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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사영운(謝靈運)
사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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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영운 (謝靈運)
385~433 중국 남조 송나라의 시인.
▣ 지식지도
◈ 지식지도
사영운 (謝靈運)
▣ 백과사전
385~433 중국 남조 송나라의 시인. 허난성〔河南省〕 천쥔양샤〔陳郡陽夏〕에서 출생하였다. 사영운은 '강락공'의 벼슬과 지위를 이어받았으므로 '사강락'이라고도 불린다. 중국 왕조로 후한이 멸망한 이후 수의 통일까지 건업(지금의 남경)에 도읍한 오· 동진·송·제·양·진(陳)을 총칭하는 육조의 2대 문벌 귀족 가운데 하나인 사씨(謝氏) 출신으로 그의 할아버지인 사현은 진(晉)나라의 거기 장군으로 전진 (前秦)의 부견을 페이수이강에서 격퇴한 인물이었다. 진나라의 동천과 함께 지금의 저장성〔浙江省〕인 시령으로 옮겼으며, 사현이 죽은 뒤에는 아버지의 사촌형제인 사혼이 가문을 이끌어나갔다. 진나라가 망하고 송나라에 들어가는 시기에 정세에 잘 대처하지 못한 사혼이 송나라 무제인 유유에게 죽임을 당하자 사영운도 정치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높은 벼슬에 있던 사영운은 저장성의 회계 ·융자군〔永嘉郡〕 등의 태수 및 비서감 등과 같은 낮은 벼슬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는 불만으로 그는 결국 모든 공직을 벗어 버리고 말았다. 그 후 그는 자연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고향 땅 시령에서 불만을 자연 의 아름다움으로 달래면서 그 아름다움을 시로써 표현하였다. 고향에서 지은 대표적인 시가 《산거부》인데 그는 기교를 부리지 않는 도연명과는 달리 글자마다, 그리고 구절마다 언어를 애써서 갈고 닦아 산수를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전체적인 시풍은 의기가 장하고 풍류와 운치가 있으면서 동시에 섬세하기도 하였다. 그는 물려받은 풍족한 자산 으로 산수를 돌며 시를 짓고 주연을 베풀었는데, 이러한 그의 생활로 인하여 반역을 꾀한다는 모함을 받아서 광저우 〔廣州〕에서 목베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시는 아우뻘인 사혜련과 안연지, 포조 등의 작품과 더불어 제(齊)나라와 양(梁)나라로 이어지면서 이를 바탕으로 당나라 때는 율시 와 절구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의 시가 실린 책으로는 《문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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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