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가 경복궁 서쪽 네모난 연못 안에 세워진 누각. 국보 제224호. 근정전 서북쪽에 있는 이 건물은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잔치를 베풀기 위한 곳이었다.
1395년 경복궁이 세워질 때 연못을 파고 작은 규모로 지었던 것을 1412년(태종 12) 태종의 명에 의하여 큰 연못을 파고 사각형의 인공섬 위에 더 크게 세웠다. 경회루라는 이름을 지은 것은 이 때였다. 1473년(성종 4), 1474~1475년, 그리고 1506년(연산군 12)에 수리 공사를 했으나,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서 273년간 폐허로 남아 있다가, 1867년(고종 4) 대원군에 의하여 재건되었다.
연못의 크기는 동서가 l28m, 남북이 113m이다. 연못 안에 동쪽으로 치우쳐 장대석으로 축대를 쌓아 기단을 삼았으며, 둘레에는 회란석, 곧 난간 의 손잡이 돌을 두어 돌난간을 만들었고, 난간의 엄지기둥에는 12지상, 곧 육십 갑자에 나오는 열두 짐승의 상을 새겼다. 누각과 육지를 잇는 돌다리가 3개 있는데, 그 중 남쪽에 있는 것은 다른 2개의 돌다리보다 폭을 넓게 하여 왕이 드나들 수 있게 하였으며, 기단의 서쪽으로는 계단을 만들어 연못에 내려가 배를 탈 수 있게 하였다. 앞면 7칸, 옆면 5칸의 팔작지붕의 2익공집으로, 누마루를 받치는 48개의 높직한 돌기둥이 줄지어 서 있다. 바깥 기둥은 네모난 돌기둥이고, 안쪽 기둥은 둥근 돌기둥인데, 모두 아래가 넓고 위가 좁아지는 모양이다. 이 돌기둥 위에 나무 기둥을 세워 중루를 만들었는데, 마루의 밑부분은 마루 귀틀을 숨기기 위하여 우물천장을 하였다. 위쪽 마루는 바깥 테두리 툇간 부분이 가장 낮고, 그 다음 고주와 내고주 사이가 한 단 높으며, 내고주 안의 깊은 속간이 또 한 단 높게 만들어졌다. 외국 사신을 맞아 잔치를 베풀 때 그 품계대로 앉는 자리 구분이다. 고주란 한옥에서 여러 기둥 가운데 특별히 높게 세운 기둥으로, 주로 대청 마루의 한가운데에 세운 것을 이른다.
고주와 내고주 사이에 하방, 곧 벽의 아래쪽 기둥 사이에 가로지른 인방을 두고, 문짝이 넷으로 되어 여닫게 되어 있는 사분합문을 달았는데, 이 문은 필요할 때 들어올리고 내리게 하였다. 인방은 인방은 출입구나 창 따위의 아래 위에 가로 놓여 벽을 받쳐 주는 나무 또는 돌을 말한다. 처마는 겹처마 지붕이며, 용마루 끝에는 매의 머리같이 쑥 불거지고 모가 난 두 뺨에 눈알과 깃 모양의 선과 점을 새긴 기와인 취두가 설치되었고, 추녀마루 위에는 용의 머리처럼 생긴 용두와 여러 가지 짐승 형상이나 손오공 모양으로 만든 잡상이 설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