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근대시기 이전의 강수량 측정 기구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 보물 제561호 ’금영 측우기‘를 비롯해 조선 시대 측우(測雨) 제도를 계통적으로 증명해주는 2점의 측우대인 보물 제842호 ‘대구 선화당 측우대’와 보물 제844호 ‘창덕궁 측우대’를 국보로 지정 예고하였다.【유형문화재과】
【문화】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근대시기 이전의 강수량 측정 기구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 보물 제561호 ’금영 측우기‘를 비롯해 조선 시대 측우(測雨) 제도를 계통적으로 증명해주는 2점의 측우대인 보물 제842호 ‘대구 선화당 측우대’와 보물 제844호 ‘창덕궁 측우대’를 국보로 지정 예고하였다.【유형문화재과】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청동제 측우기. 보물 제561호. 전체 높이 31.5㎝, 대석(臺石) 높이 1.74m, 삽입 구멍턱의 지름 30.2㎝, 깊이 0.5㎝, 무게 6.2㎏이다. 1837년 헌종 3년에 제작되었다. 조선 세종 때에 처음 측우기 가 발명된 이래, 여러 차례 측우기가 만들어졌으나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는 이것이 유일하다. 원래는 공주 감영 앞뜰에 있던 것을 1910년 당시 일본인이 가지고 갔는데, 1971년 3월 반환받았다. 측우기는 상·중·하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분해가 가능하다. 측우기의 대석은 공주 박물관 의 진열관인 서낭당 앞 우측 기단 앞에 있던 직사각형 석재로, 앞면과 좌우 양면은 곱게 다듬어져 있으나 뒷면은 거칠다. 각각의 모서리 부분은 둔각을 이루며, 윗면에는 측우기를 끼울 수 있도록 홈이 패어 있다. 이 구멍의 하단(下端)은 낮은 턱을 이루었고, 바닥면의 곡선은 완만하다. 현재는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기상청에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