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 북도 고창군 부안면 수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 분청 사기 가마터. 사적 제250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 청자로부터 조선
분청 사기로 옮아가는 과도기의 도요지이다.
조선 시대의 도자기는 고려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으나, 그릇의 분위기가 귀족적인 것에서 서민적인 것으로 바뀐다. 즉, 기교적인 면에서는 고려 청자를 따르지 못하나, 귀족 사회에 영합해 온 고려 청자의 섬약한 아름다움에서 탈피하여 유교적인 실질주의에 따른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분청 사기였다.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서 생활의 양상을 현실적인 것으로 변화시켜, 그릇의 실용성을 추구하는 간결한 작풍이 지배적인 것이 되었다. 조선 자기는 장식성이 강조된 기교를 배제하고 불필요한 면이나 곡선을 줄여 단순화시켰다.
조선 시대의 공예사는 16세기 말의 임진왜란을 분기점으로 해서 전후기로 구별되며 분청 사기는 임진왜란 때문에 그 맥이 끊기고, 그 후에는 백자가 조선 시대 공예의 중심이 되었다.
분청 사기 가마터가 있는 부안면의 남서부는 300~400m 높이의 산지가 넓은 면적을 차지하여 남쪽의 아산면까지 뻗어 있으며, 그 외 지역은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마터 또한 산 구릉의 경사면에 있으며, 대접· 항아리 ·잔· 접시·편병 등이 출토되었다. 그릇에 새겨진 문양은 연꽃 무늬· 모란 무늬· 물고기 무늬 등이며, 유색은 회청색을 띠고 바탕흙에는 잡물이 많이 섞여 있다. 그릇에 청자기의 표면을 상감으로 장식한 인화 분청이 있는 것으로 보아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사용된 곳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