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엽의 승려 각진 국사는 1270년에 태어나 10세가 되던 해에 조계산 천영을 스승으로 하여 출가해 비구가 지녀야 할 계율인 구족계를 받았으며, 일생을 수행하다가 1355년에 입적하였다.
각진 국사는 1290년 충렬왕 때 승려를 위한 과거 시험인 승과에 급제하였으나, 조정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현실적인 명예 등을 버리고 수행을 위하여 전국을 돌아다녔다. 백암사에서 10년 동안 선학을 연구하였고, 송광사에서는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온 마음을 다 쏟았다. 그 후 조계종의 계승자로 충정왕의 왕사가 되었고, 1352년에는 공민왕으로부터 왕사로 봉해졌는데, 그 때 각진 국사의 나이 83세였다.
공민왕은 각진 국사 의 나이와 건강을 염려하여 그의 초상화를 그려 모셔 두고 분향 재배하는 예를 거행하도록 하였다. 그 3년 뒤인 1355년 7월 각진 국사는 백암사에서 죽음에 즈음해 부처의 공덕과 교리를 찬미하는 노래인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초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