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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남대문 상량문(南大門上樑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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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상량문 (南大門上樑文)
지금의 서울 남대문인 숭례문의 개축 공사 때 씌어진 글.
▣ 지식지도
◈ 지식지도
남대문 상량문 (南大門上樑文)
▣ 백과사전
지금의 서울 남대문인 숭례문 의 개축 공사 때 씌어진 글. 1962년 2월 3일 숭례문을 해체·복원하는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이 글은 두 차례에 이르는 숭례문 개축 공사에 대한 것으로, 1448년(세종 30)과 1479년(성종 10)에 각각 기록된 것이다. 1448년의 기록에는 숭례문을 상량한 날짜, 공사를 책임진 사람들의 관직과 이름, 공사에 동원된 기술자들의 관직과 이름, 잡역부의 숫자 등이 자세히 적혀 있다. 또, 1479년의 기록에도 공사를 책임진 사람들과 기술자들의 관직, 이름 등이 나열되어 있고, 상량일의 잔치 풍경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조선 시대의 건축물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를 알게 해 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즉, 상량문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서 조선 초기에 국가에서 주관하던 공사는 제조(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임시로 임명되어 담당 관아의 일을 지휘하고 책임지던 종일품·종이품의 관직)가 총괄하고 감역관이 감독하였으며, 공장·역부가 시공을 담당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 기술자인 장인에게도 관직이 주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장인에게 관직을 줌으로써 국가 공사에 필요한 기술 인력 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고 기술적인 부분의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었다. 남대문 상량문은 《조선실록》에 기록된 내용과도 거의 일치되는 것으로, 조선 시대의 건축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특히 생산 체계와 장인들의 조직과 숭례문의 정확한 건축 연대 등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귀중한 사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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