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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죽음은 4.19혁명 성공의 기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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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四一九革命) 여수시(麗水市) # 김용호
【사회】
(2022.03.13. 15:02) 
◈ 김용호 죽음은 4.19혁명 성공의 기폭제
고 김용호 민주 열사 62주기 추모식 열려
▲ 고 김용호 민주 열사 62주기 추모식이 여수시 교동 진남상가공영주차장(옛 민주당사)인근에서 열리고 있다 ⓒ 오문수
 
지난 9일 오후 2시, 전남 여수시 교동 진남상가 공영주차장 인근에서는 고 김용호 민주 열사 62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에는 더불어민주당 주철현 의원을 비롯한 시민 20여 명이 참석했다. 김용호 열사가 사망한 다음 해인 1961년에 추모식이 열린 이후로 추모식이 열린 공식기록이 없기 때문에 61년 만에 추모식이 열린 것이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1952년 부산 정치 파동을 일으켜 12년 동안 집권하였다. 부정 선거가 횡행하던 당시 자유당에서는 4할 사전 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3인조, 9인조 등에 의한 부정 선거를 하기 위해 일선 경찰서장의 지휘 아래 정부 산하의 전 기관원은 물론 심지어는 그 가족까지 동원하여 전국을 공포 분위기로 만들었다.
 
▲ 62년전 3월 9일 괴한으로부터 테러를 당해 사망한 김용호 열사 모습 ⓒ 오문수
 
1960년 3월 9일 오후 7시 30분 여수시 교동 동성극장 모퉁이 집(현 진남상가주차타워) 행사용 스피커 설치를 위해 민주당 여수지구당 사무실의 문을 열던 당시 민주당 문화부장 김용호(33), 선전부장 김봉채(46) 씨가 갑자기 나타난 10여 명의 괴한들로부터 쇠뭉치, 곤봉, 병 등으로 후두부와 얼굴을 폭행당해 쓰러졌다.
 
피습을 당한 민주당원 2명은 민주당 사무실과 인접한 동성극장에서 자유당 측이 민주당의 선전방송을 방해하자 스피커를 다른 방향으로 바꿔 시험 방송하려고 이동 중 괴한들에게 피습을 당했다. 그 습격 현장에는 여수경찰서 형사 2명이 있었다.
 
사건을 목격한 주변 사람들이 둘을 인근 제중병원으로 옮겼으나 김용호 부장은 눈알이 빠지는 심각한 부상을 당해 치료했지만 다음 날인 10일 새벽 0시 30분에 숨졌고, 체격이 큰 김봉채 부장은 치료 끝에 회복했다.
 
다음날인 10일, 당시 치안국에서는 범인 정인석(가명)을 체포했지만 공범 체포를 미루었다. 김용호 부장은 당시 민주당 정재완 국회의원 사위였고, 여수일보사 경리부장을 맡고 있었다. 김봉채 부장은 시의원과 여수일보의 전무였다.
 
12일 진행된 민주당 중앙당의 추도식에서 장면 박사는 "김용호 동지의 죽음은 수천 수만의 김용호 동지를 낳게 하였으며 또 앞으로 낳게 할 것이다"라고 추도사를 남겼다. 연도에는 수백명의 인파가 몰려서 김용호 부장의 죽음을 애도했다.
 
뒤늦게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자 4월 25일 광주지검 순천지청 강상운 검사는 여수경찰서 사찰계 형사주임 정모 경위를 체포하고, 4월 30일에는 여수경찰서장 조광범을 파면하였다.
 
▲ 고 김용호 열사 추모비 ⓒ 오문수
 
▲ 당시 사건을 보도한 신문 지면 모습 ⓒ 오문수
 
4월 30일에는 지명 수배 중이던 장모가 검찰에 자수하였고 은신 중이던 조광범도 자수하여 광주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검찰 수사 중에 "선거기간 중 깡패를 사들인 것은 자기뿐만 아니라 상부의 지시에 따라서 도내 전 경찰이 똑같이 저지른 행위였다"고 폭로했다.
 
"경찰서장이 40만환을 주고 여수와 광주에서 깡패를 사들였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조광범이 시인하여 사실로 밝혀졌다. "사찰계 형사 주임 정경위도 깡패들의 입을 막기 위해 자진해서 2만환을 주었다"는 말까지 털어놓았다.
 
그 뒤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귀국한 권투 사범 박모도 공범으로 수감되었고, 광주 깡패 유모, 박모, 장모, 조모, 류모 등 일당 5명도 공범으로 체포되었다. 4.19혁명이 없었다면 밝히지지 않을 수 있었다.
 
광주고등법원에서 이들에게 내린 형량을 보면 조광범 징역 7년, 정모 형사주임 징역 5년, 정모 징역 5년, 박모 공소 기각 징역 3년, 장모 공소기각 징역 5년, 조모 공소기각 징역 5년, 류모 공소기각 징역 3년, 박모 공소기각 징역 3년, 손모 공소기각 징역 3년, 류모 공소기각 형량 미상 등이다.
 
4.19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사건은 3.15 마산의거이다. 마산상고 합격자 발표를 보려고 마산에 와서 3월 15일 시위에 참여한 김주열 학생이 최루탄에 맞아 숨졌다.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 학생의 시신에 돌을 매달아 바다에 던진 것이 4월 11일에 떠올랐다. 4.19의거는 눈에 최루탄이 박힌 시신을 본 마산 시민들이 분노해서 일어난 사건이다.
 
여수 민주당에서는 1961년 3월 9일 진남초등학교 옆에 위령비를 세웠고 위령비는 도로가 생기면서 돌산 국제교육원에 임시로 옮겨졌다. 추모식을 주도한 시민감동연구소 한창진 대표의 이야기다.
 
▲ 추모식을 주도한 시민감동연구소 한창진 대표가 61년만에 김용호 열사 추모식을 연 의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오문수
 
"여수시민은 김용호 부장의 희생이 단순히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3.15 부정 선거'를 규탄하여 '3.15마산의거'를 거쳐 '4.19혁명'을 성사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습니다."
 

 
※ 원문보기
4·19 혁명(四一九革命) 여수시(麗水市) # 김용호
【사회】 오문수의 세상이야기
• 아직도 공사 중인 진남관... 아쉽습니다
• 김용호 죽음은 4.19혁명 성공의 기폭제
• 이순신 장군의 ‘약무호남시무국가’가 뜻하는 것
【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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