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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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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 (獨樂堂)
조선 시대 14대 선조 때인 1619년에 노계 박인로가 지은 가사. 《노계집》 권3에 실려 전하고 있다. 3음보, 혹은 4음보를 1행으로하여 모두 123행에 255구로 되어 있으며, 박인로가 지은 가사 가운데 가장 긴 작품이다.
▣ 지식지도
◈ 요약정보
독락당 (獨樂堂) 조선 선조 때인 1619년에 노계 박인로가 지은 가사. 노계집》 권3에 실려 전하고 있다. 3음보, 혹은 4음보를 1행으로하여 모두 123행에 255구로 되어 있으며, 박인로가 지은 가사 가운데 가장 긴 작품이다. 경상 북도 경주시 옥산리에 있는 회재 이언적이 거처하던 독락당을 찾아,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이언적이 후대에 남긴 덕을 추모하여 읊은 것이다. 작자가 도학에 정진하여 높은 경지에 이르렀을 때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지식지도
독락당 (獨樂堂) 성리학 박인로 이언적 김굉필 김안로 윤선도 윤원형 이황 정세아 정철 조광조 노계집 누항사 선상탄 영남가 오륜가 태평사 노계가 임진왜란 정미사화
▣ 원문/전문 (인기순, 1~10 위)
독락당 獨樂堂 가사 박인로 (42)
▣ 시민참여콘텐츠
◈ 인기순 (1 ~ 4 위)
2019.07.17
【학습】 이 작품은 노계 박인로(1561∼1642)가 만년에 회재 이언적(1491∼1553)이 살던 경주 옥산의 독락당을 찾아갔을 때인 광해 11년(1619)에 지은 모현가사이다.
 
◈ 등록순
2019.07.17
【학습】 이 작품은 노계 박인로(1561∼1642)가 만년에 회재 이언적(1491∼1553)이 살던 경주 옥산의 독락당을 찾아갔을 때인 광해 11년(1619)에 지은 모현가사이다.
 
▣ 참조 카달로그
◈ 참조 키워드
경주시 (3) 백과 옥산 서원 (3) 백과 이언적 (3) 백과
▣ 백과사전
조선 시대 14대 선조 때인 1619년에 노계 박인로가 지은 가사. 《노계집》 권3에 실려 전하고 있다. 3음보, 혹은 4음보를 1행으로하여 모두 123행에 255구로 되어 있으며, 박인로가 지은 가사 가운데 가장 긴 작품이다.
 
박인로의 가사는 대체로 성현들이 세상을 다스린 데 대한 동경과, 현실과 이상이 서로 맞지 않는 데서 오는 괴로움을 노래하고 있다. 이 '독락당'은 전자에 속하는 작품으로, 내용은 작자가 경상 북도 경주시 옥산리에 있는 회재 이언적 이 거처하던 독락당을 찾아,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이언적 이 후대에 남긴 덕을 추모하여 읊은 것이다. 작자가 도학에 정진하여 높은 경지에 이르렀을 때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내용으로 보아 크게 10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제1 단락에서는 임진왜란을 당하여 무인으로서 여가없이 바삐 지내다가, 늙어서 오랜만에 독락당을 찾으니 산봉우리는 빼어나서 옛 성현인 주자가 살던 무이산과 같고, 흐르는 물은 감돌아 중국 북송 때의 대학자 정이가 살던 이천과 같다고 하였다.
 
제2 단락에서는 신라 1,000년 고려 500년 사이에도 성현 군자는 많았건만, 하늘이 이러한 명승지 를 감추어 두었다가 이언적에게 준 것은 사물에는 제각기 임자가 따로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제3 단락에서는 독락당의 한가로운 경치와, 이 고요한 가운데서 생각하고 깨닫던 이언적의 모습을 안증과 유하를 좌우에 거느린 공자에 비유하였다.
 
제4 단락에서는 퇴계 이황의 친필이 담긴 양진암과 관어대 널찍한 바위 위에 남은 이언적의 지팡이와 신발 자국, 손수 심은 큰 소나무를 대하니 마치 영지와 난초가 가득 찬 방에 들어간 듯 하다고 읊었다.
 
제5 단락에서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층암 절벽, 하늘과 구름이 비친 100척 깊이의 못, 저녁 안개에 잠긴 푸른 계곡의 묘사를 통하여 벼슬에서 벗어나 유유자적 자연과 더불어 살던 이언적의 자취를 더듬었다.
 
제6 단락에서는 영귀대의 아름다운 경치에 노래를 읊으며 돌아간 증석의 옛일을 생각하고, 자욱한 물안개가 비낀 폭포를 보며 여산에 비기고, 징심대 맑은 물에 가슴 속이 새로워짐을 느꼈다. 탁영대를 보고는 속세에서 어지러이 부귀와 공명을 다투는 속인들을 생각하고 개탄하고 있다.
 
제7 단락에서는 사자암에 올라 도덕산을 바라보며, 이언적의 덕망이 구슬이 쌓여 빛을 머금고 있는 듯하다고 추앙하고, 이태백의 시를 빌려 이언적을 봉황에 비유하여 봉황새 날아간 빈 산에 두견새 만 운다고 하면서, 그가 가고 없는 쓸쓸함을 노래하였다. 한편으로 이언적의 자취를 무릉 도원의 신선으로 받들면서 해질 무렵이 되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자신의 간절한 사모의 정을 읊었다.
 
제8 단락에서는 독락당에 다시 올라 이언적 의 풍채와 덕행을 다시금 추앙하고, 한때 글 읽는 소리 가 이어졌던 서원의 번성함을 노래했다. 동방의 군자인 그가 굳은 충성심으로 태평 성대를 이루어 보려 했는데, 시운이 불행하여 을사사화에 강계로 귀양을 가게 되었음을 슬퍼하고, 귀양지에서도 깊은 감화를 주어 많은 선비들의 추앙을 받고 사당까지 세우게 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9 단락에서는 구인당에 올라가 그 사당의 엄숙함을 보고 주자가 살던 자양 운곡이 바로 여기라고 감탄하였다. 세심대에 내린 물에는 지금도 그의 덕의 향기가 이어 흐르는 듯하고, 용추 깊은 못에는 귀신조차 잠겨 있는 듯 그의 무궁한 유덕은 기이한 하늘의 조화와 함께 어울리는 듯하다고 하였다. 달포를 머무는 동안 그가 남긴 문집을 살펴 보니, 그것이 모두 성현의 말씀이어서 해와 달같이 밝으므로 밤길에 촛불을 잡고 가는 듯했다고 하였다.
 
끝으로 이언적의 유훈을 기슴 깊이 새겨 그를 오래도록 태산 북두처럼 추앙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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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 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양반집 사랑채. 보물 제4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사랑채는 회재 이언적의 제사를 받드는 옥산 서원의 안쪽 계곡에 있는데, 그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서 거처한 유서 깊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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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정보
백과 참조
노계 박인로의 가사.
 
목록 참조
 
외부 참조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