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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투르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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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투르크 전쟁 (Russia-Turk戰爭)
17~19세기에 걸쳐발칸 반도와 카프카스 지역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오스만투르크 제국 간에 계속된 전쟁.
▣ 지식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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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투르크 전쟁 (Russia-Turk戰爭)
▣ 백과사전
17~19세기에 걸쳐 발칸 반도와 카프카스 지역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오스만 투르크 제국 간에 계속된 전쟁.
 
처음에는 두 나라 간의 단순한 세력 다툼이었으나, 뒤로 갈수록 유럽의 여러 나라가 갖가지 방법으로 이 전쟁에 끼여들었다.
 
1676~1681, 1687, 1689, 1695~1696, 1710~1712, 1735~1739, 1768~1774, 1787~1791, 1806~1812, 1828~1829, 1853~1856, 1877~1878년 등 총 12회에 걸쳐 벌어졌는데, 작게 보아서는 뒤에 벌어진 6번의 전쟁을 가리키기도 한다.
 
오랫동안 계속된 전쟁에서 대부분 러시아가 승리하였으며, 그 결과 맺어진 조약으로 러시아는 발칸 반도의 많은 나라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반대로 오스만 투르크는 주변 국가들에 대한 세력을 잃고 점차 무너지게 된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흑해를 통해 발칸 반도와 카프카스 지역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동방 정책을 추진하였다.
때문에 러시아와 오스만 투르크 제국 사이에는 러시아·투르크 전쟁 이전에도 여러 차례 충돌이 있었다.
 
1676~1681년의 충돌에서 러시아는 폴란드와 힘을 합쳐, 드네프르강 왼쪽의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오스만 투르크를 물리쳤다.
또한, 1695~1696년에는 모스크바 공국 시대를 끝내고 러시아 제국을 세운 표트르 1세에 의해 '아조프 원정'이 감행되었는데, 이 때의 전쟁 참가는 투르크의 세력이 커져 유럽 전체가 위험에 처하게 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
 
'북방 전쟁'을 벌이던 투르크 는 아조프해를 1710년 수중에 넣었으나, 몇 년 지나지 않아 다시 빼앗기게 된다.
 
당시 러시아의 안나 이바노브나 여제 는 오스만 투르크를 공격해 아조프해를 다시 차지하고, 러시아의 세력을 흑해로 뻗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제1차 전쟁'이라고도 하는 1768~1774년의 전쟁은 승승 장구하는 러시아 제국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가 투르크 를 뒤에서 조종해 일으킨 전쟁이었는데, 도리어 러시아 는 영토를 넓힐 수 있는 기회로 삼아,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 아래에 있던 크림 반도를 공격해 승리하였다.
이 승리로 1774년 러시아는 투르크와 쿠추크 카이나르지 조약을 맺어 흑해 연안 지역을 차지하였으며, 투르크로 하여금 크림 한국(汗國)의 독립을 승인하게끔 만들고 투르크 영토 내에 있는 그리스 정교도를 러시아가 보호한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이러한 굴욕적인 조약의 내용을 무효로 만들기 위해 투르크는 1787~1791년 다시 '제2차 전쟁'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도 러시아 장군 수보로프가 투르크 군대를 대파하였으며, 러시아는 또다시 1792년 야시 조약 을 맺어 몰도바(몰다비아) 지방을 차지하였다.
이처럼 투르크와의 전쟁에서 백전 백승하는 러시아를 유럽 각국은 불안한 눈초리로 지켜보았지만, 당시의 유럽 상황이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등으로 어지러웠기 때문에 무리하게 두 나라의 전쟁 에 직접 끼여들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1806~1812년에 있은 '제3차 전쟁'에서도 러시아의 승리가 계속되었지만, 나폴레옹 1세의 모스크바 원정이 실행에 옮겨지자, 러시아 는 서둘러 투르크와 조약을 맺고, 그 동안 투르크로부터 빼앗은 각지에 주둔시킨 군대를 철수시켰다.
사실, 이 전쟁은 프랑스를 등에 업은 투르크가 고의로 러시아와 맺은 조약을 어겨 일어난 것이었는데, 프랑스와의 사이가 심상찮음을 느낀 러시아가 재빨리 행동을 취해 서둘러 투르크와의 전쟁을 끝마친 것이었다.
이 때 역시 러시아는 부쿠레슈티 조약(1812)을 맺고 베사라비아를 손에 넣었다.
 
1828~1829년 일어난 '제4차 전쟁'은 그 동안의 다른 전쟁들에 비해 러시아 군대에게 있어서 힘겨운 전쟁이었다. 1828년 그리스 가 투르크를 상대로 독립 전쟁을 벌이자, 러시아도 투르크 의 카프카스 지역을 점령해 1829년 아드리아노플 조약을 맺음으로써 이 지역에 대한 소유권을 빼앗았다. 이 조약 으로 러시아는 도나우강 하류, 흑해 동쪽과 다르다넬스 해협, 보스포루스 해협을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는 자유 항행권을 얻었으며, 투르크로 하여금 그리스의 독립을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이로써 러시아는 그리스 내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1853년에는 예루살렘의 성지 관리권을 둘러싸고, 서로 대립하던 투르크와 러시아 사이에 '제5차 전쟁'이 일어났다. 이 충돌은 1853~1856년 계속된 크림 전쟁으로 번지게 되는데, 당시 잇따른 승리로 기세가 오른 러시아를 지켜보고 있던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마침내 투르크와 힘을 합쳐 러시아에 대항하게 된 것이다.
이 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1856년 맺은 파리 조약에서 많은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하였다.
'제1차 동방 전쟁'이라고도 하는 이 전쟁으로 역사가 오래된 러시아의 동방 정책이 조금 누그러지는 기미를 보였다.
 
1870년대에 접어들어 흑해를 통한 무역의 중요성이 높아지자, 한 때 누그러졌던 러시아의 동방 정책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다.
 
러시아는 투르크의 지배하에 있는 여러 슬라브 민족들의 민족주의 를 자극해 투르크를 상대로 한 독립 운동의 기운을 북돋웠는데, 그 결과 1875년부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며, 다음 해에는 불가리아·몬테네그로·세르비아에서도 반란이 잇달았다.
 
1877~1878년에 일어난 '제6차 전쟁'은 이러한 상황에 힘입은 러시아가 투르크에 선전 포고를 함으로써 일어났다. 이 전쟁을 일으키기에 앞서 러시아는 전쟁을 일으키는 이유를 분명히 하기 위해 유럽 여러 나라들을 모아 회의를 열고, 발칸 반도 여러 나라들의 요구를 들어주도록 투르크에 권유하는 과정을 거쳤으며, 투르크가 이를 거절하자 전쟁을 일으켰다.
'제2차 동방 전쟁'이라고도 하는 이 전쟁은 결국 러시아의 승리로 끝났다.
 
발칸 반도와 카프카스에서 치열하게 벌어진 전투에서 러시아 는 플레브나 요새·아드리아노플· 이스탄불을 차례로 밀고 들어갔다. 투르크는 전쟁에서 패배한 대가로 1878년 산스테파노 조약을 체결해 카프카스를 러시아에 넘겼으며, 반란을 일으킨 불가리아에 자치를 허락하고, 루마니아·세르비아·몬테네그로는 독립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조약의 내용이 발칸 반도에서의 러시아 세력을 지나치게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이에 긴장한 유럽 각국은 조약을 다시 맺을 것을 주장해 1878년 베를린 회의가 열렸다.
회의 결과, 많은 내용이 사라졌으며, 발칸 반도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다시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오랫동안 지루 하게 계속된 러시아· 투르크 전쟁 결과, 영토를 크게 넓혀 유럽에서는 흑해와 프루트강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에서는 카프카스 산맥 너머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러시아의 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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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