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3] 중국 전한 말·후한 초의 사상가이다. 자는 자준(子駿)이며
유향(劉向)의 아들이다. 나중에 이름을 수(秀)로, 자를 영숙(穎叔)으로 고쳤다.
양웅(楊雄)에게 배워 오경(五經)에 널리 통달하였다. 그러나 부친이 대악령(大樂令)이었던 영향으로 가극을 좋아하여 예의에 구애되지 않고 자주 학자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았다.
왕망(王莽)의 신나라에서는 벼슬하지 않고, 후한 광무제 때에 의랑급사중(議郞給事中)이 되었다. 농업을 중히 하고 상업을 억제하며, 법제의 통일 등 정치개혁에 관한 의견을 황제에게 상신하였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다시 당시의 국가 권력의 어용학문이며 황제의 신용이 두터운 도참(圖讖)의 미신을 대담하게 공격하였기 때문에 황제의 분노를 사서 참수될 뻔하였으나 지방관으로 좌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