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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경주 두대리 마애 석불 입상(慶州斗垈里磨崖石佛立像)
경주 두대리 마애 석불 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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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두대리 마애 석불 입상 (慶州斗垈里磨崖石佛立像)
경상 북도 경주시 율동(栗洞)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후기의삼존 석불.
▣ 지식지도
◈ 지식지도
경주 두대리 마애 석불 입상 (慶州斗垈里磨崖石佛立像)
▣ 백과사전
경상 북도 경주시 율동(栗洞)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후기의 삼존 석불. 벽도산(碧桃山) 중턱 서향한 바위에 새겨졌다. 보물 제122호. 본존상(本尊像) 전체 높이 3.32m(키 2.51m), 왼쪽 협시 보살 전체 높이 2.45m(키 1.94m), 오른쪽 협시 보살 전체 높이 2.22m(키 2m). 목조의 전실(前室)을 조영(造營)하였던 마애 석굴 사원이 있다. 본존불은 8세기에 급격히 진출하였던 아미타불(阿彌陀佛)의 하나로 새로운 형태를 보여 주는 불상이다. 모양새를 살펴보면 소발(素髮)의 머리는 큰 데 비하여 육계는 낮아 마치 모자를 쓴 것처럼 보이고, 네모지고 풍만한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중후한 인상을 풍긴다. 그리고 목은 거의 없어지고 삼도(三道)도 형식화되었으며 어깨는 넓고 각이 져서 당당하고 건장한데, 법의(法衣)는 얇아 몸의 굴곡이 그대로 나타난다. 오른손은 내리고 왼손은 가슴에 대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데, 이것은 서향 (西向)을 나타내는 표시와 동시에 아미타여래임을 말해 준다. 어깨에 걸친 법의는 몹시 얇고 밀착되어 배에는 띠가 나타나 있고, 법의의 하단은 V자형으로 예각(銳角)을 이루었다. 또한, 두 다리에 모두 빗긴 V자형을 그리고 있는 것, 군의(裙衣) 끝을 형식적으로 처리한 수법 등은 동심 타원형 옷주름 수법을 쓰던 통일 신라 시대 전성기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광배는 바위면을 주형(舟形)으로 얕게 파내고 두 줄의 선으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구분지었으며, 그 주위를 불꽃 무늬로 둘려서 거신광(擧身光)으로 삼았다. 앙련(仰蓮)과 복련(覆蓮)을 서로 맞댄 연화좌로 대좌를 삼고, 앙련과 앙련 사이에는 사잇잎을 새겨 놓았다. 왼쪽 협시 보살은 머리는 불상을 연상시키나 높은 보계와 그 아래 머리채를 우아하고 날씬하게 틀어 올린 모습이 건장하고 풍만한 본존상에 비해 여성적 아름다움을 풍긴다. 몸의 굴곡도 여실히 드러나고, 신체의 비례도 적당한 편이다. 발은 옆으로 벌렸으며, 오른손은 어깨 위까지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왼손은 보병(寶甁)을 잡고 있는데, 이 인상(印相)은 아미타여래의 좌협시 관음보살(左脇侍觀音菩薩)임을 말해 준다. 오른쪽 협시 보살도 왼쪽 협시 보살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이 불상들은 모두 선조 원형 두광(線條圓形頭光)을 하고 있으며, 대좌는 연꽃으로 장식하였다. 본존이 앙련·복련을 새긴 데 비해 협시 보살은 앙련만 배치하였다. 이 불상들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돋을 새김〔浮彫〕되어 온화하고 완만한 느낌을 주지만 하체로 내려갈수록 평면적이고 세부 묘사 가 거칠어서 통일 신라 시대의 섬세한 조각 양식을 찾기 어렵다. 8세기 후반 작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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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