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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묘갈(墓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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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갈 (墓碣)
무덤 앞에 세우는 돌비석.
▣ 지식지도
◈ 지식지도
묘갈 (墓碣)
▣ 백과사전
무덤 앞에 세우는 돌비석. 무덤 앞에 세우는 윗부분이 둥그렇게 생긴 비석으로 묘비와 같은 말로 쓰여진다. 묘갈의 의미는 죽은 사람의 이름 석자를 후세에 전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으므로, 긍정적인 측면을 기록하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중국 당나라 때는 5품 이상의 관직일 경우에만 거북의 형상과 용의 서린 모양을 한 디딤돌 위에 비를 세울 수 있었고, 5품 이하의 관직에는 방부 원수인 갈을 세우도록 제한을 두었다. 이상과 같은 사실에 근거하면 형태는 둥글며 묘의 주인의 관직이 5품 이하임을 알 수 있으며, 그 체제가 질실한 것 또한 묘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이 후대에 이르러서는 비와 갈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았다. 문헌에 나타난 최초의 갈은 진반니의 반황문갈이며 그 뒤에는 갈이라는 표현을 쓴 비석은 보이지 않았고 혹시 있을 경우에도 비와 같은 규모로 높고 크게 세워졌기 때문에 비와의 구별은 쉽지 않았다. 이 외에 글씨체에 있어서 명(銘)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였다. 묘갈은 살아 있을 때 좋지 않았던 사실들은 모두 빼고 좋은 점만을 기록한다는 점이다. 묘갈에 표현하는 순서는 먼저 선조의 행적을 기록하고 다음에 공덕과 함께 후손들의 행적을 기록하는 경우와, 먼저 공덕을 기록하고 나서 조상의 행적과 후손들의 행적을 기록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나라의 갈은 고려 시대의 최충의 '홍경사갈'에서 유래되어 내려왔으며, 고려 시대에는 묘갈의 흔적이 없고, 조선 중엽 이후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송시열이다. 그는 많은 작품을 만들었는데 후대에 이르러 금석가의 표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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