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고종 43) 경성(서울)에서 창간된 일어 일간지로,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에 걸쳐 통감부 및 조선 총독부의 기관지였다.
통감부는 조선 총독부 의 전신으로, 1905년(고종 9) 을사 보호 조약이 체결된 이후 1910년(순종 4)까지 일제가 우리 나라를 침략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기관이다.
《경성 일보》는 당시 통감부의 우두머리인 통감으로 있던 이토 히로부미가 통감부 서기관 으로 하여금 《
한성 신보》와 《
대동 신보》를 합병시켜 만들게 한 것이다. 《한성 신보》는 우리 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 인 《독립 신문》보다 먼저 창간된 신문으로, 일본 외무성이 한반도 침략을 위하여 기밀 보조비를 지급해서 경영을 도왔다.
창간 당시 《경성 일보》는 국한문 혼용판과 일어판으로 발행하였으나, 1907년 4월 21일부터는 일어판만 발행하였다. 그러다가 1910년 한일 합방 후에는, 최대의 민족지로 항일 운동의 선봉에 서서 민족 정신을 고취시켰던 《대한 매일 신보》를 흡수, 국한문 혼용지인 《매일 신보》로 바꾸어 《경성 일보》 자매지로 발행하였다. 1930년에는 총독부 기관지였던 영자 신문 《서울 프레스》를 병합, 일어· 한국어· 영어 등 3개국어로 된 신문을 발행하였다.
1905년 통감부 설치 이후 《경성 일보》는 《대만 일일 신문》 《만주 일일 신문》과 함께 일제의 한반도 침략과 조선에 대한 식민지 정책을 대변하고 선전하는 기관지로서 일제 침략 에 앞장섰다.
1945년 8·15 광복 후에도 계속 일본인들이 운영하다가, 11월 1일 폐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