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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홍성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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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의 역사문화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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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01:00) 
◈ 홍성군의 역사문화자원
◈ 역사적 사건과 현장 - 남북세력의 각축장 (홍성은 후백제의 견훤과 고려 왕건이 남과 북에서 서로 세력 확장을 위해 다투던 경계지역에 위치해 많은 전란을 겪은 지역이다.), 동학군전투와 항일의병 전투지 (홍성은 1894년에 동학혁명군의 전투지였으며, 1906년에는 항일의병전투가 발발했던 곳이다.)
목   차
[숨기기]
 

1. 역사문화자원

 
 

1.1. 역사적 사건과 현장

◈ 남북세력의 각축장
홍성은 후백제의 견훤과 고려 왕건이 남과 북에서 서로 세력 확장을 위해 다투던 경계지역에 위치해 많은 전란을 겪은 지역이다.
 
왕건은 서기 934년 3월에 유금필과 함께 충남의 운주(홍성)를 공격하여 운주성을 함락시켰다.
 
고려가 운주(홍성) 공략에 성공하자 웅주(공주) 이북의 30여 성이 자진 항복해와 현재 충청남도의 대부분이 고려의 판도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보다 앞서 927년에는 왕건이 운주(홍성)성주 경준(競俊)의 군대를 성하에서 패배시켰다. 견훤이 신라왕토를 침입하여 경애왕을 죽이자 왕건은 신라를 도왔으나 겨우 목숨만 살아났다. 그러나 경순왕 4년의 전투 이후 경북을 손에 넣은 왕건은 경순왕 6년(932)에 일모산성을 함락시키고 2년 뒤에는 운주성에 군사를 진주시켰다.
 
◈ 동학군전투와 항일의병 전투지
홍성은 1894년에 동학혁명군의 전투지였으며, 1906년에는 항일의병전투가 발발했던 곳이다.
 
외세에 항거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많은 피를 흘린 고장이다. 지금은 조양문이 그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동쪽을 향해 우뚝 솟아있다.
 
 
 

1.2.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보우국사(普愚國師, 1301∼1382)
고려 공민왕 때의 명승, 홍성군 양근면 대원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13세 때 출가하여 불도(佛道)에 입문하고, 19세때에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는 진리를 깨닫고, 46세 때에는 원나라에 건너가 석옥청공(夕屋淸珙)이라는 고승에게 불법을 배우고 돌아왔다. 그를 따르고 본받고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공민왕은 그를 불러 가까이에 머물게 하고 싶었다. 두번씩이나 간청하는 왕의 부름에 못이겨 봉은사(奉恩寺)에서 설법하고 승려 최고의 직함인 국사가 되었다. 공민왕의 보우국사에 대한 예우는 극진하였고, 그의 향리인 홍주(洪州)를 목(牧)으로 승격시키기까지 하였다. 지금도 그의 영정과 비각이 봉은사에 보존되어 있다.
 
최영(崔瑩, 1316∼1388)장군과 성삼문
홍북면 노은리는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무민공 최영(武愍公 崔瑩)과 조선왕조 세종(世宗)의 사육신 중 한 분인 매죽헌 성삼문 학사(成三問 學士)가 출생한 곳이다.
 
노은리 삼봉산정(三峰山頂)에 있던 무민공의 사우는 어느 때 철회되었는지 기록이 없고 매죽헌을 배향한 노은서원도 없어지고 위패를 모신 노은단에 향화만 갖추고 있다. 두 분이 모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직계 후손이 없는 것은 같은 운명이다.
 
성삼문(1418∼1456)
세종 20년 1438에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고, 1447년에 문과 중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집현전학사 수찬(修撰)·직집현전(直集賢殿)으로 올라갔다. 1442년에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고, 세종의 명에 따라 『예기대문언독(禮記大文諺讀)』을 펴냈다. 세종이 훈민정음 28자를 만들 때에 정인지(鄭麟趾)·최항(崔恒)·박팽년(朴彭年)·신숙주(申叔舟)·이개(李塏) 등과 함께 이를 도왔으며, 1446년 10월 9일에 역사적인 훈민정음을 반포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세조 때 역신으로 몰려 삼족이 죽음을 당했고, 숙종때 복권되어 영조때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충문공(忠文公)의 시호를 받았다.
 
◈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1879∼1944)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 생가가 있어 성역화가 진행중이다. 그는 불교유신운동을 전개한 승려였고, 「님의 침묵」을 지은 시인이었으며, 기미년 3·1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의 주동적 인물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애국운동가였다. 66세 때인 1944년 5월까지 일제와는 추호의 타협도 없었고, 청빈한 생활을 하였다. 망우리에 묘지가 있고, 탑동공원에는 「용운당대선사비」가 있다.
 
김좌진(金佐鎭, 1889∼1930)
청산리(靑山里) 대첩의 총사령관이었던 백야(白冶) 김좌진 장군은 갈산면 향산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애국계몽 및 개혁운동을 전개하다 왜경에 잡혀 3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난 뒤 만주로 망명하여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총사령관에 취임(30세 때)하여 사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1920년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대파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1930년 고려공산당 청년당원에게 암살 당할 때까지 조국독립 투쟁에 헌신하였다. 갈산면에 생가가 보존되어 성역화되었다.
 
한성준(韓成俊, 1874∼1941)
우리나라 전통춤의 집대성자로서 유명한 한성준은 홍성군 갈산면에서 태어났다.
 
 
 

1.3. 내 고장의 문화유산

 
■ 보물
◈ 마애석불 제355호, 홍북면 신경리 산 81
◈ 고산사 대광보전 제399호, 결성면 무량리 492
◈ 당간지주 제538호, 홍성읍 오관리 297-1
◈ 용봉사 영산회 괘불탱 제1262호, 홍북면 신경리 산 31
 
■ 사적
◈ 홍주성(조양문, 홍주아문, 안회당, 여하정) 제231호, 홍성읍 오관리
 
■ 중요무형문화재
◈ 옹기장 제96호, 갈산면 동성리
 
■ 중요민속자료
◈ 조응식 전통가옥 제198호, 장곡면 산성리 309
◈ 엄찬고택 제231호, 홍북면 노은리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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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