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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김남중(金南重)
김남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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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김남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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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중 (金南重)
1596~1663 조선 중기의 문신.
▣ 지식지도
◈ 지식지도
김남중 (金南重)
▣ 백과사전
1596~166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이다. 할아버지는 좌의정 명원이며, 아버지는 첨지 중추 부사 수렴(守廉)이다. 1618년 광해군 때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등용되어 가주서가 되었다. 1623년에는 검열이 되었으며, 그 이듬해 회답사 정립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1625년에는 병조 좌랑이 되었으나, 오랑캐 가 침입한 사실을 잘못 보고하여 파직당하였다. 그러나 곧 수찬에 임명되었으며, 교리·지평·장령을 거쳐 1628년에는 부수찬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별로 중하지 않은 병으로 휴가를 요청하였다가, 젊은 관리가 나태하다는 이유로 다시 파직당하였다. 그 뒤 다시 장령에 임명되었으며, 사간· 시독관·부응교를 거쳐 1632년에는 집의가 되었고 추숭 도감 도청을 겸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으며, 그 때 예조 참의였던 그는 인조를 남한 산성으로 모시고 갔다. 이듬해 대사간이 되어, 강화도가 함락된 것에 대한 수장의 책임을 물어 처형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홍익한 · 윤집· 오달제 등 청나라와 화친할 것을 극력 반대하고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였던 척화신들을 문책하지 말 것을 주장하였다. 그 해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는데, 생일에 여러 읍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이 문제가 되어 세 번째로 파직되었다. 1641년 다시 대사간으로 기용되어 우부 빈객· 도승지를 거쳐, 1644년에는 다시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대사헌이 되어 1649년까지 대사성· 대사간· 대사헌을 번갈아 가며 지냈다. 1650년에는 이조 참판이 되었으며, 경천군에 봉해졌다. 1656년 춘추관 동지사가 되어, 사은 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658년에는 공조 판서가 되었고, 이어 예조 판서· 형조 판서를 거쳐 개성부 유수에 이르렀다. 저서에 《역대인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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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