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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녹둔도 사건(鹿屯島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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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둔도 사건 (鹿屯島事件)
1587년(선조 20년)과 그 이듬해에 조선과 여진족이 두 차례의 전투를 벌였던 사건.
▣ 지식지도
◈ 지식지도
녹둔도 사건 (鹿屯島事件) 선무 공신 통영 충렬사 현충사 1591년 이순신 선조 원균 류성룡 난중일기 이순신전 명량 해전 임진왜란 정유재란 세종로 이순신 동상 거북선
▣ 백과사전
1587년과 그 이듬해에 조선과 여진족이 두 차례의 전투를 벌였던 사건.
 
선조 20년 때인 1587년에 두만강 하류에 있던 녹둔도에 여진족의 한 부족인 시전 부족이 몰래 습격하여 이를 막는 조선 군대와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전투 과정에서 조선군 수비 대장인 오형을 비롯한 병사 11명이 전사하고, 병사와 민간인 160여 명이 납치되었으며, 말 15필도 약탈당하였다.
 
이에 분노한 조선군은 보복전을 펼쳐, 당시 녹둔도를 관할하는 함경도 경흥부의 부사 이경록과 수비 책임자인 이순신을 선봉장으로 삼아 1차 정벌에 나섰다. 그 결과 납치된 160여 명을 구하고 적을 죽이기도 하였으나, 그 숫자는 많지 않고 오히려 아군의 피해가 더 컸다. 이에 당시 북병사 벼슬에 있던 이일이란 사람은 패전의 책임을 물어 이경록과 이순신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선조에게 건의하였으나, 조정에서는 관직만을 박탈하고 일개 병사로 백의종군하여 전투에 참가하도록 선처하였다.
 
조선은 새롭게 군대를 편성하여 1차 정벌이 있은 지 4개월 뒤인 1588년 1월에 2차 정벌에 나섰다. 이 때 북병사 이일 이 우후 벼슬의 김우추 등과 400여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여진족이 사는 추도를 공격하여 적군 33명을 죽였다고 한다. 또, 함경도 길주 이북의 여러 부대와 중앙의 장수들도 정벌에 합세하였다. 회령 부사 변언수와 은성 부사 양대수, 부령 부사 이지시 등을 선봉장으로 하여 한밤중에 두만강을 건너서 여진족의 4개 부락을 기습 공격하였다. 그 결과 200여 가구를 불태우고 적군 380여 명을 죽였으며, 말과 소 수십 필을 얻었다. 아군 희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이 전투는 역사상 여진 토벌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승리로 평가된다.
 
백의종군하던 이경록과 이순신도 이 싸움에서 큰 공을 세움으로써 사면을 받았다. 이 정벌에 참가해서 전공을 세웠던 장수와 병사들은 4년 뒤에 일어난 임진 왜란에서도 국난을 극복하는 힘을 발휘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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