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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김해 회현리 패총(金海會峴里貝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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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회현리 패총 (金海會峴里貝塚)
경상 남도 김해시 봉황동 회현리에 있는 삼국 시대보다 이른 시기인 원삼국 시대 의 조개더미 유적. 사적 제2호인 이 조개더미는 봉황대의 동쪽 기슭으로, 동서가 긴 표주박형에 가까운 작은 구릉 에 위치하고 있다. 철기 시대 초기의 것으로 알려진 이 조개더미의 규모는 높이 6m, 동서의 길이 약 130m, 남북의 나비 약 30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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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회현리 패총 (金海會峴里貝塚) 도자기 민무늬 토기 삿무늬 토기 토기 김해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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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 남도 김해시 봉황동 회현리에 있는 삼국 시대보다 이른 시기인 원삼국 시대 의 조개더미 유적.
 
사적 제2호인 이 조개더미는 봉황대의 동쪽 기슭으로, 동서가 긴 표주박형에 가까운 작은 구릉 에 위치하고 있다. 철기 시대 초기의 것으로 알려진 이 조개더미의 규모는 높이 6m, 동서의 길이 약 130m, 남북의 나비 약 30m이다.
 
가운데 2군데에 자연 암석이 드러나 있는 것 외에는 대부분이 잔디로 덮여 있으며, 동쪽과 남쪽에는 나무가 우거져 있다.
 
조개껍데기는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남쪽과 서쪽에 집중적으로 두껍게 쌓여 있으며, 북쪽과 동쪽에는 비교적 얇게 깔려 있다. 구릉의 남쪽에는 회현동의 마을이 이웃해 있고, 북동쪽 낭떠러지 아래에도 민가가 들어서 있어, 조개더미가 쌓인 패각층이 드러난 단면과 구릉 위에 흩어진 흰 조개껍데기를 볼 수 있다.
 
회현리 패총이 처음 알려진 것은 1907년의 부분 발굴 조사 때이며, 그 뒤 1920년에 전체적으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고,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것은 1934년과 1935년이었다.
 
이 일련의 발굴 조사를 통하여 이 유적에 대한 문화적 성격 과 연대의 개요가 밝혀졌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패총 은 한국 선사 시대의 유적지 가운데서도 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적지이다.
 
이 패총 속에 들어 있던 조개껍데기를 보면 그 종류는 굴· 백합 등 34종이며, 4종의 갑각류도 들어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이른바 김해 토기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토기의 조각들이 가장 많이 나왔으며, 그 외에 도끼나 손칼과 같은 철기가 발견 되었다. 이로 보아 이 패총을 남긴 시대에는 철기가 이미 일상 생활의 도구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철기 이외에 골각 제품으로서 골촉·골침 등의 송곳 같은 찌르개류[尖頭類]가 함께 출토되기도 하였다. 출토 유물 가운데 가장 많은 토기는 적갈색 토기와 회청색 토기의 2종류가 있었다. 토기의 형태에는 항아리·독·굽 그릇·그릇 받침·잔 등이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높은 온도에서 구워진 경질의 토기였다. 토기를 만드는 방식은 서리기[捲上法]와 쌓기[輪積法]의 두 가지 방식이 주로 사용되었다. 토기 바깥 면의 마무리는 물 손질하여 문지르기, 판자나 실을 감은 방망이로 두드리기, 대칼 같은 것을 이용하여 깎아내기, 둥근 조약돌 등을 이용한 갈기 등의 방법을 썼다. 이러한 방식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이들 토기에는 문살무늬 ·나이테무늬·그물무늬·삿무늬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출토 토기의 이러한 점은 김해 토기의 특징과 같다. 김해 토기는 종래의 민무늬 토기보다 높은 온도로 구워서 만든, 발달된 경질의 토기로서, 그 특색은 문살무늬나 삿무늬 등의 두드림무늬가 있다는 점이다. 두드림무늬는 토기를 단단히 하기 위하여 무늬가 새겨진 방망이로 두드려서 생긴 것이다. 특히, 후일에 와서 신라 토기의 모체가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원시 신라 토기라고도 한다.
 
1920년 발굴 때에는 중국 왕망(王莽)의 신나라 때 돈인 화천 1개가 나와, 이 패총의 상한 연대가 밝혀졌다. 그리고 함께 출토된 탄화미는 우리 민족의 주식이었던 벼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 뒤 1934년·1935년의 발굴을 통하여 한 무리의 돌널무덤 5기, 독무덤 3기, 움집자리, 화덕, 돌축대가 발견되었다. 그 가운데 한 독무덤에서는 세형 동검과 청동 제품 등이 출토되었다. 이 외에도 남방식 고인돌[南方式支石墓]의 뚜껑돌로 보이는 큰 돌이 있다.
 
1934년·1935년의 발굴 조사 결과로 보면, 이 유적지는 청동기 시대 후기로 보이며, 위에서 설명한 패총의 퇴적 연대보다 앞선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추론에 따르면 김해 패총은 시기적으로 앞선 매장터와 뒤진 조개더미 로 구분되는 2개 이상의 서로 다른 문화층으로 이루어진 유적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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