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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개태사지 석불 입상(開泰寺址石佛立像)
개태사지 석불 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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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태사지 석불 입상 (開泰寺址石佛立像)
충청 남도 논산시 연산면 개태사에 있는 고려 시대의 불상. 보물 제219호.
▣ 지식지도
◈ 지식지도
개태사지 석불 입상 (開泰寺址石佛立像)
▣ 백과사전
충청 남도 논산시 연산면 개태사에 있는 고려 시대의 불상. 보물 제219호.
 
본존상의 높이 4.15m, 오른쪽 협시 보살상 높이 3.53m, 왼쪽 협시 보살상 높이 3.46m. 가운데에 중심이 되는 불상 (본존상)이 있고 왼쪽과 오른쪽에 본존을 보좌하는 불상 (협시 보살상)이 각각 하나씩 있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삼존불상이다.
 
협시 보살은 협사 보살로도 불리며, 불상에서 본존의 좌우에서 이 본존을 보호하는 불상(보살)을 말하는 것이다. 이 때 본존이 석가모니불일 경우에는 협시가 문수 보살·보현 보살이며, 아미타불일 경우에는 협시가 관세음 보살· 대세지 보살이다.
 
대한 불교 법상종에 속하는 개태사는 936년(태조 19)에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물리치고 후삼국을 통일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지어진 절로, 이들 삼존불상은 개태사가 처음 지어질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930년에 절을 크게 고치면서 도광사로 이름을 고쳤다가, 그 뒤 다시 태광사로 바꿨다.
 
이들 삼존불상은 오른쪽 협시 보살상 만 온전하게 보전되고 본존상과 왼쪽 협시 보살상은 절단된 채 전해지다가, 1934년 절을 고칠 때 절단된 몸통과 머리 를 찾아 복원되었다. 하지만 이 때도 왼쪽 협시 보살상의 머리 부분은 발견되지 않아 새로 만들어 붙였는데, 1988년 법당을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마저 발견되어 원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중앙 본존상은 전체적으로 오른쪽 협시 보살의 모습과 비슷하다. 소발(素髮) 머리에 육계(부처의 정수리에 상투 모양으로 솟아오른 혹)가 큼직하며 얼굴 은 전체적으로 둥글고 평평하다. 어깨에 닿는 긴 귀가 특징적이며 어깨와 가슴 정도가 둥글게 표현되었을 뿐 몸통은 굴곡이 거의 없다. 또한, 손과 발이 전체 몸에 비해 지나치게 크고 투박하게 표현되었으며 어깨에 걸친 옷은 무겁고 두껍게 표현되었고 아랫도리는 간단한 세로줄 무늬로 처리되었다. 4각형의 간단한 대좌에는 연꽃 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양쪽의 협시 보살은 본존상과 기본적인 조각 수법이 같지만 얼굴 · 어깨· 가슴은 더욱 부드럽게 처리되었고, 특히 왼쪽 협시 보살상의 기법이 두드러진다. 세 불상 중 유일하게 절단되지 않은 채 보존된 오른쪽 협시 보살상은 굴곡 없이 둔한 몸통, 간단하게 선으로 표현한 옷주름 등 조각 수법 이 뒤떨어진다. 왼쪽 협시 보살상의 조각 수법은 본존상보다 사실적이다.
 
4m에 달하는 거대한 몸집을 한 이들 삼존불상의 투박하고 육중한 모습에서 삼국 통일을 이룬 고려 초의 강인한 기상을 엿볼 수 있다.
 
개태사에는 이들 삼존불상 외에도 충남 민속 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개태사 철확(승려들의 식사 준비를 위해 국을 끓이던 지름 3m, 높이 1m의 거대한 가마솥)이 있으며, 충남 문화재 자료 제247호인 5층 석탑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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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