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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남소문(南小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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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소문 (南小門)
조선 시대에 서울의 남산 봉수대 동쪽에 있었던 문. 지금의 서울 특별시 중구 장충동에서 용산구 한남동으로 이어지는 고갯길에 이 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이 만들어진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세조실록》의 기록에 의해 대략 1456~1457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지식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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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소문 (南小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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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서울의 남산 봉수대 동쪽에 있었던 문. 지금의 서울 특별시 중구 장충동에서 용산구 한남동으로 이어지는 고갯길에 이 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이 만들어진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세조실록》의 기록에 의해 대략 1456~1457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세조실록》에는 " 세조 2년(1456) 11월 20일에 왕이 재상들과 종친을 거느리고, 남소문이 세워질 곳과 그 주변을 살펴보기 위해서 청학동(지금의 서울 특별시 장충동 주변)으로 나가 그 곳을 살펴보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것으로 보아 1456년 이후로 이 문이 세워진 것을 알 수 있으며, 예종 1년(1496)에는 " 남소문을 만든 후에 의경 세자가 죽었다."는 소문이 나도는 바람에 그 해에 문을 철거해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세조의 첫째 아들인 의경 세자는 1457년 9월에 죽었다. 그러므로 남소문 이 세워질 땅을 둘러보기 위해서 세조가 직접 나가 살펴보았다는 1456년 11월부터 의경 세자가 죽은 1457년 9월 이전에 이 문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세조가 행차했던 때가 11월이었으므로, 곧바로 공사에 착수했다 하더라도 남소문이 완공된 시기는 그 다음 해인 1457년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문이 만들어진 이유는, 당시에 도성에서 남쪽으로 나가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해서였다. 즉 도성에서 남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광희문을 통과하여 한강 나루를 지나가야 했는데, 광희문을 통과하는 일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시간이 많이 걸렸으므로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건의가 계속 있어 왔다. 그리고 도성에서 곧바로 한강 나루로 나갈 수 있는 방법으로 이 문을 설치하자는 건의가 들어오자, 세조가 이를 허락하여 남소문을 설치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문은 만들어진 후 약 12년 만에 철거되었다. 그 이유는 실제로 현실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과, 도성의 동남쪽에 문을 만들면 나라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풍수 지리· 천문학· 역학 등을 연구하면서 사람에게 일어나는 길흉과 화복을 점치는 음양가의 충고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문을 설치한 직후에 의경 세자가 죽었으므로, 음양가의 지적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고 당시 사람들은 믿은 것이다.
 
그 후 명종· 숙종 때에 남소문을 다시 세우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음양가의 풍수 금기설 등 반대 의견이 많아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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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