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세기 후반] 18세기의 문관으로 본관은 안동, 병익(炳翼)의 조부이며, 세근(世根)의 아버지이다.
영천군수를 지내고 수직(壽職)으로 가의대부에 올라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사학(四學) 유생(儒生)으로 있을 때 ‘조태억(趙泰億)이 거재(居齋)하는 유생을 위협한 죄’와 ‘윤회(尹會)가 도리어 반궁(泮弓)의 유생 부자(父子)를 욕한 죄’를 분명하게 내리기를 숙종에게 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묘는 학의동 학현마을에 있는 김세근의 묘역 바로 위에 있다. 김병익, 김세근의 묘표와 같은 시기에 세워졌으며 외형 또한 매우 흡사하다. 이는 후손 중에 현달한 정균(鼎均)과 세균(世均)대에 이들 묘역을 함께 중건하면서 건립한 것으로 파악된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 『정조실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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