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지식놀이터 :: 가덕도 해전(加德島海戰(可))
가덕도 해전
자 료 실
▶ 지식지도
▶ 원문/전문 (없음)
▶ 시민 참여 콘텐츠 (없음)
▶ 관련 동영상 (없음)
about 가덕도 해전


[광고]
[100 세트 한정] 행운의 2달러 스타노트+네잎클로버 컬렉션 35% 19,800원 12,800원
가덕도 해전 (加德島海戰(可))
1597년(선조 30) 6월 19일 수군통제사원균(元均)이 부산 가덕도 근처 바다에서 왜(倭)의 수군과 싸우다가 패한 해전.
▣ 지식지도
◈ 지식지도
가덕도 해전 (加德島海戰(可)) 남인 대동법 선무 공신 호성 공신 양주시 통영 충렬사 현충사 1591년 권율 원균 이순신 이원익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유키나가 구로다 나가마사 김성일 김시민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선조 신입 류성룡 윤휴 이이 이일 이항복 이황 허목 황윤길 권철 난중일기 동의보감 이순신전 고공답주인가 임진왜란 정유재란 경주 전투 명량 해전 진주성 전투 한산도 대첩 행주 대첩 세종로 이순신 동상 권율장군묘 거북선
▣ 백과사전
1597년(선조 30) 6월 19일 수군통제사 원균(元均)이 부산 가덕도 근처 바다에서 왜(倭)의 수군 과 싸우다가 패한 해전.
 
왜군이 정유재란을 일으키자, 도체찰사 이원익과 도원수 권율이순신의 뒤를 이어 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으로 하여금 이를 막도록 하였으나, 그는 오히려 육상 병력, 곧 육군이 안골포 쪽을 먼저 공격함으로써 왜군의 진로를 막아 달라고 요청하면서 자신은 싸우러 나가려 하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수군의 공격이 늦추어지자, 조정에서는 종사관 남이공을 한산도로 내려보내 원균에게 싸우러 나갈 것을 재촉하였다.
 
6월 18일, 더 이상 출전을 미룰 수 없게 된 원균은 남이공과 함께 100여 척의 배를 이끌고 한산도를 출발하여 그 다음날 안골포로 쳐들어 갔다. 안골포에서는 조선 수군이 공격해 올 것을 예상하고 숨어 있던 왜군의 습격을 받았으나, 원균 등은 이를 물리치고 가덕도 방면으로 나아갔다. 여기에서 일본 수군장 시마즈와 다카하시가 거느린 왜군을 만나 싸우다가 크게 패하고 말았다.
 
이 해전에서 평산포 만호 김축이 철환에 눈 밑을 맞아 부상하고, 보성 군수 안홍국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고, 원균 등은 칠천량(漆川梁)으로 되돌아와서 진을 쳤다.
[광고]
제주 클레르 드 륀 펜션 제주시 애월읍, M 010-6693-3704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기본항목(E)
내서재 추천 : 0
▣ 참조정보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