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지식디렉토리 참조목록 포함    백과사전 포함
  메인화면 (다빈치!지식놀이터) ::【 오문수의 지식창고 오문수의 세상이야기  
오문수의 세상이야기
자 료 실
문서 개요
2019년 1월
2019년 1월 23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만난 여성 시위대, 이유 묻자...
2019년 1월 20일
“여객선 공영제 시행,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에서 강수량이 가장 적은 지형이 빚어낸 '달의 계곡'
2019년 1월 18일
제9회 '독도사랑상' 시상식 개최
2019년 1월 17일
고산병에 통신 두절까지... '우유니 사막 여행' 쉽지않네
2019년 1월 15일
여기서는 아무렇게나 찍어도 인생사진 나옵니다
2019년 1월 14일
“어느 대학 갔니?” 물음에 “저 취업했습니다!”
2019년 1월 12일
대통령 추대 거절한 혁명가, 돈은 왜 받았을까
2019년 1월 10일
해발고도 3800m에 충청남도만 한 호수 있다
2019년 1월 7일
면도칼 들어갈 틈도 없는 '외계인이 쌓은' 석벽
2019년 1월 3일
8천만 명→1천만 명... '인류 최대 인종학살'
2019년 1월 1일
“죽어도 여한 없어” 400m 암벽호텔에서 하룻밤 보낸 부부
2018년 12월
2018년 12월 28일
세상사가 시들해? 마추픽추에 가라
종이 한 장의 틈도 없는 정교함... 어떻게 만들었을까
2018년 12월 26일
음주운전으로 나스카 유적 훼손한 트럭 운전사
2018년 12월 24일
검사만 100번... 절대 잃어버려선 안 되는 이것
'왕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리마
2018년 12월 22일
LA공항에서 랜덤체크에 걸리다
2018년 12월 18일
비행기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 호주 부부
2018년 12월 17일
“정족수만 채우고 나가는 의원들... 가만히 있을 수 없었죠”
2018년 11월
2018년 11월 9일
한민족 뿌리 찾아 떠난 몽골서부 이야기
2018년 10월
2018년 10월 26일
김문길교수... 독도뿐만 아니라 울릉도까지 들어가지 말라는 일본고문서 발견해
2018년 10월 23일
“김성도 아재! 해신이 되어 독도를 지켜주세요”
2018년 10월 19일
“총살당한 작은아버지, 사망신고 미뤘으니 과태료 내라고...”
2018년 10월 12일
유럽 '대항해 시대'로 세계사 역전, 동양은 꽁꽁 문 닫아
2018년 9월
2018년 9월 20일
동방경제 포럼에 참석했던 범선 코리아나호... 2000㎞ 항해 후 귀환
총살당한 아버지, 간첩으로 몰린 아들
2018년 9월 7일
“쌀알에 동물이 다녀요”
2018년 9월 5일
태풍지난 여수 신항 부두... 원양항해 떠나는 배들로 바빴다
2018년 8월
2018년 8월 14일
여수-블라디보스토크 잇는 1000㎞ 국제범선대회 열린다
2018년 8월 3일
일본해로 표기된 동티모르 역사교과서 동해로 바꾸기도
2018년 7월
2018년 7월 26일
몽골 울란바토르 한복판에 이태준 기념공원, 어떤 사연?
2018년 7월 24일
텐트 치다 산산이 부서진 몽골 초원에서의 낭만
2018년 7월 23일
황금산이라 불리는 알타이 산, 어머니 산이라 불리기도
2018년 7월 17일
'차별이요? 재학생 절반이 다문화출신이라 그런 거 없어요'
유라시아 고대문화의 심장, 몽골 유목문화
2018년 7월 16일
'한참'이란 말, 몽골에서 유래했다
2018년 7월 13일
몽골에서 발견한 28수 별자리, 어디서 본 건데
12일간의 몽골여행... 평생 보고도 남을 가축을 보았다
2018년 7월 11일
선배들과 함께 꿈을 찾아봅니다
2018년 7월 10일
신선이 내려왔다는 선감도, 아이들은 지옥이었다
여수에서 열린 몽골 이주민들의 나담축제
2018년 7월 9일
"'죽음의 호수'였던 시화호 되살린 건 시민단체 노력 덕분"
2018년 7월 6일
웬만한 고장은 현장에서 해결하는 몽골운전사
2018년 7월 4일
몽골여행에서 알게된 '가시내'의 의미
2018년 7월 3일
몽골 여행, 라텍스 방석은 왜 필요한가 했더니
2018년 6월
2018년 6월 18일
태조 이성계가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는 '상이암'
2018년 6월 15일
영원한 별처럼 뜻이 기려지기를 바란 소충사 28수 천문비
2018년 6월 13일
조선 5대 명산이었던 회문산, 왜 '죽음의 땅' 됐나
2018년 6월 8일
"안용복과 독도수호 나선 뇌헌 스님에 관해 3가지 오류 있다"
2018년 5월
2018년 5월 28일
"평화는 전쟁 없는 게 아니라 정의가 존재하는 것"
2018년 5월 25일
여순항쟁 희생자 위령비에 글귀 아닌 점만 찍혀있는 이유
2018년 5월 20일
왕인박사 후예들, 순천 매산여고 방문
2018년 5월 19일
차량통행 잦은 곳에 싱크홀이 발생했다... 신속한 보수공사 필요해
2018년 5월 18일
독도 떠도는 귀신 이야기, 그 속에 담긴 사연
독도 봉우리 이름 지은 주인공 "국가 소송 당했지만..."
2018년 5월 17일
독도에서 산 50년... "태풍 와도 잠만 잘자요"
2018년 5월 14일
독도에서 4박 5일, 풍랑주의보로 발이 묶였습니다
2018년 5월 12일
독도 갈매기와의 대화... 환상적이었다
2018년 5월 8일
안용복이 독도를 향해 떠난 항구는 어디일까?
일본 향해 포효하던 독도 호랑이상 이전, 과연 온당한 일일까
2018년 5월 3일
교통사고로 3년간 식물인간으로 지내다 회복돼
2018년 5월 2일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은 창씨 개명 두 번 당했다"
2018년 4월
2018년 4월 23일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2018년 4월 20일
이게 그 유명한 '오리지널' 마카다미아구나
1m 넘는 대왕조개가 내 발밑에 있다니
2018년 4월 4일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자 울릉군수 요령만 피웠다?
윷판에 이런 심오한 뜻이 숨어 있다니
2018년 4월 3일
이름이 '반창고 산악회'? 뜻 물어보니
2018년 4월 2일
전남교육감 예비후보 고석규... 단계별 고교무상교육 실시할 것
2018년 3월
2018년 3월 30일
'도무지'에 이런 끔찍한 뜻이 있었다니
임실 덕치면, 한국전쟁 당시 불이 안 난 마을이 없었다
2018년 3월 29일
왜 이 호랑이는 활짝 웃고 있을까
2018년 3월 22일
이부영 전 의원 "다음 세대에 전쟁 아닌 평화 물려줘야
2018년 3월 21일
최내우가 쓴 26권 일기를 집대성한 〈창평일기〉
2018년 3월 19일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에 이런 배경이
2018년 3월 18일
〈혼불〉 배경이 된 이웅재 고가를 아십니까
2018년 3월 16일
"독도는 일본이 강탈해간 우리 땅"
2018년 3월 14일
"정치인은 '심부름꾼', 선공후사로 노력하겠다"
2018년 3월 11일
1000인 은빛순례단 "한반도 전쟁 다시는 안돼"
2018년 3월 8일
'가짜 조선통신사 문서'로 조선-일본 모두 속인 대마도 번주
2018년 2월
2018년 2월 28일
3.1운동때 '조선인 귀무덤' 철거될 뻔했었다
2018년 2월 26일
김문길 교수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허구"
2018년 2월 20일
항일독립운동에 일생 바친 조우식
2018년 2월 13일
초등학생들의 도예작품...
2018년 2월 5일
"인자 다시는 전쟁이 나서는 안 돼
2018년 1월
2018년 1월 27일
6월항쟁 조직국장 이병철의 회한 "하늘이 준 기회 놓쳤다"
2018년 1월 3일
내 삶을 뒤돌아보게 한 이환희 여사
about 오문수의 세상이야기

【홍보】 여수넷통
여수 사람들이 함께 기록하는 여수 뉴스
2018-08-11
【홍보】
【홍보】
▣ 오문수의 세상이야기     오문수의 지식창고 2019.01.04. 13:49 (2019.01.04. 13:34)

【기사】“총살당한 작은아버지, 사망신고 미뤘으니 과태료 내라고...”

여순사건으로 아버지·작은아버지 잃은 김화자씨, 70주기 추념식서 특별법 제정 거듭 호소
▲ 19일 오전 10시 반, 여수시 중앙동 이순신 광장에서 열린 "여순사건 70주기 희생자 합동 추념식 모습 ⓒ 오문수
 
19일 오전 10시 반, 여수 중앙동 소재 이순신 광장에서는 '여순사건 70주기' 추념식이 열렸다. 추념식에는 전라남도 김영록 도지사를 비롯한 관계자와 유족, 시민 1천여 명이 참석했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14연대 소속 좌익 군인들이 제주도 봉기를 진압하라는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한 사건이다. 당시 14연대 좌익 군인들이 주도한 봉기는 여수와 순천을 점령했고 그 세력은 전남 동부지역으로 확대해 나갔다. 그 후 미군의 개입과 국군토벌대의 진압작전으로 1948년 10월 27일 봉기는 진압되었다.
 
여순사건 직후 순천, 광양, 보성, 장흥, 고흥, 화순, 곡성, 구례, 하동과 함양 일부가 점령되어 약 1만여 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당시 사건을 전후해 좌익이 경찰과 우익인사를 학살한 경우보다 진압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경우가 훨씬 많았고 잔인했다.
 
추념식이 열린 이순신광장에는 제주 4.3유족회 대표뿐만 아니라 전국각지에서 온 희생자 유족들이 참석해 자리를 메웠다. 여순사건 70주년을 맞은 이날 행사는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날이다. 4대 종단을 비롯한 교계가 참석했고 그동안 특별법제정에 반대해왔던 단체회원들도 참석했기 때문이다. 여순사건 70주년 기념추모사업 박정명 시민추진위원장의 추도사이다.
 
"가슴 아린 기억이 새록새록 해지는 가을이 어김없이 또 돌아왔습니다. 여순사건 70주년, 참으로 긴 세월 동안 가슴 먹먹한 우리의 아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도 올가을은 여느 가을보다 조금은 편하고 수월하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동안 멀어져 있었던 양측 유족이 한 자리에 만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고, 그리고 온 시민과 함께 하는 70주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뜻깊은 가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날 추도사를 하기 위해 연단에 올라온 대부분은 아픈 현대사의 비극을 떨치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여순사건 특별법제정을 촉구했다. 그러나 유족석 맨 뒤쪽에서 고개를 숙이고 수심에 잠겨있는 여성이 보여 대화를 나눴다.
 
김화자(71)씨는 여순사건 당시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를 잃은 유족이다. 71세이니 태어나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아버지 얼굴도 모르지만 아버지 사진을 지니고 다닌다. 그녀가 살아왔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 김화자씨 아버지인 고 김관두씨 모습. 일제강점기 말엽에 일본군에 끌려가 군속으로 일하다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왔다. 강제징집 당시 20세 였다고 한다. ⓒ 김화자
 
그의 아버지 김관두씨는 일제강점기말 일본에 끌려가 군속으로 일하다 해방이 되어 고향에 돌아왔다. 세상물정을 알게 된 김씨는 고향인 여수시 화양면 이목리에서 친구 8명과 함께 건국준비위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식자층이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순사건이 발발한 후 검속령이 내리자 그는 2개월 동안 외가로 피신했다. 하지만 당시 여수시내 중학교 6학년(현재의 고3에 해당)에 재학 중이던 동생 김영두씨(당시 19세)가 경찰에 검거돼 총살당했다. 총살현장을 지켜보던 이웃어른들이 전해준 말을 김화자씨가 이야기했다.
 
"눈을 가리고 손과 발을 묶어놓고는 경찰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냐고 묻자, '내 목숨보다 나 공부시키느라 고생하신 어머니한테 불효하는 게 안타깝다'고 하며 총을 6발이나 맞고 숨졌대요"
 
동생이 총살당하자 마을이장이 나서서 김관두씨를 자수시켰다. 그러나 가족이 파출소로 그를 찾아갔을 때, 김씨는 핏자국과 물고문을 당한 뒤 진흙탕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트럭에 실려 대구형무소로 끌려가 14개월 후 형무소에서 사망했다.
 
두 아들이 죽자 할머니는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켜 가출해 돌아다니다 고흥 친척집에서 객사했다. 집은 불태워졌고 김화자씨의 어머니는 재혼했다. 갈 곳이 없어진 김화자씨는 5촌 친척 집에 맡겨져 8살부터 노예같은 생활을 했다. 산과 들로 바다로 일하러 다녀야만 했다.
 
철이 들어 억울한 가족사를 안 김화자씨는 아버지의 사망이유를 조회해보았다. '병사'였다. 그녀는 진실과화해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병사에서 고문사'로 정정기재했다.
 
2014년에 제정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에게도 보상의 길이 열렸다. 이 법은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녀는 작은아버지가 억울하게 죽어갔다며 면사무소에 신고하러 갔다가 분노가 폭발했다. 담당자가 "60여년전에 돌아가셨는데 사망신고를 미뤘기 때문에 과태료를 내야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국가폭력으로 사람을 죽여 놓고 사망신고 안했다고 과태료를 내라고?"
 
분노한 그녀는 "국민목숨을 지켜줘야 할 나라가 사람을 죽여 놓고! 이게 나라냐?"며 호통치고 책상을 쳤다. 그 후 주변사람이 증인이 되어줘 사망신고를 마쳤다. "국가폭력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전국현장을 돌다가 물벼락을 맞기도 했다"는 그녀에게 여순사건특별법 제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 여순사건 당시 아버지가 희생당해 가정이 풍비박산이 된채 고아 아닌 고아가 되었던 김화자씨가 여순사건 70주기 추념식장 앞에서 기념촬영했다 ⓒ 오문수
 
- 여순사건특별법 제정을 위해 용서할 생각은 없느냐?
"젊었을 적에는 나도 총들고 가해자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하지만 또다시 피를 봐야 하고 나도 살인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제는 참고 좋은 방향으로 가야지요. 하지만 가해자들이 먼저 찾아와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근현대시절 국가폭력에 의해 집단 희생된 지역인 제주, 거창, 광주는 특별법이 제정되고 기념관이 세워졌다. 하지만 여수는 아직도 세워지지 않고 이견이 나오고 있다. 오늘도 일부 인사의 발언으로 연단이 소란해지기까지 하는 걸 보면 화해와 상생의 길이 쉽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로그인 후 구독 가능
구독자수 : 0
▣ 참조정보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 참조목록
 
 
©2004 General Libraries

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