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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임란유물전시관, 고소대 안내판에 이런 오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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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대(姑蘇臺) 여수 진남관(麗水鎭南館) 여수시(麗水市)
【역사탐방】
(2022.02.14. 09:03) 
◈ 여수 임란유물전시관, 고소대 안내판에 이런 오류가
여수시 군자동 472번지에 있는 진남관(국보 제 304호)의 임란유물전시관과 고소동 620번지에 있는 고소대를 소개하는 안내판에 오류가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을 혼란케 하고 있다.
▲ 임진 정유 두 왜란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국난극복의 상징 진남관이 2015년부터 7년째 보수공사를 하고 있어 부득이하게 여수시에서 발행한 <여수시문화재도록>을 촬영했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망해루이고 망해루 오른편 뒷쪽에 성벽처럼 보이는 건물속에 진남관 임란유물전시관이 있다. 반원형 입구 두개가 출입구다. ⓒ 오문수
 
여수시 군자동 472번지에 있는 진남관(국보 제 304호)의 임란유물전시관과 고소동 620번지에 있는 고소대를 소개하는 안내판에 오류가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을 혼란케 하고 있다.
 
진남관은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 해인 1599년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 후임 통제사 겸 전라좌수사 이시언이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진해루' 터에 세운 75칸의 대규모 객사이다.
 
객사는 성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관아와 나란히 세워지는 중심 건물로, 중앙 '정청', 내부 북쪽 벽 앞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신 '함'을 둔 곳이다. 관아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날마다, 또는 나라에 국상과 같은 큰일이 있을 때 이 전패에 절하는 '향궐망배' 의식을 거행하면서 지방 관리들이 임금을 가까이 모시듯 선정을 베풀 것을 다짐하는 곳이다.
 
남쪽의 왜구를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진남관(鎭南館)'이라고 한 이 건물은 1664년 절도사 이도빈이 개축했고, 1716년 이여옥 수사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18년 이제면 수사가 다시 지었다. 이후 크고 작은 수리를 거쳤지만 1718년 중창이 현재 건물의 뼈대가 되었다.
 
▲ 국보 제 304호인 진남관은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보통학교와 중학교, 야간상업중학교로 사용되었으며 해방 후에도 학교로 사용됐다. 진남관 앞에서 학생들이 기념촬영한 모습이다. ⓒ 오문수
 
지인과 함께 '진남관 임란유물전시관'을 돌아보았다. 전시관은 진남관 바로 아래에 있다. 역사 교사였던 지인이 안내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기록에 오류가 있다"며 손으로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두 곳에 오류가 있었다. 전라좌수영을 소개하는 안내문이다.
 
\na-;▲ 진남관 임란유물전시관에 디오라마로 재현한 여수좌수영성 모습 ⓒ 오문수
 
▲ 진남관 바로 아래에 소재한 "진남관 임란유물전시관"에는 좌수영성에 대한 역사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다. 그러나 국난극복의 국보급 유물에 대한 설명문에 중대한 오류가 있다. ⓒ 오문수
 
이게 무슨 말인가? 문장을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내용을 부정확하게 적었다. 사료에 근거해 위 문장을 다시 쓰려면 이렇게 써야 한다.
 
"성종 9년(1478년) 순천도호부 내례포(현재 여수)에 왜구가 침입해 군기와 화약 등을 탈취해간 사건을 계기로 이듬해인 성종 10년(1479년)에 또 하나의 수군절도사영이 설치되었다. 이로부터 해남의 것은 전라우도 수군절도사영(전라우수영), 순천의 것은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영(전라좌수영)이라 칭해졌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내례만호진은 세종 5년(1423년) 정월부터 성종 10년 정월까지 존재하였다. 안내판 아랫줄에 기록된 '여수의 연혁'에도 오류가 있다.
 
"1931년 여수면이 여수읍으로 승격" 부분에 이어 "1949년 여수군이 여수시로 승격"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1949년 여수읍이 여수시로 승격"이라고 정정되어야 한다. 1949년 이뤄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여수군에 소속된 여수읍이 여수시로 승격되면서 여수군의 명칭은 없어지고 9개면을 관할하는 여천군으로 개편되었기 때문이다.
 
내친 김에 이웃해 있는 '고소대'를 방문했다. '고소대'는 일종의 포루로써 '장대'로 사용되었으며 충무공 이순신이 군령을 내리던 곳이다. 이곳에는 이순신 장군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 세운 '통제이공수군대첩비(보물 제571호)', 이 비석의 건립 경위를 기록한 '동령소갈비',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자 부하들이 공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세운 '타루비(보물 제1288호)'가 있다. 그런데 또 오류가 발견됐다. '고소대'를 설명하는 안내문 첫 문단이다.
 
▲ 고소대에는 보물인 통제이공수군대첩비(중앙), 동령소갈비(좌측), 타루비(우측)가 있다 ⓒ 오문수
 
고소대를 설명하는 '장대'에 사용된 한자 '장(裝)'은 '꾸미다', '화장하다'의 의미다. 따라서 고소대에 사용된 '장대'의 한자는 '장대(將臺)'로 수정해야 한다. 진남관과 좌수영성, 고소대는 나라를 구한 구국의 상징이다.
 
임란유물을 담당하는 여수시 관계자에게 오류가 있는 부분에 대해 문의했더니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하다"며 "틀린 부분을 시정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 원문보기
고소대(姑蘇臺) 여수 진남관(麗水鎭南館) 여수시(麗水市)
【역사탐방】 오문수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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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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