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3 ~ 1566]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한 프랑스의 의사이자 점성가. 일반적으로 예언가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는 노스트라다무스는 뛰어난 의사 이기도 하였다.
프랑스의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히브리어·그리스어· 라틴어· 수학· 점성술 등을 배웠고, 몽펠리에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였다.
1529년에 아쟁이라는 곳에서 의술 활동을 시작한 그는 1544년에 살롱으로 옮겨서, 1546년과 1547년 사이에 엑스와 리옹 지방에 흑사병이 돌았을 때 혁신적인 치료법으로 널리 이름이 알려졌다.
점성술에 의한 예언을 하기 시작한 것은 1547년부터였으며, 1555년에는 예언들을 한데 모아서 《세기들(또는 제세기)》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이 책은 4행시로 이루어져 있는데, 100개의 4행시를 1세기로 하여 수백 개의 4행시를 여러 나라의 언어를 섞어서 썼다.
당시에는 점성술이 크게 유행하여 내용을 보충한 증보판이 왕에게 바쳐졌다. 그의 어떤 예언들은 실제로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여 명성이 더욱 널리 퍼졌으며, 당시 앙리 2세의 왕비의 초대를 받아 궁전에 들어가서 왕자들의 별자리 점을 쳐 주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뒤를 봐 주던 앙리 2세의 죽음과 생바르텔미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 그리고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등장 등을 예언하였다.
1560년에 샤를 9세가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자 왕과 왕족을 전담하여 치료하는 시의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미약한 인간의 능력으로 불확실한 앞날을 미리 내다본다는 것은 어느 정도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하며, 또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점도 있으므로 노스트라다무스 의 예언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출판과 판매는 물론 사람들이 읽는 것도 금지하는 금서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라틴어와 히브리어 등이 뒤섞인, 마치 암호와도 같은 그의 예언들은 그 뒤로도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그의 예언시 968편이 1970년대 후반에 번역되어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세계 각국은 물론이고, 우리 나라에서도 큰 관심을 불러모았다.
한편, 그의 예언 중에 지금으로서는 분명한 뜻을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을 예언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