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지식놀이터 :: 김기창(金基昶)
김기창
자 료 실
▶ 지식지도
▶ 원문/전문 (없음)
▶ 시민 참여 콘텐츠 (없음)
▶ 관련 동영상 (없음)
about 김기창


[광고]
[100 세트 한정] 행운의 2달러 스타노트+네잎클로버 컬렉션 35% 19,800원 12,800원
김기창 (金基昶)
1913~ 산수·인물·화조·영모· 풍속 등에 두루 능한 동양화가.
▣ 지식지도
◈ 지식지도
김기창 (金基昶)
▣ 백과사전
1913~ 산수·인물·화조·영모· 풍속 등에 두루 능한 동양화가. 호는 운보(雲甫).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7세 때 장티푸스를 앓다가 청각을 잃고 언어 장애까지 겹쳤다. 그러나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승동 보통 학교를 졸업하고, 그 뒤 이당 화숙에서 당대의 뛰어난 동양 화가였던 김은호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1931년 18세 때 조선 미술 전람회에 《판상도무》로 첫 입선하였다. 그 뒤로 5차례에 걸친 입선과 4차례에 걸쳐 특선을 하였다. 제16회전에는 《고담》으로 조선 미술 전람회 최고상을 받았으며, 17회전에서는 《하일》로 조선 총독상을 받고 추천 작가가 되었다. 8·15 광복 이전 초기 때에는 스승 김은호의 영향을 입어, 정확한 선묘와 설채를 바탕으로 하여 인물화와 자연 풍경 등을 사실적으로 그려 내었다. 이 때의 작품으로는 《널뛰기》 《물새》 《여》 《금운》 등 조선 미술 전람회에 출품하여 입선한 작품 등이 있다. 8·15 광복 후에는 화사한 꽃과 새 등 전통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활달한 필법으로 그려 나가는 호탕하고 동적인 화풍으로 바뀌었는데, 전통 을 재해석한 그림이라는 평을 받았다. 1950년대부터는 화가인 아내 박래현과 함께 실험적인 작품을 시도하였으며, 주로 서민적인 내용을 주제로 하여 직선과 면 분할, 담백한 색채를 사용한 차분한 조형 의식을 보여 주었다. 이 때의 작품들로는 《황토》 《노점》 《무당》 《구멍가게》 《복덕방》 등이 있으며, 입체적인 시각으로 우리의 전통을 새롭게 해석한다는 평을 받았다. 이 때의 실험 정신은 1960년대 중엽까지 이어져 추상 표현의 단계에 이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으로는 《시집가는 날》 《젊음에의 초대》 《유산》 등의 작품이 있다. 1963년에는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국제전에 초대 출품하였다. 그리고 1964년 하와이 호놀룰루 동서 문화 교류 센터와 뉴욕 동남아 박물관 등에서 초청하여 10여 회에 걸친 부부 전람회를 갖기도 하였다. 1968년 해외 여행을 다녀온 뒤부터는 추상 표현의 작품 활동을 중지하였다. 그리고는 전통적인 재료인 먹을 사용하여 강렬한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에 속하는 작품들로는 《나비의 꿈》 《태양을 먹은 새》 등이 있다. 1970년대에는 청록 산수를 연작으로 그려 내었으며, 아내 박래현의 죽음 뒤에는 바보 산수 연작과 민화풍의 화조 그림을 그렸다. 이러한 변화를 보여 주는 작품으로는 《쌍계》 《부엉이》, 바보 산수의 예로는 《새벽 종소리》 등의 작품이 있다. 형태의 생략과 왜곡 등 대담한 실험 정신으로 추상과 구상 모두에서 힘찬 화필로 새로운 경지를 열었던 그는, 1971년에는 3·1 문화상을 받았다. 1980년대에는 대작의 추상화들을 걸레로 그려 내는 실험 정신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1986년에는 5·16 민족상과 서울시 문화상을 받았고, 1987년에는 색동회상을 받았다. 한국 미술 대상전과 대한 미술 전람회의 심사 위원을 맡아 보았으며, 홍익 대학교와 세종 대학교에서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광고]
제주 클레르 드 륀 펜션 제주시 애월읍, M 010-6693-3704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기본항목(E)
내서재 추천 : 0
▣ 참조정보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