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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수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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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문수의 세상이야기     오문수의 지식창고 2019.05.20. 11:45 (2019.05.20. 11:37)

【여행】스페인의 역사를 바꾼 이사벨 여왕의 '마지막 1분'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어린 그라나다
▲ 유럽에 현존하는 이슬람 건축 중 최고걸작이라는 평을 듣는 알함브라 궁전 모습. ⓒ 오문수
 
그라나다가 어디에? 기타 연주를 조금이라도 할 줄 아는 사람은 애절한 기타 선율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들으면 "아하! 그 노래" 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 위치한 그라나다에는 유럽의 성 모습과는 다른 형태를 지닌 알함브라 궁전이 있다.
 
서기 711년 북아프리카의 타릭은 무어족 일파인 베르베르족 1만 2천명을 이끌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과달라떼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후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킨다. 이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한 이유는 마호멧 신앙을 전하려는 열망과 톨레도에 간직되어 있다고 전해지던 솔로몬 왕의 보물을 차지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 왼쪽에 카를로스 5세 궁전이 보인다. 건물은 당시 유행하던 르네상스 스타일로 지었으며, 정사각형인 건물 외관과 달리 내부에는 원형 중정을 배치한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여름 그라나다 국제음악제가 열린다 ⓒ 오문수
 
▲ 알함브라 궁전에서 바라본 그라나다 시가지 모습 ⓒ 오문수
 
이들은 병력을 보강해 7년만에 이베리아 반도 전역을 점령한 후 732년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의 푸아티에에서 칼 마르텔의 군대와 맞섰으나 패배했다.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사상 처음으로 격돌한 이 전투에서 무어인들이 승리했다면 세계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다.
 
이들은 이후 800년 동안 이베리아 반도에 머물며 수준 높은 이슬람 문명을 건설했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의 아랍인들이 살고 있던 지역을 안달루시아(Al Andalus)라고 부른다. 로마제국 군대에 맞서 2백년이나 항전했던 스페인이 불과 7년만에 무슬림에게 점령당한 원인은 이슬람 군대의 호전적 군사력, 서고트 왕국의 분열, 유대인 등 토착주민들의 배신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슬람세력이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군사적으로 영토를 정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현지 주민들의 민심을 확보하는 아랍인들의 종교적인 면이 달랐다. 이슬람교도들은 전쟁포로들을 죽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그리스도교 성전을 파괴하지 않았다.
 
이슬람왕국을 몰아 내고 800년 만에 국토를 수복한 이사벨 여왕
 
1491년 말 스페인의 페르난도 국왕과 이사벨 여왕이 이끄는 10만 대군이 이슬람 왕국 그라나다를 포위했다. 당시 유럽의 가톨릭 국가 여왕 중 가장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했던 이사벨 여왕은 "그라나다를 되찾기 전까지 절대 군복을 벗지 않겠다"고 맹세했을 정도로 국토수복(Reconquest)에 대해 강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 5월인데도 지중해를 낀 태양의 나라 스페인의 시에라 네바다 산맥 위에 눈이 보여 깜짝 놀랐다. 시에라 네바다는 스페인어로 "눈 덮인 산자락"이라는 뜻으로 가장 높은 봉우리가 3479m에 달한다. 스키시설이 있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동계스포츠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 오문수
 
▲ 맞은편 알함브라 궁전이 보이는 알바이신 지구에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하는 사람들 모습 ⓒ 오문수
 
1492년 1월 2일, 가톨릭 깃발 아래서 이사벨 여왕은 그라나다 왕국 마지막 왕 보압딜에게서 왕궁 열쇠를 건네받았다. 이사벨 여왕은 그라나다의 대지에 입을 맞추고 페르난도 국왕과 함께 알함브라 궁전에 입성했다. 이렇게 8세기에 걸친 아라비아인의 스페인 통치는 막을 내렸다. 스페인 전쟁 사학자 '훌리오 페르난도 알바'가 이사벨 여왕이 스페인에 끼친 영향을 얘기했다.
 
8세기까지 스페인에는 서고트라는 통일국가가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아라비아인들의 침입으로 이 왕국은 멸망했지요. 그 후 스페인 왕국이 재건되기까지 800여 년 동안 국토수복 전쟁이 이어졌습니다. 15세기 이베리아 반도에는 카스티야, 아라곤, 그리고 무어인이 통치하는 그라나다 왕국이 있었습니다. 이 중 카스티야와 아라곤은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결혼으로 통일되었지요. 그리고 15세기 말 그라나다 왕국은 카스티야-아라곤 연합군에 패해 스페인에 흡수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베리아 반도에는 훗날 스페인 제국으로 불리게 된 통일국가가 수립되었습니다. 통일 후 스페인 제국은 아메리카로 뻗어나갔습니다. 그 시발점은 바로 이사벨 여왕의 후원을 받은 콜럼버스의 항해입니다.
 
이슬람 문화가 스페인에 끼친 영향
 
유럽에 현존하는 이슬람 건축 중 최고 걸작이란 평을 듣는 알함브라 궁전은 아랍어로 '붉은 성'이라는 뜻이다. 13세기 스페인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 왕조의 무하마드 1세가 성 안에 왕궁을 축성하고 그 뒤 역대 왕들이 증개축을 반복해 14세기 유수프 1세 때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이 시기 그라나다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아 7개의 궁전과 모스크, 주택, 시장 등이 들어선 대도시로 발전했다. 비록 무어인들이 스페인에 패해 아프리카로 패주했지만 안달루스의 문화와 예술은 아랍 문화의 극치를 이룬다.
 
▲ 14세기에 지어진 왕가의 여름 별궁으로 왕들이 더위를 피해 휴식하던 곳이었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눈 녹은 물을 이용해 분수와 수로를 만들어 놓아 "물의 정원"으로도 불린다 ⓒ 오문수
 
▲ 알함브라 궁전 내에 있는 야외 공연장 모습으로 사이프러스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스페인에서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성스러운 나무로 여긴다 ⓒ 오문수
 
알함브라 궁전의 백미는 헤네랄리페라고 말할 수 있다. '건축가의 정원'이란 뜻을 지닌 헤네랄리페는 14세기에 세워진 왕가의 여름 별궁이자 왕들이 더위를 피해 휴식하던 곳이었다. 정원은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눈 녹은 물을 이용해 분수와 수로를 만들어 놓아 '물의 정원'으로도 불린다.
 
아랍건축의 백미를 보여주는 알함브라 궁전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와 정원, 방들이 신비스런 미로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후궁들의 처소인 하렘이 있다. 알함브라 궁전을 보며 한 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천국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여기 있다."
 
▲ 알함브라 궁전 맞은편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알바이신 지구의 미로 같은 좁은 길. 1492년 그라나다 함락 때는 시민들이 거세게 저항했던 역사의 현장으로 현재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곳이다 ⓒ 오문수
 
▲ 거리를 걷다 신나게 춤추고 있던 젊은이들을 만났다. 사진을 찍겠다고 하자 멋진 포즈를 취해줬다 ⓒ 오문수
 
이슬람인들 덕분에 스페인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 세 문화의 복합문화 지역이 되었다. 특히 현재 쓰이는 스페인어의 약 1/4, 약 4천개의 단어가 아랍어에서 비롯됐다. 오늘날 많이 사용되는 아랍어의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카라반(carabana), 대수학(algebra), 시장(alcalde), 설탕(azucar), 오렌지(naranja) 알콜(alcohol), 커피(cafe) 기타(guitarra) 쌀(arroz), 올레(Ole!) 등
 
역사를 바꾼 이사벨 여왕의 최후선택... 콜럼버스 후원
 
이사벨 여왕이 그라나다에 입성하려는 순간 포르투갈에서 온 항해사가 초조하게 여왕과의 두 번째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계획이 여왕과 스페인에게 큰 영광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사벨 여왕을 기다리던 사람은 세계사를 바꾼 콜럼버스였다. 그는 스페인에 오기 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많은 항해경험을 쌓고 드넓은 대서양을 바라보며 "서쪽으로 가면 중국으로 가는 길이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상상하던 그가 피렌체의 천문학자 토스카넬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 일행이 그라나다를 방문했을 때 마라톤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서있는 뒤에 보이는 동상이 이사벨 여왕과 컬럼버스다. 컬럼버스가 이사벨여왕에게 대서양횡단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 오문수
 
▲ 세비야 대성당 안에 있는 컬럼버스 무덤 모습. 네명의 왕들이 컬럼버스의 관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컬럼버스가 스페인에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 오문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참고해 만든 한 장의 지도와 답장을 받은 콜럼버스는 1484년 포르투갈 국왕 주앙 2세에게 자신의 대서양횡단 계획을 설명했다. 포르투갈에서 거부당한 콜럼버스는 스페인으로 갔다. 당시 전쟁에 여념이 없던 이사벨 여왕은 거부했다. 콜럼버스가 짐을 꾸려 프랑스로 길을 떠난 직후 생각이 바뀐 이사벨 여왕은 콜럼버스를 다시 불러들여 협상에 들어갔다.
 
이사벨 여왕의 '마지막 1분'의 과감한 결정으로 새로운 해군 지도자와 거대한 신대륙을 얻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스페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대미문의 세계적인 대제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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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