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6월 18일에 이승만 대통령이 남한에 수용 중인 북한 및 남한 출신 반공 포로 를 석방한 사건. 6·25 전쟁 때의 공산군 포로 3만 7,000명 중 2만 7,000여 명의 반공 포로를 우리 나라의 단독 의사로 석방함으로써 국제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사건이다.
그 동기는 모든 포로를 중립국에 넘겨 준 다음, 자유 의사에 따라 남· 북한 중 어느 편을 선택하게 한다는 한국전 휴전 협정에 대한 불만에서 빚어졌다. 이 일로 말미암아 한·미 간에 갈등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해 6월 25일에 미국 국무 차관보 로버트슨이 한국에 와서 충분한 절충으로 원만히 해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