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7년(선조 30) 6월 19일 수군통제사
원균(元均)이 부산 가덕도 근처 바다에서 왜(倭)의 수군 과 싸우다가 패한 해전.
왜군이 정유재란을 일으키자, 도체찰사
이원익과 도원수
권율이
이순신의 뒤를 이어 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으로 하여금 이를 막도록 하였으나, 그는 오히려 육상 병력, 곧 육군이 안골포 쪽을 먼저 공격함으로써 왜군의 진로를 막아 달라고 요청하면서 자신은 싸우러 나가려 하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수군의 공격이 늦추어지자, 조정에서는 종사관 남이공을 한산도로 내려보내 원균에게 싸우러 나갈 것을 재촉하였다.
6월 18일, 더 이상 출전을 미룰 수 없게 된 원균은 남이공과 함께 100여 척의 배를 이끌고 한산도를 출발하여 그 다음날 안골포로 쳐들어 갔다. 안골포에서는 조선 수군이 공격해 올 것을 예상하고 숨어 있던 왜군의 습격을 받았으나, 원균 등은 이를 물리치고 가덕도 방면으로 나아갔다. 여기에서 일본 수군장 시마즈와 다카하시가 거느린 왜군을 만나 싸우다가 크게 패하고 말았다.
이 해전에서 평산포 만호 김축이 철환에 눈 밑을 맞아 부상하고, 보성 군수 안홍국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고, 원균 등은 칠천량(漆川梁)으로 되돌아와서 진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