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2년(철종 13) 5월 충청도 공주 (公州) 일대에서 농민들이 봉기한 민란.
전제·환곡· 군정의 삼정(三政)의 문란과 이를 악용한 관리들의 착취로 백성들이 살아가기 어렵게 되자 이에 항거하기 위해 공주의 각 면의 농민과 그 밖의 백성들이 민자성(閔子城)을 중심으로 난을 일으켜 부잣집이나 세도가에 불을 지르는 등의 항의와 시위를 벌였다. 당시 이 시위에는 서울과 영남 사람들도 참가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당시 관리들의 착취가 극심했으며 그 해악이 전국적이었음을 말해 준다. 난의 수습을 위하여 조정에서는 충청도 관찰사 유장환(柳章煥)을 파견했으며, 주동자인 민자성을 비롯하여 유상보(柳相輔)·유태로(柳台魯)·서정호(徐正浩)·진유완(陳有完)·이형하(李亨夏) 등이 관군에 잡혀 효수되었다. 뿐만 아니라 공주 판관(判官) 조병문(趙秉文)과 영장(營將) 이종식(李種植)은 난을 조기에 수습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파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