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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옥천군 충청북도 옥천군 정보
충청북도 옥천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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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023년 12월 1일
2005년 6월
2005년 6월 3일
옥천군의 어제와 오늘
about 충청북도 옥천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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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3. 01:02) 
◈ 옥천군의 어제와 오늘
1. 내 고장의 어제와 오늘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갈라지는 중간에 위치하고 금강상류의 맑은 물이 깊은 계곡을 이루며 곳곳에 절벽을 이루어 자연환경이 매우 아름다운 옥천군은 대부분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쪽에는 천금산(千金山, 465m), 팔음산(八音山, 762m)이 솟아 있고 서쪽에는 환산(環山, 581m), 마성산(馬城山, 497m) 남쪽에는 월이산(月伊山, 551m) 북쪽에는 금적산(金積山, 652m)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지질은 최고기 지층인 옥천계의 변성퇴적암이 분포되어 있고, 기후는 내륙에 위치한 관계로 한서의 차가 큰 대륙성 기후의 특색을 나타낸다. 옥천군에 산재해 있는 고인돌과 선돌을 보면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추측되며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경계지역으로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민은 주로 농업과 상공업에 의존하는데 포도를 주종으로 하며 매년 2백억원의 농가소득을 올린다. 또한 옥천우시장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며 교통은 사통팔달의 요지를 이루고 있다.
<옥천군 연표>
시 대
연 대
주 요 사 항
 
고대
선사시대
군 전체에서 고인돌, 선돌, 무문토기 등이 발견됨.
 
삼국
시대
486
신라 소지왕 8년, 굴산성 개축, 신라 때, 고시산군·굴산현·소리산현·아동혜현.
 
통일
신라
757
신라 경덕왕 16년, 관성군·기산현·이산현·안정현으로 개칭
 
고려
고려초
기산현은 청산현으로 개칭. 상주에 속하였으며, 안정현은 안읍현로 개칭.
 
1018
현종 9년, 관성군·이산현·안읍현이 경산부에 소속.
 
1143
인종 21년, 관성군이 현으로 강등, 현령파견.
 
1182
명종 12년, 관성현 폐지.
 
1313
충선왕 5년, 관성현이 옥주로 승격.
 
1390
공양왕 2년, 청산현에 감무를 둠
 
조선
1413
태종 13년, 옥천군으로 개칭.
 
1414
태종 14년, 황간·청산를 합하여 황청현으로 하였다가 분리.
 
1607
우암 송시열, 구룡촌에서 태어남.
 
1895
공주부 옥천군·청산군으로 개편.
 
1896
충청북도 옥천군·청산군으로 됨.
 
근대
1914
청산군이 옥천군에 통합. 학산면 양산면 용화면이 영동군에 이속.
 
1919
3월27일, 이원장터에서 3·1만세운동.
 
1929
이내면·이남면을 합쳐 이원면으로, 청서면·청남면을 합쳐 청성면으로 개편.
 
1949
옥천면이 읍으로 승격.
 
 
 
 
 
옥천∼안내 간 벚꽃길
 
 
 
 
2. 역사문화자원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김문기(金文起) 1399년(정종 1) 이원면 백촌리에서 태생, 조선 초기의 문신 초명은 효기(孝起), 자는 여공(汝恭), 호는 백촌(白村), 시호는 충의(忠毅). 사육신의 한사람.
1426년(세종 8)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으며 1430년 예문관 검열, 1436년 사간원좌헌납이 되었고, 1445년 함길도 도진무에 임명되었다. 1448년 겸지형조사에 임명되었고, 1450년 병조참의, 1451년 함길도 도관찰사에 부임하여 안변·정평 등지에 둔전(屯田)을 설치할 것을 건의했다. 1455년 세조로부터 차사원(差使員)과 힘을 합쳐 온성의 읍성을 축조하는 공사를 마치라는 유시를 받고 이를 수행하는 공을 세웠다. 그해 공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1456년 단종 복위운동에 가담, 김질의 밀고로 처형되었다.
그뒤 1791년(정조 15) 단종을 위해 충성을 바친 신하들에게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을 편정할 때 그는 계유 옥사 때 사절한 민신(閔伸 이조판서), 조극관(趙克寬 병조판서)과 함께 삼중신(三重臣)이란 칭호가 내려졌다.
그의 사실을 기록한 『백촌유사(白村遺事)』 3책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고,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의 섬계서원(剡溪書院)에 향사되었다.
1977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김문기를 사육신의 한사람으로 현창(顯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송시열(宋時烈) 1607년(선조 40) 이원면 구룡리에서 출생. 조선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 12세때 아버지로부터 『격몽요결』, 『기묘록』 등을 배우면서 주자·이이·조광조 등을 흠모하기도 했다.
27세 때 생원시에서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를 논술하여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1635년에는 봉림대군(鳳林大君 : 후일에 효종)의 사부로 임명되었으나 병자호란으로 10여 년간 일체의 벼슬을 사양하고 초야에 묻혀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1649년 효종이 즉위하여 세자시강원진선(世子侍講院進善)·사헌부장령 등의 관직을 주어 벼슬에 나갔다.
이때 그가 올린 「기축봉사(己丑封事)」는 그의 정치적 소신을 장문으로 진술한 것인데, 그중에서 특히 존주대의(尊周大義)와 복수설치(復誰雪恥)를 역설한 것이 효종의 북벌정책과 부합돼 북벌계획의 핵심인물로 발탁되는 계기가 되었으나 김자점(金自點)일파가 청나라에 밀고하여 조정에서 물러났다.
1657년 「정유봉사(丁酉封事)」를 올려 시무책을 건의하였다. 1658년 효종의 간곡한 부탁으로 이조판서에 임명되었다. 1659년 그는 거의 관직을 단념하였으며, 1668년(현종9) 우의정에, 1673년 좌의정에 임명되었을 때 잠시 조정에 나아갔을 뿐 시종 재야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선왕의 위광과 사림의 중망 때문에 막대한 정치적 영향력도 행사할 수 있었다. 1683년 노소분당이 일어나고 1689년 숙의 장씨가 아들(후일의 경종)을 낳자 원자(元子 : 세자 예정자)의 호칭을 부여하는 문제로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재집권하였는데, 이때 그도 세자책봉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제주도로 유배되었고, 그해 6월 서울로 압송되어 오던 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그러나 1694년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다시 정권을 잡자 관직이 회복되고 제사가 내려졌다. 다음해 시장(諡狀)없이 문정(文正)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정지용(鄭芝溶) 1902년 음력 5월15일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에서 아버지 연일정씨 정태국과 하동정씨 정미하 사이에 독자로 태어남. 지용의 아명은 못에서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태몽을 꾸었다하여 지용이란 발음의 한자를 맞춘 것임. 1923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9년 일본 경도의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그 뒤 모교인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였고 광복후 「경향신문」 편집국장과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조선문학가 동맹에 가까이 하였으며,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전향하여 보도연맹(保導聯盟)에 가입하였다. 6·25사변때 행방을 모름. 고교시절 박팔양과 함께 동인지 『요람(搖籃)』을 간행하였고, 대학시절에는 「카페프란스」·「바다」·「향수」 등을 발표하였다.
특히 「카페프란스」, 「슬픈 인상화」, 「學潮1호」는 전위적인 모더니즘의 실험성까지 보여주는 작품으로 시단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1930년대에는 박용철이 주재하는 「시문학」동인으로 참가했으며, 1933년에는 『가톨릭청년』지 창간에 참여, 편집에도 관여하였다. 특히 이상(李箱)을 「가톨릭청년」지에 참여시켜 작품을 발표하게 한 것도 특이할 만한 일이다.
시집으로는 『정지용시집』, 『백록담』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지용문학독본』과 『산문(散文)』, 『정지용시집』에는 89편, 『백록담』에는 33편이 수록되어 있으나 「무제」, 「바람은 부옵는데」등 상당수의 미수록 작품이 있다. 이렇듯 진정한 한국의 현대시는 그에게서 시작되었다.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등 청록파 시인들도 그의 추천에 의하여 등단하였다.
 
 
 
정지용과 그의 시비
◈육영수(陸英修) 1925년 옥천읍 교동리에서 출생. 옥천죽향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배화여자고등학교를 거쳐 1945년에는 옥천여자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 후 26세 되던해 1950년 부산에서 당시 중령이던 박정희와 결혼을 했다. 육여사는
‘벚꽃을 지고 갈매기 너훌너훌 / 거울같은 호수에 나룻배 하나 / 경포대 난간에 기대인 나와 英 / 노송은 享享 享子는 우뚝 / 복숭아 꽃 수를 놓아 구름이고야 / …… / …… /’
위와 같이 단란한 생활을 하면서 집이 절간 같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세간에 귀감이 되었다. 또한 “아버지를 위하던 나의 생활은 결혼 후 모두 남편에게로 옮아졌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나는 항상 한사람에게 정성을 다하고 사랑을 하면서 살지 않으면 못견디는 성질인가 보다” 라는 자신의 말처럼 남편에 대한 내조 뿐 아니라 공경심도 대단했다. 이러한 내조의 정신적 방향이나 임무를 첫째, 가정에 대한 정신적인 안정이고 둘째, 남편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구석을 아내가 협조하는 것이고 셋째, 남편의 건강을 살피는 것이라 여겨 실천하였다. 여사는 ‘양지회’라는 봉사활동 모임을 만들어 불우한 근로여성, 환경미화원 등을 도우며 사회의 모범이 되었고, 1년동안 15,367명이 양지회에서 여성의 자질향상과 기술을 익혀 나가기도 했다. 남달리 어린이들을 사랑했던 그는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를 창간했으며, 1970년 7월 25일 어린이회관 준공식을 가졌는데 여기에는 ‘웃고/ 뛰놀자/ 그리고 / 하늘을 보며 / 생각하고 / 푸른 / 내일의 꿈을 / 가꾸자’ 라는 어린이 예찬비가 있다. 이렇듯 여사는 많은 사람이 잊지 못하는 영부인으로 있으며 10년간 5만여건의 민원을 취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행사에서 문세광의 저격에 최후를 마쳤다.
한 나라의 대통령 영부인으로서 최고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항상 소박하고 성실한 내조로서 나머지 삶의 시간을 사랑과 봉사로 살아간 현모양처였다.
 
내 고장의 문화유산
■천연기념물
◈어름치 제238호, 이원면 이원리
 
■ 보물
◈용암사 쌍석탑 제1338호, 옥천읍 삼청리 산 51-1
■유형문화재(이하 도지정)
◈지석묘 제10호, 동이면 석탄리 산 17
 
◈용암사 마애불 제17호, 옥천읍 삼청리 산 51-6
 
◈이지당 제42호, 군북면 이백리 33
 
◈옥천향교 제97호, 옥천읍 교동리 320
 
◈청산향교 제98호, 청산면 교평리269
 
◈두암리 3층석탑 제120호, 이원면 이원리 624
 
◈청석교 제121호, 군북면 증약리 1068-3
 
◈석탄리 입석 제156호, 동이면 석탄리 206-1
 
◈옥천사마소 제157호, 옥천읍 상계리 57-2
 
 
 
옥주사마소
◈경헌당 제158호, 이원면 구룡리 산53
 
◈사서공(전식)영정 제171호, 동이면 금암리 76
 
◈중봉조헌 신도비 제183호, 안남면 도농리 926-1
 
◈경율당 제192호, 안남면 종미리 523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제193호, 옥천읍 삼청리 51-4
 
■기념물
◈척화비 제6호, 옥천읍 삼양리 4-2
 
◈후율당 제13호, 안내면 도이리 181
 
◈조중봉 묘소 제14호, 안남면 도농리 산 63-1
 
◈양신정 제29호, 동이면 금암리 76
 
◈충의공김문기 유허비 제44호, 이원면 백지리 841-1
 
◈송우암 유허비 제45호, 이원면 용방리 134-2
 
◈창주서원 묘정비 제105호, 이원면 이원리 216-7
 
■민속자료
◈청마리 탑신제당 제1호, 동이면 청마리 872-1
 
■문화재자료
◈이기윤 망북비 제15호, 동이면 평산리 733
 
◈독락정 제23호, 안남면 연주리 617
 
◈덕양서당 제24호, 안남면 도덕리 467
 
 
 
 
 
 
3. 생활문화자원
 
전통생활민속
◈탑신제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1호. 음력 정월 대보름날 마을을 지키고 평안을 빌며 질병과 악귀를 쫓아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민속신앙으로 마을에서 덕망이 높고 부정이 없는 사람을 뽑아 제관으로 선정하여 제당에서 제를 지내는데, 제주는 초헌에 이어 마을의 고령자가 삼헌을 하면 참석자 모두가 소지를 올린다. 이 탑신제는 마한시대부터 내려온 것인데 충북도에서는 유일하게 옥천에서만 원형을 그대로 전승하고 있다.
 
◈마조제 고을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음력 정월 열나흘날 지내는 기원제로 옥주문화동호회에서 고증을 통해 제를 올린다. 따라서 고을민 전체의 자발적인 참여와 신뢰속에서 행사로서의 의미보다 군민 모두의 한마당 놀이로 시행하고 있다. 초헌관에 옥천군수, 아헌관에 옥주문화동호회장이 그리고 종헌관은 우리지역에서 덕망있는 사람을 추천하여 제관으로 하고 있다.
 
 
 
탑신제
옥천방언
 
표준어
방 언
 
가슴
가심
 
가시랭이
까끄랭이
 
깔, 쇠풀
 
다슬기
도슬비
 
반딧불
개똥불
 
빈대떡
 
소꿉장난
바꿈사리
 
적당히
엥간이
 
장독대
장꽝
 
 
 
 
구전설화
◈청석교전설 강감찬(姜邯贊) 장군이 경주부윤으로 부임하는 도중에 이 다리를 건널 때 고을 백성들이 지나가는 장군에게 모기를 없애줄 것을 간청하였다. 이에 장군은 모기떼를 향하여 물러나지 않으면 종족을 멸종시키겠다고 호통을 쳤더니 그 뒤 이 곳에는 모기가 없어졌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떠내려온 산 청성면에 있는 독산(獨山)에 관련한 전설로 이 산은 원래 속리산 법주사에 있던 산이었는데 홍수가 나서 이곳으로 떠내려 왔다. 따라서 법주사에서는 해마다 독산의 지세(地稅)를 받아갔는데, 어느 젊은 현감이 부임하자 독산이 필요없으니 다시 가져가라고 하여 그 뒤로 지세를 물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탑산골 전설 안내면에 탑산골이라고 있다. 옛날에 용문산에 사는 용과 뱀이 싸웠는데 뱀이 힘이 달려 ‘피신골(용문재)’로 도망을 치고, 용은 ‘승지골’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이 전설로 절과 석탑을 세웠는데 어찌나 빈대가 많은지 승려들이 살 수 없어 결국 폐사하고 말았다고 한다.
 
◈김옥균과 명월암(明月岩) 3일천하의 김옥균이 이곳에 내려오면서 명월이라는 기생을 데리고 내려와 정치적 야망을 키우며 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명월은 자기로 말미암아 훌륭한 장부의 나래를 펴지 못하게 할 것이라 우려한 나머지 강물에 투신하였다. 다음 날 김옥균은 명월의 장사를 지내준 후 청풍정 아래있는 바위절벽에 ‘명월암’(明月岩)이라는 세글자를 새겨놓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전한다.
이 밖에 하늘나라에서 귀양온 공주와 장수의 비극적 사랑이 얽혀있는 문바위와 장수발자국 전설과 비극적 결말이 아니라 오누이간의 우애에 의하여 행복한 결말을 이끌어내는 오뉘힘내기 전설, 산의 혈을 자르기 위하여 쇠를 박았다는 철봉산 전설, 백제와 신라의 격전지를 증거하는 장군묘 전설 등이 있다.
 
주민의 종교생활
 
종교
교당
교직자
 
개신교
76
94
 
불교
41
42
 
천주교
6
8
 
유교
2
2
 
기타
7
7
 
132
153
 
 
 
 
지역의 별미음식
◈도리뱅뱅이 금강에서 잡아온 손바닥크기만한 싱싱한 피라미를 내장을 깨끗하게 손질한 후 노릇노릇할 정도로 튀긴다. 기름을 따라내고 양념고추장을 골고루 바른 후 다시 튀긴다. 비린내가 없고 고소하며, 매콤하다. 뼈채 먹으니 칼슘이 풍부하며 과자를 먹는 듯 맛이 담백하다.
·삼일식당 : 동이면 조령리 ☎ (043)732-3467
·부산식당 : 동이면 조령리 ☎ (043)732-3478
 
◈생선국수 민물고기를 중불에서 4∼5시간 정도 푹 삶은 다음,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면 체에 걸러 가시를 발라낸다. 국물에 고추장을 풀어 간을 하고 국수를 넣어 삶은 다음 파, 호박, 깻잎, 미나리, 풋고추를 썰어 넣고 끓인다. 맛이 구수하고 단백질, 칼슘, 비타민이 풍부하다.
·선광집 : 청산면 지전리 ☎ (043)732-8404
·금강집 : 청산면 지전리 ☎ (043)732-8083
 
 
 
생선국수
◈올갱이국 금강에서 잡은 것만을 사용하는데, 2∼3일 정도 깨끗한 물에 담가서 불순물과 모래 등을 제거하고 끓는 물에 20분 정도 살짝 익힌다. 속 알맹이를 빼서 푸르스름한 국물에 된장, 고추장, 마늘로 양념을 한다. 여기에 적당한 부추를 넣고 끊인다. 시원하고 깔끔한 국물맛에 쌉싸르한 향기가 개운하다.
 
 
 
 
 
 
4. 예술문화자원
 
지역문화예술행사
◈지용제 [상세정보]
·개최시기 : 매년 5월 15일경
·개최장소 : 옥천군 일원
·주최·주관 : 옥천문화원, 지용회
·행사내용 : 현대 시문학의 거성 정지용 시인을 추모하고 문향(文香)을 사랑하는 후예들의 전국적인 한마당 놀이로 지용포럼, 지용백일장, 지용휘호대회, 시낭송, 무용, 열린음악회, 포도아가씨 선발대회 등을 열고 뒷풀이로 시인과의 만남 시간을 갖는다.
 
 
 
지용제행사
◈중봉충렬제
·개최시기 : 매년 9월 중순경
·개최장소 : 옥천군 일원
·주최·주관 : 옥천문화원
·행사내용 : 임진란 때 국가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에서 7백의병과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마친 조헌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중봉선생추모제향, 기의추모제, 횃불행진 및 축등행렬, 의장대 시연, 차전놀이, 씨름대회, 농악경연 등 다채로운 행사를 실시한다.
 
 
 
중봉충렬제
◈마조제
·개최시기 : 매년 음력 정월 열 나흘날
·개최장소 : 옥천의 진산 마성산 기슭
·주최·주관 : 옥주문화동호회
·행사내용 : 고을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음력 정월 열나흘에 초헌관에 옥천군수, 아헌관에 옥주문화동호회장, 종헌관에 우리 지역에서 덕망있는 분을 추천하여 제관으로 하며 주민 모두가 참여한다.
 
◈연날리기 대회
·개최시기 : 음력 2월
·개최장소 : 옥천공설운동장
·주최·주관 : 옥천문화원
 
◈묘목축제
·개최시기 : 매년 3월 중
·개최장소 : 이원초등학교, 이원면사무소 일원
·주최·주관 : 옥천군, 이원과수묘목협회
·행사내용 : 농가소득을 올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연구 노력하여 고품질의 우량묘목을 생산. 인터넷 쇼핑시대를 맞아 열리는 묘목축제는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분재·수석전시회, 게이트볼대회, 묘목나누어주기, 민속놀이, 묘목장사씨름대회, 접목왕 선발대회 등을 갖는다.
 
◈연변지용제 [상세정보]
·개최시기 : 매년 8월 중
·개최장소 : 중국 연변
·주최·주관 : 옥천문화원
·행사내용 : 정지용 문학상 시상식을 열어 지용후예들과 더불어 연변 조선족과의 문화와 음악 교류를 갖기 위해 매년 시행하고 있다.
 
지역언론기관
◈옥천생활뉴스 옥천읍 금구리 59-3 ☎ (043) 731-9964, 731-9965 www. okchonlife.com
 
◈옥천신문사 옥천읍 문정리l 234 ☎ (043)731-8111, 733-7878 www. ok-news.co.kr
 
◈한국통신 옥천전화국 옥천읍 금구리 139-2
☎ (043)731-0200, 732-0200, 733-0200
 
◈옥천유선방송 옥천읍 삼양리 218-6
☎ (043)732-1123
 
지역연고 예술인
◈김덕수 군북면 막지리 태생인 그는 아버지를 따라 남사당패에 가입, 어렸을 때부터 재능을 보인 사람이다.
민요·피리·판소리 등 기예의 모든 것을 배웠고 박귀희선생 수양아들로 ‘민속가무단’을 이끌었으며, 침체된 전통문화의 물꼬를 트는데 헌신적인 노력을 했다. 또한 몬트리올 올림픽·박람회 등 국가행사를 도맡았으며, 지금은 세계적 교향악단과 협연 등 사물알리기에 30여년을 헌신하고 있다. 현재 (사)한울림을 창단하고 한해 150회의 공연을 국내외에서 갖고 있다.
 
지역문화예술단체
◈예총옥천지부 옥천읍 문정리 424-1(청소년수련관) ☎ (043)731-0539
E-Mail SIM0539@kt. co. kr
 
◈(사)민예총 남부지부 옥천읍 금구리 18-1
☎ (043)731-2783
 
지역소재 예술작품
◈「향수」 정지용 시, 김희갑 작곡, 이동원 노래.
이 노래는 정지용시인의 시 「향수」를 노래한 것으로 주옥같은 시어와 마음에 와 닿는 내용으로 전국민이 즐겨 부르고 있다.
 
지역문화예술 시상제도
현재 군내에서 5년이상 거주한 사람으로 학문, 예술, 문화, 체육,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현저한 자를 발굴, 매년 중봉충렬제 때 군민대상을 수상한다.
 
 
 
 
 
 
5. 관광, 여가문화자원
 
관광자원
◈장용산 휴양림 군서면 금천계곡 주변의 절경과 맑고 깨끗한 물을 자랑하는 이곳은 야외수영장 및 넓은 주차장과 각종 편의시설을 갖춰 인근에서 관광객이 자주 찾는 곳으로 자연속에서 휴식을 취하기 안성마춤인 곳이다.
군서면 금산리에 위치한 장용산 휴양림은 IC에서 15분 거리에 있으며 통나무집이 있어 이를 이용할 수 있으며 삼림욕을 할 수 있다. 등산로도 있는데 거리는 5㎞ 정도.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예약문의 ☎ (043)733-9615, 730-3474
 
 
 
장용산폭포
관광시설
◈장계관광지(대청비치랜드) 안내면 장계리에 위치한 장계관광지는 대청호반의 아름다운 절경을 이용해 향토전시관, 모험놀이 시설, 사계절썰매장, 물놀이장, 인공폭포 및 연못, 분수대, 야외취사장, 휴게소, 식당 등을 조성하여 가족 단위 관광객 및 청소년의 휴식공간으로 종합관광지이다.
예약문의 ☎ (043)733-7833∼5
 
 
 
장계유원지
관광코스
◈제1코스 청석교 → 척화비 → 정지용생가 → 옥천사마소 → 옥천향교 → 석탄리입석 → 지석묘
 
◈제2코스 백촌김문기유허비 → 송우암유허비 → 두암리3층석탑 → 용암사마애불 → 용암사쌍석탑→목조아미타여래좌상
 
◈제3코스 이기윤망북비 → 양신정 → 청마리탑신제당
 
◈제4코스 조헌선생신도비 → 경율당 → 독락정 → 덕양서당 → 향토전시관
 
여가시설
◈청소년수련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교양증진과 소질을 개발하고 체육관을 개방, 심신을 단련 건전한 인격체 육성과 청소년들이 마음놓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쉼터로 운영하고 있다. 시설로는 독서실, 예절실, 시청각실, 특별활동실 등이 있다.
문의 ☎ (043)731-4688
 
 
 
청소년수련관
 
 
 
 
6. 문화시설자원
 
박물관
◈향토전시관 조상의 얼이 담긴 유물과 유품을 전시 보존한 전시관으로 각종 부족 유물, 탑신제당 물레방아 등 전시물이 1500여점이 전시되어 있고 군민들에게 다양한 문화시설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개관시간
하절기 (3월∼10월) 09:30∼17:30
동절기 (11월∼2월) 09:30∼16:30
매주 월요일은 휴관
문의안내 ☎ (043)732-6081
 
도서관
◈옥천도서관 지상 2층 건물로 건립된 옥천도서관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주민 모두의 양식의 터전이기도 하다. 총 26,532권이 소장되어 있고 좌석은 500석으로 되어 있다.
☎ (043)731-7766
 
공연장
◈야외공연장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건립된 야외공연장은 31평 크기의 무대와 29평의 연습실, 대기실 2개소로 되어 있다. 수용인원은 2천명. 옥천읍 문정리 476에 위치에 있다.
이용문의는 ☎ (043)730-3545
 
문화원
◈옥천문화원 옥천읍 삼양리
문의 ☎ (043)733-5588, 733-9000
FAX ☎ (043)733-8004 원장 박효근
충청북도 옥천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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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