학습장 → 자산서원 → 사포나루 → 고막천석교
 
관광쇼핑
◈백호관광농원 쾌적한 자연환경을 활용하여 농촌지역의 잠재된 부존 관광자원을 농업과 연계시켜 개발되었다. 광주와 30분 거리로 도시민의 정서함양과 건전한 관광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차원에서 육성시킨 곳이다. 주요시설로는 식당, 휴게소, 원두막, 어린이 놀이터, 체육시설, 화훼단지, 흙돼지, 잔디밭 등이 있다. 지역특산품 전시판매장에서는 함평의 특산물로 꼽히는 돗자리, 붓, 분재, 엽삭젓 등을 판매하고 있고, 최근에는 야외 결혼식장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대동면 백호리 ☎ (061)323-9514
 
◈주포포구 싱싱한 해산물의 집산지로 밀물때면 이곳을 근거지로 어로활동을 하는 중소형 배에서 함평만에서 건져 올린 농어, 광어, 세발낙지, 보리새우 등 싱싱하고 다양한 횟감을 구입할 수 있다.
 
◈함평왕골돗자리 생산단지 함평군 월야면 용월리420 ☎ (061)323-7771
 
◈함평토속민속주 ‘천지소주’ 함평천지 맑은 물과 손불 간척지 쌀, 대추로 빚은 전통 토속주는 오랜 시간을 숙성함으로써 독특한 맛과 대추의 은은함이 어우러져 부드러움이 더해지고 음주 후에도 숙취가 없어 옛 풍류가인들이 즐겨 찾았던 토속주이다. 고려 때부터 함평지역에서 빚어지기 시작한 함평천지 토속주는 비법을 대물림 받은 임종안씨에 의해 지난해 재현된 전통토속주이다. 쌀과 대추를 주원료로 고조리에 증류해온 증류액을 땅에 묻은 옹기에 담아 밀폐시킨 뒤 한달 이상 숙성해 생산되는 주류이다. 임씨의 10여년의 연구와 현대식 기계설비로 빚어지는 함평천지토속주는 지난 1999년부터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고 본격 생산되고 있다. 전국의 우체국과 농협을 통해 통신판매되고 있으며 농협의 하나로마트와 자체 대리점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천지토속주의 판매가격은 400㎖ 1병에 9,000원, 2병들이 선물용 1세트에 2만원이다.☎ (061)323-5160
 
 
 
함평천지소주
■식당명
◈일흥가든 해물탕 ☎ (061)324-0500
 
◈화랑식당 비빔밥, 장터국밥 ☎ (061)322-5133
 
◈주포횟집 생선회, 세발낙지 ☎ (061)322-9331
 
◈청암가든 한우고기 ☎ (061)322-5225
 
◈녹수산정 토종닭 ☎ (061)323-5588
 
◈구산농원 청둥오리로스 ☎ (061)322-8482
 
관광안내소
◈함평군청 함평군청 산림관광과 ☎ (061)322-0019, http://www.hampyung.chonnam.kr
 
여가시설
◈야구경기장 대동면 용성리 소재. 전라남도 야구연습경기장으로서 자연경관이 수려한 목포상수원과 겸하여 자리잡고 있어 여가적 휴식장소로 적합.
 
◈사포나루터 학교면 곡창리 사포마을로 다른 이름으로는 대굴포라고도 불린다. 조선시대 전라도 수군본부가 자리하고 있었을 때 병선이 드나들던 곳으로 1984년부터 낚시터 겸 휴게소가 건립되었고 1992년 동강대교가 완공되어 교통이 편리해졌다. 사포나루 주변에는 책바위, 지네봉, 득량골, 배류지, 수통막 등 천혜의 지형들이 산재해 있다. 영산강 하굿둑의 축조로 밀물과 썰물이 없어지자 민물고기의 서식이 크게 증가하여 사시사철 강태공이 몰려오고 있다.
 
 
 
사포나루
 
 
 
 
6. 문화시설자원
 
도서관
마을문고는 구심문고 9개, 단위문고 2개로서 총11개의 문고가 있어 도서관과 독서실 기능을 대신하고 있음.
 
◈함평공공도서관 열람석 200석, 도서 29,363권 및 정기간행물, 시청각자료 등이 소장되어 있으며 각종 문화행사, 취미관련행사를 상하반기에 걸쳐 실시한다. 함평읍 기각리 901번지 소재 ☎ (061)322-0515
 
공연장
◈군민복지회관 584평,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된 이 회관은 소회의실, 다목적체육관 및 회의장 공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정원에는 군민이 기증한 값진 정원수를 심고 잔디를 심었으며 해보면 상곡리 탑동에 있던 석불입상(石佛入像, 고려 때 만듬)과 함평읍 내교리에 있던 넓다리(廣橋) 유래가 담긴 평판석(平板石)을 옮겨 놓았다. 함평군 함평읍 함평리 154-1번지
 
 
 
군민회관
◈노인복지회관 전시회의실 100평, 함평군 함평읍 내교리 179-2번지
 
전수회관
◈기산요 22년 동안 교직생활을 하던 도예가 최재원이 교직을 그만두고 건립한 도예연구소이다. 옛초등학교를 개조해 도예연구실로 사용하고 있는데 방문객들이 스스로 도예를 만들고 도자기에 서명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다. 이제 도예를 막 배우려는 사람들이나 일반인들에게 좋은 도예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함평군 나산면 구산리 315 ☎ (061)323-9155
 
박물관
◈농경민속자료유물관 나산면 삼축리 소재. 박현순씨 개인이 직접 농경생활도구를 수집 정리 보존한 농경민속자료 유물관으로 소박한 농경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 (061)323-3355
 
문화원
◈함평문화원 함평군 함평읍 함평리 154-1번지(군민회관 내) ☎ (061)322-0505
원장 서복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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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평군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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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