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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진도군 전라남도 진도군 정보
전라남도 진도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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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023년 12월 1일
2005년 6월
2005년 6월 3일
진도군의 어제와 오늘
about 전라남도 진도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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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3. 01:02) 
◈ 진도군의 어제와 오늘
1. 내 고장의 어제와 오늘
 
 
 
전라남도의 서남단에 있는 도서군(島嶼郡)으로 이루어진 진도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소백산맥의 지맥인 화원산맥(花源山脈)이 침강하여 형성된 섬이다. 전체면적의 70%가 산지이며 해안선의 굴곡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이다(해안선 길이 306㎢). 지질은 백악기 반암과 응회암이 대부분이다. 온화한 해양성 기후로 연평균기온 13.8℃, 1월 평균기온 1.7℃, 8월 평균기온 26.4℃이고 연강수량은 1,350mm이다. 백제때는 인진도군(因珍島郡), 신라 때 진도군으로 고려조까지 진도 안에 3개의 토호세력권이 구분되었고, 변천을 거듭하여 1983년에 지금과 같이 읍면별 마을이 조정되었다. 대부분의 주민이 농업에 종사하며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 외에 유채·마늘·참깨 등을 생산한다. 특산물은 유자·구기자 및 꽃게·미역 등이다. 어업·양식업도 활발하다. 교통은 1984 진도대교의 개통으로 육지와 연결이 쉬워졌으며 진도읍을 중심으로 군내 주요지역을 지방도로가 통과한다. 천연기념물 제53호 진돗개가 유명하며, 주요관광지로는 울두목해안, 신비의 바닷길, 관매 8경, 금골기암, 다도해 해상공원 등이 있다.
 
<진도군 연표>
시 대
연 대
주 요 사 항
 
고대
선사시대
한반도의 육지군에 비하여 선돌, 고인돌이 많은 것을 보면 신석기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생활하였음이 입증되어 이 시기를 전후하여 바구니섬이라 부르게 되었음
 
757
진도현은 그대로 두고 도산현을 뇌산군으로 승격 독립시키고 매구리현을 담침현으로 바꾸어 뇌산군에 따르게 함
 
고려
995
7월에는 본도 지방을 해양도라고 할 때 옥주군으로 개칭되어 전국 14주중 1주가 되었다가 현종 9년(1018) 2월에 옥주를 진도로 고치고 현 고성에 있던 관부를 현 군내면 용장들로 옮김
 
1270
6월에는 삼별초군 배중손이 왕족 승화후온을 왕으로 추대하고 용장을 도읍으로 정하여 활약하였으나 여몽 연합군의 원수 흔도 등이 삼별초군을 토벌함에 진도가 함락되어 주민의 대부분은 몽고에 잡혀가고 진도는 거의 공도화(空島化)됨
 
조선
1409
해남현과 합하여 해진군을 칭함
 
1895
영암, 해남, 무안의 5개면을 합쳐 나주부의 소속군이 됨
 
현대
1979
진도면이 진도읍으로 승격되어 1읍 6면 99리로 됨
 
1984
해남반도와 진도를 연결하는 진도대교 설치
 
 
 
 
 
 
진도 영등제
 
 
 
 
2. 역사문화자원
 
역사적 사건과 현장
◈삼별초 진도 고려정부 1270년(고려 원종 11년) 강화도에 피신한 고려정부가 몽골에 굴욕적인 강화를 맺고 개경환도를 결행하자 이에 불복한 삼별초군은 6월 3일 강화도를 출발해 8월 19일 진도로 도착하여 군내면 용장리 소재 용장사를 궁궐로 삼고 정통고려정부를 내세웠다. 진도정부는 제주도, 전라도, 나주 이남, 경상도 남부까지 세력권을 넓혔으며 전국 도처에서 진도정부에 합류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삼별초군은 여·몽연합군의 대대적인 침공에 의해 1271년 5월 15일 함락되었으며 궁궐은 불타고 현재 빈터만 남아있다.
 
◈임진왜란과 명량대첩 1592∼1598년의 7년에 걸친 임진왜란 중 1597년 음 9월 16일 진도와 해남사이를 흐르는 명량해협에서 이순신장군을 도와 온 군민이 목숨바쳐 싸웠다.
12척 전선으로 3백 척 이상의 일본수군과 대적하면서 조응량, 조명신 부자,박영희, 박내종 부자, 양응지, 양계원 숙질등처럼 가족이 함께 순절한 경우도 많고 부녀자들은 해변에서 강강술래로 적을 유인했다.
오전 8시부터 시작된 전투에서 적장 마다시가 물위에 떠내려오는 것을 이순신 장군의 배에서 끌어올려 토막을 내자 적의 기세가 완전히 꺾이게 되었다. 이는 진도주민들이 평소 현지여건을 잘아는 만큼 특별히 구사한 쇠사슬작전과 이순신장군의 지휘력이 낳은 전과라 할 수 있다.
 
◈왜구의 본거지였던 진도 왜구의 피해가 커짐에 따라 고려정부는 1350년 진도를 공도화(空島化)시켜 행정관청과 함께 주민들을 내지로 옮기게 했다. 진도군은 1437년 복군까지 87년간 영암, 해남 등지로 옮겨다녔는데 이 기간중 한때 진도는 왜구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다. 1380년 8월 도처에서 싸우던 왜구들은 일단 진도에 와서 전열을 가다듬고 또다시 출전했으며 9월의 운봉전투에 이성계장군과 맞섰던 왜구대장 아기발도가 진도출신이었다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왕건·견훤 벽파해상 전투 서기 909년에 있었던 후백제 견훤과 후고구려세력 왕건의 벽파 앞바다 해전은 한반도 남해와 서해를 연결짓는 진도를 수중에 넣으려는 싸움이었다. 싸움에 패한 견훤은 해상전투력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왕건은 고려건국의 초석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公臣) 김수생(金水生) 1570년대 진도읍 서부 매향동에서 출생한 김수생은 종 6품 훈련주부의 관직에 있다가 임진왜란을 당하여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용전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며 특히 정유재란 시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의 명에 따라 선두주자로 종횡무진 분투용전하여 12척의 작은 배로 300여척의 왜적 대함대를 격멸시켜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대공을 세워 선무공신에 녹훈됨.
이외에도 진도출신 박희령, 박종, 박내종, 박후령, 박인복, 김성진, 이천구, 조응량, 조명신, 양응지, 양계원, 차환, 하수평 등이 임란에 참전해 공을세워 선무원종공신이 되었음
 
◈남화(南畵)의 대가(大家) 소치(小痴) 허유(許維, 1809~1892) 1809년(순조9) 진도에서 태어남. 동학혁명이 일어나기 이태 전인 1892년(고종29) 여든넷의 나이로 장서(長逝)하기까지 임금이 쓰는 벼루에 먹을 갈아 그림을 그렸고 이하응(대원군), 권돈인, 문영익 및 그의 스승이었던 추사 김정희, 초의대사 등과 어울리면서 주유천하(周遊天下)했던 조선 말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의 대가이다.
 
◈의제 허백련(許百鍊) 1891년 11월 2일 진도군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난 의제 허백련은 남종화의 전통을 꿋꿋이 지켜온 대가로서 75년 동안의 긴 작가 생활을 통해 1만여 점에 이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의제는 일본에서 기법을 익혔으면서도 일본 색채에서 탈피하면서 소치와 미산의 남화산수를 계승하여 굳게 토착화시켰다.
 
◈추사(秋史) 이래 대가(大家) 소전 손재형 1903년 5월 진도읍 교동리에서 태어난 소전 선생은 추사 이래의 대가로 추앙받을 정도로 우리나라 서예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며 우리나라 한자문화의 정수인 서예를 오늘날에 이어온 서예계의 거목이다.
 
◈박덕인(朴德寅) 대금시나위로 유명했던 박종기의 아버지로 무정 정만조의 은파유필을 통해 확인된 그는 노래, 춤, 악기 등에 탁월한 경지의 예능을 지녔다. 진도아리랑의 작곡을 박종기로 보기도 하는데 오히려 아버지 박덕인일 것이며 현 진도무속예술의 효시가 되는 분이다.
 
◈독립운동가 박종식(朴鍾殖) 광주학생운동에 이어진 목포 항일 학생운동에서 목포상업학교 시위 극동학생으로 1929년 11월19일 제1조를 지휘, 양동 → 남교동 → 무안동 → 역전에 이르며 구호를 외치고 전단을 뿌려 시민들에게 항일투쟁을 선동해 퇴학과 함께 옥고를 치루었다. 출옥 후 고향에 돌아왔으나 공직을 거부하고 민중의 권익과 통일된 조국건설 일념으로 일관하다가 38세로 타계한 선각 항일운동가였다.
 
◈ 김수생(金水生, 생존시대:1570년대 출생, 출생지:진도읍 서부 매향동) [상세보기]
◈ 박대형(朴大, 본관:경주, 아호:윤곡, 생존시대:1532년 출생, 출생지:진도읍 북상리) [상세보기]
◈ 이씨부인(李氏婦人, 본관:원주) [상세보기]
◈ 허유(許維, 본관:양천, 아호:소치(小痴), 생존시대:1809 ∼ 1893, 출생지:진도) [상세보기]
◈ 허백련(許百鍊, 본관:양천, 아호:의재(毅齋), 생존시대:1891 ∼ 1977, 출생지:진도군 진도면 쌍정리) [상세보기]
◈ 손재형(孫在馨, 아호:소전(素筌), 생존시대:1903 ∼ 1981, 출생지:진도읍 교동리) [상세보기]
◈ 박종기(朴鍾基, 생존시대:1879 ∼ 1953, 출생지:임회면 삼막리 138번지) [상세보기]
◈ 박인복(朴麟福, 본관:밀양, 생존시대:1550 ∼ 1593, 출생지:의신면) [상세보기]
◈ 박덕룡(朴德龍, 본관:밀양, 생존시대:1516 ∼ 1636, 출생지:의신면) [상세보기]
◈ 박헌극(朴憲極, 본관:밀양, 아호:오당(梧塘), 생존시대:1829 ∼ 1891, 출생지:진도읍 동외리) [상세보기]
◈ 진주하씨(晉州河氏, 생존시대:1798 ∼ 1857) [상세보기]
내 고장의 문화유산
■보물
◈금골산 5층 석탑 제529호, 군내면 둔전리 산 94-1
 
■사적
◈용장산성 제126호, 군내면 용장리 52
 
◈남도석성 제127호, 임회면 남동리 219
 
■중요무형문화재
◈강강술래(박용순) 제8호, 진도읍 성내리 7-3
 
◈남도들노래(김기순) 제51호, 진도읍 성내리 7-3
 
◈씻김굿(채계만) 제72호, 진도읍 성내리 7-3
 
◈다시래기(강준섭) 제81호, 진도읍 성내리 7-3
 
■명승
◈진도 바닷길 제9호, 의신면 회동
 
■중요민속자료
◈진도 한정석의 가옥 제166호, 진도읍 성내리 40-2
 
■유형문화재(이하 도지정)
◈상만리 5층석탑 제10호, 임회면 상만리 675
 
 
 
상만리 5층석탑
◈용장사 석불좌상 제17호, 군내면 용장리 산90
 
◈쌍계사 대웅전 제121호, 의신면 사천리
 
■무형문화재
◈진도 북놀이 제18호
 
◈진도 만가(김항규) 제19호, 지산면 인지리
 
◈진도 홍주(허화자) 제28호, 진도읍 쌍정리
 
■기념물
◈운림산방 제51호, 의신면 사천리 76
 
◈전왕온의 묘 제126호, 의신면 침계리
 
■문화재 자료
◈금골산 마애여래좌상 제110호, 군내면 둔전리
 
◈진도읍성 제43호, 진도읍 성내리
 
◈진도향교 제127호, 진도읍 교동리
 
 
◈ 금골산 5층석탑(金骨山 五層石塔) [상세보기]
◈ 용장산성(龍藏山城) [상세보기]
◈ 남도석성(南桃石城) [상세보기]
◈ 진돗개 [상세보기]
◈ 사천리 상록수림(斜川里 常綠樹林) [상세보기]
◈ 상만리 비자나무(上萬里 榧子木) [상세보기]
◈ 관매도 후박나무(觀梅島 厚朴木) [상세보기]
◈ 백조도래지 [상세보기]
◈ 강강술래 [상세보기]
◈ 남도들노래 [상세보기]
◈ 씻김굿 [상세보기]
◈ 다시래기 [상세보기]
◈ 쌍계사 대웅전(雙溪寺 大雄殿) [상세보기]
◈ 상만리 오층석탑(上萬里 五層石塔) [상세보기]
◈ 용장사 석불좌상(龍藏寺 石佛坐像) [상세보기]
◈ 진도 북놀이(박관용)(珍島 북놀이) [상세보기]
◈ 진도 만가(김항규)(珍島 輓歌) [상세보기]
◈ 진도 전통홍주(허화자)(珍島 傳統 紅酒) [상세보기]
◈ 운림산방(雲林山房) [상세보기]
◈ 전왕온묘(傳王溫墓) [상세보기]
◈ 금골산 마애여래좌상(金骨山 磨崖如來坐像) [상세보기]
◈ 진도향교(珍島鄕校) [상세보기]
◈ 진도읍성(珍島邑城) [상세보기]
 
 
 
 
3. 생활문화자원
 
전통생활민속
◈남도들노래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 남도들노래는 모내기, 김매기 등 주로 논일을 하면서 부르는 농요로서 그 가락이 다양하고 뒷소리를 길게 빼면서 시종일관 노래를 부르는 특징이 있다. 1971년 제1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국무총리상을 수상함으로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그 가락과 내용이 뛰어나 ‘남도들노래’라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남도 들노래 연회장면
◈진도 씻김굿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춤과 노래로써 신에게 비는 무속의식으로 의상은 상복차림이며 망자의 후손으로 하여금 망자와 접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1979년 세계민속음악제에서 금상을 받은바 있으며 원시종교인 샤머니즘과도 통하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초연한 자세를 예술적 세계로 승화시킨다고 말할수 있다.
 
 
 
진도씻김굿 연행장면
◈진도다시래기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상가에서 출상 전날 밤에 상주와 그 가족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물 반주에 맞추어 노래와 춤과 재담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가무극적 민속놀이다.
 
 
 
진도다시래기 연행장면
◈진도만가 무형문화재 제19호. 만가는 사람이 죽었을 때 메고 가면서 부르는 일종의 상여소리지만 남자만이 상두꾼이 되고 요령이나 북을 치면서 만가를 하는 다른 지방과는 달리, 상여 앞에서 북을 치고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특이한 상장례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고구려 출상모습과 똑같아 과거 한민족의 주검에 대한 수용과 처리의 원형으로 해석되며 죽음이 생의 마감이 아니라 더욱 좋은 세상으로 가는 과정으로 보았던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진도 소포걸군농악 임진왜란 당시 거지 행세를 하면서 적군의 동태를 파악하여 단원의 행동과 악기 소리로 아군에게 알려 작전을 우세하도록 도움을 주었다는 데서 비롯되고 있는데 80년 전 악기를 보존하여 역사성을 인정받게 되었으며 작전놀이 굿중패 풍장까지 좌도와 우도 농악의 혼성으로 가락이 다양하고 흥겹게 엮어진 것이 특징이다.
 
◈진도 나배도 닻배노래 나배도 닻배노래는 조도 나배도를 중심으로 어민들이 칠산, 연평도 등 먼 바다까지 고기잡이를 나가 노를 저을 때, 그물을 당길 때 만선이 되어서 귀향할 때 부르는 노래로서 피로함과 고달픔을 달래는 대표적인 어업요이다. 진도닻배는 보통배와 달라 선두 선미가 둔하게 생겨 양 옆으로 많은 사람이 노를 젓게 되어있다.
 
 
 
나배도 닻배놀이 연행장면
◈강강술래 강강술래에 대한 최초의 시연기록이 진도에서 비롯되고(1896) 유일한 연행터로 구전되는 ‘군내면 녹진리 강강술래터’를 감안할 때 진도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가 있다. 진도 서북부의 가흥현이 고려초기 군 치소가 되는 왕건·견훤 전쟁 이후의 변화와 관계되는 가흥지방의 민중 군사놀이로 보기도 한다.
 
◈ 진도아리랑(분류:민속예술/민요, 행사시기:진도 일대) [상세보기]
◈ 강강술래(분류:민속예술/민요, 행사시기:진도 일대) [상세보기]
◈ 진도 도깨비굿(분류:민간신앙/공동체신앙, 전승장소:진도 일대) [상세보기]
구전설화
◈말굽바위 전설 지력산 명사찰 동백사에는 전부터 비전되어 오는 말이 있었는데 절의 북쪽산이 험하고 높지만 절대로 길을 만들지 말고 현재 있는 길만 이용하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몇 대 째 인가 그곳 주지가 동북방의 고야리나 보전리 방면에 길이 없어 멀리 돌아 다녀야만 하는 불편을 걱정한 나머지 내려오는 비전을 무시하고 길공사했는데 중 맑던 하늘에 먹구름이 일고 천둥이 치며 폭우가 내리기기 시작하더니 커다란 천마가 바위 옆에서 나타나 비명을 지르면서 목에서 검은 피가 터져나오며 이 암반위를 힘차게 딛고 뛰다가 몇발자국 못가 숨을 거두었다. 이때 천마가 얼마나 최후의 힘을 다했는지 앞 발자욱은 약간 얕으며 뚜렷하게 4개의 말발자욱이 현존하는데 이를 말굽바위라 부르고 있다.
 
◈허새비재(허수아비재) 허새비는 ‘허수아비’의 방언이다. 이 고개는 고군면 내산리 동편 뒷산에 있으며 이 고개를 넘으면 고군면 연동리로 빠져나간다. 옛날에는 황조 앞바다에 대해군선단(大海軍船團)이 몰려와 곧 상륙하려함을 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의논하여 허새비를 많이 만들어서 이 고개에 일렬로 세워 아군 군병이 많이 있는 것으로 위장전술을 써서 겁에 질린 적병이 단념하고 돌아가서 마을이 무사했다고 전래(傳來)한다. 지금도 그 재를 허새비재라 부른다.
 
◈복수(復讐)하는 조도(鳥島) 구렁이 옛날 조도 어부가 집에 들어온 큰 구렁이를 잡아 죽인 일이 있었다. 그뒤 이 어부는 보통 때와 같이 배를 몰아 출어(出漁)를 하여 그물을 늘어뜨려 고기잡이를 하던 중 하도 많이 고기가 그물에 걸려서 좋아라 하며 끌어 올리다 보니 과연 고기도 많았으려니와 자기가 잡아 죽였던 구렁이와 똑같은 구렁이가 여러마리 섞여 무섭게 덤비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그물을 잘라 버리고 겨우 목숨만 살아 돌아왔다. 이것이 여러사람에게 알린바 되어 지금도 조도 사람들은 구렁이를 잡아 죽이는 것을 아주 꺼리며 방에 침입한 구렁이도 죽이지 않고 몰아 낸다고 전한다.
 
◈심술을 일깨운 상골산의 쌀굴 군내면 금골마을 뒤편 금골산 언저리에 큰 절이 있었고 그 산 중턱에 큰 굴이 하나있었는데 늙은 스님과 상좌 한 분이 살았는데 암석벽의 구멍에서 매일 두 사람 분의 식량이 나와 아무 곤란없이 지냈다고 한다. 이 암자에는 옛부터 아무리 쌀이 부족해도 욕심내지 말고 나오는 쌀만 먹고 살아야 했다. 그러던중 의외로 많은 손님이 찾아와 쌀이 부족하여 당그래자루로 구멍을 쑤시었다. 그랬더니 당그래자루만 깊이 들어가고 그 후로는 쌀 한톨도 나오지 않았다 한다. 현재도 그 굴에 가면 마애여래좌상의 큰 조각이 있고 깊은 자욱도 역역히 남아 있다.
 
◈ 가다선 지심뫼(분류:구비문학/설화, 행사시기:군내면 용장리) [상세보기]
◈ 이씨보(李氏洑, 분류:구비문학/설화, 행사시기:군내면 월가리) [상세보기]
주민의 종교단체
■ 종교단체 현황(1988년)
◈개신교 교회 101개소, 교직자 111명
 
◈천주교 성당 13개소, 교직자 11명
 
◈불교 사찰 15개소, 교직자 20명
 
◈유교 교직자 10명
 
◈원불교 교당 1개소, 교직자 1명
 
◈기타종교 교당 2개소, 교직자 2명
 
주민의 생활권역
◈진도읍권 현재의 진도읍은 왜구 피난길을 떠난 1350년 이후 87년만에 주민입도가 허락된 1437년부터 군행정을 다시 시작한 재설군 천읍지이며 군치소 564년의 역사를 지녔다. 제반 주민생활의 중심지로 전체인구의 약 50%가 집중되어 있다. 2, 7일 5일마다 장날이 있어 5개면 주민들도 읍장을 이용하는 편이며 외지와 연결짓는 교통의 중심이 되면서 각종 여론과 군민의식을 주도해 가고 있다.
 
◈석교, 10일시권 열흘장터로 성장한 십일시는 진도 서남부에 해당하는 임회면과 지산면 일부와 조도면 주민도 이용해 왔다. 요즘은 면소재지 석교리와 맞닿아 석교천을 끼고 하나의 공동체 마을 형태가 되었다. 서남해변 팽목리는 조도 여러 섬들을 연결짓는 부두로 간접적 기여를 해왔다.
 
◈5일시권 5일시는 과거 진도현의 치소였던 고성리 인근에 조성된 군내, 고군면 주민들의 장터로부터 확대되어 이 지역 경제 중심지 역할을 담당한다.
 
◈돈지권 진도의 4대 생활권인 의신면 돈지리는 과거 의신향이 있던 곳으로 돈지리와 향교리가 한마을 형태가 되어 장이 서는 등 의신면 일대의 생활 중심지 역할을 꾸준히 감당해 왔다.
 
지역의 별미음식
◈간재미회 진도의 서촌 별미로서 부드럽고 쫄깃 쫄깃한 맛이 일품이며 특이한 감칠맛이 나며 특히 가을철 별미로서 각광을 받고있다.
 
지역의 토산품과 특산품
◈전통 홍주 애주가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진도홍주는 지초 약효성분이 들어있으며 40도 이상으로 붉은 빛깔이 특이하며 맛이 좋아 널리 평가받고 있다.
 
◈장수의 명약 진도구기자 진도구기자는 고혈압과 저혈압에 좋은 치유효과가 있으며 눈을 밝게하고 신체의 모든 기능을 원활케 하므로 장기복용하면 장수하는 명약으로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다.
 
 
 
구기자
◈검정약쌀 진도 특유의 해양성 기후와 유기질이 풍부한 간척지에서 많은 일조량을 받아 자란 간척지 쌀과 검정약쌀은 밥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이밖에도 진도대파와 돌미역·돌김 등이 진도의 특산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4. 예술문화자원
 
지역문화예술행사
◈진도영등축제 [상세정보] http://www.chindo.chonnam.kr 주최:진도군, 음력 2월말에서 3월초, 진도군민 축제·민속민요공연등
 
◈남도민요 전국경창대회 [상세정보] 주최:진도문화원, 매년 10월, 전야제, 학생부, 신인부, 일반부, 명창부 경연
☎ (061)542-1108
 
 
 
남도민요경창대회
지역문화예술단체
◈예총 진도지부 회원수 210명, 진도읍 동외리 1189 ☎ (061)542-7949
 
◈군립민속예술단 회원수 22명, 진도읍 성내리 64-1 ☎ (061)540-3225
 
◈진도민속놀이 진흥회 회원수 120명, 진도읍 성내리 ☎ (061)542-4717
 
◈차첨지놀이 보존회 회원수 40명 의신면 향교리 ☎ (061)543-4125,
 
◈진도 닻배놀이 보존회 회원수 40명, 의신면 돈지리 ☎ (061)543-4234
 
◈전통민속보존회 회원수 60명, 의신면 돈지리 ☎ (061)543-4135
 
◈진도아리랑보존회 회원수 35명, 의신면 돈지리 ☎ 0632-543-4036
 
◈소포걸군농악보존회 회원수 40명, 지산면 소포리 ☎ (061)543-2234
 
◈진도농악보존회 회원수 45명 고군면 오산리 ☎ (061)543-1175 ,
 
◈도깨비굿보존회 회원수 40명, 진도읍 서외리 ☎ (061)544-3110
 
지역언론기관
지역정론 정립 및 지역현안에 대한 대안제시 매체의 역할을 하고있음
 
◈진도군민신문 진도읍 성내리 46-9 ☎ (061) 544-9600
 
◈예향진도신문 진도읍 남동리 ☎ (061)543-0522
 
◈시사주간신문사 진도읍 동외리 821-4 ☎ (061) 544-1183
 
◈서남신문사 진도읍 동외리 821-4 ☎ (061)544-0544
 
문화예술·연구기관
◈전남대학교 사회교육원 진도 캠퍼스 교수 25명, 학생 512명, 수료예정일은 매년 8월하순. 진도읍 동외리 1194-1 ☎ (061)540-3250
 
지역문화예술 시상제도
◈진도군민의 상 헌신적인 봉사정신으로 진도군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자나 문화예술의 창달, 군민화합, 미풍양속의 선양 등 군민의 표상이 될만한 수범을 보인 개인 또는 단체에게 시상된다. 군민의 날에 지역사회개발상, 교육문화상, 질서도의상, 안보상을 군수가 시상한다.
 
지역출신 예술인
◈소리꾼 박옥진, 박보아, 신영희, 이임례, 조공례 ,강송대
 
◈악사 박덕인, 박종기, 박동준, 김득수, 채다인, 박진섭
 
◈서화가 옥산 김옥진, 백포 곽남배, 우남 이옥성, 금봉 박행보, 옥전 강기주, 치련 허의득, 전정 박항환
 
◈문학 박진원, 박봉우, 김현, 석가정, 곽의진
 
지역소재 예술작품
◈「꿈이로다 화연일세」 소설가 곽의진의 장편소설, 진도출신 남종화가 허유선생의 일대기 전5권
 
 
 
 
 
 
5. 관광, 여가문화자원
 
관광자원
◈진도대교 정유재란때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12척의 배로 왜선 330여 척을 무찌른 명량대첩지인 울돌목 위에 놓여진 우리나라 최초의 사장교로 1984년에 준공되었으며 특히 낙조와 야경이 아름답다.
 
◈남도석성 둘레 610m, 높이 4∼6m의 석성이 있고 남문 앞 하천에는 홍교 2곳과 병사들의 조련장이던 활터가 남아있으며 선박의 통제를 겸한 망루터가 남아 있어 서남해의 해상보호의 요새였음을 알 수 있다.
 
 
 
남도석성
◈운림산방 상록수림인 첨찰산이 자리잡은 운림산방은 조선말기 남화의 대가인 소치 허유 선생이 말년에 기거하던 화실의 당호이며 운림산방, 쌍계사, 상록수림이 어우러진 이곳을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위치
 
 
 
운림산방
◈용장산성 군내면 용장리에 위치한 용장산성은 삼별초가 정통 고려정부임을 주장하면서 항몽전을 벌였던 곳으로 성의 둘레가 13㎞의 산성안에 계단식의 건물지와 우물 2개소가 남아있고 석축의 웅장함을 보여주고 있다.
 
 
 
용장산성
◈관매도 해수욕장 조도면 관매도에 위치한 관매도 해수욕장은 3㎞에 이르는 백사장의 고운 모래와 청정해역이 알려져 가족단위 피서지로 좋은 곳이며 주위에는 3백년 이상되는 송림이 3만여 평 우거져 있다.
 
◈백조도래지 매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겨울철에 진도읍 수유리와 군내면 덕병리 해안일대 및 둔전저수지에 백조떼가 몰려와 장관을 이루며 이곳에는 두루미 청둥오리 등 많은 조류들이 찾아온다.
 
◈신비의 바닷길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 2.8㎞의 바다가 매년 음력 2월말에서 3월초에 조수간만의 차로 해저의 사구가 40m폭으로 물위로 드러나 바닷길을 이루는데 이때 영등축제가 열려 진도의 민속민요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관광코스
◈제1코스 진도대교 → 강강술래터 → 남도석성 → 남진미술관 → 문화예술관 → 운림산방 → 용장산성 → 이충무공전첩비 → 신비의 바닷길
 
◈제2코스 진도대교 → 용장산성 → 이충무공전첩비 → 진도문화예술회관 → 운림산방 → 상록수림 → 남도석성 → 남진미술관
 
관광쇼핑
◈진도홍주·구기자·검정쌀 진도관내 농협연쇄점 ☎ (061)544-2222
 
관광안내소
◈진도군청 문화관광과 진도읍 군청 내 ☎ (061) 540-3221
 
◈진도대교 진도대교 관리사무소 ☎ (061)540-3642
 
◈낚시터 읍내 각 낚시점에서 안내 (갯바위낚시, 선상·숭어·민물낚시)
 
여가시설
◈청소년 수련관 진도 청소년 수련관은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가계해수욕장 내에 있으며 청소년의 해양활동, 전통문화활동, 문화유적지 테마(수학)여행등을 할 수 있는 수련활동의 장으로 청소년을 위한 전문 수련시설. 위치는 고군면 가계리 ☎ (061) 540-3631
 
 
 
 
 
 
6. 문화시설자원
 
박물관
◈문화예술관 1990년 4월 개관 하였으며 지하 1층 지상 2층 연건평 347평으로 본군 출신 현존 작가 작품 89점과 고인이 된 본군 출신 유명작가 14점, 민속자료(국가, 도지정)121점, 유물 124점이 전시되어 있다. 성내리 64-1에 위치 ☎ (061)540-3549
 
미술관
◈남진미술관 진도읍에서 남서쪽방면으로 8㎞지점인 임회면 삼막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고장출신 서예가 장전 하남호 선생이 사비를 들어 800여평의 대지위에 100여평의 본가, 연원관, 양서제와 150여평의 지상 3층 미술관을 건립하여 국내에서 보기드문 서예, 동양화, 서양화, 도자기 등을 전시하고 있다. 임회면 삼막리, ☎ (061)543-6962
 
공연장
◈향토문화회관 매주 토요일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2시간여 동안 우리고유의 전통민속을 재연함으로써 우리문화를 새롭게 인식하고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자 진도의 인간문화재와 전수생들의 민속공연이 펼쳐진다. 진도읍 동외리 1194-1, ☎ (061)540-3541
 
전수회관
◈무형문화재 전수관 씻김굿, 다시래기, 강강술래, 들노래 등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를 전수하고 연습하는 시설로 진도읍 성동리에 위치, ☎ (061)542-4717
 
문화의 집
◈진도 문화의 집 향토문화회관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156평 규모로 문화관람실, 문화창작실, AV감상실, 비디오감상실, 무용연습실, 정보자료실, 유아놀이방, 독서실, 인터넷 부스 등을 갖추고 있다. 진도읍 동외리 1194-1, ☎ (061)544-4380
 
문화원
◈진도문화원 진도읍 교동리 545-2, ☎ (061)543-1108 원장 박문규
전라남도 진도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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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