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 ~ 1889] 이탈리아의 민족 해방 운동가. 이탈리아 북쪽에 있는 상공업 도시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1825년
베르나비트회에서 공부한 후 나폴리에서 수사학(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하여 문장· 사상·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을 선택하고 또 그것을 이용하는 법을 연구하는 학문) 교수로 활약하였다. 1848~1849년의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전쟁 때에는 자원 파견대 목사로서 활동하였고, 1849년 로마 공화국 국민 군대의 목사를 지냈다.
1850년 영국으로 건너간 후에는 가톨릭을 포기하고 개신교로 개종하였으며, 런던의 이탈리아인 개신교 교회의 목사로 활동하였다.
로마로 돌아온 후에는 교황의 권위와 전제 정치, 자유주의자들의 소극적인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특히 뛰어난 웅변술로 거의 혁명적일 정도로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859년 이후에는 열렬한 애국자로서
마치니·
카보우르와 함께 이탈리아의 3대 위인으로 꼽히는
가리발디가 중심이 되어 이끄는 모든 군사 작전에 참여하는 한편, 교황의 정치 권력과 성직자들이 그 권리 를 함부로 쓰는 데 대해 대항하였다.
1865년 복음 교회 인 '자유 크리스트 교회'를 창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