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6월 4일 중국 정부가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들과 시민을 무력으로 진압하여 유혈 사태를 일으킨 일. 이 사건은 중국 현대사에 큰 충격을 준 정치적 사건이라 말할 수 있다.
4월 15일
호요방(胡耀邦) 전 당 총서기가 사망하자 그의 명예 회복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이 집회를 갖기 시작, 일반 시민이 가세해 민주화 운동으로 발전했다. 이후 민주화 요구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천안문에서는 지식인, 노동자, 일반 시민 등 100만명이 연일 대대적인 집회를 개최했다.
이에 따라 온건파 조자양(趙紫陽) 총서기, 호계립(胡啓立) 정치국 상무 위원측과 강경파인 양상곤(楊尙昆) 국가 주석, 이붕(李鵬) 총리측이 대립, 강경파의 우세로 6월 4일 새벽 계엄군이 천안문 광장에서 무기한 농성을 벌이던 학생, 시민들에 대해 무력 진압을 전개, 군의 발포로 수천 명의 희생자(시위대측 주장, 정부 는 200명 사망 주장)가 발생하는 최악의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